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3 March 2015

요6:16-27 찾아오시는 하나님

[들어가는 말]

    폴 트루니에가 지적해준 대로 우리가 직면하는 문제는 죽음 같은 무감각입니다. 이것이 영적인 세계에서도 만연되고 있습니다.
    키엘게골은 이런 명언을 남기고 있습니다.

  " 이 시대는 죽어가고 있다. 죄 때문만이 아니다. 열정의 결핍 때문이다."

  사회에는 무감각이 만연하고 있습니다.

  Cool!을 미덕이라 생각합니다.
냉담함이 미덕이 된 세상입니다.

   니체의 책에 있는 미친 남자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어떤 미친 남자가 어느 날 성당의 계단을 올라가면서 청중에게 소리쳤다."
  (미친 남자): "위령곡을 불러주세요!"
  "누가 죽었습니까?"
  (미친 남자):"하나님이 죽었습니다."
  - (미친 자를 향한 청중의 조롱)
  (미친 남자):"만일 하나님이 죽지 않았다면 왜 교회들이 영안실이 되었습니까?"

    니체가 깨달았어야 했던 것은 죽은 자는 하나님이 아니라 그의 백성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죽으신 것이 아닙니다. 그의 영적 감각이 죽어 있어 깨닫지를 못하기 때문입니다.



    1. 세상 종교인들은 그 신을 찾아갑니다.

24 무리가 거기 예수도 없으시고 제자들도 없음을 보고 곧 배들을 타고 예수를 찾으러 가버나움으로 가서
25 바다 건너편에서 만나 랍비여 어느 때에 여기 오셨나이까 하니

    본문에 예수님을 찾아 헤매는 무리를 만납니다.
예수님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시던 장소에서 가버나움까지의 거리는 가고 싶다고 훌적 갈 수 있는 거리가 아닙니다.
결심하지 않으면 갈 수 없는 거리입니다.
지난 밤 배로 갔다 풍랑을 만난 지점만 해도 십여리를 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무리들이 이 먼 거리까지 예수님을 찾아갔을까요?

14 그 사람들이 예수의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15 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가 와서 자기를 억지로 잡아 임금 삼으려는 줄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시니라

왜 이런 사건이 생겼을까요?

유대 백성은 출애굽을 체험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애굽이란 당시 최강의 국가에 노예로 살던 200만 명이 한 위대한 지도자 모세를 만나서 출애굽을 했습니다.
그들은 40년이란 장구한 시간을 하나님께서 내려주신 만나를 받아서 먹고 가나안 땅에 이르렀습니다

    지금은 애굽 대신 로마란 세계 최강의 국가가 유대인을 점령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출애굽을 갈망하던 조상들처럼 출 로마를 고대하고 있었습니다.
메시아가 오시면 그 일은 이루어 질 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5천 명의 식량문제를 한 번의 기도로 해결하시는 예수님을 보았을 때 무엇을 생각하였겠습니까?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먹을 것이 없는 사람들에게 먹을 양식을 공급해주시는 예수님의 능력을 보는 사건은 무리에게 모세를 만나는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날이 새자마자 무리는 어제 기적의 현장으로 예수님을 찾아 달려갔습니다. 그곳에 없자 가버나움까지 찾으러 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예수님을 만나게 되자 너무 기뻤습니다.

    랍비여 어느 때에 여기 오셨나이까

15 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가 와서 자기를 억지로 잡아 임금 삼으려는 줄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시니라

    예수님께서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십니다.
왜요?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들어봅니다.

    (요6:26)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예수님께서 정말 주시고 싶으셨던 것은 썩는 양식이 아니었습니다.

    (요6:27)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

    예수님께서 저들에게 주고 싶어하셨던 양식은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이었습니다.

