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3 March 2015

요7:25-36 반항인가? 반응인가?

[들어가는 말]

    어제(2006/11/14) 저녁, 토론토에서는 장애인들이 모여 '밀알의 밤'을 가졌습니다. 
'작은 자들의 축제'란 이름으로 장애인들의 잔치가 열렸습니다.
장애인인 것을 부끄러워하며
장애인을 자녀로 둔 것을 수치스럽게 생각하며
숨어지내곤 하던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무대 앞에 나와 하나님을 찬양하며 춤을 추며
연주하며 장끼를 자랑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예수님은 참으로 놀라우신 분이란 생각을 하였습니다.

    비록 장애인이지만 하나님의 사랑에 화음을 이루는 모습이 감동이 되었습니다.



    [들어가는 말]

1.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은 참이십니다.

    나를 보내신 이는 참이시니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나 
29 나는 아노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났고 그가 나를 보내셨음이니라 하신대 


하나님께서 나를 너무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보내셨습니다.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고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이는 참입니다.
거짓이 아닙니다.

   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 곁에 잠깐 머무셨지만 그 3년 동안에 놀라운 영생의 길을 열어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놀라운 분이십니다.
우리 기독교인들도 여러모로 연약한 면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연약한 인간들을 시랑하셔서 독생자까지 보내주신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꿈을 이루시기 위해 우리를 자녀로 삼으셨습니다.
믿는 우리를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셨습니다.
생명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꿈을 이룰 수 있는 기초를 마련하셨습니다.
우리에게 독생자를 보내시고 그분을 영접하는 자 안에서 하나님의 꿈을 이루어가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아야 합니다.



2. 예수님은 나를 향한 하나님의 꿈을 가지고 나를 찾아오셨습니다.

   3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조금 더 있다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돌아가겠노라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영원한 생명이신 구속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실 일을 가지고 유대 땅에 오셨습니다.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예수님께서 물을 포도주로 바꾸시는 표적을 만납니다.
38년된 병자를 찾아와 예수님께서 이루시는 꿈을 체험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눈 먼 소경이 예수님을 통해 보는 것을 체험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왜 우리 가운데 오셨을까요?
약한 나를 강하게 하심인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왜 우리 가운데 오셨을까요?
가난한 나에게 보배가 되시려 오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왜 우리 가운데 오셨을까요?
죄 가운데 얽매어 죽어가는 나를 자유케 하려 하심인 줄 압니다.


약한 나로 강하게 
가난한 날 부하게 
눈먼 날 볼 수 있게 
주 내게 행하셨네 

호산나 호산나 
죽임 당한 어린 양 
호산나 호산나 
예수 다시 사셨네 

내가 건너야 할 강 
거기서 내 죄 씻겼네 
이제 주의 사랑이 
나를 향해 흐르네 

깊은 강에서 주가 
나를 일으키셨도다 
구원의 노래 부르리 
예수 자유주셨네


예수님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꿈이십니다.



3. 하나님의 꿈에 반응하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을 이해하지 못한 채 예수님을 떠나갔습니다.

    "배운 것도 없는 사람이.....  ."

그리고 죄를 지적하는 예수님을 오히려 죽이려는 음모를 꾸몄습니다.

  반항하는 인간들

하지만 베드로와 몇 제자들은 색다른 반응을 보였습니다.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 가오리이까?"(요6:68)

   반항과 반응, 비슷해 보이지만 그 근본과 결과는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반항과 반응, 우리는 어떤 존재들입니까?

    1] 반항은 불순종을 말합니다.

   투캅스란 영화를 보셨습니까?

   주인공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긁어 모으는 악덕형사입니다. 가족은 대궐같은 집에 살지만 자신은 청렴결백한 국민의 공복으로 보이기 위해 일곱 평짜리 서민 아파트에서 혼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는 누구보다도 더 성실하게 교회를 다닙니다. 십일조도 합니다. 술집 주인과 포주들에게 돈을 많이 뜯어낸 날은 감사헌금까지 합니다. 예배에 참석하면 누구 못지 않게 회개를 합니다.
열정으로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목사님기도: 자기 직위를 이용해 남을 괴롭히는 자를 용서하소서
   주인공: 오, 주여, 주여
   목사님기도: 자기에게 맡긴 일은 소홀히 하면서 돈을 탐내는 자를 용서하소서
   주인공: 오, 아바지! 불쌍히 여기시옵소서.

