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3 March 2015

요7:37- 52 타는 목마름도 해갈할 길은 있다

[들어가는 말]

    아이러니칼한 이야기지만, 인간이 살아 있다는 표시 중 하나는 목마름입니다. 죽은 자에게는 목마름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살아있는 인간에게는 여러가지 목마름이 끊임없이 살아납니다. 그리고 그 타는 목마름 때문에 시달립니다.

    이런 목마름은 단지 불신자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살아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목마름의 문제는 현실로 다가옵니다.

    우리는 위대한 신앙인 사도 바울의 목마름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누가 나를 이 사망의 몸에서 건져내랴"

    이 말씀은 사도바울 내면으로부터 솟아오르는 목마름입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누가 이 목마름에서 나를 건져내랴"

    이 목마름의 정체는 무엇입니까?
그리고 목마름은 해갈될 수 있습니까?
해갈이 될 수 있다면 그 방법은 무엇입니까?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37 명절 끝날 곧 큰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인간의 어떤 '타는 목마름'도 해갈할 길이 있다!

이것이 바로 오늘 주님께서 주시는 말씀의 주제입니다.


    1. 모든 인간에겐 다양한 목마름이 있습니다.

    37 명절 끝날 곧 큰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명절, 큰 날에 예수님께서 외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셔서 광야에서 장막을 치고 살던 것을 회상하며 기념하는 그 좋은 장막절에 예수님은 외치십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들이나 밭에서 추수를 하며 살던 바로 풍요한 그 계절에 예수님께서는 외치십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그 복된 감사의 절기에, 온갖 수확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풍요한 절기에 예수님은 외치십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구원의 기쁨과 추수의 기쁨이 어우러져서 나무 가지와 버드나무 가지를 흔들며 즐거움으로 충만한 그 복된 절기에 예수님은 외치십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아침에 나팔이 길게 울려 퍼지면 모든 사람들은 실로암 못으로 갑니다. 일주일간 먹을 물을 길어옵니다. 그 물에 풍성한 계절에 예수님께서는 외치십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깊은 내면 속에서 근본적인 목마름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초막절은 우리 인간의 삶이 순례자의 삶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절기입니다.
영원한 휴식이나 안식이 없는 이 세상에는 늘 목마름이 있기 때문입니다.
끊임없이 가나안을 향해가는 이 세상에는 늘 목마름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광야의 삶을 살아가는 모든 인간은 다양한 목마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 건강에 대한 목마름이 있습니다.

     우리 한국인들은 몸에 좋다 하면 못먹는 것이 없다는 말을 합니다. 굼뱅이든, 뱀이든, 지렁이든 몸에만 좋다하면 바닥이 난다는 겁니다.
이 극성스런 한국인들의 보신 여행으로 인해 백두산에 뱀이나 곰에 비상이 걸렸다는 기사를 본적이 있습니다.
태국인들이 혀를 내두른다는 말도 듣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여담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한국인을 먼저 만들었다면 뱀의 꾀임에 넘어가지 않았으리라고 합니다. 꾐에 빠지기 전에 먼저 잡아먹었을테니까. 건강을 갈망하는 민족이 결코 한국인들만이 아닙니다. 세계 어느 민족이 건강에 무관심하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사는 사람들의 갈급함은 얼마나 채워지는 것일까요?
건강에 대한 갈급함이 해갈될 기미는 없어보입니다.

    건강에 대한 목마름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 많은 사람들이 돈에 대하여 큰 목마름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 목마름을 채웠다는 사람을 세상에서 본 적이 없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그 돈에 대한 목마름 때문에 신앙의 경주를 끝까지 감당하지 못하였습니다.

    아간은 그 물질에 대한 갈망으로 인하여 멸망하였습니다.

    롯은 눈에 보이는 요단 동편을 갈망하다가 파멸의 길로 나갔습니다.


    =  권력에 대한 목마름 역시 시급한 주제입니다.
누가 권력을 가진 자에게 그 권력에 대한 갈망을 채워줄 수 있겠습니까?

    애굽이나 앗수르, 그리이스나 로마 어느 누구도 그들의 목마름을 채울 길은 없습니다.

    = 아무도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에 대한 목마름을 근본적으로 채워줄 수 없습니다.

