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말]
독수리는 70년 정도의 수명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독수리가 70년을 사는 것은 아닙니다.
40년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독수리에게는 위기가 온답니다. 부리는 필요 이상으로 길어져서 먹이를 쪼아 먹기 힘들어지고, 발톱 또한 길기만 할 뿐, 제 기능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먹이를 보아도 공격할 수가 없고, 주어진 먹이라도 제대로 먹을 수가 없어서 생을 마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어떤 독수리는 과감히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그리고 높은 절벽에 오릅니다. 발톱으로 깃털을 뽑고. 부리로 발톱을 뽑고, 그리고 부리로 그 강한 암반을 사정없이 쪼기 시작합니다. 암반이 무너질 리 없습니다. 피맺히는 처절한 도전 속에서 이내 부리는 부러집니다.
그리하여 새로운 깃털, 새로운 발톱, 새로운 부리로 제 2의 생에 도전합니다. 여기서 성공한 독수리는 30년을 더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갱신!
독수리에게 갱신이 필요하듯 우리 신앙인에게도 갱신은 필요합니다.
갱신이 없이 매너리즘에 빠질 때, 화있을진저 바리새인들이여 하는 주님의 책망을 듣게 됩니다.
요즈음 한국 기독교는 선교 100년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위기감이 급속히 퍼지고 있습니다. 이곳저곳에서 기독교인들이 갱신되어야 한다는 말들을 하곤합니다.
우리 기독교가 어떤 점을 갱신해야 할까요?
우리들이 무엇을 어떻게 갱신해야 할까요?
1. 사명을 잃고 표류하는 삶을 갱신해야 합니다.
2천 년 전, 예수님의 사역 시기에 살던 많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너무 귀한 분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맡겼습니다.
존귀한 신분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들 곁에는 그들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야 할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글을 알지 못해서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없어서
어떤 사람들은 사회적인 열악한 환경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너무나 심각한 가난 때문에
이런 저런 모양으로 죄인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세상은 그들을 세리라고 하였습니다.
세상은 그들을 창기라 하였습니다.
세상은 그들을 이방인이라 하였습니다.
세상은 그들을 죄인이라 하였습니다.
이 사람들을 복주시기 원하셔서 하나님께서는 서기관과 바리새인으로 세우셨습니다.
저들을 통해 그 죄인들이 복을 받는 것!
이것이 바로 그들의 사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까?
3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간음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수님께 간음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세상 앞에 세운 것입니다.
목적이 무엇입니까?
가장 불쌍한 그 죄인을 복주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들의 사명은 그 아픈 영혼에게는 아무런 관심도 없었습니다.
그들의 사명은 예수님을 죽음에 넣으려는 것입니다.
5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6 저희가 이렇게 말함은 고소할 조건을 얻고자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러라
간음 중에 잡힌 여인의 재판권이 예수님께 있어서가 아닙니다. 예수님을 곤경에 넣으려는 의도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런 죄인들을 어떻게 하는가를 시험하려는 것입니다.
고소할 조건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마저도 그녀를 정죄하면 예수님도 그들과 같은 것이겠지요.
예수님마저도 그녀를 정죄하면 그녀는 정말 살 소망이 없겠지요.
예수님은 늘 그런 소외된 자들의, 죄인들의 곁에 있었는데 더이상 그들의 친구일 수 없겠지요.
예수님마저도 정죄하면 그런 죄인들은 더 이상 복을 받을 길이 없겠지요.
예수님께 마지막 소망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의 소망이 무너지는 것이지요,
그렇다고 그런 죄인을 감싸면 율법을 어겼다고 올무를 씌우겠지요.
이렇게도 저렇게도 못하게 하여 결국 예수님을 올가미에 넣자는 심사입니다.
세상에는 이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넘어뜨리는 것, 예수님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이 사명인 것으로 착각하며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일을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슬픈 일입니다.
정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일이 태산처럼 쌓였는데 그 귀한 사명을 망각하고 예수님께 도전하는 삶에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낭비하고 산다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인간은 이 세상에서 할 사명이 있습니다.
목숨을 바쳐 충성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모른 채 엉뚱한 일에 눈을 부라리고 생명을 겁니다.
답지 않은 일을 사명으로 생각하는 사고를 갱신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들 중 대부분은 자신들의 사명을 예수님 고소와 예수님 거꾸러뜨리고, 죽이는 일을 사명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지요.
결국 그 왜곡된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거짓과 모함을 만들어 냈습니다.
오늘 날도 이런 일을 사명으로 알고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참고예화 1]
이 모 목사님께서 부흥집회를 인도하러 가셨습니다.
