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3 March 2015

요7:14-24 생명 있으므로 변하는 것들

들어가는 말]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
이런 말들은 흔히 들어오는 말입니다.
사람의 틀은 한 번 결정되면 잘 변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어릴 적에 간장 종지로 빚어진 사람은 그 만큼 살아가고
항아리로 빚어진 사람은 그 만큼 크게 살아간답니다.
    때로 변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요. 그것은 그릇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그 내용물이 변하는 거랍니다. 그릇 자체는 그대로 인데, 내용물이 새로워지는 경우가 있다는 거지요.
    온통 변하는 경우가 딱 한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우리 안에 찾아오실 때입니다.
    수가성 여인이 같은 경우이지요.
    예수님은 바로 태초부터  계신 생명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생명께서 사람들의 빛으로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참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십니다.

    생명이 찾아오실 때 일어나는 일은 다양합니다.


    1. 우선 뜻이 바뀝니다.

     내 뜻대로 사는 우리의 인생에 생명이 찾아오시면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시작합니다. 생명이 찾아오심으로 뜻이 바뀌기 때문입니다.

    14 이미 명절의 중간이 되어 예수께서 성전에 올라가사 가르치시니

    예수님을 죽이려는 유대인들의 음모와 서슬이 퍼렇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성전에 올라가셨습니다. 그리고 가르치십니다.

    생명이 우리 안에 임하시면 하나님의 뜻을 가르쳐주십니다.
내뜻보다 소중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십니다.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청사진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십니다.
유대인들을 위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십니다.
우리 가정을 위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십니다.
우리 자녀를 위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십니다.
우리 교회를 위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십니다.
우리 민족을 위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십니다.

    예수님의 경우 당시 그 일은 매우 위험 부담을 무릅써야 하는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왜 그 힘든 일을 하셨습니까?

    나를 향한 하나님의 청사진을 아는 것은 아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전하지 않으면 안될 중대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생명을 내놓을 만큼 중대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노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만났을 때, 뜻이 바뀌었습니다.
120년 동안 바뀐 뜻이 변하지 않았습니다.
방주를 짓는 일에 전념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자기 뜻이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뜻이 바뀌었습니다.
75세된 그가 모든 것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자기 뜻으로 받아들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랑하는 독자 이삭까지 뒤로하는 아브라함을 통해 천하모든 백성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축복의 근원으로 축복하셨습니다.

    근래 고국의 소식은 상당히 놀라운 면이 있습니다.

    OECD 국가 중 자살률이 1위를 차지한다는 기사를 접합니다.
하루에 33명이 자살로 목숨을 잃고 있습니다.
왜일까요?
어느 때보다 더 잘사는 나라가 되었는데 왜 자살을 하나요?

    그 기사는 개인적인 원인으로 학교성적, 이성관계에 대한 고민, 실직 등으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 등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답니다.
    하지만 경제적 가치 위주의 사회 분위기와 외모중시 풍조, 구조조정으로 인한 해직, 청년실업 등 사회 구조적 문제는 개인적 고민보다 더욱 심각한 자살의 원인이 되고 있답니다.

    이 형제들이 구원받을 길이 무엇일까요?
여러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겠지만,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다면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귀한 청사진을 가지고 일을 진행시키고 있음을 알 수 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내가 왜 여기 있는가!'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만나는 것이 참 중요합니다.

    생명이 찾아오실 때, 뜻이 바뀝니다.

    [예화]

    장애인 올림픽 100m 경주에서 일어난 이야기입니다.
휠체어에 앉은 장애인들이 츨발선상에 섰습니다.
땅 하는 총성과 함께 장애인 선수들은 있는 힘을 다하여 휠체어를 밀어 달립니다.
100m 경주에 전 인생을 건 사람들처럼 달리고 달리던 바로 그때였습니다.
맨 앞에 가던 선수가 휠체어와 함께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넘어진 선수는 일어나려고 몸부림치지만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그때였습니다. 그 옆을 치고나가던 선수가 갑자기 경주를 포기하고 넘어진 그 선수 앞에 돌아와 그를 돕기 시작했습니다. 그 옆을 스쳐가던 또 다른 선수들도 경주를 포기하고 돌아와 넘어진 그를 돕습니다.
가까스로 그를 일으킨 선수들의 눈은 눈물로 젖습니다.
그들은 다시 일직선으로 서더니 남은 트랙을 향해 힘차게 휠체어를 돌렸습니다.

    경주를 보기 위해 몰려온 관중 석으로부터 우뢰와 같은 박수갈채가 쏟아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들은 왜 수많은 관중들로부터 박수갈채를 받았습니까? 비록 몸은 망가져서 휠체어를 의지하지 않을 수 없지만, 그들이 경주에서 다른 뜻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뜻을 바꾸면 세상은 살만 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 교훈은 내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니라"

    "예수님을 영접한 후, 내 뜻은 바뀌었습니까?"