    목마름이 올 때마다 해갈시키기 위해서 물을 마시고, 정욕을 채우고, 세상 것들로 채워보지만 얼마 있으면 해갈된 줄 알았던 그 목마름이 다시 살아납니다.

    사람이 살아있는 한 인간 근본으로부터 솟아나는 타는 목마름이 있습니다.

    = 사랑에 대한 목마름으로 기갈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 지식에 대한 목마름으로 기갈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 모든 인간은 이런저런 목마름으로 고통당하고 있습니다.

    내 바로 곁에 있는 형제가 그런 목마름으로 고통당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이웃 사랑에 목말라 하는 형제를 이해할 수 있기 바랍니다.
    따뜻한 미소에 목말라하는 형제를 이해할 수 있기 바랍니다.
    나의 다감한 한마디 말에 목말라하는 형제를 이해할 수 있기 바랍니다.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이런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라는 로마서의 말씀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고통당하는 형제들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 그들의 목마름을 이해하고 위로해 주는 것입니다.

    삭개오가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는 것이었습니다. 근본적인 목마름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고대하던 바는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는 것이었습니다. 근본적인 목마름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베드로와 같은 어부들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는 것이었습니다. 근본적인 목마름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수가성의 사마리아 여인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는 것이었습니다. 근본적인 목마름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시대의 누구보다 목마름으로 고통당하는 창기와 세리들을 찾아가셨습니다. 그리고 이해하고 위로하고 사명을 새롭게 하셨습니다.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갈5:17]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인간의 근본적인 목마름을 이해할 수 있는 심정을 주시도록 기도할 수 있기 바랍니다.
     목마름으로 인해 고통하는 이웃의 아픔을 이해할 수 있는 심정을 주시도록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2. 그러나 인간에겐 이 목마름을 해갈할 방법이 없습니다.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함이 없고 풍부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함이 없나니 이것도 헛되도다 (전5:10)

    인간의 목마름은 인간이기에 누구나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 목마름은 아무리 세상 것으로 많이 쌓고 채우고 즐긴다고 해서 끝이 없습니다.

    "만족함이 없나니!"

    오장 육부가 그 기능을 잃기까지는 그 목마름이 계속됩니다.

    저는 금년 여름, 진시왕이 자신의 목마름을 해갈시키기 위해 몸무림친 진나라 수도 서안과 그가 권력의 목마름을 해갈 시키기 위해 쌓았다는 만리장성을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병마총이란 곳에 가면 사람들은 혀를 내두르게 됩니다.
죽은 시체를 지키자고 세워 둔 엄청난 규모의 군대 모형의 인형들을 보면서 도대체 인간의 권력에 대한 목마름이 무엇일까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깎아지른듯한 험산에 1M만 그런 성벽을 쌓겠다고 해도 눈 앞이 깜깜합니다. 맨몸으로 오르라고 해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는 그 험산 준령에 만리장성을 쌓았습니다.
   그의 목마름이 얼마나 강한 것이었는지를 넉넉히 알 수 있습니다.
그는 그의 목마름을 해갈시키자고 수많은 사람들을 희생시켰습니다. 그리고 해갈시키지도 못한 채 한 줌 흙으로 돌아갔습니다.
그 큰 무덤만 산처럼 높이 쌓은 채 흙으로 돌아갔습니다.
세상에서 그의 목마름을 채울 길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에 보면 부자의 목마름에 관한 소식을 만납니다.
그는 창고에 곡식을 쌓는 일에 평생을 바쳤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창고에 가득찬 곡식들을 보면서 말했습니다.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이 세상에서 부귀 영화를 넘치게 누렸다고 자부하는 솔로몬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 마음에 궁구하기를 내가 어떻게 하여야 내 마음에 지혜로 다스림을 받으면서 술로 내 육신을 즐겁게 할까 또 어떻게 하여야 어리석음을 취하여서 천하 인생의 종신토록 생활함에 어떤 것이 쾌락인지 알까 하여
나의 사업을 크게 하였노라 내가 나를 위하여 집들을 지으며 포도원을 심으며
여러 동산과 과원을 만들고 그 가운데 각종 과목을 심었으며9전2:3-5)

수목을 기르는 삼림에 물주기 위하여 못을 팠으며
노비는 사기도 하였고 집에서 나게도 하였으며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자보다도 소와 양떼의 소유를 많게 하였으며
은금과 왕들의 보배와 여러 도의 보배를 쌓고 또 노래하는 남녀와 인생들의 기뻐하는 처와 첩들을 많이 두었노라
내가 이같이 창성하여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자보다 지나고 내 지혜도 내게 여전하여
무엇이든지 내 눈이 원하는 것을 내가 금하지 아니하며 무엇이든지 내 마음이 즐거워하는 것을 내가 막지 아니하였으니(전2:6-10)

   그러나 그는 어떤 결론에 도달했습니까?

