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말
거리를 가다보면, 교통법이 있습니다.
저 하늘에 높고 광활한 것 같아도 비행기는 아무 데나 날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날아가는 길이 있습니다. 항공법이 있습니다.
어느 직장에도 그 직장 나름대로 법이 있습니다.
교회에는 교회 법이 있습니다.
국가에는 헌법이 있고 여러 가지 법이 있습니다.
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국민들의 법의식이 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입니다.
후진국일수록 법은 많으나 백성들이 그 법을 지키지 않습니다. 선진국의 기준은 법 존중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맛을 회복하고 빛을 회복한 하나님의 백성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1] 하나님 나라의 법을 알아야 합니다.
2] 하나님 나라의 법을 지키고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 백성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지름길입니다.
1. 율법과 선지자는 좋은 것입니다.
(17)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
나라가 있으면
다스리는 법이 있습니다.
십계명은 하나님 나라 백성의 헌법입니다.
율법은 하나님 나라의 법입니다.
율법은 한 하나님의 백성의 생활과 행위지침입니다.
율법을 잘 지키는 사람이 하나님 나라의 의인(義人)입니다. 율법을 따라 선을 행하는 자는 생명이 주어지고, 악을 행하는 자는 죽음이 의의 원칙입니다(신 4:1, 8:19, 20, 겔 18:18, 19).
(19)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법은 잘 지킬 때, 부담이 아니라 참 편리합니다.
이 세상 부부가 많은데 좋은 부부는 서로 간의 법도를 잘 지킵니다. 이를 따르면 참으로 간단하고 편리합니다. 무시할 때, 엄청난 불행이 따릅니다.
한 백성을 신부로 맞아들이신 하나님께서, 그 백성은 한 분 하나님만을 남편처럼 모시라는 것이 율법의 핵심입니다. 온갖 잡신으로 혼란한 세상에서 하나님 한 분만을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율법이 하는 역할은 무엇입니까?
1] 죄를 깨닫게 합니다.
1)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롬3:19,20).
2)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느니라(롬 5:13).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우리가 우리의 죄를 알 수 없습니다(롬 7:7).
2] 죄가 죄로 드러나도록 해줍니다.
3)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롬7:7-9).
3]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몽학 선생입니다.
율법은 몽학 선생이 되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합니다. 몽학 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갈3:24).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도 귀한 면을 가졌습니다.
당시 많은 종교 지도자들은 이 율법과 선지자의 가르침에 충실하려고 힘을 기울였습니다.
① 십일조를 바쳤습니다.
② 금식을 하였습니다.(눅 18:9-14).
③ 절기와 제사를 지켰습니다.
④ 계명을 지켰습니다.
⑤ 안식일을 지켰습니다.
가능한 한 철저하게 율법을 준수하고자 노력하였습니다. 율법을 잘 지키는 것이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런 종교 행위는 매우 귀한 일입니다. 오늘날도 신실한 유대인들은 이런 일을 성실하게 감당함으로 얼마나 복을 받고 있는지 모릅니다.
(20)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예수님과 律法]
예수님은 율법의 일점 일획(one jot or one tittle)도 부정하지 않으셨습니다. 존중하셨습니다.
(18)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일 점이란 히브리어에서 가장 작은 문자인 '요드'(·)를 가리키며 일획은 히브리어 문자 옆에 그어서 비슷한 문자와 구분하는 짧은 횡선(-)을 가리킵니다. 일점일획은 구약의 모든 말씀이 엄정하여 작은 것 하나라도 없어지지 않고 다 천국에서 이루어짐을 의미합니다.
'율법에는 결코 모순되는 점이 없으며, 아무렇게나 쓰여진 것도 전혀 없으므로 거기에서 한 글자도 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법의식이 투철하신 분입니다.
법이 없는 자식은 방종에 빠집니다.
우리 고국이 요즈음 앓고 있는 몸살이 무엇입니까?
통일의 물꼬를 트기 위해 건네준 돈이 불법이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대통령이라도 법을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법의식은 방종이 아닙니다.
형제를 미워하는 일도 살인이다!
마음에 음란한 생각을 갖는 것도 간음이다.
안식일은 뒷짐지고 있는 날이 아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라.
예수님은 법의식은 바리새인의 법의식보다 방종하신 것이 아니라 더욱 완전케! 하신 것입니다.
(17)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
칼빈(Calvin)은 '율법의 확고 부동한 고정성이 흔들리는 것보다는 차라리 하늘이 무너지고 지구의 구조가 해체되는 것이 쉽다'고 해석을 하였습니다.
나의 법의식은 어떻습니까?
방종에 열려 있습니까?
완전을 향해 가십니까?
법의식이 완전한 사람은 복을 받습니다.
2. 율법을 행함으로 의롭다 함을 얻을 사람이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첫 사람 이후 모든 인간은 스스로 하나님 앞에 합격을 받을 만한 준법자는 없습니다. 첫 사람 아담은 그것이 가능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자율적으로 법을 감당할 만한 자유까지 주셨습니다. 그러나 사탄의 꼬임에 넘어가서 그 법의식을 포기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준법자가 되길 그렇게 원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바리새인중의 바리새인인데 열매가 참 나쁩니다.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쌔 각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행8:3).
