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1 March 2015

마5:38-48 복수냐 사랑이냐?

들어가는 말

서머나 교회의 목표는 예수님을 닮는 교회입니다. 
서로 사랑함으로 
진리를 따름으로
선교함으로
예수님을 닮자!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온전한 사랑으로 주님을 닮아가자'는 주제로 말씀을 듣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하나님처럼 사랑함으로 하나님의 온전하심에 동참하라'는 말씀입니다. 이는 십계명의 두 번째 부분에 있는 '이웃을 사랑'을 요약한 내용이기도 합니다. 이는 많은 성도들이 사랑함으로 하나님을 나타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보복과 갈등과 원한 속에서 허송세월하고 있다는 점을 반성하게 하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1. 보복은 끝이 없습니다.


(38)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이른바 동해보복법(同害報復法)입니다. 
상호 멸망을 초래하는 무제한 보복을 막아보자는 법입니다.
각각의 손해에 상응하는 정도의 보상에서 그치라는 겁니다.
일대일의 보복으로 그치도록 제한한 사회 정의의 표현이었습니다(레 24:17-21). 사람들이 정도 이상의 지나친 처벌을 하지 않도록 하는 하나의 금지 조항이었습니다. 

그러나 죄 아래 있는 사람(예, 바리새인)들은 이 법을 악용하여 복수를 정당화하였습니다. 복수심에 불타서 죄를 범해서는 안된다는 사례가 상응하는 복수를 해야 한다는 역기능으로 나타났습니다. 더 강한 복수가 자기보존의 유효한 수단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창 4:15, 24).
* 모세가 동족을 괴롭힌 애굽인에 대하여 복수했습니다.(출 2:11,12)
* 시므온과 레위가 동생을 욕보인 세겜에 대하여 복수했습니다.(창 34:25)
* 압살롬이 동생 다말을 강간한 암논에 대하여 복수했습니다.(삼하 13:23-29)
요즈음 911 사건으로 일격을 당한 미국이 무서운 보복을 감행하려 하고 있습니다.
팔레스타인 지역에서는 자살 테러가 빈번히 나고 있습니다.  그 다음날 바로 이스라엘은 탱크를 가자지구에 몰고 들어갑니다. 그리고 거기서 죽은 가족이 다시 복수하려고 일어납니다. 나도 자살 테러를 하겠다고.

보복은 끝이 없습니다. 어떻게 할 것입니까?

그 일로 형제들이 개입하고 종족이 개입하고 민족이 개입하여 전쟁에 이르는 일을 해야만 합니까?.
세상에는 아직도 부당하게 속옷을 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는 사람은 지금도 있습니다. 이기적인 동기로 사람을 이용하는 사람은 로마인뿐이 아닙니다. 

네 이웃을 사랑하라.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라.
너희 형제에게는 문안하라.
그러나 네 원수를 미워하라. 

유대 교사들의 말처럼 이웃이란 말을 그들의 친구에게만 국한할 것입니까? 

한국 전쟁 시절, 미군들이 청소해줄 소년을 한 사람 고용했습니다.  장난을 좋아하는 군인들은 스토브 손잡이에 끈적이는 바셀린을 발라 두었습니다. 작은 물동이를 문 위에 두어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소년을 물벼락맞게 했습니다.  신발을 바닥에 못박아 놓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소년은 조금도 화를 내지 않았습니다. 재미가 없어진 군인들은 사과했습니다. 다시는 그런 일을 않겠다구요. 
"다시는 스토브 손잡이에 끈적이는 바셀린을 바르지 않겠다구요?"
"그래!""문 위에 양동이를 두지 않겠다구요?""그럼!"
"신발을 바닥에 못박아 놓지도 않겠다구요?"
"그럼!"
"좋아요." 소년은 미소를 띄며 말했습니다.
"저도 더 이상 수프에 침을 뱉지 않겠습니다."

이는 좋은 답이 아닙니다. 자연인들의 갈등은 끝이 없습니다.