그날 부흥회 주제는 비판하지 말라(마7:1-5)는 말씀이었습니다.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어찌하여 형제의 눈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보라 네 눈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속에서 티를 빼리라
담담하게 말씀을 전하였다고 생각하였는데, 부흥회 회중 가운데 큰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성도 한분이 대성통곡을 하면서 회개를 하였던 것입니다. 이를 인하여 회개의 물결이 전 회중에 큰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이 목사님은 많이 감사했습니다. 내 설교가 이렇게 회중에게 큰 은혜를 끼쳤구나 생각하면서 뿌듯한 마음을 가지고 강단을 내려왔습니다.
그 이튿날, 지난 밤 집회에서 크게 회개한 바로 그 성도가 점심을 대접하겠다고 나섰습니다. 고급 레스토랑에 가서 상다리가 휘어지도록 대접하였습니다. 아무리 과하게 하지 말 것을 권면했지만 자신이 받은 은혜에 비할 바가 아니라고 막무가내였습니다.
그는 간증 삼아 그 동안 자신이 어떤 일을 해왔던가를 말해주었습니다. 자신은 의의 사자라고 자부하였고, 교회 안에서 의롭지 못하다고 생각했던 일을 바로 잡는 것을 사명으로 삼고 평생 그런 일을 찾아 몰두해왔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비판하지 말라는 말씀을 듣고 크게 깨달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간증을 곁에서 듣던 부인이 눈물을 흘리며 감사했습니다. 자신은 남편의 오늘이 있기 위하여 15년을 기도해 왔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목사님은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내가 설교를 잘해서가 아니라, 이 형제의 부인이 15년 기도열매로 오늘 이 형제가 회개하였던 것이구나!' 하고.
부흥회 마지막 날, 어떤 가족이 이목사님과 담임목사님을 찾아 왔습니다.
그들은 단정히 담임 목사님 앞에 무릎을 꿇고 죄를 자복했습니다. 그의 회개 또한 전에 회개한 형제와 같았습니다.
그 교회에는 의의 선지자가 다섯 분이 계셨는데 그들은 교회 전반에 자신을의 생각에 합당하지 못한 부분을 지적하는 것을 사명으로 삼고 살아온 사람들이었습나다.
그런데 지난 밤, 그들 중 첫 '의의 사자'가 회개하고, 오늘 두번 째 '의의 사자'가 회개한 것입니다.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목사님의 눈에서도 눈물이 뚝뚝 떨어졌습니다. 그들로 인해 지난 10년간 고생한 생각읋 하면 그의 회개가 담임 목사님께는 정말 감동 그것이었습니다. 목사님의 눈물이 그 회개하는 성도의 아들 머리 위에 뚝뚝 떨어졌을 때, 그 아들까지 크게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목사님은 내 설교가 정말 대단하긴 했나보다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돌아간 후, 사모님께서 부흥자 목사님께 조용히 말씀드렸습니다.
"목사님, 정말 하나님은 놀라운 분이십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지요?"
"저는 저분의 회개를 위해 10년째 기도하고 있습니다."
"아!"
이 목사님은 생각을 고쳐 먹기로 했습니다.
이번 부흥집회에서 큰 회개의 역사가 일어난 것은 자신이 설교를 잘해서가 아니라, 15년간 남편을 위해 기도하신 그 부인과 그 교우를 위해 10년이나 눈물로 기도하신 사모님 때문이었음을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기도하는 사람들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심을 가슴 깊은 곳에 심어줍니다.
그러나 이상한 사명으로 삼고 교회나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음을 알려주는 사건이기도 합니다. 사명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요, 사명을 바로 알고 그 사명을 위해 헌신해야 함을 새롭게 알려주십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왕은 왕의 사명을 수행할 때 왕으로서의 존재의미가 있습니다.
왕이 사명을 팽개치고 아무렇게나 살아갈 때, 왕직은 그에게 별 의미가 없습니다.
바리새인이나 사두개인들은 참으로 존귀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사명 앞에 바로 섰다면, 그들이 끌어 온 여자와 같은 종류의 수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얻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사명 감당하지 못할 때, 오늘 같은 우스꽝스러운 일이 일어납니다.
우리의 사명은 무엇입니까?
일 같지 않은 일에 사명인 줄 알고 삶을 허비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 사명이라는 것이 예수님의 권위에 도전하고
공동체에 해를 끼치는 그런 일을 사명이라고 착각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대신 베드로 사도를 통해 주신 귀한 사명을 새롭게 영접하시기 바랍니다.
베드로전서 2:9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2. 하나님께서 하라고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으로 갱신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난감한 자리에 서 계셨습니다.
땅에 무엇인가를 쓰고 계셨습니다.
이 어려운 문제를 풀고 계셨습니다.
