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말]
부흥집회에 참석하여 크게 은혜를 받은 어떤 농부의 이야기입니다.
집에 돌아와서 가정 예배를 드리겠다고 가족을 모았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가정 예배를 드려야 할 지 막막했습니다.
그는 가족을 다 일어서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따라 3창하도록 했습니다.
"예수님 만세!"
그리고는 예배를 마쳤습니다.
예배가 무엇입니까?
1. 우리는 참 예배가 필요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두란노 서원에서 출판한 ‘한국 개신교의 교회활동과 신앙의식’에 의하면 한국의 개신교인 숫자는 전체 인구의 20.7%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1천2백만 기독교인이라며 큰 교세를 자랑해왔지만 실제 인구주택총조사에서 자신을 기독교인이라고 답한 사람들은 8백61만명이었습니다. 이 수치는 10년 전인 1995년에 비해 14만 명이나 감소한 수치라 해서 기독교계에 충격을 주었습니다.
그나마 "교회의 주일 낮 예배에는 어느 정도 참석하십니까?”라는 질문을 해보면 정도는 더 심해집니다.
매주 참석이 65.2%,
한 달에 2~3번이 18%,
한 달에 1번이 3.7%,
한 달에 1번 이하가 1.4%라고 응답했습니다.
이를 집계하면 한국교회의 명목상 기독교인은 심각한 수준까지 깊어집니다.
많은 기독교인들은 스스로 기독교인이라고 인식합니다. 기독교 신자로서 몇 가지를 점검하곤 합니다.
▲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하나님, 나의 구세주라고 고백하는가?
▲ 규칙적으로 교회 예배에 출석하는가?
▲ 선교, 봉사, 교육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가?
이런 삶이 결여되어 있을 때, 명목상 기독교인이란 말을 합니다.
전 세계 약 16억 기독교인 중에서 거의 절반에 해당하는 약 44%, 7억의 기독교인이 이런 명목상 기독교인이란 통계를 말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사랑하는 백성들 가운데서 참 예배자를 그리워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시킨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들어 바로에게 전했습니다.
"내 백성을 보내라 저들이 광야에서 예배드리기 원하노라"
구원을 받은 백성에게 있어서 예배란 생명과 같이 소중합니다.
야곱이 에서의 손을 피하여 가던 그 시절 하나님은 야곱에게 예배받으시기에 합당한 모습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야곱은 놀라움으로 하나님께 예배를 올렸습니다.
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찌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16 야곱이 잠이 깨어 가로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17 이에 두려워하여 가로되 두렵도다 이곳이여 다른 것이 아니라 이는 하나님의 전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창28:1-17)
기독교인은 많으나 예배를 누리고 사는 기독교인은 얼마나 될까요?
하나님의 참된 사랑과 기쁨을 누리고 사는 신앙인은 복있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만나기 전, 수가성 여인은 무엇이었습니까?
신앙인이 아니었습니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녀가 신앙인이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그녀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그녀에게 접목되어 있지 못했거든요.
수가성 여인을 뒤집어버린 것은 그녀에게 하나님의 사랑이 접목된 순간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을 때, 그녀의 인생은 뒤집어졌습니다.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만났을 때, 그녀는 새로운 인생이 되어 있었습니다.
[예화]
토니 컴팔로우 목사님의 체험담 한 가지를 나누고 싶습니다.
그는 미 동부에서 목회하시는 분이신데 하와이를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새벽에 잠이 오질 않습니다.
어느 식당에 들어갔습니다.
두 여인이 들어오더니 다른 한 쪽에 앉아 푸념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내일은 자신의 생일인데 아무도 자신의 생일을 기억해 줄 사람이 없으니 슬프다는 그런 이야기였습니다. 바텐더에게 이름을 물으니 '아그네스'라고 했습니다. 새벽마다 들려 차 한잔씩 마시고 들어가는 모양이었습니다.
토니 컴팔로우 목사님은 아그네스를 위해 생일잔치를 해주자고 말했습니다. 그는 케익을 준비하기로 했습니다.
다음날 새벽 2시 아그네스가 그 식당에 들어왔을 때, 환한 불이 켜지고 일부러 그녀를 기쁘게 해주기 위해 모인 친구들로부터 일제히 환호가 터져나왔습니다. 목사님이 준비한 케익에 불이 붙여지고 심야의 생일축하 노래가 울려 퍼졌습니다.
아그네스는 목이메어 케익을 먹을 수 없다며 냉동실에 케익을 보관해 두겠다고 자리를 떴습니다.
