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 제기]
이 말씀을 들을 때 우선 우리는 '지옥 가지 않을 사람이 누구랴!' 하는 당혹감을 갖게 됩니다.
오리겐 같은 성자는 이런 말씀을 적용하여 자신의 성기를 제거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이 말씀을 다 지켰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이 본문의 이해를 돕는 사건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예수님께 간음하다 현장에서 들킨 여인을 데려와 예수님을 시험했습니다. 율법은 돌로 치라 했는데 예수님은 어떻게 하시겠느냐 하는 질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다만 죄 없는 자가 그 일을 하라 하셨습니다. 그 여인만 돌에 맞을 사람이 아니라 그 여인을 데려온 모든 사람이 돌에 맞아 죽어야 할 죄인임을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정작 돌에 맞아야 할 그 여인에게 '나도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이 본문엔 단지 바리새인적으로 이해하면 안되는 놀라운 비밀이 담겨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해답 방향]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을 단순히 육체적 간음 행위 차원으로 격하시켰습니다. 육체적 행위를 하지 않은 이상 무죄하다는 생각입니다.(로이드 죤스)
그러나 율법의 본질은 마음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탐하지 말라' 하였을 때, 이는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탐심을 경계한 것입니다. 이는 결국 탐심이란 죄의 문제입니다. '음욕'이란 탐심을 마음에 품었을 때 이미 간음했다고 말씀하시는 까닭은 탐심이란 죄가 마음 안에서 역사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무슨 결론을 내리고 있는 것입니까? 탐심이란 죄가 마음에 이미 들어와 역사하고 있는데 단지 간음이란 행위로 나타나지 않았으니까 이 사람은 무죄하다 결론을 내린 것입니다. 이것은 거짓말입니다. 암의 균이 내면에 득실거리고 있는데 암의 증상이 겉으로 나타나지 않았으니까 건강하다고 진단하는 의사가 있다면 그는 돌팔이 의사입니다. 그 사람이 에이즈 증상이 나타나고 있지 않다 하더라도 몸 안에 에이즈 균이 득실거리고 있다면 그는 에이즈 환자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의 내면에 음욕이란 죄가 득실거리고 있다면 그는 이미 간음죄를 범한 죄인이다고 주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1. 마음을 탐욕으로 채우는 게 간음입니다.
(27)또 간음치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28)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하나님 나라의 백성인 나는 누구입니까?
기독교인이 어떤 존재입니까? 그리스도의 신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보내셨습니다. 이는 독생자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었습니다. 이 놀라운 사랑을 받은 우리 성도는 세상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그리스도인의 신부가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와 결혼한 신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 나라로부터 오신 하나님의 아들을 신랑으로 맞았습니다. 하나님 가문에 속한 신부입니다.
그러므로 '간음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온 우주의 무게만큼이나 소중한 말씀입니다.
세상에 30억이 넘는 여성이 있을지라도 신랑의 마음에는 오직 한 여성만이 소중합니다. 그는 신부 한 사람입니다. 세상에 30억이 넘는 남성이 있을지라도 신부의 마음에는 오직 한 남성만이 소중합니다. 그는 신랑 한 사람입니다.
성도의 마음에 하나님 이외의 것을 탐할 때, 그것은 음행입니다. 마음을 하나님 대신 세상으로 가득 채운다면 이미 간음죄를 범한 것입니다.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고 하신 말씀이 그래서 소중합니다. 예수님은 우리 성도의 신랑이 되십니다. 그래서 어떤 아름다운 신부는 이렇게 신랑을 노래했습니다.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 부귀와 바꿀 수 없네
영 죽을 내 대신 돌아가신
그 놀라운 사랑 잊지 못해
세상 즐거움 다 버리고 세상 자랑 다 버렸네"
성도들이 내 대신 돌아가신 그 놀라운 사랑의 주님을 마음에 품을 때, 그는 신랑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사랑을 잊고 세상을 주님보다 더 마음에 품고 산다면 그는 우상을 숭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첫 사람 아담과 이브가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운 선악과로 마음을 채웠을 때, 그들은
하나님 사랑하는 마음을 잃었습니다.