   집에서 : 휴, 모처럼 하나님 앞에서 회개했더니 속이 다 후련하네
   아내: 그러게 내가 뭐랬어요? 아무리 바빠도 늘 예배 참석하면 구원받고 축복 많이 받는다고 했잖아요?

   우리가 교회를 정기적으로 출석하고 헌금생활을 하면서도 반항할 수 있습니다.\



    2] 반응은 순종을 말합니다.

우리는 반항도 할 수 있고 반응도 할 수 있는 기회를 갖고 있습니다.
우리가 반항하는 삶에는 하나님의 꿈은 없습니다.
오직 반응하는 삶 속에 하나님의 꿈이 심어지고 열매를 맺습니다.

   베드로는 반항 대신 반응하는 삶을 선택하였습니다.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 가오리이까?"(요6:68)

왜 이런 확신을 가질 수 있었습니까?

    예수님 안에 있는 ‘반응할 만한 가치가 있는 무엇’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영생의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꿈을 담은 말씀이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받으면서 하나님의 은혜가 임함으로 반항을 접고 반응하는 축복이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우리는 불의하게 모인 돈을 하나님의 축복으로 알고 관리하기에 여념이 없는 그런 삶을 살지 않습니다.
어떤 성도는 받은 물질을 정말 멋있게 하나님과 그 나라를 위해 사용합니다.
우리 한 민족이 예수 그리스도 밖에 있었을 때 어느 나라를 얼마나 도왔다는 말을 들었습니까?
중국에 조공을 바쳤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일본이나 몽고족들에게 약탈을 당했다는 역사를 읽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한국민족이 이웃 나라들을 구제하고 도왔다는 역사를 읽어보지 못했습니다.
지금 북한의 모습이 바로 우리 5천년 역사의 연장으로 생각되지 않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생명의 구주로 영접한 기독교인이 천만에 육박하는 오늘 날 어선교지에 중국에 엄청난 재물로 돕습니다.
병원을 세워줍니다. 우리가 함께 신앙생활을 하는 노중기 선교사님만 보십시오. 연길에 큰 병원을 세워주었어요.
그것도 부족하여 사천성에 더 큰 병원을 세워주기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중국에 강요에 의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중국 사람들을 신체적으로 도울 뿐만 아니라 영적으로 돕기 위해서 이 놀라운 일을 합니다.
누구 때문에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찾아오셔서 이런 일을 하셨기 때문에 우리도 예수님을 본받아 이런 일을 기쁨으로 하는 것입니다.

   중국만 돕는 것이 아닙니다.
러시아를 그렇게 돕고 있습니다.
한두 나라를 그렇게 돕는 것이 아닙니다.
세계 165개국에 이런 도움의 손길을 뻗치고 있습니다.
우리 한국 기독교인들의 도움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


   약할 때 강함 되시네 나의 보배가 되신 주 /  주 나의 모든 것   
   쓰러진 나를 세우고 나의 빈잔을 채우네 / 주 나의 모든 것
   예수  어린 양 존귀한 이름 (X2)

   십자가 죄 사하셨네 주님의 이름 찬양해 /  주 나의 모든 것 
   쓰러진 나를 세우고 나의 빈잔을 채우네 /  주 나의 모든 것 
   예수  어린 양 존귀한 이름 (X2)



   영국이 선교 사역에 앞장 설 때, 영국에는 해가 지지 않았습니다.
미국이 지금 선교 사역에 앞장서고 있으니까 흥하고 있습니다.

   [마무리하는 말]

예수님과 좋은 화음을 이루십시오.

32 예수께 대하여 무리의 수군거리는 것이 바리새인들에게 들린지라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그를 잡으려고 하속들을 보내니 

   예수님을 수군거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잡으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죽이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의 특성은 예수님께 반항하는 마음을 가졌다는 증거입니다.

예수님과 다른 생각을 신봉하는 종교인들입니다.

그럴 필요 없어요.


