Sunday, 1 March 2015

마4:12-25 흑암의 땅을 찾아오신 우리 왕

들어가는 말


왕(메시야)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본격적인 메시야 사역을 시작하십니다. 이는 흑암의 땅에 빛을 비추는 사역입니다.
흑암의 땅 갈릴리에 사는 어부 몇 사람들에게 메시야가 참 빛을 비추셨습니다.
제자로 선택하십니다.
천국 복음을 전파하십니다.
병마에 시달리는 자들을 치유해 주셨습니다.

생계만을 위해 그물을 던지던 어부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며 소멸되어 가던 어부의 심지는 하나님의 빛에 연결되었습니다. 빛이 비추기 시작하자 그들은 변화했습니다.

나의 어두운 부분은 변화할 수 있는가?
우리의 어두운 지대는 변화할 수 있는가?
우리 민족의 어두운 역사는 변화할 수 있는가?
오늘 본문은 그렇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흑암의 땅에 큰 빛으로 오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빛이 나를 비추고, 우리를 비추고 우리 민족을 비추고 있는 한 우리는 밝을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찾아오신 하나님의 빛을 받아 사람을 낚는 어부로의 변화
이는 우리가 오늘 말씀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보배입니다.


1. 왕은 흑암의 땅에 찾아 오셨습니다.

  (12)예수께서 요한의 잡힘을 들으시고 갈릴리로 물러가셨다가 (13)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서 사시니 (14)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15)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 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16)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취었도다 하였느니라 (17)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하시더라

아무리 달이 밝고 별이 클지라도 태양이 떠오르면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세례 요한이 무대에서 물러나자 참 빛이신 예수님이 등장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이 잡혔다는 소식을 듣자 곧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가버나움은 갈릴리 호수 북서쪽에 위치한 행정과 교통의 중심지였습니다. 나사렛에서 멀리 떨어진 갈릴리 지방의 한 성읍으로서 규모가 크고 번화했습니다. 다만 그곳은 흑암의 땅이었습니다. 사망의 땅이었습니다.

이는 하나님 말씀을 성취하기 위함이셨습니다.

(16)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취었도다 하였느니라

어둡고 사망의 그늘이 드리운 땅에 참 빛이 찾아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었습니다.

하나님은 흑암의 땅을 찾아오시는 빛이십니다.

창1:2-3에 보면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은 깊음 위에 있습니다.
그곳에 "빛이 있으라!"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언약의 백성이 흑암에 있을 때, 찾아오십니다.
아브라함은 흑암의 깊음을 체험하는 때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때마다 나타나십니다.
이삭이 우물을 네 번이나 빼앗기고 브엘세바에 올라갔습니다. 그 깜깜한 흑암의 밤에 하나님께서 나타나 주십니다.
야곱이 형의 살기를 피해 하란 땅으로 도망하던 그 깜깜한 밤에 벧엘에서 하나님은 나타나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 흑암에서 부르짖을 때, 하나님은 그 백성을 찾아오셨습니다.
사사기는 흑암에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기록입니다.

어거스틴을 흑암 중에 찾아오셨습니다.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오늘날도 하나님께서는 흑암에 앉은 그 백성을 찾아오십니다.
내가 너무 깊은 흑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빛으로 찾아오신 주님을 만나십시오.
아무리 깜깜한 어두움도 성냥 불빛 앞에서도 꼼짝못합니다.
하물며 온 우주를 넉넉히 밝히는 참 빛 앞에서이겠습니까?


2. 사람 낚는 어부는 왕을 따릅니다.

(18)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저희는 어부라 (19)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20)저희가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21)거기서 더 가시다가 다른 두 형제 곧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이 그 부친 세베대와 한가지로 배에서 그물 깁는 것을 보시고 부르시니 (22)저희가 곧 배와 부친을 버려 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시기 위해 갈릴리 해변을 찾아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계의 중심지 로마를 찾지 않으셨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이 있는 예루살렘 성전을 찾지 않으셨습니다. 그의 왕국에서 가장 중요한 사도들을 부르시기 위해서 갈릴리 해변으로 가셨습니다.
그곳은 흑암의 땅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시기 위해 어부를 찾아 오셨습니다.
제자들은 가난한 자들이었습니다.
제자들은 무식한 자들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지적으로나 물질적으로도 흑암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셨습니다.
세상의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찾아오신 이유는 그들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소명은 사람을 낚는 어업이었습니다.(19,21) 흑암에 앉은 백성을 구원하여 위한 참 빛의 일꾼이 되게 하는 일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람 낚는 어부입니다.

