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미국 시카고 중심부에 있는 YMCA 건물에서 50여 명의 저명한 복음주의적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인과 경제문제를 토의했습니다. 그 그룹에서는 미국에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절대적 내핍생활을 해야된다 강조하였습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는 문제를 토의하였습니다(마 16:24).
그때 어떤 회원이 일어나서 "나는 그런 사람 중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나는 한 회사를 책임지고 있는 사업가로서 내가 해야 될 삶의 스타일이 다릅니다. 나는 고객들을 위해 벤츠를 소유해야 하고, 호화로운 저택에서 그들을 위해 파티를 열어야 하고, 사업상의 협상을 위해 요트를 제공해 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지난해에 나는 교회와 관계기관에 3만 5천 달러의 헌금을 했습니다. 만일 이 모임에서 말하는 대로 청빈 생활을 해야 한다고 하면, 나는 어떻게 해야 될지를 모르겠습니다."
'부에 대한 올바른 태도가 올바른 영성을 나타낸다'
는 위어스비의 지적이 가슴에 다가옵니다.
오늘 말씀은 하나님 왕국 백성들이 무엇에 부요한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인가를 말씀해 주십니다.
1. 재물은 중요합니다.
재물이란 이 세상에서 필수 불가결한 것입니다. 그래서 재물을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에게 허락하셨습니다. 재물 자체는 선 악 어느 쪽도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부나 빈곤 어느 한쪽을 비난하거나 칭찬하지 않으셨습니다. 부나 빈곤이 신앙의 척도는 아닙니다.
1] 재물에는 유익한 점이 있습니다.
재물의 긍정적인 면을 몇 가지 인용합니다.
* 하나님을 공경하는 수단이 됨(잠 3:9)
* 이생을 위해 유익한 면이 있음(대하 1:11,12;전 10:19)
* 견고한 성과 같이 소유자를 보호함(잠 10:15;18:11)
* 헌신을 표시하는 수단이 될 수 있음(막 12:43,44)
* 봉사와 구제와 자선으로 선용할 수 있음(시 112:19;잠 3:9)
* 지혜로운 자의 면류관이 됨(잠 14:24)
* 친구를 더함(잠 19:4)
* 위급할 때 필요함(잠 13:8)
* 풍요로운 삶을 누리게 함(전 5:19)
* 감사하는 수단이 될 수 있음(출 23:15)
2] 재물은 부정적인 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재물에는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도 돈에 의해서 선뜻 움직입니다. 재물에는 힘이 있기 때문이지요. 어떤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할 만큼 능력을 발휘합니다. 그러나 재물은 부정적인 면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 마음을 빼앗음(옵 1:11;슥 14:1)
* 교만하게 함(겔 28:5)
* 우상이 되기 쉬움(눅 16:13)
* 다툼을 일으킴(창 25:6)
* 악인이 사용할 때 죄악의 도구가 됨(에 3:7-11)
* 참된 평안을 주지 못함(전 5:13)
[개인적 간증입니다]
많은 재산이 아니라고 할 지 모르지만, 나도 몇 만불 재물을 모아두고 산 적이 있습니다.
그 돈을 프랑크푸르트 외환은행에 정기예금으로 맡겨두었습니다.
도서관에 매일 들려 신문을 펼치고 환율 체크를 하곤 하였습니다.
달러화가 오르면 나는 부유해졌고, 마르크화가 오르면 나는 가난해졌습니다.
소수점 이하 숫자의 오르내림에도 내 마음은 요동치고 있었습니다.
그러기를 몇 년하고 나니까 마르크화가 곱절로 올랐고
그래서 나는 곱절로 가난해졌습니다.
그리고
그 놀음도 끝났습니다.
그때 나는 내 안에서 돈을 사랑하는 마음을 보았습니다.
나의 눈빛은 하나님께 대한 기사보다 환율에 관한 기사에 훨씬 예민한 것을 깨달았습니다.
나의 마음엔 평화가 없었습니다.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
재물은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김미애씨의 감동깊은 이야기가 우리 홈페이지에 소개되어 있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그녀는 방직 공장에 다니며 야간여상을 졸업했다. 쇼핑센터에서도 일했고 초밥집을 하며 생계를 꾸려가기도 했다. 그녀는 지난해 말 사법시험에 합격해 현재 일산 사법연수원에서 법조인이 될 준비를 하고 있다.
