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1 March 2015

마5:13-16 왕국시민의 본질과 역할(소금과 빛)

(13)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14)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15)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16)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들어가는 말

8복을 가진 하나님 왕국 시민은 이 세상에서 어떤 존재여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세상의 빛과 소금'입니다. 
'팔복'이 하나님을 향한 성도들의 삶이라면, 
'소금과 빛'은 세상에 대한 성도의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소금이 맛을 내고 빛은 주위를 밝히기 때문이죠.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 성도의 삶이 그렇습니다.
영국의 역사학자 토인비(Arnold Joseph Toynbee ; 1889∼1975)는 “세상이 아무리 어둡고 절망 속에 있다 할지라도 아직 희망은 있다. 그 희망은 바로 교회다."
이렇게 보면 소금과 빛은 교회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1. 성도는 세상의 소금입니다(13)

(13)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세상에서 소금은 분명 다른 식료품과 차이가 있습니다. 물고기가 바다에 살아도 짜지 않은 것처럼 구별되는 것이 있습니다. 배가 강으로 지나가도 그 안에 강물이 들어오지 않는 것처럼 차이가 있습니다. 그 차이가 무엇입니까?

1] 소금은 스스로를 녹입니다.

소금은 자신을 녹입니다. 희생적인 삶을 의미합니다.
어느 날 예수님께로 한 부자 청년이 찾아와서 물었습니다.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주님께서는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답하셨습니다.
자신을 녹이는 소금이 되라는 말씀이셨습니다. 
그는 슬픈 기색을 하고 돌아갔습니다.
자신을 녹이는 일이 그에게 너무 버거웠나 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자신을 녹여 영생의 길을 열었습니다.


2] 부패를 방지합니다.  

소금은 부패를 스스로를 녹여 소금이 닿는 대상의 부패를 방지하는 역할을 합니다. 성도의 소금은 썩어져 가고 있는 이 세상을 썩지 않게 합니다. 

'칼빈'(Calvin)은 '너희'를 그리스도로부터 사명을 위탁받은 '사도'들이라 했습니다. 예수님 따르는 제자들의 세상에서의 역할이 바로 소금 역할입니다. 선지자들 가나안 땅의 소금 역할을 감당하였듯이 사도들은 온 세상의 소금이 되었습니다. 

성도는 이 세상 죄의 부패를 막는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Barclay). 성도는, 소금이 음식물의 부패를 방지하는 역할을 하듯이, 성도는 세상에 죄악이 확산되어 사회 전체가 썩는 것을 막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성도가 이를 감당하지 못한다면 쓸모 없는 쓰레기가 되고 맙니다.


3] 소금은 맛을 냅니다.

소금이 좋은 것이로되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이를 짜게 하리요.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막 9:50)

소금은 맛을 내는 식료품입니다. 소금이 음식에 들어갈 때는 맛을 내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의 평민들이 사용하던 소금은 대개 암염(岩鹽)으로, 흙이나 불순물이 섞여 있었기 때문에 정제하여 소량만 사용하고 나머지는 버렸습니다. 그런데 그것에는 토양을 망치는 성분이 들어있기 때문에 밭에 버리지도 못했습니다. 길거리에 버려서 사람들에게 밟히게 했습니다.'(김성광) 소금이 실제로 그 맛을 잃어버리는 예가 있습니다. 불순물에 의해  변질되거나 알카리성 맛을 띠는 경우가 있습니다.(Hendriksen). 이때, '내어버려져 밟힘을 당합니다'. 
성도는 참으로 존귀한 자입니다. 그러나 성도다운 맛이 없으면 세상의 비웃음을 받습니다. 성도들이 소금의 맛을 잃을 때, 경멸을 당한다는 말이지요. 천국에서도 거부되거니와 현재의 삶의 자리에서도 타인들의 경멸과 조소의 대상이 됩니다(Lenski).

케네디가(家)를 연구한 바에 의하면, 케네디의 아버지는 시카고에서 술, 그것도 밀주를 만들어서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합니다. 그 돈으로 하버드대학에 많은 장학금을 주고 아들들을 공부시켜서 대통령까지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모두 비극적인 최후를 맞게 된 것입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케네디의 아버지는 밀주를 만들어서 수많은 가정을 파괴시키고 수많은 사람들의 건강을 해치게 해서 고통을 주었습니다. 그 돈으로 자식들에게 투자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 그 집안은 망했습니다. 자손들이 하나같이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는 비운의 집안이 되었습니다.

성도들은 성도다운 맛을 지닌 유익이 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성도다운 짠맛은 예수님 안에 있습니다. 예수님처럼 살 때, 성도의 맛이 납니다. 참 소금이신 예수님을 모시고 서로 화목할 일입니다. 

뜻을 정하고 왕의 식물을 먹지 않는 다니엘과 세 친구처럼 성도의 소금 맛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백성을 안돈시키는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성도의 소금 맛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2. 성도는 세상의 빛입니다.

(14)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1] 본질적이고 진정한 빛은 그리스도이십니다.

이미희 자매님은 학습을 받을 때 중요한 질문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이십니까?"
이에 대하여 서너 달 동안 많이 생각한 끝에 정리하여 자신의 한 결론을 홈페이지에 올렸습니다. 