  인간의 마음 가운데는 반항의식이 잡초의 뿌리처럼 깊이 박혀 있습니다. 이런 반항에 익숙해진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부모, 스승, 나아가 하나님께까지 반항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반항은 뽑아버려야 할 죄의 뿌리이지  미덕일 수는 없습니다.

  종의 마음을 가진 이는 하나님과 성도들과 화음을 이룰 수 있습니다
  섬김은 연합이 자라는 모태요 교만은 불열의 産道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반응입니다.

   그리스도와 진정으로 서로 하나 되고, 그리스도와 화음을 이루게 될 때 세상은 더 이상 우리를 흔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드림팀이 태어나게 됩니다. 그날에 온 세상은 요동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 공사 중인 존재입니다. 그리스도와 화음을 이루도록 중심을 드리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생명을 가진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자신의 파트에서 자신의 음정을 따라 노래할 자유를 주셨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비젼과 화음을 이루기 원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꿈에 따라 화음을 이루어갈 때 우리는 하나님의 드림팀을 이룰 수 있습니다. 
우리는 각자 일이 다르고 일하는 장소도 다릅니다. 
그것이 내 뜻, 내 의사대로 살아야 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우리가 주님과 불통, 분열, 불화를 이루면 화음이 맞지 않는 다른 노래를 부르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귀 있는 자는 우리가 삶으로 보여주는 불협화음의 곡조를 금방 알아 듣습니다. 연주회에 가는 것은 동음이 아니라 화음을 즐기기 위해서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하나 됨은 획일이 아니라 연합입니다. 오케스트라가 똑같은 곡을 연주하되 연주자들이 각기 다양한 연주를 하여 화음을 이루기 원하십니다.

   저를 감동하게 한 아름다운 이야기를 작품화 시킨 '성문밖에 오케스트라'란 작품이 있습니다. 저는 이 작품이 참 마음에 듭니다. 제가 잘 써서가 아니고 그 내용이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한번 소개하고 싶습니다.

어떤 가난한 오케스트라 지휘자
온몸으로 지휘를 하네. 
힘차게 팔을 젓는 그 순간
그만 쭉 찢어지는 낡은 예복 
어찌할거나
웃옷을 그냥 벗어 던지고 
셔츠 바람으로 지휘를 계속하네. 

여기 저기 쿡쿡 웃는 소리들

아, 절망의 순간 

앞좌석에 앉은 점잖은 귀족 
입고 있던 웃옷을 소리 없이 벗네. 
그 의중을 알아챈 옆 사람도
그 옆의 사람들도 
하나 둘씩 웃옷을 벗네. 

그날 밤 연주회는 감동 그것이었어.

2천 년 전,
온 인류의 죄를 위한 연주회가 예루살렘 성문 밖에서 열렸네.
그 지휘자는 예수 그리스도

온 인류 구원을 지휘하시던 그분은 
옷이 찢기시고
허리와 손과 발,
온몸까지 찢기셨고 
고통, 고통, 또 고통 
온몸은 많은 사람들 앞에 드러나고……
더 부끄러울 수 없는 수치가 서녘 하늘보다 붉었네. 

그러나 그분은 오케스트라 지휘봉을 끝까지 놓지 않으셨지. 

그분을 따르던 사람들이 
하나씩 일어나더니
옛 사람에 속한 옷을 벗기 시작했어.

그날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구원의 연주는 힘있게 계속되고
옷을 벗은 죄인들의 삶에서 생명의 물결로 출렁이고 있네.


   예수님과 좋은 화음을 이루는 성도는 복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 주 안에서 유대인들은 놀라운 하나님의 오케스트라 작품이 될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도 주님과 좋은 화음을 이루며 충성할 자녀를 찾고 계십니다.
내가 바로 그 사람일 수 있습니다.
주님과 함께 화음을 이룸으로 환성적인 예수님의 드림팀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1. 예수그리스도는 우리의 보배가 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영원한 생명이신 구속주가 유대 땅에 오셨습니다.
각 사람 위에 빛이 비추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본 많은 사람들은 당혹스러워 했습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셔야 한다'는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떠나갔습니다.

가족들에게서조차 이해를 받지 못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께 노골적으로 무시하려 들었습니다. 
"배운 것도 없는 사람이.....  ."

그리고 죽이려는 음모를 꾸몄습니다.