         6.25 한국전쟁을 체험한 한국 교회는 이런 절실한 체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전쟁으로 피폐한 세상에서 너무나 많은 사람들은 먹을 것이 없어서 극한 고통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 때 외국으로부터 원조가 쏟아져 들어왔는데, 대게 기독교인들이 그런 복된 일을 하였기 때문에 교회를 통해서 구호식량이 들어왔습니다.
먹을 음식이 없었던 많은 사람들이 단지 먹을 식량을 얻기 위해 교회에 나왔습니다.
그때 교회는 무엇을 가르쳤습니까?
교회는 먹을 음식을 주는 곳이 아님을 말했습니다.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만나지 못한 채,
교회가 썩을 양식을 주는 곳이 아님을 알았을 때 썰물처럼 빠져나갔습니다.
    6.25 한국전쟁 때, 한국교회를 통해 공급된 많은 구호 식량은 하나님으 백성들이 우리 민족을 구제하기 원하여 공급한 것입니다. 그러나 썩는 양식을 통해 기도한 내용을 우리는 상상할 수 있습니다.
    우리 민족이 구원을 얻기 원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찾아가는 것이 신앙의 기본이라고 생각하는  분이 계십니까?
참된 신앙은 찾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2. 예수님께서는  찾아오십니다.

    1] 주님께서는 그 사랑하는 자를 찾아오십니다.

    예수님은 찾아가야 할 대상이 아니라 찾아오시는 주님이십니다.
많은 종교는 신을 찾는 일로 채워져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찾아 오시는 하나님을 모시고 삽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찾아오십니다.
하나님께서 죄 아래 있는 가인을 찾아오십니다.
하나님께서 노아를 찾아오십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찾아오십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찾아오십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찾아오십니다.
하나님깨서 육신을 입으시고 베들레헴에 찾아오십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와 같은 제자들을 찾아오십니다.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을 찾아오십니다.
주님께서 고넬료를 찾아오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는다는 것은 바알 선지자들이나 앗세라 선지자들이 몸을 상하기까지 몸부림치며 찾는 그런 찾음이 아닙니다.
그들이 먼저 예수님을 찾아간 경우를 들으셨나요?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찾아갔지만 그렇게 시원한 만남을 갖지 못했습니다.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겠습니까 찾아간 청년은 슬픈 기색을 하고 돌아갔습니다.
이를 아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찾아오시는 하나님을 만납니다.
주님은 찾아오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신앙이란!
찾아오시는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찾아오시는 주님을 향해 문을 여는 것입니다.
찾아오시는 주님과 교제하는 것입니다.

    찾는 일이 우리 일이 아니라 찾아오시는 주님을 영접하는 일이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2] 주님께서는 풍랑 속에서도 찾아오십니다.

18 큰 바람이 불어 파도가 일어나더라
19 제자들이 노를 저어 십여리쯤 가다가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 배에 가까이 오심을 보고 두려워하거늘
20 가라사대 내니 두려워 말라 하신대
21 이에 기뻐서 배로 영접하니 배는 곧 저희의 가려던 땅에 이르렀더라

    큰 바람이 불었습니다.
무시무시한 파도가 일어났습니다.
제자들이 힘들게 노를 저어갑니다.
두러움이 제자들 안에 가득합니다.
그 중요한 순간에 누가 찾아올 수 있겠습니까?
오직 주님께서 찾아오신 줄 압니다.

    우리 인생 중에도
    큰 바람이 불 수 있습니다.
무시무시한 파도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힘들게 노를 저을 수 밖에 없는 수 있습니다.
두러움이 제자들 안에 가득할 수 있습니다.
그 중요한 순간에 누가 찾아올 수 있겠습니까?
오직 주님께서 찾아오십니다.

    보통 사람들은 어려운 풍랑이 올 때면 피합니다.
잘 나갈 때에 몰려오던 사람들도 풍랑이 올 때면 피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풍랑이 일 때 더 가까이 오십니다.

    요나가 하나님 말씀을 거역하고 임의로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다가 큰 물고기 속에 들어가는 고난을 당했습니다.
누가 그 요나와 함께 할 수 있겠습니까?
그 때도 주님께서는 요나를 찾아오셨습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가 믿음을 지키던 중 풀무불에 들어가는 풍랑을 만났습니다. 주님께서는 그 때도 찾아오셨습니다.

    다니엘이 사자굴에 떨어지는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 때 주님께서는 다니엘을 찾아오셨습니다.