2. 하나님께는 사랑이란 열쇠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45)

하나님은 사랑이라. 사랑의 법이 바로 하나님의 법입니다. 햇빛과 비는 하나님께서 세상에 주시는 큰 축복입니다.  이 같은 선물을 하나님께서는 선인과 악인에게,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똑같이 주십니다. 
매우 악한 자라도 편안한 생활을 즐깁니다. 이 사실은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과 관대하심을 보여 주는 주목할 만한 예입니다.  
하나님을 거스려 반역하는 악한 자들에게도 선한 자들을 대하시는 것과 같이 하나님은 관대한 선물들을 베푸십니다.
우리는 이 놀라우신 하나님으로부터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받습니다. 우리를 미워하는 자들에게도 선을 행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원수를 갚지 않으셨어요. 자기를 죽이는 자들을 향해 오히려 십자가 위에서 기도하셨어요. 저들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셨어요. 주님의 말씀처럼 오른뺨을 치면 왼뺨을 돌려대고 속옷을 가지는 자에게 겉옷을 주고 오리를 가자고 하는 자에게 십리를 가주신 것이 주님의 삶이에요. 주님의 마음이 넓어요. 창녀도 세리도 아무리 천하고 보 잘 것 없는 사람도 다 품어 주시는 주님 예수 안에 누가 안 들어가겠어요. 온 인류를 높거나 낮거나 다 품어서 온 인류의 왕의 왕이 되시는 주님, 예수 안에 누가 안 들어가겠어요. 온 인류를 높거나 낮거나 다 품어서 온 인류의 왕의 왕이 되시는 주님이십니다. 우리 모두 주님 따라 마음을 넓히는 성도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살면 안되는 것입니까? 지는 것입니까? 망하는 것입니까? 이런 사람이 잘되고 이런 사회가 평화롭고 이런 가정이 행복하게 되는 것입니다."(김삼환)

하나님은 바로 이런 수준의 신앙인을 기대하십니다.
*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레 19:18)
*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롬 12:19)
* 네 원수가 배고파 하거든 식물을 먹이고 목말라 하거든 물을 마시우라(잠 25:21)
* 너는 악을 갚겠다 말하지 말고 여호와를 기다리라 그가 너를 구원하시리라(잠 20:23)



3. 우리 성도는 원수를 사랑함으로 세상에 하나님의 자녀임을 나타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들에게 하나님을 나타낼 수 있는 기회를 자주 주십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결정적인 때가 바로 원수와의 만남입니다.

첫째, 뺨을 때림으로써 내 몸에 직접 해를 가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결정적 가해를 당했습니다. 여러분, 뺨을 맞아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너무 무례하고 모욕적인 행동입니다. 없는 악이라도 바쳐 오를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무엇을 가르치십니까?

(39)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

왼편 뺨도 내 놓아라 하십니다. 그런데 이때가 바로 하나님을 나타낼 수 있는 기회입니다. 그래서 왼편도 돌려 대라 하십니다.  
"하나님 앞에 오늘 우리가 그릇이 커야 됩니다. 인간의 그릇은 지식의 그릇으로 큰그릇이 될 수 없습니다. 많이 배워도 마음이 적은 사람은 큰 일 못합니다. 몸이, 덩치가 아무리 커도 키가 아무리 커도 마음이 좁으면 그 사람 큰 일 못합니다. 사람이 큰 일을 하는 것은 포용력이 넓어야 돼요. 원수에 대해서 미운 사람 만들지 말고 남에 대해서 칭찬 잘하고 격려해 주고, 남이 잘하는 것 보면 좋아하고 칭찬해 주고 남을 위로해 주고 남을 헐뜯지 않는. 헐뜯는 것은 자기를 뜯는 거예요.  오늘 우리 마음을 넓혀야. 넓은 마음을 하나님이 보시고 채워주실 줄 믿습니다."(김삼환)

둘째, 속옷을 가져가고자 함으로써 내게 재산상의 피해를 주는 경우가 있습니다(40절).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악한 자가 거짓으로 맹세하고 위조 문서들을 꾸며댐으로써 법적 절차에 의해 강제로 상대방의 속옷을 벗겨내게 할 수 있습니다. 이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40)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그것을 이상히 여기지 말라(전 5:8).'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라고 하십니다. 이 때가 바로 예수님을 닮을 수 있는 기회입니다.
예수님께서 겉옷까지 모두 주고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그분 안에서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셋째, 억지로 오리를 가자고 함으로써 나의 자유를 구속하는 경우가 있습니다(41절). 