그들은 그 동안 어부였기 때문에 고기 잡는 일에 익숙해 있었습니다. 따라서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신 말씀을 들었을 때, 생소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일하는 현장에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고기를 잡고 있었고 나머지 두 사람은 그물을 깁고 있었습니다. 부지런히 일하고 전혀 게으르지 않았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그 부친 세베대와 함께 있으면서 아버지를 도와 고기잡을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많은 어려움과 위험을 겪었습니다.
어려운 일들에 익숙하였습니다.
고난을 아는 자들이었습니다.
고난을 참을 줄 아는 일에 사람들이었습니다.
어려움에 직면하여 견딜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으로부터 들은 첫 메시지는 회개하라는 말씀이셨습니다. 회개는 이 빛이 잘 들도록 자기 집 창문을 닦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여 들일 것이니 죄를 깨끗이 씻으라는 말씀입니다.

찾아오신 왕으로부터 그들은 말씀을 들었습니다.

(19)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그들이 이 말씀을 들었을 때,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예수님을 따라 나섰습니다. 베드로와 안드레는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야고보와 요한은 곧 '배와 부친을 버려 두고' 주님을 좇았습니다.  그리스도를 제대로 좇으려는 자들은 그를 좇기 위해서 그들의 소중한 것들을 버렸습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명령에 대한 순종의 좋은 모범을 보여 줍니다.  부름을 받고 나서 그분이 어디로 인도하시든지 간에 주님을 따르는 것은 그리스도의 모든 신실한 종들이 지녀야 할 좋은 품성입니다.  부름을 받은 아브라함처럼 갈 바를 알지 못하였으나 계산을 떠나 순종하여 나아간 일은 본이 됩니다.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은 찾아오신 왕을 좇으면 되었습니다.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가신 길을 따라가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보다 더 나은 학습 방법은 없습니다.

사람을 낚는 어부의 모델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감히 어부 주제에 무슨 사람을 낚는 어부냐 해서는 안됩니다. 내가 어떤 사람을 구원할 수 있다는 말인가 해서도 안됩니다. 우리는 이상이 높아야 합니다.
저는 운동을 하기는 해야겠다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적당한 운동이 무엇일까 생각을 했습니다.
수영을 좋아하는데 시간 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스케이팅도 재미 있는데 역시 시간이 문제입니다.
테니스도 좋겠다 싶은데 함께 할 사람이 마땅치 않습니다.
혼자 시간에 제약 없이 할 수 있는 운동은 줄넘기입니다.
처음엔 100개를 목표로 시작했습니다.
몇 달 동안을 200를 목표로 시도했습니다. 그런데 200개 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것도 빼먹는 날이 많습니다.
어느 날, 저는 '1000m 달리기도 하는데 왜 1000 번 줄넘기를 못하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000를 목표로 하고보니 200개는 기본입니다.

사도 바울이 왜 그렇게 훌륭한 사도로 쓰임을 받은 줄 아십니까? 그리스도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갔기 때문입니다.
성 프랜시스가 왜 성자가 된 지 아십니까? 예수님을 닮기 위해 힘을 기울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기를 원하는 제자들에게 '나를 따라 오너라' 명령하신 이유를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는 일에 예수님을 따라 가보세요.
감사하는 일에 예수님을 따라 가보세요.
전도하는 일에 예수님을 따라 가보세요.
영혼 사랑하는 일에 예수님을 따라 가보세요.
친구를 사귀는 일에 예수님을 따라 연약한 자를 사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믿는 일에 예수님을 따라 가보세요.
말할 때에 예수님을 따라 가보세요.
삶의 양식에서 예수님을 따라 가보세요.

사람 낚는 어부가 되실 것입니다.


3. 왕의 사역 세 가지는 가르치심과 복음전파 병 고침입니다.

(23)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24)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색 병과 고통에 걸린 자, 귀신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저희를 고치시더라 (25)갈릴리와 데가볼리와 예루살렘과 유대와 요단 강 건너편에서 허다한 무리가 좇으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17)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는 말씀으로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종말론적인 절박함이 예수님의 사역에는 진하게 배어 있습니다.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셨습니다.
천국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복음을 전파하시는 데 많은 수고를 하셨습니다.
그는 두루 다니시며 가르치시며 천국복음을 전파하셨을 뿐만 아니라 병도 고치셨습니다.