미애씨는 판검사가 되든, 변호사가 되든 청소년 선도를 위해 여생을 보내고 싶다는 꿈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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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셋
1학년인 그때가 85년이었지요, 부산에서 공장에 다니던 친구들이 포항에 올라왔어요. 그애들을 무작정 따라나섰죠. 방직공장에 취직해 허드렛일을 했어요. 하루 8시간 꼬박 일했는데 피곤해서 쓰러질 정도였죠. 밤엔 여상에 다니면서 학업을 이어갔죠. 돈을 좀 모아 15평짜리 초밥집도 냈어요. 주방장도 하고, 주문도 받고, 계산도 하고 1인 3역을 했답니다. 손님들은 ‘나이 어린 아가씨가 고생한다’면서 기특하게 여겼고 단골도 제법 생겼어요. 그런데도 이게 아닌데,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여기가 아닌데…. 자꾸만 허기졌고 목이 말랐어요.
재물은 부하려 하는 자들에게 시험과 올무를 줍니다.
죤 맥아더의 저서(하나님을 섬기면서 재물을 관리하는 법) 중 엔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우리 교회 성도 한 사람이 날 찾아왔습니다.
"목사님. 제게는 영적인 문제 한가지가 있습니다. "
"무슨 문제입니까."
"석유 회사 주식을 500주 갖고 있는데 그것이 저의 영적 생활을 파멸시키고 있습니다. 그것은 제게 있어 마치 우상 숭배와 같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목사님께 드리려고 여기 가져왔습니다"
"나는 당신의 영적 문제를 떠맡고 싶지 않습니다. 내게도 나름대로의 문제가 있으니까요"
"이것이 목사님의 신령함을 시험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목사님께서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하시는지 지켜보겠습니다"
막무가내로 주장하면서 그 석유회사 주식 500개를 내게 주었다. 그것이 나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짐작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내 마음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어 버렸다. 나는 주가가 올라가고 내려가는 것을 초조하게 지켜보며 염려했다. 그러다가 결국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했다.이건 그 사람을 혼동시켰던 것 만큼이나 내 마음도 혼동시키고 있어. 그래서 나는 그것을 한 주 당 50센트씩 도합 250달러를 받고 팔았다. 나는 그것을 끝까지 가지고 있으면서 염려하지 않게 된 것이 정말 기쁘다.
재물이 분명 중요합니다. 유익한 점도 있고, 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부하려 하는 자들은 여러 가지 시험과 올무에 빠집니다.
재물은 우리의 마음을 빼앗습니다.
엘리자베드 여왕의 통치 시 그녀는 국민으로 하여금 의무적으로 교회에 출석할 것을 규정한 법을 제정했다. 그리고는 교황의 기뻐하는 얼굴을 보기 위해 여왕은 추기경을 보냈다. 그러나 그가 가지고 온 회답은 이러했다. '영국의 카톨릭 교회들에게서 그들의 마음을 내게 주시오, 그 나머지는 여왕이 모두 갖도록 하시오'.
재물은 우리의 마음을 빼앗습니다. 로마 교황이 런던 국민의 마음을 차지하기를 원하는 만큼 재물은 사람의 마음을 차지합니다.
2. 목숨은 재물보다 더 소중합니다.
(25)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돈이 다냐? 아닙니다.
돈은 인생의 전부가 아닙니다.
가롯유다라는 사람, 이 사람이 예수님을 은 30을 받고 팔았습니다. 큰돈을 손에 넣어 보았습니다. 돈에 대한 욕심이 있었기에 눈에는 돈 밖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보아도 돈 될 분으로 보였습니다. 한 때 돈에 눈먼 사람입니다. 그러나 막상 돈을 손에 넣어 보니, 예수님과 함께 있을 때 있었던 기쁨도 평안도 다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자살해 버렸습니다.
이정향 감독이 쓴 '집으로'란 영화가 있습니다. 작년에 그 작품이 온 한반도를 감동시켰습니다. 그 작품 속의 김을분 할머니는 돈이 없습니다. 허스름한 집에 삽니다.
검정 고무신을 깁고 기워 신고 삽니다.
손자가 그렇게 먹고 싶은 캔터키 치킨도 못삽니다.
손자가 그렇게 갖고 싶은 배터리도 살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분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찾은 것이 있습니다.
돈으로 살 수 없었던 '통닭 속에 있는 사랑'을 만납니다.
허리 굽은 할머니가 마지막 몇 푼으로 손자 짜장면을 사주고, 자기는 멀고 먼 장터에서 굽은 노인이 집까지 걸어옵니다. 그런데 그 영화 속의 할머니가 불행해 보이지 않습니다. 위대해 보입니다. 돈 없는 할머니를 구박하고 놀리며 짓궂게 괴롭히던 그 어린 소년의 가슴에 돈으로 살 수 없던 사랑을 심어줍니다. 시청자들은 기울어 가는 석양녘에 어서 빨리 할머니가 집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리던 손자와 더불어 발을 동동 구릅니다.
