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말]
이런 아름다운 기사가 나와 있습니다.(조선일보) 7살 때에 눈을 다쳐 14세에 완전히 실명했다가 27년만에 시각을 되찾은 김인찬씨의 기사입니다.
그는 어둠 속에서 사는 동안, 믿음 안에서 두 가지 소망을 가졌습니다. 결혼하는 일과 눈을 뜨는 일이었습니다. 불가능할 것으로 생각되던 그에게 이 두 가지 소망이 다 이루어지는 날이 왔습니다.
그에 관한 기사 속에 이런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제목]“27년만에 본 세상… 아름답고도 이상해”
두 눈의 시력을 완전히 상실한 지 27년 만이었다. 전남 담양군에서 농사를 짓는 김인찬(金仁讚·41)씨는 작년 7월 각막 이식 수술을 받고 오른쪽 눈 시력을 되찾았다. 일생 동안 갈망했던 한 줄기 빛이 오른쪽 눈으로 새어든 순간 처음 본 것은 아내와 세 아이들의 얼굴이었다. “그렇게 예쁠 줄 몰랐는데, 아내와 아이들 피부가 너무 뽀얗고 고와서 눈물이 났다”고 했다.
눈을 뜨니 마음이 열렸다. “오늘 아침에도 오토바이를 타고 가는데, 해가 구름에 가려 하늘이 빨갛게 물들었어요. 얼마나 예쁜지 한참을 멍∼하니 바라봤어요.” 바람에 흔들리는 대나무도, 날아가는 새도, 세차게 몰아치는 눈보라도, 밤 하늘에 반짝이는 달과 별도 그는 마냥 아름답고 신기하고 보기 좋다고 했다. “꼭 철 안든 어린애 같죠? 세상엔 볼 게 많네요.”
[조선일보, 담양=최규민기자 min4sally@chosun.com 입력 : 2006.12.30 01:39 ]
어두움 속에 소경되어 산다는 것과 빛 가운데 눈을 뜨고 사는 것은 이렇게 다릅니다. 어두움 속에 사는 소경이 빛 가운데서 볼 수 있다는 것은 이렇게 아름다운 일입니다.
우리가 어두움 가운데 사는 까닭은 빛이 없기 때문입니다.
내 인생 속에 있는 이 어두움을 어떻게 빛으로 채울 수 있는가는 인생의 가장 큰 주제입니다.
1. 섣부른 판단은 위험합니다.
2 제자들이 물어 가로되 랍비여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로 인함이오니이까 자기오니이까 그 부모오니이까
이 질문을 한 사람들은 바리새인도 아니요 서기관들도 아닌 제자들입니다.
소경은 세상에서 앞을 볼 수 없는 사람입니다.
사물을 분별할 수가 없습니다.
태양이 떠올라도 그 아름다운 해돋이를 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내적 슬픔에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의 치료에 관심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당시 사람들 중에는 그의 치료와 회복에는 별 관심이 없이 섣부른 판단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것은 누구의 죄 때문에 이런 불치의 질병이 왔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제자들은 평소에 가졌던 이런 일상적인 의문을 예수님께 가져왔습니다.
소경된 이 불치의 질병은 본인의 죄 때문이라는 견해와 부모의 죄 때문이라는 견해 중 어떤 것이 옳은가 하는 물음입니다.
그 부모가 죄를 지었기 때문에 이 사람이 소경이 되었을 것이라는 사람들이 한 부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아니다 그 사람 본인의 죄 때문이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또 한 부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왜 제자들의 마음이 이처럼 혼미할까요?
이런 세상적인 사고가 우리 신앙인들의 마음 가운데도 깊이 자리잡고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세상적인 사고를 가지고 섣부른 판단을 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섣부른 판단이 많은 사람들을 불행하게 할 수 있습니다. 이는 마치 치명적 진단오류를 범하는 것과 같을 수 있습니다.
몇 년 전 고국에 IMF가 터졌습니다.
국가적인 재난이 닥친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것이 대통령 때문이다 누구 때문이다 청문회를 여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하여 결국 몇 사람이 책임을 지고 감옥에 들어가기도 하였습니다.
누구에겐가 책임을 지우고 그를 죄인으로 감옥에 넣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감옥에 들어간 그 사람들 때문에 그런 국가적인 재난이 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감옥에 들어간 그분들 때문일까요? 아니면 또 다른 누구 때문일까요?