선악과에 대한 탐심이 하나님 사랑보다 컸을 때, 그들은 하나님께 불순종하였습니다.
그들이 하나님께 대한 사랑을 잃었을 때,
존재의미와 사명을 상실했습니다.
낙원을 잃었습니다.
죄인으로 전락했습니다. 부끄러워 숨었습니다.
선악과를 향한 그들의 탐심은 무서운 간음 죄였습니다.
발람은 당대에 유명한 선지자였습니다.
그에게는 영력이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잘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탐심에 눈이 어두워 당나귀도 보는 하나님의 사자를 보지 못하였습니다.
탐심이 그의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으니 한사코 발락의 근처를 얼씬거립니다.
그는 결국 처참한 최후를 맞습니다.
그가 탐심으로 마음을 채웠을 때,
그는 하나님 사랑하는 마음을 잃었습니다.
하나님께 불순종하였습니다.
이 세대에 음욕이 사람들의 마음에 들끓고 있습니다. 미국에 사는 우리 2세들의 이혼율이 49-60%란 보고를 들은 기억이 납니다. 그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육신을 사랑하고, 물질을 사랑하고 자기를 사랑하는 탐욕 때문입니다.
세상을 향해 탐욕을 품는 성도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얼마나 많은 성도들이 세상적인 탐욕을 가지고 Lotto 좌판기를 바라봅니다.
많은 성도들이 세상 명예와 직분을 탐합니다.
2. 탐욕을 잘라버리세요. 천국이 있습니다.
(29)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30)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
위암에 걸린 사람도 초기에만 발견하면 그 부위를 끊어 버리면 살 수 있습니다.
죄는 영적인 암과 같습니다. 한번 죄가 붙으면 사망에 이르게 하는 무서운 존재입니다. 오른 눈에 죄가 들어가 역사하면 오른 눈을 빼어 내 버리는 것이 온몸이 지옥에 들어가지 않고 살 수 있습니다. 물론 오른 손에 죄가 들어가면 오른 손을 자르는 것이 살 수 있는 지름길입니다.
이 말씀은 죄가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가를 인식하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세상에서 역사하고 있는 죄가 내 몸에서 역사하지 못하도록 끊어야 합니다.
공중에 새가 날아가는 것을 어찌할 수 없으나 그 새가 내 머리에 둥지를 틀지 못하도록 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에 사는 우리 성도들의 문제는 죄가 역사 하는 세상과 너무 가깝습니다. 너무 친밀하게 살아간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신랑 되신 주님과는 멀찍이 살아가면서도 세상과는 너무 가깝게 살아갑니다. 주님 없이는 살아도 세상없이는 못살아요.
한국인 2세의 자살율이 미국인보다 100%가 높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미시간 대학에서는 매년 한 명 정도의 한국인이 자살한답니다.
21살 먹은 학생이, 친구들[4/5명이 교인-그 중의 한 명이 목사 아들)과 21잔의 술을 마시고 죽음. 침대에 누워두고 떠났는데 죽었다는 보도가 있습니다.
코넬대의 자살자가 절반이 한국인이란 보도가 있습니다.
너무 탐심이 지나칩니다.
미국인이 한국인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시카고 경우 한국인에 대한 호감도는 43(/53)위 랍니다. 거의 다 교회에 다니는데 왜 미국인은 싫어합니까?
욕심들이 지나쳐 공동체에 덕을 끼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좋은 차를 타고 와 돈만 벌고 간다는 겁니다.
당신과 세상의 거리는 얼마나 되십니까? 당신과 세상의 거리가 가깝습니까? 당신과 주님의 거리는 세상과의 거리보다 얼마나 더 가깝습니까?