    오늘도 예수님은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청사진을 가르쳐 주십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하나님의 우리 민족을 향한 청사진을 알고 계십니까?
    우리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청사진을 알고 계십니까?
    자신의 미래를 위한 하나님의 청사진을 알고 계십니까?
    나의 하루하루를 위한 하나님의 청사진을 알고 계십니까?
    나의 기업을 위한 하나님의 청사진을 알고 계십니까?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교훈을 유심히 들어보십시오.
여러 사람에게서 저는 우리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청사진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우리 민족을 제사장 나라로 삼아 세계를 복주시려는 것이 하나님의 청사진이라고 감격해 합니다.
지난 6월 서울에서 열린 세계 선교 전략회의에서 이 하나님의 청사진에 동참하기 위해 10만명의 선교사를 2030년까지 파송하자고 외치는 선언문과 기도소리를 들었습니다. 말씀만 들어도 가슴이 뿌듯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나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청사진에 대해서는 무심합니다. 과연 그런 것이 있을까 의아해 합니다. 뜻을 바꾸지 않습니다.
그러나 믿으실 수 있기 바랍니다.
하나님께는 나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청사진이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집 한채에도 설계도가 있듯이
나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청사진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도 설계도가 있듯이
우리 서머나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청사진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생명을 영접하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 뜻을 바꾸시기 바랍니다. 세속적인 꿈은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그리신 청사진으로 바꾸시기 바랍니다.
요셉처럼 하나님의 청사진으로 바꾸십시오.
그 청사진을 품고 기도합시다.

나는 예수님을 믿고 뜻이 변했습니다.
나는 예수님을 믿고 이런 청사진을 만났습니다.
이런 아름다운 고백이 일어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2. 추구하는 영광이 바뀝니다.

    18 스스로 말하는 자는 자기 영광만 구하되 보내신 이의 영광을 구하는 자는 참되니 그 속에 불의가 없느니라

    요즈음 나무를 보는 일은 참 즐겁습니다. 나무마다 단풍이 형형색색입니다.
우리 교회 뜰에 있는 단풍 나무는 붉게 든 단풍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마음껏 드러내고 있습니다.
단풍 잎은 마지막인지라 초라할 수 있습니다. 소망이 없을 수 있습니다. 썩어가는 것인데 아무러면 싶습니다.
그런데 어떤 나무는 그렇지 않습니다.
최후의 순간까지  하나님의 영광을 아름답게 꽃피웁니다.
참 아름다워라 찬양이 저절로 나오도록 아름답습니다.
꽃처럼 아름답습니다.
꽃보다 아름답습니다.

   제가 새삼 단풍타령을 하는 까닭은 단풍의 아름다움이 인간보다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사람마다 구하는 영광이 다릅니다.
그러나 공통적인 사실은 사람마다 자기 영광을 구한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죄 아래 있는 인간의 어쩔 수 없는 공통점입니다.

나이가 지긋한 할아버지나 할머니를 뵈면, 어른들이 추구하는 영광이 백발에 담겨 있습니다.
부모에게는 부모가 추구하는 영광이 있습니다.
선생님에게는 선생님이 추구하는 영광이 있습니다.
목사님들을 뵈면 목사님들이 추구하는  영광이 있습니다.
장로님들을 보면 장로님들이 추구하는 영광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생명을 만나면 사람들이 추구하는 영광이 변화됩니다.


에스더는 모르드개를 통해 하나님을 만났을 때, 구하는 영광이 바뀌었습니다.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면서 왕 앞에 나아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자로 변화된 에스더에게 세상의 영광까지 주셨습니다.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뜻을 만나고 구하는 영광이 바뀌었습니다.
그는 얼마든지 바벨론에서 호의호식하고 한 평생을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고국에서 찾아온 형제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만나고 구하는 영광이 바뀌었습니다. 이로 인하여 느헤미야는 고국을 새롭게 새우는 데 귀히 쓰임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며칠 전 감동의 편지 하나를 받았습니다.

    그는 지갑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런데 그는 분실물을 찾는다는 내용을 이렇게 광고판에 써 붙였습니다.

"돈은 중요하지 않으나 한 장 뿐인 부모님
사진과 신분증은 꼭 되찾고 싶습니다."

이걸 본 어떤 이들은 쉽게 말했습니다.
"사진이 한 장 밖에 없다구?
그럼, 다시 찍으면 되지!"
그러나 나에겐 정말 하나밖에 없는 부모님 사진이었습니다.
이 세상에 계시지 않기에 다시 찍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부모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구하는 영광이 달라진 자녀의 마음을 우리는 십분 이해합니다.