이 세상에 어떤 어려운 수학문제보다 더 어려운 이 문제를 풀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저들에게 알려줄 수 있을까?
이 완악하 사람들의 잘못된 사명을 깨우쳐 줄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생각하고 계셨습니다.
여러분이 이런 자리에 서 있다면 어떤 답을 말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겠습니까?
돌을 들어 이 여자를 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까요?
아니면
치지 못하도록 그 여자를 향해 날아오는 돌을 가로 막고 대신 맞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까요?
죠지 스위팅은 '하나님의 뜻을 아는 길'이라는 책에서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답을 찾고 있습니다.
'이 혼란스럽고 불확실한 시대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확실한 삶의 지표가 있을 수 있는 것일까?'
우리 일생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가장 감동적인 사건은 하나님께서 우리 삶의 계획을 마련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깨닫는 일 이라고 하며 하나님의 길이 가장 바른 길이요 궁극적으로 삶의 영원한 뜻을 발견하는 유일한 길이라는 점에 대하여 한가지 이유를 제시합니다.
1.오직 하나님만이 미래를 알고 계시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한다.
2.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지 아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여야 한다.
3.우리 각 사람을 위한 축복을 하나님께서 마련하고 계시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한다.
4.하나님께서 우리가 그 분의 뜻을 이해랄 것과 그 뜻에 복종할 것을 명령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한다.
저자는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를 4가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1.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먼저 하나님의 자녀이어야 한다.(구속)
2.하나님의 뜻을 알려면 복종하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하나님께 복종하기를 원하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뜻을 알 수가 없다.(복종)
3.하나님의 뜻은 오직 거룩하고 정결한 사람에게만 충분히 발견되고 이해된다.(분리)
4.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겠다는 불타는 열망과 목마름이 있어야 한다.(진실성)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예수님을 올무에 넣기 위해 다그치고 있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위해 주님께서는 어떤 답을 주셨습니까?
예수님께서 저들을 살리시기 위해 알려주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었습니까?
7 저희가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가라사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는 것입니다.
죄 없는 자가 누굽니까? 하나님이십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돌로 치실 수 있으십니다. 심판하실 수 있습니다.
사람 가운데 심판할 수 있는 자격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죄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에게 돌을 던지는 일에 사명으로 생각하는 저들에게 그 일의 모순됨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9 저희가 이 말씀을 듣고 양심의 가책을 받아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그 불쌍한 여인은 살 길을 얻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진정 감당해야 하는 사명은 사람을 살리는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자신들이 할 일이 아님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자신들이 잘못되고 허망한 일을 사명으로 삼고 달려왔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들이 마땅히 감당해야 할 사명은 그들 앞에 있는 죄인을 향해 돌을 던지는 것도 아니고,
예수님을 올무에 걸어 죽이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어른으로부터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떠나갔습니다.
할렐루야!
Karl Hilthey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인간 생애의 최고의 날은 사명을 자각하는 날이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비로소 자신들이 해서는 안될 일을 자각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내가 해서는 안될 일이 무엇입니까?
내가 하도록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이 무엇입니까?
오늘도 우리는 해서는 안될 그 일에 흥분하고 열중하고 시간과 물질과 인생을 투자하고 있지 않습니까?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떠나간 그 사람들처럼 떠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대신 하나님께서 하라 명하신 사명을 행하는 삶으로 갱신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기도하십니다.
[요한복음 17:4]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성부 하나님께서 하라고 맡기신 그 일을 예수님께서는 생각하셨습니다.
성부 하나님께서 하라고 맡기신 그 일을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성부 하나님께서 하라고 맡기신 그 일을 예수님께서는 행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십자가 상에서 고난을 당하시며 '다 이루었다'(요19:30) 운명하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맡기신 사명을 다 이루었다는 말씀이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자기를 왜 이 시대에 보내셨는지 사명을 알기 원하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자기를 왜 이 교회에 보내셨는지 사명을 알기 원하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자기를 왜 이 토론토에 보내셨는지 사명을 알기 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이 땅에 대사로 파송하신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21]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통해서 여러분과 우리를 굳세게 해주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어 사명을 맡겨주신 분은 하느님이십니다."(공동번역)
성경에서 귀한 생애를 살아간 인물들의 공통된 특징은 주님께서 주신 사명을 알고 그 사명을 따라 살았다는 점입니다.
사도바울은 이렇게 사명을 분명하게 살았습니다.
[사도행전 20:24]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모세의 위대성이 무엇입니까?
비록 광야길을 갔지만, 하나님께서 시키신 사명을 따라 살았던 그 생애에 있었음을 믿습니다.
