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말]
어떤 분이 보내온 글을 소개합니다.
"예일 대학교의 Harold J. Morowits 박사의 학설을 소개 합니다
그에 의하면 사람이 고기값은 약 6백만불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이 엄청난 가격은 인체내에 있는 호르몬 단백질 효소 아미노산 그리고 기타 복합적 생화학물의 원료만 걔산한 것이랍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6백만불 짜리의 이 원료들을 인체내 세포로 만드는 복잡한 작업에는 6천만조의 천문학적 비용이 들어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세포들을 살아있는 인간으로 조립하려면 이 세상에 있는 돈을 다 써도 모자란다는 것입니다 결국 모로비츠 박사의말은 모든 인간은 값으로 따질 수없는귀한 존재이며 돈으론 인간의 생면을 만들 수도 살 수도 없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주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마태복음 16:26]
주님은 온 천하를 다 주고도 바꿀 수없는 귀한 존재로 인간을 보신 것입나다
이런 귀한 생명을 심판하신다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1. 예수님의 심판 속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담겨있습니다.
심판이란 말을 사람들은 싫어합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나답과 아비후, 고라와 그 무리, 미리암, 아간, 소돔과 고모라,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자와 나사로에서 보는 심판을 들을 때, 심판이 무섭습니다.
'심판대 앞에 서야 한다?!'
'내 일생을 들고 조금도 죄가 없으신 하나님 앞에 서야 한다?!'
얼마나 부담스럽고 힘든 일입니까?
그런데
성경에서는 340번이나 심판이란 말을 적고 있습니다. 하나님 사랑으로 도배하다시피 한 요한복음에도 스무번이나 심판을 말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성경의 심판에 대한 핵심은 그 무서운 심판이 그대로 범죄자에게 임하는 것이 아님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8:20]
하늘과 성도들과 사도들과 선지자들아 그를 인하여 즐거워하라 하나님이 너희를 신원하시는 심판을 그에게 하셨음이라 하더라
성경에서 심판이 갖는 의미를 좀더 신중히 들추어 보면 심판은 부담스럽고 혐오감이 나는 개념이 아니라 그 안에 하나님 사랑이 듬뿍 담겼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가인이 동생 아벨을 살인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은 어떤 심판관이신가를 잘 보여주십니다. 하나님은 아벨을 향한 살인 동기를 보시고 그에게 충고를 해주십니다. 하나님의 권면을 무시하고 살인한 후에도 하나님께서는 회개를 촉구하시며 기다리십니다. 살인자 가인이 두려움으로 떨 때에도 그를 살인하지 못하도록 보호장치를 마련해 주십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의 심판자로 쓰임을 받습니다. 모세는 그 민족에게 화평을 가져오는 심판관입니다.
사사시대의 사사들이 심판자로서 쓰임을 받았는데요. 사사(심판자)의 의미는 '구원자'란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역대기에서는 왕들이 심판관 직분을 겸하고 있습니다. 가장 모범적이고 대표적인 심판관으로 우리는 어린 아기를 놓고 심판하는 솔로몬 왕을 꼽습니다. 그 심판에서 왕은 어떤 존재입니까? 아기를 살려 그 친 엄마에게 돌려주는 심판관입니다.
그러므로 가난한 자들에게나 소외당한 자들에게 있어 심판관은 그들의 권리를 보호해주는 소중한 존재입니다.(잠31:9)
심판 자리에 앉은 왕은 그 눈으로 모든 악을 흩어지게 하느니라(잠20:8) 말씀하십니다.
하나님나라의 심판관 예수그리스도는 솔로몬보다 더 지혜롭고 훌륭한 왕이십니다. 그분은 아기와 그 친 엄마를 행복하게 하는 솔로몬보다 훨씬 출중한 지혜를 갖추신 하나님이십니다.
이렇게 보면, 하나님의 심판 속에는 하나님 사랑과 떠날 수 없는 연관을 맺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하나님 사랑의 범주에 들어 있다는 사실이지요.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을 잡아서 지옥에 보내려고 오신 그런 심판관이 아니십니다.
죄인을 불러 회개케 하시고 마침내 구원을 받게 하시는 구원의 심판관이십니다.
[요5:34]
그러나 나는 사람에게서 증거를 취하지 아니하노라 다만 이 말을 하는 것은 너희로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이와 같이 예수님의 심판은 세상 심판관이 죄인을 감옥에 보내는 것과 다릅니다. 죄인을 불러 구원에 이르게 하는 심판입니다.
[요한복음 3: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저는 교통법을 위반하여 법정에 가본 적이 있습니다. 시속 40Km로 가야할 지점에서 65Km로 갔기 때문에 벌금도 내고 벌점도 내야했습니다.
어떤 분이 알려준대로 저는 법정에 찾아갔습니다.
그곳에는 저와 같은 잘못을 행한 사람들이 재판관 앞에 앉아 있었습니다.
법정 변호인이 우리들을 찾아와서 말했습니다. 잘못을 인정하라 그러면 벌점을 없에주고 벌금만 내도록 판사에게 말하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고맙다고 했습니다. 저의 잘못을 인정하였습니다.