   만왕의 왕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이 무서운 몰이해가 있었다니 놀랍지 않습니까?

    이런 인간들의 모습을 옥한흠 목사님은 반항이란 표현을 썼습니다.
하나님께 반항하는 인간들을 그렇게 묘사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와 몇 제자들은 색다른 반응을 보였습니다.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 가오리이까?"(요6:68)

    반항과 반응, 비슷해 보이지만 그 근본과 결과는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베드로는 왜 이런 확신을 가질 수 있었습니까?

    38년된 병자와 같은 연약한 병자들이 하나님의 사랑과 세상 사람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존재로 변한 것을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배고프고 헐벗은 가난한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얼마든지 복있는 존재로 인정을 받게 된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눈 먼 소경이 죄의 굴레에서 벗어나 볼 수 있는 축복을 받은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왜 우리 가운데 오셨을까요?
약한 나를 강하게 하심인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왜 우리 가운데 오셨을까요?
가난한 나에게 보배가 되시려 오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왜 우리 가운데 오셨을까요?
죄 가운데 얽매어 죽어가는 나를 자유케 하려 하심인 줄 읻습니다.


약한 나로 강하게 
가난한 날 부하게 
눈먼 날 볼 수 있게 
주 내게 행하셨네 

호산나 호산나 
죽임 당한 어린 양 
호산나 호산나 
예수 다시 사셨네 

내가 건너야 할 강 
거기서 내 죄 씻겼네 
이제 주의 사랑이 
나를 향해 흐르네 

깊은 강에서 주가 
나를 일으키셨도다 
구원의 노래 부르리 
예수 자유주셨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우리의 약함이 더 이상 부끄러움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강함이 되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우리의 가난함이 더 이상 부끄러움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보배가 되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안에서는 우리의 약점이 더이상 부끄러움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강점이 되어주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을 받으면서 하나님의 은혜가 임함으로 반항을 접고 반응하는 축복이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나를 찾아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만나세요.

     나를 보내신 이는 참이시니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나 
29 나는 아노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났고 그가 나를 보내셨음이니라 하신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십니까?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너무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보내셨습니다.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고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 곁에 잠깐 머무셨지만 그 3년 동안에 놀라운 영생의 길을 열어놓으셨습니다.

    3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조금 더 있다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돌아가겠노라 

    세상은 예수님을 영접한 우리 기독교인이 얼마나 놀라운 축복 가운데 있는가를 잘 모릅니다.

    투캅스란 영화를 보셨습니까?

    주인공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긁어 모으는 악덕형사입니다. 가족은 대궐같은 집에 살지만 자신은 청렴결백한 국민의 공복으로 보이기 위해 일곱 평짜리 서민 아파트에서 혼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는 누구보다도 더 성실하게 교회를 다닙니다. 십일조도 합니다. 술집 주인과 포주들에게 돈을 많이 뜯어낸 날은 감사헌금까지 합니다. 예배에 참석하면 누구 못지 않게 회개를 합니다.
열정으로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목사님기도: 자기 직위를 이용해 남을 괴롭히는 자를 용서하소서
    주인공: 오, 주여, 주여
    목사님기도: 자기에게 맡긴 일은 소홀히 하면서 돈을 탐내는 자를 용서하소서
    주인공: 오, 아바지! 불쌍히 여기시옵소서.
    
    집에서 : 휴, 모처럼 하나님 앞에서 회개했더니 속이 다 후련하네
    아내: 그러게 내가 뭐랬어요? 아무리 바빠도 늘 예배 참석하면 구원받고 축복 많이 받는다고 했잖아요?

