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수요일 김성일 선교사님이 총회 참석차 토론토를 방문하였다가 우리 서머나 교회를 방문하였습니다. 여러 일정 때문에 지난 수요일 선교보고를 하였습니다. 그 시간에 참석한 많은 사람들이 마음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터키 백성의 연약함을 감당하기 원하는 한 선교사의 몸부림을 보았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금요일 선교기도회 시간에 그가 추진하고 있는 터어키 문화센터 건립을 위해 여러분이 나섰습니다. 우리도 터키 백성들의 영적 연약함을 헌금으로라도 감당하자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2,000 가까이 모였습니다. 우리 $7이면 그곳 10,000,000리라 랍니다. 나도 동참해야겠다는 분들은 아직 기회가 있습니다.
김선교사님이 사역을 잘 하고 있다는 보고를 한 것이 아닙니다. 많은 분들이 들으신 대로 사역 중 어려움을 나누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녀이기 때문에 아버지 하나님을 위해 일어선 김선교사님, 사역의 결과보다 자녀된 관계를 인하여 사랑하시는 주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는
내가 무엇을 했느냐 하는 성취에 의한 관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피에 의한 관계입니다.
나의 가치는 나의 성취의 결과에 근거하지 않고 하나님의 베푸신 은혜에 근거합니다.
주인은 종에게 그의 행위에 따라 보상을 하지만
아버지는 자녀이기 때문에 상을 주십니다.
종은 주인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일해야 하지만
아들은 아버지와 사랑을 유지합니다.
이 진리로 망가진 사역지의 참담함을 극복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일을 보고 들으면서 우리 주님은 놀라운 분이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 주님이 아니면, 어떻게 이런 약육강식의 세상에서 이웃과 이웃 민족의 연약함을 감당하는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오늘 우리는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연약함과 병을 감당하시는 능력을 체험하게 됩니다. 1-4장에서 왕의 신분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5-7장에서는 천국 복음을 들려주셨던 주님께서 8-10장에서 10 개의 기적을 하나씩 보여주고 계십니다.
1. 버림받은 자의 연약함을 감당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아침마다 이렇게 감사하였습니다.
"내가 여자가 아니라 남자임을 감사하나이다.
이방인이 아니라 유대인임을 감사하나이다.
노예가 아니라 자유인임을 감사하나이다."
그리고 그들은 이방인을 천하게 생각했습니다.
노예를 천하게 생각했습니다.
여자를 천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남자가 아닌 여자, 베드로의 장모에게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 백부장에게
자유인이 아닌 노예인 하인에게 은혜를 베푸셨어요.
건강한 자가 아닌 문둥병자를 만나주시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능력을 베푸셨습니다. 하나님 나라 왕의 통치는 당시 사회에서 버림받은 사람들에게 먼저 임하셨습니다.
문둥병자는 당시 가장 절망적인 불치의 병을 앓고 격리되어 있었던 버려진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저주 아래 있다고 생각되던 사람이었습니다.
백부장의 하인은 신분에 있어서 사랑을 받을 가치가 없는 것으로 생각되던 이방인이었고 하인이었습니다.
그는 영적으로 말한다면, 에베소서 2장 12-13절에 언급된 대로 "멀리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베드로의 장모는 여성을 하대하던 사회에서, 더구나 일개 어부의 장모란 점에서 별로 주목을 받을 수 없었던 사람입니다.
공통점은 세 사람 모두 사회에서 더 이상 카운트되지 않는 그런 사람들입니다. 존재의미가 없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카운트되지 않는 비천한 자들을 카운트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왕의 능력을 선물하셨습니다.
[17]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에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이사야서 35장에 보면 메시야가 오시면 이렇게 하신다 하셨습니다. 이러한 기적들은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그리스도이심을 증명하는 신임장이었습니다.
소경이 보게 됩니다.
절름발이가 걷습니다.
문둥병자가 고침을 받습니다.
중풍 병에 든 사람이 일어납니다.
열병에 든 사람이 즉시 일어납니다.
귀신들린 자들이 고침을 받습니다.
메시아의 왕국이 도래한 모습입니다(5-6절).
문둥병자에게 메시아의 왕국이 도래하였습니다.
이방인에게 메시아의 왕국이 도래하였습니다.
여성에게 메시아의 왕국이 도래하였습니다.
[적용]
오늘 연약함과 곤고함 가운데 힘드신 분이 있습니까?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 사람의 곤고함을 돌아보신 그 사랑을 생각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은 우리를 찾아오시고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십니다.