간음하지 말라는 말은 신랑 되신 주님과 거리를 두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세상을 탐하여, 세상과 한 통속이 되어 살아가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신랑이신 주님을 세상보다 더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은 우상장사를 하여 음욕을 채우던 마음을 끊고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하나님께서 지시하는 땅으로 갔습니다. 이는 아브라함에게 범죄 하는 손을 끊고, 범죄한 눈을 빼는 아픔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그의 결단이 그를 통하여 천하만민이 복을 받게 됩니다.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에서 끊고 떠날 때, 자유함이 있습니다.
3. 나누어져서는 안될 부분이 있습니다.
(32)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없이 아내를 버리면 이는 저로 간음하게 함이요 또 누구든지 버린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
신랑과 신부는 하나님이 짝지어 주셨습니다. 신랑과 신부는 하나입니다. 둘로 나누어질 수가 없습니다. 신랑과 신부는 좋을 때 삼키고 싫으면 뱉는 그런 관계가 아닙니다.
우리는 호세아서를 읽으면서 세상 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는 여인의 타락을 만납니다. 호세아 선지자가 만난 여인 고멜은 음란한 여인의 대표적 인물입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하나님 말씀을 따라 고멜을 아내로 맞아들입니다. 그녀는 음란한 삶을 살아가는데 호세아에게 하나님께서는 고멜을 버리라는 말씀을 하시는 대신 데려오라 말씀하십니다.
내가 나를 위하여 저를 이땅에 심고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였던 자를 위하여
긍휼히 여기며
내 백성 아니었던 자에게 향하여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하리니
저희는 이르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라 하리라(호2:12)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이 다른 신을 섬기고
건포도 떡을 즐길지라도 여호와가 저희를 사랑하나니
너는 또 가서 타인에게 연애를 받아 음부된
그 여인을 사랑하라(호3:1-2)
호세아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그녀를 버리지 않습니다. 음행한 연고가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 여인을 버리지 않습니다.
이 성경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고 계십니까? 신랑 되신 하나님께서는 음란한 그 백성 이스라엘을 이와 같이 끝까지 신부로 맞아들이시는 분이심을 말씀하십니다.
신랑과 신부는 나누어질 수 있는 그런 대상이 아닙니다.
그러면, 어떤 경우에 나뉘어질 수 있습니까?
죽었을 때입니다. 우선 한쪽이 죽으면 헤어집니다.
한편이 영적으로 죽었을 때도, 하나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경우 불신자와 결혼을 금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나누어질 수 있는 음행한 연고란 한쪽이 죄로 죽음을 의미합니다. 육신적으로 죽지 않았을 지라도 영적으로 죽은 상황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영적 사망의 연고가 있을 때, 나누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함께 산다는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으니까요. 과일 나무가 뿌리채 썩어버렸을 때, 과수원에 심겨 있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이때,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찍어내 버리라. 땅만 버릴 뿐이라.
그런데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거든 이혼 증서를 줄 것이라'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상대에 대한 충동적이고 분노에 찬 마음으로 판단하고 함부로 이혼하겠다는 생각을 하지 말라는 말씀이지요. 엄숙히 율법 앞에 서보고 그 절차를 따라 생각해보라는 것입니다. 이 사람이 정말 죽은 사람인가 객관적인 평가를 해보라는 말씀입니다. 경솔하고 자기 중심적인 성급한 이혼을 방지하는 말씀입니다.
이런 간음한 연고 외에 싫어하기 때문에 버린다, 바꾼다는 것은 지옥에 떨어질 죄악입니다.
마무리하는 말
그러므로 간음하지 말라는 제 7계명은 신랑되신 주님을 세상보다 더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청결한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의 신부다웁게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을 끊어버리고 주님을 세상 무엇보다 더 사랑하라 하십니다. 이것이 성결입니다. 간음하지 않는다는 것은 다시 오실 주님께 대한 참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성결한 삶을 의미합니다. 깨끗하고 구별된 삶을 의미합니다.
예화]
뉴 마켓 커뮤니티 교회는 세상과 간음하기를 거부한 주님의 교회입니다.