사람들은 목사님께 한 말씀을 부탁했습니다.
그는 기도로 대신했습니다.
바텐더는 토니 컴팔로우에게 어느 교회 목사님이시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생일 잔치를 해줄 수 없는 사람에게 새벽2시에 생일을 준비하는 목사'라고 답했습니다.
아그네스란 여인의 생애에 찾아온 컴팔로우 목사님의 관심, 그것을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 순전한 사랑은 그녀의 삶을 의미 있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가 준비한 케익은 아그네스가 영원히 자신의 냉동실에 보관하고 싶을 만큼 소중한 사랑이 되었습니다. 그날 만난 컴팔로우 목사님의 따뜻한 배려가 그녀의 삶을 얼마나 살맛 나게 하였는 지 모릅니다. 그녀는 남은 생애의 많은 부분에서 그 사건을 기억할 것입니다.
사마리아의 수가성 여인이 그녀를 찾아오신 예수님과의 만남, 그것은 아그네스를 향한 컴팔로우 목사님의 사랑과 비교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수가성 여인의 목마르고 갈급한 인생에 찾아오셔서 하나님의 사랑이 되어 주셨습니다. 그녀는 우물 가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만남으로 영원히 갈급할 수밖에 없는 인생이 회복된 것입니다.
광야와 같은 수가성 여인이 생수의 근원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만나 회복된 사건은 예배를 그림처럼 보여줍니다.
예배의 출발점은 나를 사랑하시고 나의 구원을 위해 아들까지 내어주신 하나님께 대한 감격이요 감사요 그분을 경외하는 마음입니다.
우리가 비록 수가성 여인과 같이 참 예배가 그리운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자신의 마음을 한 번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촉촉이 젖어 있습니까?
저는 중국에서 늦봄을 지냈습니다.
시골 길을 걸으면서 못자리에 물을 대기 위에 넘쳐흐르는 도랑물을 보면서 희열을 느꼈습니다.
그 도랑물이 넘쳐오는 한 논은 금방 못자리로 변하게 마련입니다.
문제는 그 도랑물이 넘실거리며 흘러오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도랑물이 넘실거리며 흘러와도 견고하게 자아의 둑을 쌓아 물을 차단하고 사는 논밭이 문제입니다.
많은 기독교인의 인생에 하나님의 사랑에 접목되지 않을 때, 이런 사막화가 있을 수 있습니다.
명목상의 기독교인은 그래서 참 불행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넘실거리는 강물처럼 곁을 흘러넘쳐옴을 누리고 계십니까?
혹시 그 모든 예배의 축복이 자아의 높고 견고함 때문에 막혀있지 않습니까?
무화과 나무가 무성치 못하구나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구나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구나
밭에 식물이 없구나
우리에 양이 없구나
외양간에 소가 없구나
내 인생의 열매없음을 한탄하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 사랑이 내 인생에 접목되기를 소원하시기 바랍니다.
참된 예배는 하나님의 사랑이 내 인생에 감격적으로 접목되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의 접목만이 우리 인생의 사막화를 막고, 예배의 회복을 가져옵니다.
넘쳐오는 하나님 사랑을 헤아려 보세요. 참 예배자일 수밖에 없습니다.
2. 예수님은 진정한 예배 회복하기 위해 오셨습니다.(26-27)
26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27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
오늘 주님께서는 예배란 아버지이신 하나님의 사랑에 접목되는 일임을 말씀하십니다. 그 예배 안에 구원이 있음을 말씀하십니다.
아버지께 드리는 예배(26)
구원이 있는 예배(27)
외아들을 내어주기까지 사랑하신 하나님을 아버지로 만나는 일 그것이 바로 참 예배입니다.
십자가에서 목숨을 내어주시기까지 다윗의 자손을 통해 이루신 구원, 그것이 바로 참 예배입니다.
예배를 의미하는 '아바드'(히브리어)는 '봉사하고 섬긴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이 놀라운 사랑의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며 그 구원의 주님을 섬기는 일이 바로 예배입니다.
신약에서 예배를 의미하는 '프로스퀴네오'(헬라어)는 경배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이 놀라운 사랑의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며 그 구원의 주님께 감격을 가지고 경배하는 일이 예배입니다.
영어에 있어서 예배는 "Worship"입니다. 이것은 가치(Worth)라는 말과 신분(Ship)이라는 말의 합성어입니다. 이 말의 뜻은 "존경과 존귀를 받을 가치가 있는 자"란 의미랍니다. 이 놀라운 사랑의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며 그 구원의 주님을 존경과 존귀를 받으실 분으로 인정하는 일이 바로 예배입니다.