    세상 사람들은 우리 기독교인을 이렇게 풍자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놀라운 분이십니다.
    우리 기독교인들도 여러모로 연약한 면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연약한 인간들을 시랑하셔서 독생자까지 보내주신 하나님이 우리를 자녀로 삼으셨다는 것을 아직 모릅니다.
믿는 우리를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아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기독교인들이 세상에서 얼마나 약한가만 알 뿐,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얼마나 놀라운 축복을 받았는가를 제대로 모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우리는 불의하게 모인 돈을 하나님의 축복으로 알고 관리하기에 여념이 없는 그런 삶을 살지 않습니다.
정말 멋있게 하나님과 그 나라를 위해 씁니다.
우리 한 민족이 예수 그리스도 밖에 있었을 때 어느 나라를 얼마나 도왔다는 말을 들었습니까?
중국에 조공을 바쳤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일본이나 몽고족들에게 약탈을 당했다는 역사를 읽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한국민족이 이웃 나라들을 구제하고 도왔다는 역사를 읽어보지 못했습니다.
지금 북한의 모습이 바로 우리 5천년 역사의 연장으로 생각되지 않습니까?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생명의 구주로 영접한 기독교인이 천만에 육박하는 오늘 날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까?
중국에 엄청난 재물로 돕습니다.
병원을 세워줍니다. 우리가 함께 신앙생활을 하는 노중기 선교사님만 보십시오. 연길에 큰 병원을 세워주었어요.
그것도 부족하여 사천성에 더 큰 병원을 세워주기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중국에 강요에 의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중국 사람들을 신체적으로 도울 뿐만 아니라 영적으로 돕기 위해서 이 놀라운 일을 합니다.
누구 때문에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찾아오셔서 이런 일을 하셨기 때문에 우리도 예수님을 본받아 이런 일을 기쁨으로 하는 것입니다.

    중국만 돕는 것이 아닙니다.
러시아를 그렇게 돕고 있습니다.
한두 나라를 그렇게 돕는 것이 아닙니다.
세계 165개국에 이런 도움의 손길을 뻗치고 있습니다.
우리 한국 기독교인들의 도움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기회만 있으면 전쟁의 발톱을 갈고 있는 왕악한 북한 동족을 우리가 얼마나 사랑하고 있습니까?
지나치다고 생각될 만큼 퍼주고 있습니다.
정부만 퍼주는 것이 아닙니다.
정부가 퍼주기 전에 우리 기독교인들이 인도적인 차원에서 엄청나게 퍼주었습니다.
지금도 아낌없이 퍼주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았으면 북한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더 죽었을른지 모릅니다.

    5000년 역사상 상상도 못했던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유엔 사무총장을 배출할 만큼 줌으로서 인심을 세계적으로 얻고 있습니다.
누구 때문입니까?
예수 그리스도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우리 고국이 쪼그라들었습니까?
아닙니다.
우리가 선교 사명을 더 힘차게 하는 한 우리 고국을 하나님께서는 더 풍성하게 채우실 것입니다.


    약할 때 강함 되시네 나의 보배가 되신 주 /  주 나의 모든 것   
    쓰러진 나를 세우고 나의 빈잔을 채우네 / 주 나의 모든 것
    예수  어린 양 존귀한 이름 (X2)

    십자가 죄 사하셨네 주님의 이름 찬양해 /  주 나의 모든 것 
    쓰러진 나를 세우고 나의 빈잔을 채우네 /  주 나의 모든 것 
    예수  어린 양 존귀한 이름 (X2)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는 것을 너무 인색하게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외아들까지 주셨습니다.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이 있다 하였습니다.
주는 것은 사실 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심으면 반드시 심는 대로 거두는 것이 법칙입니다.
단순하게 거두는 것이 아닙니다.
30, 60, 100배로 거둡니다.

    영국이 선교 사역에 앞장 설 때, 영국에는 해가 지지 않았습니다.
미국이 지금 선교 사역에 앞장 서고 있으니까 흥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독생자가 우리 가운데 오심으로 연약한 우리 인류에게 얼마나 놀라운 축복이 임하였는지 모릅니다.

    찾아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십시오.
생명의 구주로 영접하십시오.
예수님께서 나의 가장 소중한 보배가 되실 것입니다.



    3. 예수님과 좋은 화음을 이루십시오.

32 예수께 대하여 무리의 수군거리는 것이 바리새인들에게 들린지라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그를 잡으려고 하속들을 보내니 

    예수님을 수군거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잡으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죽이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의 특성은 예수님께 반항하는 마음을 가졌다는 증거입니다.

    교회 주변에 풀같은 나무같기도 하고 풀 같기도 한 것이 자라서 그 줄기를 툭 치니 쉽게 부러집니다. 그래서 뿌리를 캐기로 하고 곡괭이로 파니까 팔뚝보다 큰 뿌리가 나옵니다.
    수군거리는 우리 내면에 이런 반항의 뿌리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깨닫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그들은 말할 지 모릅니다. 자기들이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이해하지 못하는 그 한 가지만으로 반항하고 배척하고 죽이려 드는 반항의 쓴 뿌리가 저들 안에도 있었습니다.