(1)교육 (2) 선교(전도) (3)치유와 상담 사역입니다

(1) 예수님께서는 가장 좋은 교사이셨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의 본질은 가르치는 사역입니다. 다음 주일부터 만나게 되는 산상수훈은 예수님의 가르치심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가를 실감하게 해줍니다.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저희 서기관과 같지 아니하였습니다.(마7:28)

가르치는 일은 참으로 보람있는 주님의 사역입니다. 더구나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일은 가장 보람있는 사역입니다.
저는 교사 직을 수행하면서 성경 말씀을 그대로 따 와서 급훈으로 삼았습니다.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고 오직 사랑으로 종노롯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런데 일전에 20년 전에 저에게 배운 제자에게서 편지가 왔습니다. 여러분 중에는 홈페이지에서 읽으신 분이 있는 줄 압니다. 그 제자가 20년 전에 제가 전해준 급훈을 기억하고 자기 자녀에게 그 말씀을 전해준다고 합니다. 우리는 모두 수십 년씩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때마다 급훈을 달고 공부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급훈을 잘 기억할 수 없습니다.  근면 성실 인내 뭐 이런 관념어들을 걸어놓았던 것으로 생각될 뿐 저의 생애에 별로 영향을 주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왜 그 학생이 지금까지 그 급훈을 기억하고 자녀를 교훈하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성경 말씀을 급훈으로 삼아 가르친 덕으로 지금까지 제자들이 기억하고 찾는 교사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으로 교훈하시는 교사가 되시길 바랍니다. 교회에서든 가정에서든 직장에서든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시는 교사가 되시길 부탁드립니다.


(2) 예수님께서는 가장 좋은 선교사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천국 복음을 선포하셨습니다.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천국에서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 구원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천국에서 이땅에 천국 복음을 전하러 오신 선교사이십니다.
선교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전파하여 그 사람들을 그리스도 신자로 하는 일을 의미합니다.
전도는 미신자를 신도로 하는 것을 직접 목적으로 하는 일에 한정하여 쓰이고 있습니다.
예수에 있어서는 [선교](전도)는 주로서 세상에 대해서 행해지고, [가르치심]은 제자들에게 대하여 행해졌습니다(마가 8:31-).

우리 서머나 교회가 선교하는 교회가 되기를 원하여 선교의 공동체가 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다락방마다 선교사님들을 한 사람씩 정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선교헌금을 보내고 있습니다. 첫 선교사이신 예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그러나 저는 아직 하나님 앞에 많이 죄송한 마음이 듭니다. 저도 물론 선교비를 보냅니다. 선교사를 위한 기도를 날마나 하려고 힘을 씁니다. 그러나 부족한 것이 많기 때문입니다.
선교사를 보내는 것은 자식이나 형제를 전쟁터에 보낸 것과 같습니다. 그들이 우리 대신 전쟁터에 나가서 나라를 지키고, 우리는 그들과 함께 후방에서 전쟁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전방에 간 형제를 위해 하는 일이라는 것이 너무 형식적이지 않는가 하는 생각 때문에 괴로움이 있습니다. 좀더 마음이 담기고 적극적인 선교사 후원이 있어야 할 줄 압니다. 편지 왕래와 절기를 따른 선물 전달이 있어야 합니다. 형제가 전선에 있다고 생각하시고 선교지를 방문할 계획을 세우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예수님께서는 가장 좋은 의사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두루 다니시며 가르치시며 천국복음을 전파하셨을 뿐만 아니라 치유와 상담 사역을 잘 감당하셨습니다.
  모든 질병을 치료해 주셨습니다.  모든 약한 것을 고치셨습니다(23절).  모든 고통들을 고치셨습니다.  허다한 사람들의 무리가 갈릴리와 그 근방 지역에서 뿐만 아니라 멀리 떨어진 예루살렘과 유대로부터 몰려 왔습니다.
병고침의 기적은 그리스도께서 그 일들이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임을 보여 주었습니다.
왕(메시야)의 능력을 확증하였습니다.
그의 교훈이 신실한 것임을 증거 하였습니다.
눈에 보이는 신체적인 질병들을 고치심으로써 영육간의 모든 약함을 온전케 하시는 메시야이심을 온 천하에 선포하신 것입니다. 나아가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처럼 우리의 모든 죄악을 사하실 수 있는 그리스도이심을 알려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같이 병을 고치는 능력이 없습니다. 치유와 상담 사역을 효과적으로 감당할 능력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의 마음을 본받을 수는 있습니다. 영적으로든 육신적으로든 상처받은 사람들은 많이 있습니다. 우리들이 그들을 위해 주님의 능력을 의지하여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은 우리 모두가 감당해야할 일입니다.

마무리하는 말

나는  너무 깊은 흑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빛으로 찾아오신 주님을 만나보세요.
아무리 깜깜한 어두움이라도 성냥 불빛 앞에서 꼼짝못합니다.
하물며 온 우주를 넉넉히 밝히는 참 빛 앞에서이겠습니까?

회개하는 일은 흑암을 털어버리는 좋은 답입니다.
회개는 이 빛이 잘 들도록 자기 집 창문을 닦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 나라로 너를 인도하여 들일 것이니 죄를 깨끗이 씻으라는 말씀입니다.
잔치집에 초청 받았으니 몸을 깨끗이 단장하라는 말씀이지요.
어린이가 몸씻기를 싫어하는건 아직 어리기 때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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