(단6:19-20)이튿날에 왕이 새벽에 일어나 급히 사자굴로 가서
다니엘의 든 굴에 가까이 이르러는 슬피 소리질러 다니엘에게 물어 가로되 사시는 하나님의 종 다니엘아 너의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사자에게서 너를 구원하시기에 능하셨느냐
22 나의 하나님이 이미 그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으므로 사자들이 나를 상해치 아니하였사오니 이는 나의 무죄함이 그 앞에 명백함이오며 또 왕이여 나는 왕의 앞에도 해를 끼치지 아니하였나이다
   

    3] 찾아 오셔서 말씀을 주십니다.

    20 내니 두려워 말라 하신대

    풍랑 속의 제자들은 두려움 가운데 있었습니다.
갈릴리 바다의 돌풍은 그들이 감당하기 힘들 만큼 무서웠습니다.
그러나 찾아오신 예수님이 계셨습니다.
그리고 찾아오신 예수님께서 귀한 선물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말씀이셨습니다.

"내니 두려워 말라"

풍랑보다 더 강한 것은 그 풍랑을 잠잠케 하시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라마단 금식 기간 중에 이스탄불을 방문한 홍정길 목사님의 글에 이런 경험을 적고 있습니다.
    "코란을 아십니까?"
    "아라비아 언어라서 잘 모릅니다. 그냥 외우는 것이지요."
    코란을 읽는 사람을 '이맘이라고 하는데 이 이맘들도 코란의 뜻을 잘 모른 채 얼마나 멋있게 읽느냐에 중점을 두고 읽는다고 한다.

    이런 외식 속에 무슨 능력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바다를 지으신 주님께서는 말씀을 주십니다.

"내니 두려워 말라."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 오셔서 말씀하실 때, 두려워할 모든 일은 사라져갑니다.

    [신명기 7:21]너는 그들을 두려워 말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 곧 크고 두려운 하나님이 너희 중에 계심이니라
 
    [이사야 43:5]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네 자손을 동방에서부터 오게하며 서방에서부터 너를 모을 것이며

    [신명기 31:8]여호와 그가 네 앞서 행하시며 너와 함께하사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니 너는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

    [이사야 41:10]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열왕기하 6:16]대답하되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한 자가 저와 함께한 자보다 많으니라

    성경 사전을 잠깐 열어보니 '두려워말라'는 말이 111번 나옵니다.
어떤 분은 365번을 찾았다는 글을 쓴 것도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시고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려고 찾아오셨으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오셨으므로
두려워할 필요가 업습니다.

    예화]

    어떤 목사님께 장의사에서 장례를 집례해 줄 수 있느냐 전화가 왔습니다.
에이즈로 죽어간 사람이었기에 아무도 집례하고 싶어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장지에 가보니, 동성 연애 자들이 스무 명 가량 차갑게 앉아 있었습니다.
하관 예배를 마치고 돌아서려는데 시23편을 읽어주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어서 롬8장(누가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있으리오)을 읽어주기를 원했습니다.
    이렇게 한 시간을 하나님 말씀을 읽어주었습니다.
    그 어두운 절망의 심령들 속에 놀라운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말씀이 가는 곳에 풍랑이 사라집니다.
이런 사역을 자원하는 열정적 사역자에게 우울증이나 근심이 사라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4] 오신 주님을 영접할 때 목적지에 이르게 하십니다.

    21 이에 기뻐서 배로 영접하니 배는 곧 저희의 가려던 땅에 이르렀더라

    말씀과 함께 찾아오시는 주님을 영접하였을 때, 배는 목적지에 도달하였습니다.

    "곧 저희의 가려던 땅에 이르렀더라!"

    목적지에 이를 수 있다는 사실은 우리의 커다란 기쁨입니다.

    오늘 날도 소수의 믿음의 사람들은 자신이 풍랑 속의 배임을 인정하고 찾아오시는 주님
'내니 두려워 말라" 말씀하시는 주님을 따르며 목적지를 향해 힘차게 나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찾아오시는 주님을 영접하여 그 말씀에 순종함으로 하나님 나라 창조에 헌신하십시오.

    소비적 삶을 지향하도록 현혹시키는 무감각에서 깨어날 수 있도록  치유할 수 있는 약은 ?