그때, 재판관은 벌점을 없애주었습니다.
얼마간의 벌금만 내고 돌아왔습니다.
저는 그 법정을 나오면서 이 법정은 우리 교통위반자들을 처벌하기 위한 곳이 아니라 구원해주는 재판관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죄를 용서해주고 죄를 가볍게 하기 위한 재판관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심판이 행해질 때 모든 피조물과 인간은 찬양과 경배를 드립니다.(계19:1)
시96:11-13
하늘은 기뻐하고 땅은 즐거워하며 바다와 거기 충만한 것은 외치며
밭과 그 가운데 모든 것은 즐거워할찌로다 그리할 때에 삼림의 나무들이 여호와 앞에서 즐거이 노래하리니
저가 임하시되 땅을 판단하려 임하실 것임이라 저가 의로 세계를 판단하시며 그의 진실하심으로 백성을 판단하시리로다
시98:8
여호와 앞에서 큰 물이 박수하며 산악이 함께 즐거이 노래할찌어다
심판 속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할 때, 성도들이 온 우주와 함께 심판의 그 날에 기뻐할 수 있습니다.
2. 증거가 충분합니다.
1] 세례요한입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예수님은 죄인들의 죄를 심리하여 지옥에 보내시는 심판관이 아니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서의 심판관이심을 세례 요한이 선포하였습니다.
사도 요한도 이런 어린 양의 구원을 또 다른 성경에서 선포합니다.
[요한계시록 7:10]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세상 죄를 지고가시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 심판주이심으로 그 심판은 구원의 깊은 의미를 포함하는 심판인 것입니다.
심판주가 되시나 그분이 2천 년 전에 우리 죄악을 대신 지고 가신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는 사실은 그 진리를 받아들이는 성도들에게 말할 수 없는 위로자가 되시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7:17]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
예화]
어떤 한적한 마을 주유소 앞에 할아버지 한 분이 흔들의자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는 오가는 운전자들에게 인사를 건너고 있었어요. 그날따라 손녀딸이 그 곁에 앉아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었어요.
한 여행 객이 마을을 둘러보던 중 다감하게 인사하는 할아버지를 보고 다가와 물었습니다.
" 이 마을은 어떤 곳입니까?"
" 젊은이는 어떤 마을에서 오셨소?"
"제가 사는 마을 사람들은 모두 서로에 대해 아주 비판적입니다. 서로 나쁜 소문을 퍼뜨리기 때문에 정말 살기 힘든 곳입니다. 저는 그곳을 떠나고 싶습니다."
"그래요. 이 마을도 똑 같답니다."
얼마 후, 여행을 하던 다른 가족이 그 할아버지에게 다가와 화장실을 물었습니다. 어머니는 어린 두 아이를 데리고 화장실에 간 사이에 아버지가 다가와 물었습니다.
"이 마을은 살기 좋은 곳입니까?"
"당신이 살아 온 마을을 어떤 곳입니까?"
"정말 좋은 곳입니다. 이웃이 아주 가깝게 지냅니다. 언제나 기꺼이 도움을 주려고 합니다. 어디가나 반갑게 서로 인사를 나눕니다. 작은 일에도 고마움을 잊지 않는 마을입니다. 어쩔 수 없이 정말 가족을 떠나는 느낌입니다."
" 이 마을과 비슷하군요"
그 가족이 고맙다는 인사를 남기고 떠나간 후, 의아한 손녀가 물었습니다.
"할아버지, 왜 첫번째 사람이 왔을 때는 우리 마음이 살기에 아주 고약한 곳이라고 하시더니 두 번째 사람들에게는 아주 살기 좋은 곳이라고 하셨어요?"
" 사람은 어디를 가나 자기 마음을 가지고 다니는 법이란다. 그리고 그 마음이 살기 좋은 곳을 만들기도 하고 고약한 곳을 만들기도 하지."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빚어서 우리에게 담아주신 마음이 중요합니다. 그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의 초대를 받아들인 자에게는 구원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구원을 베푸시기 원하셔서 은혜로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은혜로 받아들이지 않고 거절하면 그 자체가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2] 예수님이 하신 그 역사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께 주셔서 행하신 그 역사를 보십시오. 그것은 사람을 살리는 역사입니다.
- 가나에서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킨 일은 살리는 역사입니다.
- 수가성에서 예수님을 만난 여인이 살아나는 역사를 체험합니다.
- 가버나움에서 병들었던 신하의 아이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아났습니다.
- 38년 된 중환자가 베데스다 못가에서 예수님을 만나 살아났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와같이 행하신 역사는 사람을 살리는 역사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놀라운 역사는 십자가에서 몸을 산제물로 주신 사건입니다.
마26:42
다시 두번째 나아가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고
이 무서운 심판을 대신 당하심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새 언약의 잔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이 놀라운 사랑으로 인하여 믿음으로 받는 우리는 구원에 이르는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벤 후퍼는 미 테네시 동부의 어느 작은 마을, 미혼모에게서 태어났습니다. 사람들은 "저런 아이가 어떻게 우리 중에 살 수 있어?" 멸시했습니다.