계화삼 목사님의 전기 '나그네 목사'를 보면 남미 아르젠티나 한 교회에서 그분의 목회하던 시절의 기막힌 사연이 적혀 있습니다.
어느 교인 한 분이 큰 마음을 먹고 목사님께 가운을 해드립니다.
그 가운을 입고 예배를 인도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교인을 시기하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목사님이 예배시에 가운을 입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시비를 겁니다.
다음 주일에 계목사님은 그 가운을 입지 않고 예배를 인도하였습니다.
그 모습을 본 가운을 해준 교우가 왜 예배시 가운을 입지 않으셨느냐고 항의합니다.
섣부른 판단이 자기 의와 합하여 공동체에 큰 해를 끼칠 수 있습니다.
어느 교회에서는 힘을 모아 교회당을 건축하였습니다. 그런데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강단의 카펫을 무슨 색으로 할 것인가를 놓고 시비가 붙었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교회가 둘로 나누어지고 말았습니다.
섣부른 판단이 얼마나 무서울 수 있는가에 대한 예지요.
영동대교가 무너졌을 때에도 누구 때문이냐 죄인들을 찾고 그들은 감옥에 줄줄이 엮어 집어넣었습니다.
사람들은 어떤 사건이 터지면 늘 이런 식의 사고로 위안을 얻고 사는 것을 봅니다.
원인 규명을 하는 것이 어떤 사건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도움을 주는 것은 사실입니다.
정말 원인규명을 잘 하여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지혜를 모으는 것은 필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누구 죄 때문이다 섣부르게 확증하려 함으로, 자신은 그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함이라면 그런 동기는 옳지 않습니다.
누구 죄 때문임을 확증하여 책임을 그에게 넘김으로, 나는 죄가 없다는 그래서 책임을 회피하겠다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소경에게는 물론 자신에게도 아무런 유익이 없고, 근본적인 위로가 되지 못합니다.
우리 주변에서 어두움을 발견할 때, 섣부른 판단을 하지 마십시오.
내 마음 속의 지우개란 영화 속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목수는 두 종류가 있답니다.
어떤 목수들은 나무를 받으면 불평이 많다는 겁니다. 이것도 나무냐 이런 나무를 가지고 무슨 작품을 만드느냐 등등 섣부른 판단이 많데요. 그런 사람은 엉터리 목수랍니다.
또 한 종류의 목수가 있는데요. 그들은 나무의 결을 살펴 본답니다. 결을 따라 가면서 대패로 밀면 좋은 작품이 나오게 마련이래요.
이 사람의 소경된 것이 누구의 죄 때문이냐 섣부른 판단을 요구하기 보다, 그런 논쟁에 시간을 소모하기 보다
소경의 형편을 살피고,
소경의 아픈 마음을 살피고,
소경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소경을 위해 기도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들이 가져야 할 마음 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 가운데 연약한 자가 누구입니까? 그가 지금 어떤 불치의 어두움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까?
그의 불치의 어두움을 앞에 두고 섣부른 판단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 인생의 결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그를 섣부르게 판단하고 정죄하려 하지 마세요.
대신
그의 형편을 살피고,
그의 아픈 마음을 살피고,
그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그를 위해 기도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들이 가져야 할 마음 입니다.
2.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기대하십시오.
3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와 흑암의 깊음위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빛이 있으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빛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세상이 어두울 때, 누구의 죄 때문에 세상이 이렇게 어두운가에 대해 생각합니다.
대통령이 정치를 잘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부모를 잘못 만나서 가정이 어둡다고 생각하고 싶어합니다.
어떤 사람 때문에 교회가 이렇게 어둡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
빛이 있으라 하시매
그렇습니다. 그 어두움 가운데 빛이 있기를 원하십니다.
그 혼돈과 공허와 흑암의 깊음 가운데 빛이 있으라 말씀하신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희를 해방시켰음이라
그러므로 우리 하나님의 사람들은 어두움이 강하게 밀려올 때, 누구 때문이냐 생각하기 이전에 주님께서는 이 어둠 속에 어떤 빛이 되실까에 대한,하나님께서 이루실 일에 기대를 가져야 합니다.
사람들이 그 눈먼 소경에게서 절망을 읽는 동안에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일을 나타낼 꿈을 꾸고 계셨습니다.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
소경을 보는 예수님의 생각이 사람들과 이렇게 다릅니다.
사람들은 '누구의 죄냐'를 생각하고 있는데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골몰하고 계십니다.