    예수님의 생명을 만나면 구하는 영광이 달라집니다.

    그 귀한 영광을 구하여야 마땅하신 예수님께서
자기 영광을 구하지 않으셨습니다.
모든 일에서 보내신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꽃피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르침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꽃피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행하신 일에서 보내신 하나님의 영광을 꽃피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병고치신 일에서 보내신 하나님의 영광을 꽃피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기도에서 보내신 하나님의 영광을 꽃피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전도하신 일에서 보내신 하나님의 영광을 꽃피웠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주님께서 나를 보시며 무엇이라고 하실까요?

    "보내신 이의 영광을 구하는 너는 참되니 네 속에 불의가 없느니라"

이렇게 말씀하실까요?

    세상의 많은 사람들을 향해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18 스스로 말하는 자는 자기 영광만 구하되

    자기 영광만 구한다!

주님께서 사람들을 보니 온통 자기 영광만 구한다 하셨습니다.
그러나
보내신 이의 영광을 구하는 자는 참되니 그 속에 불의가 없느니라
하셨습니다.
    에수님의 생명을 만나고 구하시는 영광이 변하였습니까?
    보내신 이의 영광을 구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심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자기 영광을 구하는 사람들로 가득한 세상에서 보내신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사람으로 변화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지막 최후까지 아름다운 단풍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사람으로 변화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의 생명되신 주님께서  세상에서 행하신 귀한 일이 또 있습니다.
   

3. 살리는 사람으로 변화합니다.

    23 모세의 율법을 폐하지 아니하려고 사람이 안식일에도 할례를 받는 일이 있거든 내가 안식일에 사람의 전신을 건전케 한 것으로 너희가 나를 노여워하느냐
   
    법은 소중한 것입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 안식일을 존중하는 것은 절대적인 일이었습니다.
안식일에 일하지 않는 것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을 지킴으로 받은 복이 많습니다.

    그러나 생명이신 예수님께서는 율법보다 사람 살리는 일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셨습니다.
생명이신 예수님께서는 생명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주린 5천명의 백성들에게 오병이어로 배부르게 하셨습니다.

생명이신 예수님께서는  38년된 병자를 일어나 걷게 하셨습니다.
   
생명이신 예수님께서는 수가성 여인을 만나 회복시키십니다.

생명이신 예수님께서는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가 잘되고 건강하게 되길 원하십니다.

     생명 되신 예수님을 믿을 때, 우리는 법보다 사람을 살리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가지고 사는 우리 성도는 말 한마디도 살리는 언어를 합니다.

    어린 아이가 학교에 다녀와서 엄마에게 뛰어옵니다.

    "엄마 선생님이 내 머리 쓰다듬어 주셨어."

이와 같은 때에 사람들은 보통 어떻게 말해주시겠습니까?

    "그 선생님도 할 일이 없으셨나보다."
    "얘, 선생님이 너만 쓰다듬은 것 아냐!"
    "그 선생님이 너를 좋아하나 보다."

이런 언어를 쓰는 사람은 없나요?  이건 어떻습니까?

    "야, 너 기분 엄청 좋았겠다."
    " 아이고 얼마나 신날까? 나도 이렇게 신나는데.....   .  '

     사람을 살려주는 언어, 가슴이 통하는 언어말입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사람을 살려주는 언어, 가슴이 통하는 언어는 잘하는 사람을 만날 때 우리의 영이 살아납니다.


    나를 만나는 사람이 나의 언어로 인하여 살아날까요? 스트레스를 받을까요?


    생명이신 예수님께서는 법보다 사람을 살리는 가슴 언어를 가지고 사람들을 만나셨습니다.
    삭개오와 같이 죄인 취급을 받던 세리를 만나셨을 때 예수님은 법보다 살리는 가슴으로 만나셨습니다.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인에게 예수님의 하시는 말씀을 보세요.

    "나도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부모같고 형제 같은 따뜻함이 예수님의 언어 속에 있습니다.
정말 죽어가는 사람도 살아나지요.

    죄로 고통당하는 분이 계십니까?
살리시는 예수님의 생명을 영접하시기 바랍니다.
그 안에 생명이 있습니다. 살아남이 있습니다.

     마음의 건강이 약하여 고생하는 분이 계십니까?
건강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생명,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시기 바랍니다.
    육신의 건강이 약하고 고생하는 분이 계십니까?
건강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생명,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시기 바랍니다.
    가정의 건강이 약하여 고생하는 분이 계십니까?
건강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생명,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시기 바랍니다.
    교회의 건강이 약하다고 마음 고생을 하고 계십니까?
건강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생명,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시기 바랍니다.
    내 민족의 건강이 약함을 안타까워하고 계신 분이 계십니까?
건강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생명,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시기 바랍니다.