   인간의 마음 가운데는 반항의식이 잡초의 뿌리처럼 깊이 박혀 있습니다. 이런 반항에 익숙해진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부모, 스승, 나아가 하나님께까지 반항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반항은 뽑아버려야 할 죄의 뿌리이지  미덕일 수는 없습니다.

   종의 마음을 가진 이는 하나님과 성도들과 화음을 이룰 수 있습니다
   섬김은 연합이 자라는 모태요 교만은 불열의 産道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는 경쟁심이나 불열의 영이 들어설 자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종이 들어설 자리는 아주 많습니다.
   천국 문은 종의 신분으로 들어서는 곳입니다
   종은 통치권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 나라의 진보만 구합니다.
   옥합을 깨뜨리는 마리아처럼 자존심이 아니라 종의 마음을 보일 수 있을 때 화음은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서로의 차이를 장점으로 활용하여야 합니다.
   주님은 하나님 나라의 다양함 속에서 말씀하시지만, 사탄은 그것을 분열과 불화의 씨앗으로 사용합니다. 한 척의 배안에 수많은 선실이 있듯이 다양한 이견이 있을 수 있습니다. 배의 갑판은 하나 뿐이며 우리가 서 있는 곳은 배의 선실이 아니라 믿음의 본질인 공동 갑판입니다. 불화란 교회를 먹어치우는 또 하나의 교회입니다. 그것은 일종의 자기 파괴적인 기독교 식인주의입니다.   

    그러나 건강한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와 진정으로 서로 하나 되고, 그리스도와 화음을 이루게 될 때 세상은 더 이상 우리를 흔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드림팀이 태어나게 됩니다. 그날에 온 세상은 요동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 공사중인 존재입니다. 그리스도와 화음을 이루도록 중심을 드리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생명을 가진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자신의 파트에서 자신의 음정을 따라 노래할 자유를 주셨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비젼과 화음을 이루기 원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꿈에 따라 화음을 이루어갈 때 우리는 하나님의 드림팀을 이룰 수 있습니다. 
우리는 각자 일이 다르고 일하는 장소도 다릅니다. 
그것이 내 뜻, 내 의사대로 살아야 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우리가 주님과 불통, 분열, 불화를 이루면 화음이 맞지 않는 다른 노래를 부르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귀 있는 자는 우리가 삶으로 보여주는 불협화음의 곡조를 금방 알아 듣습니다. 연주회에 가는 것은 동음이 아니라 화음을 즐기기 위해서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하나 됨은 획일이 아니라 연합입니다. 오케스트라가 똑같은 곡을 연주하되 연주자들이 각기 다양한 연주를 하여 화음을 이루기 원하십니다.

    저를 감동하게 한 아름다운 이야기를 작품화 시킨 '성문밖에 오케스트라'란 작품이 있습니다. 저는 이 작품이 참 마음에 듭니다. 제가 잘 써서가 아니고 그 내용이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한번 소개하고 싶습니다.

어떤 가난한 오케스트라 지휘자
온몸으로 지휘를 하네. 
힘차게 팔을 젓는 그 순간
그만 쭉 찢어지는 낡은 예복 
어찌할거나
웃옷을 그냥 벗어 던지고 
셔츠 바람으로 지휘를 계속하네. 

여기 저기 쿡쿡 웃는 소리들

아, 절망의 순간 

앞좌석에 앉은 점잖은 귀족 
입고 있던 웃옷을 소리 없이 벗네. 
그 의중을 알아챈 옆 사람도
그 옆의 사람들도 
하나 둘씩 웃옷을 벗네. 

그날 밤 연주회는 감동 그것이었어.

2천 년 전,
온 인류의 죄를 위한 연주회가 예루살렘 성문 밖에서 열렸네.
그 지휘자는 예수 그리스도

온 인류 구원을 지휘하시던 그분은 
옷이 찢기시고
허리와 손과 발,
온몸까지 찢기셨고 
고통, 고통, 또 고통 
온몸은 많은 사람들 앞에 드러나고……
더 부끄러울 수 없는 수치가 서녘 하늘보다 붉었네. 