그 후에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수고한 모든 수고가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며 해 아래서 무익한 것이로다"(전2:11)

    그의 목마름은 채워질 수 없었습니다. 헛되고 헛된 것이었을 뿐입니다.

    내촌 선생님은 온 지구를 한 사람에게 다 준다해도 그 갈증을 채울 수 없다고 했습니다.


    3. 생수의 강이신 예수님만이 그 목마름을 해갈시켜 주십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저는 목마름 하면 벤허란 영화에서 주인공 유다가 친구의 배신 속에서 로마군인들에게 개처럼 끌려 가면서 당하던 그 목마름이 생각납니다.
    어떤 마을을 가면서 후송하는 죄수들과 그들을 잡아가던 군인들이 드디어 어떤 우물 곁에 이릅니다. 미친듯이 사람들은 물을 마시지요.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다 물을 마시는 차례가 유다에게 옵니다.
그 때, 죄수들을 끌고가던 군인이 막 입에 대고 마시려는 유다의 물그릇을 발로 걷어 차버립니다.
유다는 너무 목이마르고 절망이 되어 타는 목마름으로 쓰러집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그에게 다가오십니다. 그리고 유다에게 물을 먹이시지요.

    타는 목마름을 가진 인간들에게 예수님만이 그 목마름을 채울 수 있는 구주이심을 믿습니다.

    옥한흠 목사님은 낙타와 사슴을 비교해서 재미있는 비유를 했습니다,

    낙타는 몸 안에 물주머니가 있어서 사막을 가도 좀처럼 물때문에 목마름을 느끼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슴은 다릅니다. 그 예쁜 사슴이 늘 물을 찾아 헤맵니다.
    성도가 생명의 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내면에 모시는 것은 낙타가 그 물주머니를 몸안에 간직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것도 영생토록 솟아나는 샘물을 몸안에 간직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 내면에 생수의 강이 있을 때, 주님께서 하신 약속이 있습니다. 그것은 영생토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는 것입니다
    단지 자신의 목마름만 해갈되는 것이 아니라 그 넉넉함이 흘러나가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는 것입니다.

    며칠 전 호숫가 가로수 길을 따라 밤 길을 걸어간 적이 있습니다.
플러타너스의 잎들은 다 지고, 스산한 밤 공기가 길가에 흐릅니다.
가로등이 정말 아름다운 가을 낙엽을 비추고 있었습니다.
아름답지 않습니까? 가로등 빛과 낙엽, 그리고 호수!
그런데 나무에서 참 이상한 모습을 보았습니다.
모든 나뭇가지에 잎들이 다 떨어졌는데 가로등이 비치고 있는 나뭇가지에만 아직 낙엽이 붙어있었기 때문입니다.
제 생각으로는 밤마다 비추어주는 불빛이 잎들에게 에너지를 주어서 건강한 잎들을 만들어준 모양입니다. 그래서 다름 잎들은 다 떨어졌는데, 아직도 노란 단풍잎이 아름답게 남아 있는 것이었습니다.
밤 새워 비쳐준 등불 때문에 잎이 힘을 얻었던 모양입니다.
가로등 불빛 아래서도 저렇게 힘을 얻는구나!

    가로등불은 단지 자신만 에너지를 받아 불을 비추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등에서 빛이 흘러나와서 그것이 없는 등불 밑의 낙엽에까지 넘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목마른 인생이 예수님을 제대로 영접할 때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는 약속이 이루어집니다.