'집으로'란 작품은 돈이 다가 아니다.
돈은 필요하지만 돈이 없어도 인간은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재물보다 더 중요한 것은 목숨입니다. 목숨이 끊어지면 재물은 아무런 힘을 쓸 수 없습니다.
진수성찬과 좋은 의복이 죽은 사람에게 무슨 소용입니까?
재물은 있다가도 없어질 수 있고 없다가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재물에 대한 바른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 자랑치 말 것(시 49:6)
* 마음을 빼앗기지 말 것(시 62:10;마 6:19-21)
* 사모하지 말 것(잠 23:4;딤전 6:9-11)
* 의뢰하지 말 것(잠 11:28)
* 있다고 교만하지 말 것(겔 28:4,5)
* 재물로 사람을 판단하지 말 것(약 2:2-4)
* 잠시 동안 관리하는 청지기임을 기억할 것(마 25:14-30)
*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기억할 것(빌 4:19)
* 가진 것으로 만족할 것(딤전 6:6)
그러나 목숨은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것입니다.
일회적입니다.
없어지면 다시 있을 수 없는 하나입니다.
그래서 천하보다 귀합니다.
(26)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27)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28)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새와 백합화를 보세요.
새와 백합화는 돈이 없습니다.
그러나 삽니다.
돈이 없어도 잘삽니다.
곡식 쌓아 둘 창고 지으려고 그렇게 안달하지 않습니다.
좋은 옷 입지 못했다고 그렇게 염려하지 않습니다.
먹이와 옷은 하나님이 그때그때 때를 따라 공급하십니다.
그들에겐 생명이 가장 소중합니다.
그들이 소유한 모든 것은 하나님의 공급을 받고 삽니다.
백합화는 겨울이면 그 뿌리를 땅 속에 묻어두고 삽니다.
봄이 되면 백합화는 그 뿌리로부터 싹을 내고 자랍니다.
백합화들은 봄마다 아주 화려한 옷을 입고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풀에게 그처럼 좋은 옷을 주십니다.
생명만 있으면 어느 봄이든지 화려한 옷을 입고 나옵니다.
인간도 그렇습니다.
목숨이 돈보다 중요합니다.
인간이 가진 치명적인 약점은 염려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대 자신으로 보면 몸을 가루가 되게 하는 듯한 무거운 짐도 하나님 편에서 보면 저울 위의 작은 티끌과도 같은 것이다. 참새를 기르시는 하나님이 당신을 위해 배려하신다는데 그대는 아직도 염려하는가? 영을 그에게 맡긴 그대가 몸을 맡기지 않는단 말인가? 그는 이때까지 그대의 무거운 짐을 지는 일을 한번도 거부하지도 않고 남겨 놓은 일도 없다. 그러면 영혼아! 그대의 염려를 버리고 은혜 깊으신 하나님의 손에 모든 것을 맡기라. -Spurgeon-
그래도 염려가 되시는 분은 나누어 하십시오.
염려란 인생의 필수 조건이 아닙니다. 필요충분 조건도 못됩니다. 사실은 경우에 따라 한두 번 취미로나 해볼까 하는 그런 존재입니다. 인간 안에 더 있는 욕심과 염려 때문일 수 있습니다.
'나는 때때로 우리의 평생 겪어야 할 고난이 우리 등에 짊어지기에는 너무 큰 나뭇단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을 한꺼번에 옮기라고 요구하시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 나뭇단을 풀어서 오늘 또는 내일에 날라야 할 짐만을 진다면 쉽게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제의 짐과 오늘의 짐, 그리고 내일의 짐을 한꺼번에 모두 짊어지려 하기 때문에 스스로 고통을 더합니다'. -존 뉴우톤-
코리 텐 붐 여사는 말합니다.
내일에 대한 염려는 내일의 염려를 없앨 수 없을 뿐더러 오늘의 힘도 없애버린다.
우리는 염려로 과거를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다만 미래를 염려함으로 현재를 망칠 수 있습니다.
"한 사건에 대해 둘이나 신경 쓸 필요가 없다.
하나님께서 신경 쓰고 계신데,
왜 우리까지 신경을 써야 하는가?"(Spurgeon)
하나님께서 우리의 과거 인생을 가장 선하게 인도해 오신 것처럼,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이끌어 주실 분으로 확신한다면 왜 염려하십니까?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일에 열심을 내십시오.
부지런히 주를 위해 일한다는 자세로 최선을 다 해 사세요.
예배드리는 일, 찬양하는 일, 기도하는 일, 성도들을 섬기는 일, 봉사 활동에 참여하세요.
그러면 염려할 시간이 없고, 염려할 기력도 없습니다.