그러나 그분은 오케스트라 지휘봉을 끝까지 놓지 않으셨지. 

그분을 따르던 사람들이 
하나씩 일어나더니
옛 사람에 속한 옷을 벗기 시작했어.

그날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구원의 연주는 힘있게 계속되고
옷을 벗은 죄인들의 삶에서 생명의 물결로 출렁이고 있네.


    예수님과 좋은 화음을 이루는 성도는 복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 주 안에서 유대인들은 놀라운 하나님의 오케스트라 작품이 될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도 주님과 좋은 화음을 이루며 충성할 자녀를 찾고 계십니다.
내가 바로 그 사람일 수 있습니다.
주님과 함께 화음을 이룸으로 환성적인 예수님의 드림팀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무리하는 말]

     독일 유학 초기에, 낯선 지역을 방문해 차를 몰고 가다 길을 잃었던 적이 있습니다. 내가 생각해도 나는 황당한 운전을 하고 있었습니다.  오른쪽으로 가다, 왼쪽으로 가다, 멈추었다 다시 가고....  . 뒤에서 따라 오던 차에게 너무 미안했습니다. 그런데 뒤를 따라 오던 운전자가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었습니다. 그는 멈추어 선 저에게 다가와 도와줄 것이 있느냐고 묻습니다. 주소를 보던 그는 그 곳을 찾기가 어려우니 자기를 따라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방향을 온전히 알았다 싶었을 때 손을 들어 흔들며 자기 길로 떠나갔습니다. 그때의 감사함은 20년이 지난 오늘도 두고두고 남습니다.

    저도 언젠가 그런 도움을 준 적이 있습니다. 제가 늘 그렇게 한 것은 아니지만 그날은 그렇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음에 기쁨이 있었습니다.

    당혹스런 환경을 만날 때 우리는 때로 성을 내기 쉽습니다. 그러나 똑 같은 환경에서도 웃는 경우가 있습니다. 세월은 가고, 그 환경도 지나가는데 좋은 반응을 보였던 시간은 두고 두고 남습니다.
보람도 있었고 내 자신에게도 좋은 시간들이 된 것을 느낍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은 생명입니다.
바로 반응할 때, 그 안에는 영생이 있습니다.
반항하지 말고 반응하시기 바랍니다.
반응자에게 임하실 하나님의 축복을 호세아 선지자는 이렇게 전해주십니다.

    호세아6ㅣ1-3에는 이런 좋으신 하나님을 만나고 이렇게 권면합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제 삼일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 앞에서 살리라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 빛 같이 일정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리라 


하나님께 바로 반응하면 참된 축복이 임합니다.




[성경본문]

25 예루살렘 사람 중에서 혹이 말하되 이는 저희가 죽이고자 하는 그 사람이 아니냐?
26 보라 드러나게 말하되 저희가 아무 말도 아니하는도다 당국자들은 이 사람을 참으로 그리스도인줄 알았는가 
27 그러나 우리는 이 사람이 어디서 왔는지 아노라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는 어디서 오시는지 아는 자가 없으리라 하는지라 
28 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시며 외쳐 가라사대 너희가 나를 알고 내가 어디서 온 것도 알거니와 내가 스스로 온 것이 아니로라 나를 보내신 이는 참이시니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나 
29 나는 아노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났고 그가 나를 보내셨음이니라 하신대 
30 저희가 예수를 잡고자 하나 손을 대는 자가 없으니 이는 그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음이러라 
31 무리 중에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고 말하되 그리스도께서 오실찌라도 그 행하실 표적이 이 사람의 행한 것보다 더 많으랴 하니 
32 예수께 대하여 무리의 수군거리는 것이 바리새인들에게 들린지라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그를 잡으려고 하속들을 보내니 
3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조금 더 있다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돌아가겠노라 
34 너희가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터이요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 하신대 
35 이에 유대인들이 서로 묻되 이 사람이 어디로 가기에 우리가 저를 만나지 못하리요 헬라인 중에 흩어져 사는 자들에게로 가서 헬라인을 가르칠터인가 
36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터이요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 한 이 말이 무슨 말이냐 하니라 



==================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