     1997년 6월 24일자 타임지에 Faith and Healing라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그 기사의 요지는 신체는 영에 의해서 지배되는 영역이 많다는 것입니다.
    기도를 열심히 하는 사람을 관찰해보니 체내에서 모르핀 호르몬이 쏟아져 나온다고 합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사람들이 통증을 잊게 할 뿐 아니라 병을 이긴다는 내용입니다.
    믿음으로 불치의 병을 이겨낸 사람들의 간증과 사례들은 많습니다.

    예수님은 살리시는 생명으로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찾아오셔서 살리시고 살리는 사람으로 변화시키십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나는 살리는 영을 가진 사람입니까?
살리는 영을 가진 사람이 가는 곳에 살리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살리는 영을 가진 사람이 가는 곳에 다락방이 살아납니다.
살리는 영을 가진 사람이 가는 곳에 교회가 살아납니다.
살리는 영을 가진 사람이 가는 곳에 주변의 사람들이 살아납니다.

    나아만을 살린 사람은 엘리사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살리신 것입니다.
엘리사는 요단강에 가서 일곱번 씻으라고 알려주었을 뿐입니다.
그러나 엘리사 이상으로 살리는 일에 귀히 쓰임을 받은 사람은 나아만 장군의 집에 포로로 사로잡혀온 계집종이었습니다. 그는 비록 종이었지만 살리는 영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애굽이 7년 대흉년에 들고 천하가 고통을 당할 때 그들을 살린 사람은 요셉입니다. 요셉은 살리는 영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200만 명의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한 모세는 살리는 영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우리가 어떤 형편에 있던지 살리는 영을 가질 때 주변이 살아나게 됩니다.

    내가 살리는 영을 가진 사람인가를 시험하여 보십시오.
나를 인하여 만나는 사람들이 살아나는 살리는 영을 가진 사람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마무리하는 말]


    아우슈비츠 수용소 생활 중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을 관찰하면서 빅터 프랭클은 중요한 사실을 적고 있습니다.
그것은 소망이 사람을 살리고 절망이 사람을 죽인다는 것이었습니다.

    수용소 사람들이 가장 많이 죽는 날은 성탄절 직후였답니다. 1/3의 사람들이 성탄절 직후에 죽어가는 것을 보면서 소망 상실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를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가을이 오면, 수용소에 있는 사람들은 한 가지 소망을 가졌답니다. 성탄특사가 혹시 있을지 모른다 하구요. 히틀러같은 엉터리 통치자에게서라도 그들은 성탄절 특사를 기대했다는 거지요. 그러나 변함없는 현실을 만날 때, 절망하여 죽어가는 사람이 그렇게 많았답니다.

    히틀러 안에서는 생명이 아닌 사망이 역사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를 기다리는 자 안에서 아무런 변화를 얻을 수 없었습니다.
그 안에는 사망의 쓴 맛을 보았을 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는  생명이 역사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의 생명이 함께 하시는 곳에 뜻이 변합니다.
구하는 영광이 변합니다.
살리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 안에 생명이 있으므로 이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내 안에 생명이 있는가 점검해 보실 수 있기 바랍니다.
그 안에 생명이 있으므로 뜻이 변하고, 구하는 영광이 변하고, 사람을 살리는 생애를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경본문]

14 이미 명절의 중간이 되어 예수께서 성전에 올라가사 가르치시니
15 유대인들이 기이히 여겨 가로되 이 사람은 배우지 아니하였거늘 어떻게 글을 아느냐 하니
16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 교훈은 내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니라
17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서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
18 스스로 말하는 자는 자기 영광만 구하되 보내신 이의 영광을 구하는 자는 참되니 그 속에 불의가 없느니라
19 모세가 너희에게 율법을 주지 아니하였느냐 너희 중에 율법을 지키는 자가 없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나를 죽이려 하느냐
20 무리가 대답하되 당신은 귀신이 들렸도다 누가 당신을 죽이려 하나이까

21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한 가지 일을 행하매 너희가 다 이를 인하여 괴이히 여기는도다
22 모세가 너희에게 할례를 주었으니 (그러나 할례는 모세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조상들에게서 난 것이라) 그러므로 너희가 안식일에도 사람에게 할례를 주느니라
23 모세의 율법을 폐하지 아니하려고 사람이 안식일에도 할례를 받는 일이 있거든 내가 안식일에 사람의 전신을 건전케 한 것으로 너희가 나를 노여워하느냐
24 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공의의 판단으로 판단하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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