릭워렌의 '목적이 이끄는 삶'에 보면 '우리는 사명을 위해 지음받았다. 하나님은 지금도 이 세상에서 역사하고 계시고 또한 우리가 주님과 함께 일하기를 원하신다. 이 과제를 우리의 사명(mission)이라고 부른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사람을 살리는 사명을 찾으셨습니까?
그 사명을 위해 생각하십니까?
그 사명을 이루기 위해 말씀하고 삽니까?
그 사명을 이루기 위해 살아가고 계십니까?
사람을 살리는 일을 위해 삶을 갱신하고 사명을 붙들고 살아가는 복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3. 진정한 사명은 인생에게 생명을 줍니다.
12 예수께서 또 일러 가라사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이제 오직 두 사람만 남았습니다.
예수님과 그 여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녀에게 묻습니다.
10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소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여인은 없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말씀해 주십니다.
11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라]
죄의 종노릇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죄 아래 있는 사람은 사명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여인에게 죄를 따르지 말고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을 따르도록 사명의 길을 알려주십니다.
12 예수께서 또 일러 가라사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세상의 빛이 되시는 예수님을 따를 때, 생명의 빛을 얻습니다.
회개하고 사명을 회복하게 됩니다.
[예화]
장애인 아들을 둔 어떤 마버지는 40이 넘은 나이에 삼종경기를 시작했습니다. 달리고 수영하고 자전거를 타고 온 몸을 땀으로 적시면서 아들과 함께 삼종경기를 시작했습니다.
그는 한 가지 생각, 곧 아들에게 희망을 주려는 사명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청소부로 나날을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에게 지나가던 나그네가 묻습니다. 혼자 길을 쓸어야 하니 힘드시겠네요.
그는 기쁘게 말합니다. 나는 지구의 한 모퉁이를 정돈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아버지 하나님의 땅을 깨끗이 정돈하는 일은 내가 무엇이 되어 어떤 위치에 오르는가보다 더 소중한 가치인 것입니다
12 예수께서 또 일러 가라사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세상의 빛이 되시는 예수님을 따를 때, 생명의 빛을 얻습니다.
회개하고 사명을 회복하게 됩니다.
예레미야애가 5:21
여호와여 우리를 주께로 돌이키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주께로 돌아 가겠사오니 우리의 날을 다시 새롭게 하사 옛적 같게 하옵소서
Restore us to yourself, O LORD, that we may return; renew our days as of old
그래서 안병욱 박사는 사명을 생명이라 표현하였습니다.
하나님나라의 대사에게는 사명은 바로 생명입니다.
[마무리하는 말]
어떤 신앙인이 바리새인에 대하여 이런 글을 남긴 것을 보았습니다.
위선자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저들은
주님의 공생애 중에 숱한 태클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주님을 집요하게 따라다니면서
율법조항을 줄줄이 암송하며
틈만 있으면 시비를 걸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눈은
겉과 속이 다른 저들의 위선을 보셨습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소유하지 못한 저들의 중심을 보셨습니다.
그 좋은 율법을 가지고 이웃을 단하고 정죄밖에 할 수 없느냐?
그 좋은 사랑을 가지고 이웃에게 무거운 짐밖에 줄 수 없느냐?
하나님의 사랑이 담긴 말씀으로 목마른 자들의 가슴을 적셔줄 수 없느냐?
말씀을 맡았으니 뭇 영혼들을 생명으로 인도할 수 있었으련만
생명의 주 예수님을 향해 문을 열었더라면 생명을 찾았으련만.
평생 그 귀한 하나님 말씀 끌어안고 살면서도 그 안에 있는 생명에는 접목되지 못한 가련하고 비참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
그래서 주님은 소경된 인도자라 하셨습니까?
주님의 말씀은 오늘 저의 귀에도 들립니다.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주님의 질책 앞에 이렇게 송구스러운 까닭은
수많은 신앙의 잎은 무성한데 주님이 찾으시는 의(義)와 인(仁)과 신(信)의 열매 별로이니
제가 바로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바리새인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가 없어서입니다.
말로 가르친 만큼 섬기지 못했고
보잘것없는 의를 내세워 이웃을 판단했고
사랑과 용서를 외치면서도 비방하고 원망하는 말을 하였습니다.
나의 실체를 돌아보게 하신 주님,
소경된 인도자가 아니라
주님의 생명으로 인도하는
복음의 통로가 되게 하소서.
[성경본문]
1 예수는 감람산으로 가시다
2 아침에 다시 성전으로 들어오시니 백성이 다 나아오는지라 앉으사 저희를 가르치시더니
3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간음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4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5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6 저희가 이렇게 말함은 고소할 조건을 얻고자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러라 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7 저희가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가라사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8 다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9 저희가 이 말씀을 듣고 양심의 가책을 받아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10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소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11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라]
12 예수께서 또 일러 가라사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