2. 고통 당하는 자의 병을 감당하셨습니다.
1] 고통당하는 문둥병자의 질병을 감당하셨습니다.
문둥병은 예수님 시대에 가장 무서운 질병이었습니다.
요즈음 문둥병과 달리 의복과 집에 전염되는 피부병으로 치료법이 없었습니다.
병이 발견되면 저들의 사회에서 즉시 분리되었습니다.
머리에 빗질을 하지 않고, "부정하다"외치면서 자신의 존재를 알려야 했습니다.
그들은 살아 있으나 죽은 자와 같았습니다.
그들을 괴롭게 하였던 것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저주 아래 있다는 사회의식이었습니다.
미리암이 범죄함으로 인하여 문둥병이 돋고, 웃시야 왕이 범죄함으로 인하여 문둥이가 되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그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한 문둥병자가 예수님께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간구했습니다.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
예수님께서는 문둥병자를 만지셨습니다.
자신을 더럽히셨습니다.
[3]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저에게 대시며 가라사대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어루만지심으로 치료되었습니다.
즉시 그의 문둥병이 깨끗하여진지라
예수님께서는 말씀으로 문둥병을 고치셨습니다
엘리사를 통해 나아만 장군의 문둥병이 나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모세를 통해 미리암의 문둥병이 나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모세나 엘리사는 오실 메시아의 표적으로 문둥병을 고친 것입니다.
[문둥병과 죄]
문둥병은 그 참혹한 상태와 그로 인한 격리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은 죄의 모습으로 보았습니다. 피부 아래로 깊숙히 스며드는 병입니다(13:3).
당시 문둥병은 전염성이 있어 퍼지는 병입니다(13:7).
썩어 문드러지게 됩니다(13:44-45).
하나님 공동체와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고립됩니다(13:46).
그래서
레위기 13장에 보면 문둥병이 죄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문둥병으로 썩어 가는 것으로 상징되었습니다(사 1:5-6).
2] 고통당하는 중풍병자의 질병을 감당하셨습니다.
중풍병(8:5-13)은 몸의 한 부분이 마비되는 병입니다.
전신이나 반신 또는 사지 등 몸의 일부가 마비되는 병입니다. 중풍을 뜻하는 현대의학의 대표적 용어로는 뇌졸중(腦卒中)을 들 수 있습니다. 그 원인에는 뇌소동맥이 파열되어 뇌 속에 출혈을 일으키는 뇌출혈과, 뇌의 동맥 속에 피의 덩어리가 막혀서 혈액이 그 곳에서 더 흘러갈 수 없게 된 뇌경색(腦梗塞)이 있습니다. 뇌출혈은 혈압질환(血壓疾患)이 주요 원인이고, 뇌경색은 혈액의 혼탁도 관계합니다. 그 증세는 대부분 처음에는 혼수상태가 따르며 그러다가 요행히 깨어난다 해도 후유증으로 반신불수가 되는 것이 통례입니다. 특히 한의학에서는 혼수상태에 따르는 증세 중에
코를 쉴 새 없이 골 때는 폐(肺)기능이,
눈을 뜨고 감지 못할 때는 간(肝)기능이,
입을 벌리고 다물지 못할 때는 심(心)기능이,
손을 쫙 펴고 있을 때는 비(脾)기능이,
대소변을 가리지 못할 때는 신(腎)기능이 각기 제기능을 다하지 못하기 때문에 극히 위험한 조짐으로 보며, 이런 증세의 심도(深度)와 빈도에 따라 치료의 여부, 생사의 여부를 판단하고 있습니다.
하인은 몸으로 봉사하는 사람입니다.
주인이 몸을 못쓰면 하인이 받들면 됩니다.
그러나 하인의 몸이 마비되면 그 인생은 끝입니다.
몸이 마비된 하인은 사형선고를 이미 받은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님께 쓰임을 받기 원합니다.
그러나 무엇이 그의 소원을 막습니까?
죄입니다.
삼손은 하나님께 쓰임 받기를 원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사울왕은 그 시대에 크게 쓰임 받기를 원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들을 중풍병자로 만들고 말았습니다.
죄로 마비된 인생은 하나님을 섬길 수 없습니다.
그들은 이미 영적 중풍병자입니다.
3] 고통당하는 열병을 감당하셨습니다.
열병(8:14-17)은 열로 인해 고통당하는 병입니다.
요즈음에는 열을 떨어뜨리는 약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런 약들이 계발된 것은 불고 몇 십 년 전입니다.