Ralph Emerson은 염려의 처방책으로는 위스키보다 일하는 것이 훨씬 낫다 하였습니다.
3. 하나님께서는 그 나라를 주시기 원하십니다.
(33)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34)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
돈보다 중요한 것이 목숨이라면
목숨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나라를 주시기 원하십니다.
재물(Mammon)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돈이 축복은 아닙니다.
의무요 책임입니다.
재물을 목숨 위에 놓으면 맘모니즘이 됩니다.
유물숭배자가 되어 인간을 물질의 노예로 전락시킵니다.
삶의 우선순위가 재물일 수 없습니다.
그것은 결국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마음을 찢어 놓습니다.
세상의 부를 탐내는 사람이 죄를 짓는 근본적인 잘못은 그들이 하나님 대신 세상을 선택했다는 점입니다. 재물을 주인으로 선택한 것입니다.
이것들의 풍부함을 탐냅니다.
결코 족한 줄 모르고 더욱더 많이 이것들을 움켜쥐려고 합니다.
장래를 위해서 재물이 나의 소망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경우 재물은 재앙입니다.
그렇다고 가난을 칭송하자는 것도 아닙니다. 청빈(淸貧)은 훌륭한 것이나 반드시 가난해야만 깨끗한 것도 아닙니다. 돈을 무조건 축복이라고 믿고 돈에 인생을 걸고 사는 사람도 문제이지만 돈에 대하여 지나친 부담감을 가지고 그것이 지나쳐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사는 사람도 문제입니다.
집을 사람보다 소중히 여긴 사람이 있습니다.
몸보다 장화를 소중히 여긴 아버지로 인하여 상처를 받은 딸의 상처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1919년 평안남도 일본 헌병대에 4월자 일지에 기록되어 있는 문서에서 나온 이야기입니다. 3.1 운동이 일어난 지 한 달이 되었습니다. 무라까미 헌병소장은 다나까 부하에게 나가서 3.1운동 만세를 부른 사람들, 그 주동자들을 체포해오라고 했습니다. 다나까 부장이 나가서 한바퀴 돌고 오더니, 누가 만세를 불렀는지 안 불렀는지 지금 안 부르니 알 수가 없다고,
"그걸 색출할 수가 없습니다."
"그럼 가서 기독교인을 잡아와."
"아니 기독교인이 누군지 알 수 있습니까?
"기독교인은 물어보면 돼. 그들은 만세를 불렀으면 불렀다고 해. 거짓말을 하지 않거든."
"그리고 생명을 걸어." (곽선희)
그렇습니다. 대한민국의 초기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었습니다. 이런 기독교인들을 하나님께서는 사랑하셔서 그 나라에 많은 것을 더하셨습니다.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
태국에 계신 선교사님이 하신 말씀에 따르면,
태국에는 순교자가 두분이 있답니다.
수레를 타고 교회에 오다가 수레가 굴러 떨어지는 바람에 그 수레에 깔려 죽은 분이 하나요.
예배를 드리고 돌아가다가 홍수를 만나서 홍수에 떠내려 간 사람이 두 번째 순교자랍니다.
그래서 그곳에 순교비가 세워져 있답니다.
그래서 태국엔 부흥이 없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눈은 몸의 등불이니' 눈이 밝아야 합니다. 눈이 밝아야 밝히 보고 밝게 깨닫고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원하는 것을 밝게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초점이 흐린 눈이 있습니다. 무엇엔가 씌웠거나 가리워져서 그 앞에 있는 것을 못 보게 되는 것이죠. '눈이 성하다'는 말은 초점이 잘 맞추어진 눈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눈이 소경인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눈이 난시인 분도 있습니다. 뒤죽박죽으로 보이는 눈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눈이 근시인 분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원시의 눈인 분이 있습니다. 멀찍이 바라보는 분입니다.
우리가 신체적으로 여러 약한 눈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주시고자 하는 것들을 바로 보고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좋은 눈을 가진 사람이 복인입니다.
그럼 무엇을 보아야 합니까? 하나님의 중심을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기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 나라의 의입니다.
좋은 부모님은 자식이 언제, 무엇이 필요한지 더 잘 알고 계십니다. 아기를 낳아서 키우는 엄마는, 그 아기가 무엇이 필요한 지 아기보다 먼저 알고 있습니다.
"젖 먹을 때가 되었구나!",
학교 갈 때가 됐구나!", 학교에 갈 것을 준비합니다.
"결혼할 때가 되었구나!", 그것을 준비합니다.
부모님께서 다 아시고 준비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악할찌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눅 11:13). 우리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시냐?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 우리 사람들의, 성도들의 삶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다 아시고 준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주님 말씀하십니다.
(31)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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