슈퍼에 가도, 하굑에 가도 그는 늘 왕따를 당했습니다.
벤이 12살이 되었을 때 그 작은 마을 교회에 새로운 목사님이 부임해 왔습니다. 그는 사랑이 많아서 사람들에게 매우 좋은 평을 받았습니다.
그와 함께 지낸 사람들은 자신이 세상에서 매우 중요한 사람인 것을 느낀다고 했습니다.
벤 후퍼는 난 생 처음으로 교회를 가보았습니다. 맨 나중에 갔다가 맨 처음 도망쳐 나왔습니다. 사람들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를 7번 째 하던 어느 주일, 그는 설교에 너무 은혜를 받은 나머지 맨 먼저 자리를 뜨는 것을 깜박 잊고 말았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얼른 자리를 빠져 밖으로 나오려고 했지만 벌써 입구는 사람들로 꽉 차 있었습니다. 이리저리 빠져나갈 구멍을 찾고 있는데 누군가 뒤에서 어깨에 손을 얹는 것을 느꼈습니다. 새로오신 그 젊은 목사님이었습니다.
그를 만난 모든 사람들이 그랬듯이 '너는 누구의 아들이냐?' 묻고 있는 눈빛을 느꼈습니다.
한 순간 깊은 침묵이 그들 사이에 흘러갔습니다.
그 때, 그 젊은 목사님 얼굴에 미소가 번지기 시작하더니
"아, 네가 누구의 아들인지 알겠다. 그 닮은 모습이 아주 역력해.
너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그리고는 그의 등을 철썩 치며 말했다.
"네가 가진 유산은 굉장한 거야! 그러니까 이제 그에 걸맞게 살아가야 한다."
예수님의 심판은 사람을 살리는 심판입니다.
3]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요5:37] 또한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친히 나를 위하여 증거하셨느니라
[요한복음 5:22]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요5:25-26]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또 인자됨을 인하여 심판하는 권세를 주셨느니라
4] 성경이 예수님께 대하여 증거하십니다.
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성경이 어떻게 예수님께 대하여 증거하고 있습니까?
[요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마무리하는 말]
어떤 사람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누군가 따라오고 있는지 돌아보십시오.
아무도 따라오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냥 산책입니다."
우리 신앙인은 그냥 산책하며 사는 인생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인생이요, 하나님께서 구원하시는 심판에 이를 인생입니다.
그러나 2천년 전에 어떤 종교인들은 이런 안타까운 질책도 받았습니다.
40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41 나는 사람에게 영광을 취하지 아니하노라
42 다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너희 속에 없음을 알았노라
43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으매 너희가 영접지 아니하나 만일 다른 사람이 자기 이름으로 오면 영접하리라
44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
45 내가 너희를 아버지께 고소할까 생각지 말라 너희를 고소하는 이가 있으니 곧 너희의 바라는 자 모세니라
46 모세를 믿었더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
47 그러나 그의 글도 믿지 아니하거든 어찌 내 말을 믿겠느냐 하시니라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심판에서 구원 하시려고 늘 우리를 따라오십니다.
이상한 심판자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내 인생을 지금 내려놓지 않으시겠습니까?
구원을 위해 하늘 보좌를 버리고 우리 곁으로 찾아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영원히 함께 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성경본문]
30 내가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듣는대로 심판하노니 나는 나의 원대로 하려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원대로 하려는고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
31 내가 만일 나를 위하여 증거하면 내 증거는 참되지 아니하되
32 나를 위하여 증거하시는 이가 따로 있으니 나를 위하여 증거하시는 그 증거가 참인줄 아노라
33 너희가 요한에게 사람을 보내매 요한이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였느니라
34 그러나 나는 사람에게서 증거를 취하지 아니하노라 다만 이 말을 하는 것은 너희로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35 요한은 켜서 비취는 등불이라 너희가 일시 그 빛에 즐거이 있기를 원하였거니와
36 내게는 요한의 증거보다 더 큰 증거가 있으니 아버지께서 내게 주사 이루게 하시는 역사 곧 나의 하는 그 역사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나를 위하여 증거하는 것이요
37 또한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친히 나를 위하여 증거하셨느니라 너희는 아무 때에도 그 음성을 듣지 못하였고 그 형용을 보지 못하였으며
38 그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지 아니하니 이는 그의 보내신 자를 믿지 아니함이니라
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40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41 나는 사람에게 영광을 취하지 아니하노라
42 다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너희 속에 없음을 알았노라
43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으매 너희가 영접지 아니하나 만일 다른 사람이 자기 이름으로 오면 영접하리라
44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
45 내가 너희를 아버지께 고소할까 생각지 말라 너희를 고소하는 이가 있으니 곧 너희의 바라는 자 모세니라
46 모세를 믿었더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
47 그러나 그의 글도 믿지 아니하거든 어찌 내 말을 믿겠느냐 하시니라
======================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