말라리아가 열병입니다.
Sars가 무서운 열병입니다.
열병이 돈다는 뉴스 몇 줄에 중국과 토론토 경제가 곤두박질치고 있습니다.
동쪽에 들렀다가 어떤 중국 레스토랑에 들렀더니 문을 닫았습니다.
우리 고국에서 들려 오는 소식들은 때로 충격적입니다.
증권 열병이 온 국토를 휩씁니다.
요즈음에는 로토 열병이 전국을 휩쓸고 있습니다.
투기 열병이 전국을 휩쓸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이 모든 질병들을 정복할 힘을 가지신 왕이십니다.
우리들이 사실 영적인 면에서 볼 때, 이런 문둥병자요, 중풍병자입니다. 열병에 걸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만나 이 무서운 질병으로부터 자유함을 얻었습니다.
주님께서 그녀를 고치시자 그녀는 주님께 봉사하였습니다.
이것은 완전히 치료되었음을 뜻합니다.
주님이 행하신 일에 대해 그녀가 얼마나 감사하고 있는지를 보여 줍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셔서 왕권을 회복하실 때, 우리의 기능이 회복되어 주님을 위해 봉사하는 자리까지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은 성도의 복된 소망입니다.
3. 왕의 통치는 갈망하는 신자에게 임하십니다.
[2]한 문둥병자가 나아와 절하고 가로되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
[5] 예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한 백부장이 나아와 간구하여 [6] 가로되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와하나이다
[16]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1] 문둥병자가 예수님께 직접 나아오는 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예수님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따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1] 예수께서 산에서 내려오시니 허다한 무리가 좇으니라 [2]한 문둥병자가 나아와 절하고
그가 예수님께 나아올 때, "부정하다는 소리를 연속 해야 했고, 사람들은 사스 환자가 곁에 지나간다는 것을 알 때, 피하는 것처럼 욕하면서 피했을 것입니다. 여러모로 서로에게 부담스러운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어려움을 무릅쓰고 그는 예수님께 나아갔습니다.
2] 이방인 백부장이 예수님께 자기 하인을 위해 나아와 간청하는 모습 또한 감동적입니다.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
주인이 중풍병에 누워 있는데 하인이 찾아왔다면, 당시 정황으로 보아서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그 반대입니다. 하인이 누워 있고 주인이 나아와 간청합니다. 더구나 당시 콧대 높은 로마 백부장이 말입니다.
나아오는 사람들은 여러 종류였습니다.
홀로 나아오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대신 나아오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매우 바쁠 때 나아오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밤이 깊어 쉬어야 할 시간에 나아오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믿음이 확실하게 나아오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믿음을 확인할 수 없는 채로 나아오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이든 주님께 나아온 사람들은 은혜를 받고 돌아갔습니다.
아이젠아워 대통령이 휴가를 떠나는 날 불치의 암으로 죽어가고 있는 소년의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소년의 꿈은 아이젠아워 대통령을 한 번 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Paul 헤일리란 소년의 집으로 찾아갔습니다. 문을 두드렸을 때, 청바지와 낡고 더러운 셔츠를 입은 그의 아버지가 문을 열고 나왔습니다.
"무슨 일이십니까?"
"대통령이 Paul을 보러 왔다고 전해주십시오."
아이젠아워는 무릎을 꿇고 그 소년과 악수를 하고, 안아주었습니다. 그리고 대통령의 리무진을 보여주기 위해밖으로 데리고 나왔습니다.
아이젠아워가 소년을 찾아와 만나주는 것도 감동적인데 하나님 나라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찾아오시고 우리의 연약함을 담당하시는 이 일은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 어떤 고통 속에 있습니까?
영적인 고통이 있습니까?
심리적인 고통이 있습니까?
아니면 신체적인 고통이 있습니까?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왕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마음 속에 근심 있는 사람 고하라 주께 고하라 주께
슬픈 마음 있을 때에라도 고하라 주 예수께
네 병든 손 내밀라고 주예수님 말씀하네
그말씀을 굳게 믿고 병든 네 손 내밀어라
하나님께로서 오신 왕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나아오는 사람을 영접하십니다.
믿음으로 나아올 때, 믿음을 칭찬하셨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확실하지 않을 떼에도 은혜를 베푸신 일이 많습니다.
신분을 초월하여 은혜를 베푸십니다.
남녀를 초월하여 은혜를 베푸십니다.
이방인일지라도 은혜를 베푸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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