    이렇게 전하면 많은 사람들이 반문합니다.
나는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인데 왜 생수의 강이 흘러넘치지 않는지 모르겠다구요.
성령의 음성에 순종하기보다 계속 사로잡아오는 육신에 자리를 내어주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함으로 찾아오시는 성령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그 성령님께 순종할 때 아무든지, 정말 소망이 없는 낙엽같은 인생들에게도 소망을 주는 빛, '흘러넘치는 생수의 강'이 될 수 있음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지난 주간에 묵상하신 [갈라디아5:17]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소욕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인생에 누구나 타는 목마름이 있습니다.
그러나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생수의 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나오면 인생의 근본적인 목마름이 없어집니다.
    나아가 성령을 좇아 행할 때 이웃을 위해 생수의 강을 공급해 줄 수 있습니다.

    수가성의 여인이 그런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녀 역시 누구보다 강한 타는 목마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남편을 다섯 번이나 바꿔보았지만 소용이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 근본적인 목마름은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왔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수고하고 목마른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날 수가성 여인의 내면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생수의 강이 흘러넘치고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근본적 목마름을 채우십니다.

예수님을 영접하심으로 주님의 약속하신 생수의 강이 내면에서 세상까지 흘러 넘치는 축복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놀라운 생수의 강이 어떤 사람에게 주어지는 선물입니까?

"누구든지!"입니다.
은혜를 주시는 일에 어떤 인간적인 자격을 묻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만납니다.
돈없는 자도 와서 마시라시는 하나님의 넓은 마음을 만납니다.
성령의 강물이 내 심령에 넘칠 뿐만 아니라, 내 형제의 심령에도 넘치게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요6:37절식의로 말씀드리면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에게는 누구든지 주시는 선물입니다.
사막 같은 세상에서 목말라 고통당하는 자들에게 누구든지 주시는 솟아나는 생수를 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마무리하는 말]

    탤런트 가운데 최수종이란 분이 한국에서는 아주 높은 수준을 의지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그가 어려운 시절이 있었습니다. 거리에 잠을 자면서 서원기도를 드린 적도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면 가난한 자를 도우며 살겠다구요.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존귀한 자리에 앉혀 주셨습니다. 그러나 정작 인기의 정상에 올랐을 때 그는 자신의 서원을 잊었습니다. 그런데 그 절정의 인기 속에서 그에겐 타는 목마름이 찾아왔습니다. 취하도록 술을 마셔보아도 다른 무엇으로도 그의 타는 목마름은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그가 어느날 자신의 성령께 순종치 못함을 회개하며 하나님 앞에 서원한 연약하고 가난한 자를 위해 자신의 소중한 것을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갈증이 없어져가고 그의 삶에 생수의 강이 넘치기 시작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명정 끝날인데, 아직도 타는 목마름으로 고통하고 계십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십시오.
그리고 내 안에 찾아오신 성령님께 순종하십시오.
그분의 인도하심을 받으십시오.
생수의 강이 흘러 넘치는 삶이 우리 안에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캘빈적인 말로 바꾸면 '불가항력적인 은혜'로 주신 선물입니다.



[성경본문]

37 명절 끝날 곧 큰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39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못하신 고로 성령이 아직 저희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40 이 말씀을 들은 무리 중에서 혹은 이가 참으로 그 선지자라 하며

41 혹은 그리스도라 하며 어떤이들은 그리스도가 어찌 갈릴리에서 나오겠느냐
42 성경에 이르기를 그리스도는 다윗의 씨로 또 다윗의 살던 촌 베들레헴에서 나오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며
43 예수를 인하여 무리 중에서 쟁론이 되니
44 그 중에는 그를 잡고자 하는 자들도 있으나 손을 대는 자가 없었더라
45 하속들이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로 오니 저희가 묻되 어찌하여 잡아오지 아니하였느냐
46 하속들이 대답하되 그 사람의 말하는 것처럼 말한 사람은 이때까지 없었나이다 하니
47 바리새인들이 대답하되 너희도 미혹되었느냐
48 당국자들이나 바리새인 중에 그를 믿는 이가 있느냐
49 율법을 알지 못하는 이 무리는 저주를 받은 자로다
50 그 중에 한 사람 곧 전에 예수께 왔던 니고데모가 저희에게 말하되
51 우리 율법은 사람의 말을 듣고 그 행한 것을 알기 전에 판결하느냐
52 저희가 대답하여 가로되 너도 갈릴리에서 왔느냐 상고하여 보라 갈릴리에서는 선지자가 나지 못하느니라 하였더라
53 [다 각각 집으로 돌아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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