그래서 그는 롬7에서 한탄합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누가 나를 이 사망의 몸에서 건져내랴 하고. 율법에 합격할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읽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메시야의 표상으로 생각하는 다윗과 같은 성군도 이 율법을 다 지킬 수 없었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참으로 귀한 분이지만 율법적인 잣대를 들이대면, 많은 부족함이 나타납니다.
십계명을 받은 모세도 계명에 온전히 합격하지 못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을 거절당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계명에 합격할 수 있겠습니까? 없습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는 말씀이 바로 이 말씀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율법은 좋은데 그 율법준수가 어렵습니다.
저는 지난주간 틈틈이 '가을 동화'이란 드라마를 보았습니다. 어떤 기사를 보니까 이 작품이 한국에서 매우 인기가 있었는데, 중국 일본 동남아 지역을 휩쓸었다는 그런 기사였습니다. 도대체 어떤 드라마일까 궁굼하던 중 KBS TV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제목이 말하는 데로 동화입니다.
눈물을 바가지로 흘리게 하는 슬픈 동화입니다.
마음껏 울어보고 싶으신 분은 그 동화를 보시면 됩니다.
등장 인물들이 저마다 아름다운 인생, 옳은 인생을 추구하며 몸부림을 치지만 결국은 저마다 깊은 슬픔을 안고 끝나는 동화입니다.
동화이지만 매우 사실적이어서 인기가 있는 동화입니다.
저는 아가서 8:6-7을 생각했습니다.
너는 나를 인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 같이 팔에 두라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고
투기는 음부같이 잔혹하며 불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
이 사랑은 많은 물이 꺼치지 못하겠고
홍수라도 엄몰치 못하나니
사람이 그 온 가산을 다 주고 사랑과 바꾸려 할지라도 오히려 멸시를 받으리라
이만큼 그 말씀을 작품화시킨 것을 찾아보기 힘들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슬프게 살다 떠나가는 것이 인생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은 이런 인생의 슬픔이 하나님의 율법에서 벗어남에서 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 사람을 비방하고 정죄하였습니다. 이는 가장 쉬운 방법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의를 더 내세우는 교만일 뿐이었습니다.
율법으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습니다.
3. 하나님께서 율법의 의를 이루셨습니다.
(17)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
예수님은 그들이 그토록 순종하려 하나 온전히 순종하지 못하던 율법의 명령들을 순종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기 위해 오셨습니다. 율법과 선지자들이 전해준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온전히 지키게 하려고 오셨습니다. 율법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해집니다. 복음 안에서 그 의미가 더욱 밝게 드러나고 완성됩니다.
율법의 정신은 하나님 사랑입니다. 그리고 이웃사랑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법을 우리 성도들이 누릴 수 있도록 길을 여셨습니다.
율법이 전해주는 하나님과 이웃을 향한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 삶에서 열매를 맺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들의 삶에서 행하신 일을 범사에 감사할 때, 하나님의 우리를 향하신 사랑이 열매를 맺습니다.
룻기를 읽으면서 우리는 이 놀라운 비밀을 만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방 여인인 오르바와 룻을 찾아 오셨습니다. 그리고 크고 비밀한 일을 진행하시길 원하셨습니다. 그 진행과정은 썩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맏며느리 오르바와 둘째 며느리 룻은 똑 같이 어려운 환경에 떨어졌습니다. 남편이 일찍 죽은 것입니다. 가세는 기울었습니다.
그런데 오르바 안에서는 하나님께서 아무 것도 하실 수 없었습니다. 신세를 한탄하고 울면서 떠나가는 그녀 안에서 하실 일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룻의 생애 속에서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의 열매가 맺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룻은 오르바와 똑같은 이방 여인이요, 남편을 일찍 잃어버린 불우한 여인입니다. 보통 이런 환경에 사람이 놓이면 별 소망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룻은 울며 떠나가지 않습니다.
'나로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서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서 장사될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와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감사하고 시어머니를 섬겼는데 결국 다윗의 증조 할머니가 됩니다. 인류 역사상 많이 사랑을 받고 존경을 받는 분입니다.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문에 속하는 영광을 얻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신 사랑을 항상 기뻐할 때, 독생자를 통해 이루신 하나님의 의가 우리 성도들의 삶에서 열매를 맺습니다.
쉬지 않고 기도할 때 하나님의 의가 우리 안에 열매를 맺습니다.
우리는 아가서를 보면서 하나님께서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시는 지를 깨닫습니다. 우리를 사랑하는 신부로 생각하시고 문밖에 찾아오십니다.
" 내가 잘지라도 마음은 깨었는데
나의 사랑하는 자의 소리가 들리는구나
문을 두드려 이르기를
나의 누이 나의 사랑 나의 비둘기 나의 완전한 자야
물을 열어다오."(아가5:2)
그러나 우리는 주님만큼 간절하지 못합니다.
"내가 나의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문을 열었으나 그가 벌써 물러갔네.......
내가 그를 찾아도 못만났고
그를 불러도 응답이 없구나."(아가5:6)
영적인 잠이 깊이 들어 있습니다. 그러다가 주님께서 떠난 후에야 주님을 찾는다고 거리를 헤매는 우를 범합니다.
우리 하나님이 되시려고 육신을 입고 우리 가운데 찾아오신 주님을 문을 열고 영접하며 쉬지 않고 기도할 때, 주님과의 친밀감이 회복이 됩니다.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울부짖던 세리 기도가 응답을 받을 수 있는 의(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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