(41)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보복하려는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보다는 그를 봉사하라 하십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소송하기를 좋아해서는 안되며, 작은 손해를 두려워해서는 안됩니다. 손해를 감수하고 선한 목적을 위해서 보상하실 분의 은총을 강구해야 합니다.

 네째, 꾸고자 하는 사람을 만납니다. (42절).  

(42)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물질적인 궁핍, 그래서 누군가의 도움이 없이는 일어설 수 없는 때, 형제를 바라봅니다. 아무나 바라볼 수 없습니다. 그래도 의지할 만한 자를 바라봅니다. 그때가 기회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가 온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의 자녀는 자비롭고 관대해야 합니다. 우리가 꾸어줄 수 있는 형편에 있을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공통적으로 가져야 할 정서는 관대해야 합니다. 매정하게 끊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원수를 사랑하는 법


성도는 그들에게 선한 뜻을 마음에 품습니다.  그들을 마음 중심으로 이해합니다.
우리는 그들에 대해서 좋게 말합니다. 악한 말을 하는 저들에게 선한 말을 합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훌륭하고 좋은 점들은 칭찬합니다. 
  우리는 그들을 선대합니다. 기쁨으로 후대합니다.  미워하는 증거입니다. 할 수 있는 한 모든 실제적인 친절을 그들에게 베풀 기회를 기뻐합니다.
우리는 그들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그리스도께서 그러한 모범을 보이셨습니다. 스데반이 그 중심을 따라 순교하기까지 기도했습니다. 우리가 그러한 핍박을 받을 때는 언제든지, 우리는 우리를 욕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함으로써 그리스도의 교훈과 모범에 대한 우리의 순종을 보일 기회를 갖게 됩니다.  

예화]
지난 달 우리 가운데 좋은 간증을 남기고 가신 정선용집사님이 계십니다. 

강남 성심 병원에서 심장 판막수술을 받았습니다. 좌우심장 사이에 풍선을 넣어서 진행하는 간단한 수술입니다. 그런데 경험이 적은 의사가 풍선 부는 정도를 적당하게 하지 않고 너무 크게 불어서 연결 구멍이 너무 크게 되었습니다. 좌우심방 사이에 피가 오가게 되어 심장이 늘어나고 위에까지 늘어났습니다. 결국 위와 같은 다른 신체에까지 영향을 주어 건강이 크게 악화되었습니다. 결국 어떤 때는 화장실에 갔다가 쓰러지기도 하는 둥의 부작용이 생겼습니다.
주변에서는 그런 엉터리 의사가 어디 있느냐며 의사를 고소하여 피해보상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집사님은 거절했습니다. 어떤 의사가 수술을 잘못하고 싶어서 잘못하겠느냐고! 대신 그  의사를 조용히 만났습니다. 그 의사는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며 용서를 청했습니다. 그 의사는 결국 정집사로 인하여 믿음을 갖게 되었답니다. 
그렇지만 정집사님은 다시 큰 수술을 해야했습니다. 인공 심장을 넣고 살게 된 것입니다. 자체적으로는 심장의 피를 조절할 수 없어 약을 매일 먹어야 합니다. 약을 먹지 않으면 언제 심장이 설 줄 모르는 인생이 된 것입니다. 몸이 안 좋으면 심장 뛰는  소리가 시계 초침 가는 소리처럼 들리는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몸은 아프고, 가게는 털리고 자살이라도 할 만큼 어려운 일이 많았지만 하나님의 백성이기에 남에게 베풀줄 아는 마음의 소유자가 된 것입니다.
011822-2686-4573(가게)     011822-2060-8627(집)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롬12:19). 