왜입니까?
아버지시요 구원자이신 하나님만이 예배 받으시기에 합당한 가치를 가지고 계신 때문이지요. 최상의 가치를 올려드리는 것이 마땅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보면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이야말로 예배의 본질입니다. 참 예배입니다.
우리가 잘 되는 비결은 이 사랑의 하나님을 아버지로 잘 섬겨 그분께 생애를 드려 예배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그리심산에서 예배드렸다'보다 이것이 더 중요합니다.
'우리는 예루살렘에서 예배를 드렸다'보다 이것이 더 중요합니다.
'사랑의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며 그 안에서 얻은 구원을 감격하고 있다'가 중요합니다.
아무리 좋은 교회당에서 예배를 드렸더라도,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섬기지 못한다면 그 예배는 무의미합니다.
아무리 훌륭한 목사와 함께 예배를 드렸더라도 하나님을 구원의 주로 모시고 섬기지 못한다면 그 예배는 무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예배는 사랑의 하나님께서 아버지 되시고 구원주가 되시는 감격을 올려 드리는 예배이어야 합니다.
이런 "하나님을 위해 시간을 드리면 시간이 남고,
"하나님을 위해 물질을 드리면 물질이 남고,
"하나님을 위해 마음을 드리면 마음에 여유가 생기고
"하나님을 위해 몸을 드리면 건강하게 됩니다."(김종춘)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약4:8).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삼상2:30).
하나님은 이런 예배자를 찾습니다. 이런 예배자를 찾으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 하나님을 바로 섬긴다면 그것은 생명을 얻는 예배가 됩니다.
그 놀라운 하나님께 감복하여 봉사하고 섬긴다면 그는 참된 예배자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어떤 분이 되십니까?
나를 사랑하신 하나님께서 아버지가 되십니까?
나를 억만 죄악에서 구원하신 구주이십니까?
이 일로 인하여 감격이 되시고 축복을 누리시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올립니다.
3.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를 하나님께서는 기다립니다.
28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9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1] 신령으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God is spirit, and his worshipers must worship in spirit and in truth.")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육이 아닙니다.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는 것이 기독교인이요, 성령 안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 건강하다는 증거입니다. 예배에 육신적인 요소를 예배에 끼워두지 마세요.
교회 현관문 열쇠를 가지고 계신 분들이 있습니다. 저 역시 교회 현관문 열쇠를 하나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을 열 수가 없습니다, 열쇠가 들어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원본 열쇠를 어떤 분에게 드리고 내가 복사본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자동차 딜러를 갈 일이 생겼습니다. 차 뒤 트렁크를 열 수 없어서였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스프레이를 뿌리고 나니 문이 열리더라구요. 아무 것도 않고 스프레이만 뿌리니까 문이 쉽게 열립니다. 저는 그 때 쾌재를 불렀습니다. 그 뿌린 스프레이 제품을 사다가 교회 현관 열쇠 구멍에 뿌렸습니다. 문이 너무나 쉽게 열렸습니다. 몇 번을 열어보아도 쉽게 열렸습니다. 열쇠를 가지고 계신 분은 한 번 시험해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이 사건을 통해 신령으로 예배를 드린다는 것을 다시 한번 쉽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성령으로 예배드리지 못할 때, 예배는 그렇게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성령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사람의 경우, 예배는 즐거움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아가는 것이 즐겁고 하나님의 보좌의 문이 쉽게 열리기 때문입니다.
예배의 문이 열리지 않아 힘이 드신 분은 성령의 기름부으심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육신적인 생각은 떨쳐버리고 위의 것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입니다.
2] 진정으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사마리아인들은 진리를 따라서 예배를 드리지 못하였습니다.
부패한 백성들이 자신들의 의로 드렸습니다.
말씀에 대하여 분적으로 순종한 채 하나님을 자기 중심적으로 예배하였습니다. 그리심산 얼마나 귀합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아름다운 곳에서 예배할 것을 명하신 적이 없었습니다.
진정한 예배는 하나님께 예라고 대답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예배는 하나님의 말씀에 예라고 대답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예배는 하나님께 항복하는 것입니다.
"예배의 중심은 항복이다"
이것은 릭 워렌이 예배를 요약한 말입니다.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롬6:13)는 말씀과 같습니다.
마리아가 귀한 까닭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쓰기를 원하실 때 자신을 하나님께 완전히 맡겼기 때문입니다.