뉴 마켓 커뮤니티 교회는 지난 5년 동안 두 가지 기도제목을 놓고 절실히 기도해 왔습니다.
하나는 뉴마켓에 5년전에 생긴 스트립 클럽이 사라지도록 하는 일이었습니다.
두 번 째는 새로운 교회 건물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 동안 몇 교회들이 모여 금요일이면 땅 밟기 기도(prayer walks)를 해왔습니다. 학교를 돌며 자녀를 지켜 주시도록 기도했습니다. 우리 지역에 나쁜 것이라 여겨지는 업소들이 없어지도록 기도했습니다. 특히 이 스트립 클럽이 없어지도록 건물 벽에 손을 대고 기도했습니다. 자녀들과 함께 기도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많은 도움의 손길이 있었습니다.
물론 이 스트립 클럽이 문을 열기 전부터 지역 주민들의 반대는 거셌습니다.
톰 테일러 시장은 적극 지지해 주었습니다.
시에서는 사업 광고를 금했습니다. 영업 시간을 제한하는 등, 성인 오락업소에 관한 규제를 강화하였습니다.
지역 경찰도 적극 협력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 기도제목이 동시에 응답 되었습니다.
스트립 클럽은 건물을 팔기 위해 내 놓았고, 120명의 뉴 마켓 커뮤니티 교회는 그 건물을 매입한 것입니다. 그리고 2003년 2월 16일 그곳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담임하시는 앤드류 윈스 목사는 이렇게 감사했습니다.
"모든 일이 놀라운 방법으로 성취되었습니다. 축제지요. 새로운 시작입니다"
교인들은 손에 손을 잡고 밴드 연주에 맞추어 건물 안을 뛰어다니며 외쳤습니다.
"주님께서 스트립 클럽을 우리에게 주셔서 무대에서 춤을 추게 하셨어요."
10,000 sq. ft 건물을 개조하기 위해 지난 석달 동안을 매일 같이 작업을 해왔고, 3월 말이나 공사가 끝나겠지만 예배는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스트립 댄서들의 탈의실은 유치부 방으로
음향 실은 유아 어머니들의 방으로
귀빈실은 주일학교 방으로 바뀌었습니다.
벌거벗은 여인들을 그린 벽화들은 베이지 색으로 덧칠했습니다. 이 벽화를 지우는데 만도 230리터의 페인트(동네 페인트 상점이 기증)가 들었습니다.
술 담배 토설물 오줌 등으로 찌들어 악취가 나는 카펫트는 걷어 쓰레기통에 버렸습니다.
여기저기 뚫린 벽이 메워졌습니다.
스트립 댄서들이 타고 내려오던 두 기둥은 뽑아버렸습니다.
두 개의 오븐과 다목적 프라이팬과 여러 설비를 갖춘 큰 부엌은 무료 급식소로 이용하기로 했습니다.
"죄악을 위해 썼던 시설들을 가난한 자들을 먹이고 약한 자들을 보살피는 데에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목사)
한 교회는 이 프로젝트를 위해 $4만을 헌금해 주었습니다.
이 건물을 사자 시에서는 종교 목적의 구역으로 허가해 주었습니다.
아직도 $60만을 더 갚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채우실 것을 믿습니다."
아직 이곳에 일자리를 구하러 오는 여자들도 있고 즐기러 오는 손님들이 있습니다. 그 때 우리는 그들을 기꺼이 환영합니다.
"이곳은 교회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이곳에 들어올 수 있습니다."
우리 자녀들은 하나님께서 우리 기도를 어떻게 응답하셨는지 일평생 기억하는 아이들이 있을 것입니다.
이 세대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으로 오염된 이 세대입니다.
신랑 되신 그리스도를 순전히 사랑하는 신부,
그리스도께 온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 드리는 신부,
그리스도를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의사가 없는 신부,
그런 신부가 그리운 시대입니다.
그리스도의 순결한 신부가 그리운 때입니다.
세상 음욕 대신 다시 오실 주님께 대한 소망으로 채웁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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