이는 우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임'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내가 천국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 (마태복음 17: 19)

우리는 이웃에게 모든 유익을 베풀도록 애써야 합니다. 구하는 자에게 언제나 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가난한 자의 요구를, 그가 나에게 선행이나 복된 의무를 이행할 수 있는 기회 준 것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또한 꾸어 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에게 친절을 베풀어야 합니다.  
이처럼 자비와 관대함을 닮아 가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아시고 우리를 그의 선하신 복들로 채우십니다.

(44)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45)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 

우리가 예수님의 마음을 품어 악한 자에게 은혜로 대할 수 있는 기회를 틈틈이 하나님은 주십니다. 이때,
좋은 신자는 
하나님을 닮았다! 
성숙했다!
수준이 다르다!
는 것을 증명합니다.

(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원수 사랑의 근거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은 누구나 하나님께 커다란 사랑의 빚을 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그분의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관대하심의 덕을 입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할 수 있는 한 그 관대하심을 전적으로 본 받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의 백성된 우리가 원수를 용납하고 사랑하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지워진 큰 의무입니다.  우리의 신분 때문입니다.

(46)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47)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이웃을 사랑하는 면에서 자연인들과 차원이 다릅니다(46,47절).  
세리들과 같은 자연인들도 그들의 친구를 사랑합니다.  사람의 본성이 그들로 하여금 그렇습니다.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게 마련입니다. 
에리히 프롬이라는 정신분석학자는 어머니의 자녀를 향한 사랑을 무조건적인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어머니가 자녀를 사랑할 때는 특별한 이유나 조건이 없이 사랑합니다. 그냥 내 자녀이니까 사랑합니다. 어머니가 자녀를 사랑할 때는 특별한 자격이 필요치 않습니다. 잘 났으면 잘난 그대로 사랑하고, 못 났으면 못난 그대로 사랑합니다. 속 썩이면, 속상해 하면서도 사랑합니다(Erich Fromm, The Art of Loving. 59). 

그러나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희생하심으로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습니다. 우리의 원수 사랑은 값을 치룬 하나님의 공로에 근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사랑이란 공식을 따라 사랑합니다. 나에게 손해가 되는 이타적인 사랑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희생하면서 사랑하는 것입니다. 내 자존심이 완전히 무너지면서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 사랑은 자연인들의 사랑을 한 차원 넘어 존재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원수를 용서함으로 하나님을 나타내는 법을 알려주셨습니다. 용서는 악을 선으로 갚는 길입니다

[몇 번이나 용서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
[일곱 번만이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하라](마 18:22)

적에 대하여 스스로 복수하지 말라.
앙갚음을 하지 말라.
* 요셉이 형제들을 용서합니다.(창 45:15)
* 다윗이 사울을 용서합니다.(삼상 24:10-12)
* 예수께서 박해자들을 용서합니다.(눅 23:34)
* 스데반이 그의 살해자들을 용서합니다.(행 7:60)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들을 용서해 줌으로 원수를 극복합니다. 


마무리 하는 말

우리는 많은 기회를 하나님으로부터 선물로 받습니다. 그때, 우리는 복수할 수도 있고 사랑할 수도 있습니다.
손양완 목사님은 예수님을 따라 복수 대신 사랑을 선택하였습니다. 이로 인하여 불완전한 그분은 온전한 성도의 본으로 우리 가운데 계십니다.

(48)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하나님은 온전하십니다. 온전하시기 때문에 악인까지도 햇빛을 비추십니다. 우리 하나님의 자녀는 이 온전하신 하나님을 나타낼 기회를 가진 성도들입니다. 원수까지도 사랑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하나님을 닮았습니다. 성도가 원수들에게 선을 행할 수 있다는 사실은 그만큼 온전해졌다는 증거입니다(눅 6:36).  해를 끼치는 자들을 용서하고 악한 자와 은혜를 모르는 자들을 선대하는 일이 곧 하나님의 온전하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런 온전함을 세상에 보일 때, 세상은 우리 안에서 하나님을 닮은 것을 보고 놀랄  것입니다.  
오늘 당신은 보복 대신 사랑을 선택해보지 않으시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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