“하나님은 저에게 마음의 빛이십니다.  제 안에 있던 어둠을 밝혀주시고, 제가 그 동안 어둠 안에서 보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저의 빛이시기에 언제나 저와 함께 하시는 영원한 구세주이십니다”  '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빛이십니다. 


2] 성도는 세상의 빛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제자들을 향해서  여기서 말하는 성도의 빛은 본질적인 빛이 아니라, '세상의 빛이라' 말씀하십니다. 신자들이 그리스도 안에 거할 때, 그리스도의 빛이 그를 통하여 세상으로 나갑니다. 어떤 분은 이를 반사하는 빛이라 표현하기도 했고, Hendriksen은 이를 이차적이며 파생적인 의미에서의 '세상의 빛'이라 표현하였습니다.


[1] 착한 행실로 악을 이기는 빛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부패를 막는 소금의 역할에서 나아가 어둠을 물리치는 빛의 역할을 감당하라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렇게 보면, '세상의 소금'이란  방어적이며 수동적인데 반해서 '세상의 빛'은 공격적이며 능동적인 의미를 지닌다 할 수 있습니다. 

(16)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이 빛은 성도의 '착한 행실'을 의미합니다. 성도의 착한 행실은 세상 사람들로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그의 선하심을 인정하도록 하여 줍니다.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 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권고하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벧전 2:12).

따라서 이 선은 보이기 위한 것이어서는 안 되며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Matthew Henry).

욥바 교회에는 도르가라 하는 다비다란 여성도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예수님을 만난 후, 사랑하는 주님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한 가지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자신은 바늘로 옷을 짓는 은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그 은사로 옷을 지어 선행과 구제를 계속하였습니다. 그러나 건강이 무너져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되고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문제는 남은 사람들이 슬픔을 갖게 된 것입니다. 그들은 급기야 베드로에게 요청하였고 다시 살아나는 기적을 만납니다. 이 말씀에서 주제는 죽음의 권세가 다비다의 선행과 구제를 넘을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다비다는 선행과 구제로 사람들의 빛이 되었습니다.

 에베소서 5장 8∼9절에서도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2] 만나는 세상 사람을 살리는 빛니다.

하나님께서 빛을 맨 먼저 창조하셨습니다. 
빛은 모든 만물을 살리기 때문입니다. 
빛이 없는데 식물이 어떻게 살겠습니까? 
빛이 있어야 동물이 살지 않겠습니까?
빛은 어두움을 밝히는 힘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어두움에서 살 수 없는 생물을 살리는 역할을 합니다. 


만나는 세상 사람의 존재의미를 드러내게 한다는 말입니다.

빛 자신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지만, 빛이 만나는 대상은 그 형체를 드러냅니다. 
예수님의 삶은 철저하게도 남을 드러내는 이타적인 삶이셨습니다. 마치 한 자루의 양초가 자신의 몸을 녹여 빛을 발하고, 만나는 사람을 살리신 것처럼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온 하나님의 자녀를 위해 온전히 희생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참빛으로 자신을 희생하셨지만, 그분을 영접한 사람들은 새로운 생명을 얻었습니다.
내가 만나는 사람이 나를 만나는 순간 살아난다면 나는 빛의 역할을 잘 감당하고 있는 셈입니다. 나를 만나서 그 달란트가 살고, 사명이 살고,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난다면 나는 빛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는 말씀은 예수님을 중심에 모신 제자들로 하여금 자신은 숨기는 희생적인 삶,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은 드러내는 복된 삶을 살아야 함을 말씀해 주십니다. 
우리 주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중심에 모시고 그분의 빛을 발하는 생활을 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가는 곳마다 우리와 함께 계시는 주님으로 인하여 어둠과 거짓이 물러가고 하나님의 사랑이 넘칠 수 있다면 얼마나 큰 감격이겠습니까?




마무리하는 말

미국에서 약방을 경영하는 잭 에커드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교회에 나와서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읽다가 ‘너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다'라는 구절을 읽고 고민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세상 사람과는 뭔가 달라야 하지 않는가? 좋은 일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자기가 운영하던 약국을 약국으로서의 기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좋은 약국으로 만들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당시 연간 500만 달러의 많은 수입을 올렸던 섹스 잡지들을 다 없앴습니다. 순수하게 약만 팔았습니다. 그러자 약국의 지배인들이 이상하게 생각하고 반발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환경에 굴하지 않고 믿음대로 밀고 나갔습니다. 그 결과, 주변 사람들도 관심을 가기고 그를 지켜보게 되었습니다. 불과 2년 이내에 다른 약방에서도 섹스 잡지 추방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순간적으로는 수입이 줄어들어서 손해를 보는 것 같았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서 큰 축복을 주셔서 동조하는 세력도 많아지고 도와주는 사람도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전국에 1천7백 개의 점포를 가지게 되었고,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큰 약방 연쇄점인 ‘에커드 드럭( Eckerd Drug)'의 사장이 되었습니다.(김성광)

태양이나 달과 별들도 빛을 내고 있습니다. 가로등과 등불까지 빛을 냅니다. 그리고 날아다니는 반딧불도 빛을 내고 살아갑습니다. 

당신은 어떤 빛과 맛을 내고 사십니까?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