1] 하나님께서 주신 꿈과 비전입니다.
2] 영광스러운 미래를 만들어 가도록 부르시는 하나님의 비전에 동참하는 일입니다.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 꿈을 위해 자신의 삶을 드릴 때, 새로운 열정과 생명력이 신경과 근육을 타고 흐릅니다.


   예화]

     브라이언 스티븐스란 분이 있었습니다.

   그는 하버드 학생회장이었습니다.
운동에 자질이 있었습니다.
음악회에서는 피아노 연주를 탁월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귀한 것은 풍랑 높은 이 세대에서 하나님의 꿈쟁이였습니다.
비져너리였어요.
가난하고 소외 당하고 억눌린 자들을 돕겠다는 꿈이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하버드 법대를 졸업하고 최소 10만불 이상의 변호사 연봉을 제시 받았지만 응하지 않았습니다.
그 모든 세상 영화를 거절하고 알리바마 몽고메리 지역의 단칸방에서 공평한 소송절차를 받을 수 없는 사형수들의 권익을 위해 자신의 젊음을 내놓았습니다.
하나님 정의를 실현하는 일에 삶의 목적을 맞추었습니다.
위로부터 부르신 그 상을 받으려 달려가는 그에게 나타나는 흥분과 기대와 넘치는 에너지와 생동감(빌3:14)이 있었습니다.

그 날을 잡아야 합니다!'
 오직 주를 소망으로 삼는 사람은 새 힘을 얻습니다.
 하나님 나라 건축가들은 새로운 힘을 얻습니다.
 어떻게 꿈을 가질 수 있습니까?
 풍랑이는 세계를 새롭게 하는 하나님의 목표에 동참하면 됩니다.


    사람들은 있을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두려워 떱니까?

    자신의 힘과 의지로 상황의 절박함을 극복하려 하나 그렇게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폭풍의 힘이 자신의 한계 상황을 넘어간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내니 두려워 말라"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 두려워말라고 하시는 까닭이 무엇입니까?

세상 어떤 파도보다 주님의 권능이 크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권능을 옷입으면 나의 힘으로 도무지 할 수 없는 일도 하나님께서 주신 권능을 덧입으면 할 수 있습니다. 이 사실로 인하여 힘을 얻으실 수 있기 바랍니다.

    모든 사람은 누구나 목적지에 이르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목적지에 이르지 못합니다.
오던 길을 되돌아갑니다.
가던 목적지를 변경합니다.
극단적으로는 풍랑 속에 침몰합니다.
자신의 힘으로 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세상 풍랑의 힘이 자신의 힘보다 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 제자들이 예수님을 배에 모셔들인 즉시 그 배가 목적지에 이르렀음을 보도하고 있습니다.
창조주께서 배에 오르시고, 잔잔하라 말씀하시면 풍랑은 잠잠하게 되어 있습니다.



    [마무리하는 말]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아직도 풍랑 속에서 고통하고 계십니까?

    "내니 두려워 말라"

    주님께서 찾아오십니다.
찾아오시는 주님을 영접하십시오.
찾아오시는 주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받아들이십시오.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내니 두려워 말라"는 말씀을 듣고, 주님을 배에 맞아들인 제자들은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성경본문]

16 저물매 제자들이 바다에 내려가서
17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가버나움으로 가는데 이미 어두웠고 예수는 아직 저희에게 오시지 아니하셨더니
18 큰 바람이 불어 파도가 일어나더라
19 제자들이 노를 저어 십여리쯤 가다가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 배에 가까이 오심을 보고 두려워하거늘
20 가라사대 내니 두려워 말라 하신대
21 이에 기뻐서 배로 영접하니 배는 곧 저희의 가려던 땅에 이르렀더라
22 이튿날 바다 건너편에 섰는 무리가 배 한척 밖에 다른 배가 거기 없는 것과 또 어제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그 배에 오르지 아니하시고 제자들만 가는 것을 보았더니
23 (그러나 디베랴에서 배들이 주의 축사하신 후 여럿이 떡 먹던 그 곳에 가까이 왔더라)
24 무리가 거기 예수도 없으시고 제자들도 없음을 보고 곧 배들을 타고 예수를 찾으러 가버나움으로 가서
25 바다 건너편에서 만나 랍비여 어느 때에 여기 오셨나이까 하니
26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27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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