"주의 계집 종이오니 말씀대로 이루어지이다"
진정한 예배는 순종하는 마리아 안에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께 항복한 마리아의 중심 안에서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에 항복함으로 받아들인 마리아의 신앙이 지금 별과같이 빛나는 이유가 바로 진정한 예배입니다.
하나님께 항복한 마리아를 하나님께서 귀히 사용하셨습니다.
중국 가정교회의 지도자 劉陣英 목사의 사례는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합니다. 그는 중국정부의 금지령을 어기고 가정교회를 확신시킨다는 죄목으로 4년 동안 극심한 수용소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그의 아내는 아버지 얼굴도 못 본 아들을 낳아 혼자서 기르며 시모와 단 둘이서 농사를 지었다. 뭘 어찌 해야 할지 몰라서 막막하기만 했습니다. 한 번은 고구마를 심기로 했는데 고구마 싹을 듬성듬성하게 심어야 하는 줄도 모르고 촘촘히 심었습니다. 당연히 동네 사람들한테서 심한 조롱을 받아야 했답니다.
가을이 되자 동네 사람들은 테니스공만한 작은 고구마를 수확하고는 입에 욕을 달고 살았는데 그녀가 고구마 줄기를 뽑자 농구공만한 고구마가 따라 나왔답니다. 동네 사람들은 하나님이 그렇게 해 주셨다고 다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남편을 더 이상 범죄자로 여기지 않고 억울하게 투옥됐다고도 인정해 주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을 더 가까이 하고 하나님을 존경하며 하나님을 위해 대가를 치르면 하나님이 기꺼이 축복하십니다.
그리스도를 우리 삶의 운전석에 앉게 하고 핸들에서 손을 떼세요.
하나님은 참된 예배자를 책임지십니다.
5천 만명 이상을 그리스도께 돌아오는 일에 쓰임을 받았다는 CCC 총제 빌 브라이트 말처럼, 하나님이 사용하시고 삶에 그토록 복을 주신 이유를 분명히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 젊었을 때 나는 하나님과 계약을 맺었네. 나는 직접 계약서를 쓰고 밑에 서명을 하였는데 거기에 바로
'이 날부터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다'
라고 썼다네.
제 2세기와 제 3세기 동안에 로마의 핍박이 절정에 이르면서 기독교인들은 지하로 숨어 카타콤을 중심한 비밀예배를 드리면서도 이 진리를 지켰습니다.
진리 앞에 항복하는 그런 예배 속에서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시고, 그 분의 축복은 예배자의 삶에 넘칩니다.
[마무리하는 말]
저는 오늘 아침 호수에 나갔다가 큰 잉어 한 마리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뒤를 따르는 수백 마리의 새끼들을 보았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보면서 한 그림을 그리고 감사했습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나아갈 때, 우리로 인하여 구원의 자리에 이른 자손들과 주님 앞에 돌아온 무리가 이렇게 많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날이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나부터 시작하여 하나님께 신령과 진정으로 나아가는 예배자가 되도록 힘을 기울입시다.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한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일이 예배입니다.
가인은 예배에 실패함으로 인생에 실패하였습니다.
사울은 예배에 실패함으로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습니다. 그는 예배에 담긴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예배는 아무나 아무렇게나 드려도 하나님께서 열납하시는 줄 알았습니다. 그는 예배에 실패함으로 버림을 받았습니다.
마리아처럼 그 사랑에 감복하여 감격으로 섬기는 예배자는 행복합니다.
수가성 여인처럼 그 사랑에 접목된 예배자는 변화합니다.
아브라함처럼 그 사랑에 전염된 예배자는 아들 이삭이라도 바칩니다.
노아처럼 그 사랑에 압도된 예배자는 헌신합니다.
나는 어떤 예배자입니까?
내가 예배를 드리는 자인가는 중요합니다. 그러나 바른 예배를 드리는가는 더욱 중요합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를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찾으십니다. 축복하십니다.
[성경본문]
26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Our fathers worshiped on this mountain, but you Jews claim that the place where we must worship is in Jerusalem."
26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27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
28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9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30 여자가 가로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고하시리이다
31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로라 하시니라
Jesus declared, "Believe me, woman, a time is coming when you will worship the Father neither on this mountain nor in Jerusalem.
You Samaritans worship what you do not know; we worship what we do know, for salvation is from the Jews.
Yet a time is coming and has now come when the true worshipers will worship the Father in spirit and truth, for they are the kind of worshipers the Father seeks.
God is spirit, and his worshipers must worship in spirit and in truth."
The woman said, "I know that Messiah" (called Christ) "is coming. When he comes, he will explain everything to 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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