사람들은 생각의 초점을 시비를 가리는 일에 맞추고 있는데
예수님은 구원에 맞추고 계십니다.
[적용] 어두움 가운데 직면할 때마다 나의 생각의 초점은 어디에 머물고 있습니까?
예수님과 같이 하나님의 하시는 일에 생각이 머무는 복을 받기 바랍니다.
빛이 있으라 임하실 하나님의 구원에 촛점을 맞추는 인생이 되시기 바랍니다.
누구의 죄냐? 이것을 주님께서는 누구보다 잘 아십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것에 대하여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대신 하나님께서 그를 구원하시기 원하신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양이 웅덩이에 빠졌으면 우선 건져내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안식일에 양을 건져내는 것이 옳으냐 그르냐는 시비보다 더 중요합니다.
저는 예수님을 믿고 목회의 길에 들어선 이후, 깨달은 사실이 한 가지 있습니다.
어떤 어려운 일이 닥칠 때, 낙심이 오는 것은 이전과 같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기도하게 됩니다. 그리고 한 생각을 품게 됩니다.
'이번 이 어려운 일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행하실까' 생각하는 점입니다.
그런 후, 제가 어떤 일을 할 수 있는가를 헤아려 봅니다.
그리고 최선을 다하여 하나님께 쓰임을 받으려 힘쓰지요.
그리고 놀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두움 속에 빛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저는 서머나교회를 목회하는 가운데서도 이런 일을 줄곧 체험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살아계셔서 일하고 계십니다.
우리에게 때로 어려움을 허락하시는 경우가 있지만, 너무 낙심하지 마세요.
이 사람의 죄 때문이냐 부모님의 죄 때문이냐 함부로 판단하지 마세요.
하나님의 하시는 일!
그 일을 기대하십시오.
새해에 우리에게는 크고 작은 어두움이 없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하시는 일!
그 일을 기대하십시오.
그런 사람들에게 주님께서는 빛이 되어 주십니다.
5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
말씀하여 주십니다.
3. 은혜 받은 사실을 증거하십시오.
10 저희가 묻되 그러면 네 눈이 어떻게 떠졌느냐
11 대답하되 예수라 하는 그 사람이 진흙을 이겨 내 눈에 바르고 나더러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하기에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노라
예수님께서는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셨습니다.
그리고 실로암 못가에 가서 씻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눈을 뜨게 하시고 세상을 보게 하심으로 예수님께서 세상의 빛이심을 증명하셨습니다.
5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
그러나 사람들은 빛이 되시는 예수님을 깨닫지 못합니다.
빛이 세상에 왔으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말씀대로입니다.
소경된 그가 예수님을 만나 눈이 떠서 왔는데도 사람들은 받아들이려 하지 않습니다.
8 이웃 사람들과 및 전에 저가 걸인인 것을 보았던 사람들이 가로되 이는 앉아서 구걸하던 자가 아니냐
9 혹은 그 사람이라 하며 혹은 아니라 그와 비슷하다 하거늘
그런 놀라운 일을 보기는 커녕, 들은 적도 없는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문제는 그런 혼돈 가운데 있는 사람들 가운데서 은혜를 받은 우리가 어떻게 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절호의 찬스에서 엉뚱한 방향으로 나갑니다.
예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할 결정적인 찬스를 무산 시킵니다.
코너킥을 차는 선수가 지나치게 모션을 쓰다가 골대 밖으로 공을 차는 것처럼 말입니다.
나는 전에 소경된 적이 없는 것처럼 말합니다.
나는 전에 그런 죄인이 아니었던 것처럼 행동합니다.
나는 전에 구차한 삶을 살지 않았던 것처럼 변신합니다.
그러나 오늘 주인공은 다릅니다.
사람들이 죄인이라고 손가락질했던 바로 그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제 말은 내가 그로라 하니
당당하게 자기가 바로 소경이었던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당신들이 죄인 취급하였던 그 사람이라고 선포합니다.
왜요?
주님께서 하신 일을 나타내기 위함이지요.
주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함입니다.
궁굼한 사람들은 당연히 묻습니다.
10 저희가 묻되 그러면 네 눈이 어떻게 떠졌느냐
이때도 엉뚱한 길로 나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하나님께 기도를 많이 했다고 말합니다. 수십년 기도가 응답을 받았다고 말해요. 그래서 눈을 뜬 것이 자기 공로인 것으로 사람을 호도합니다. 거기에 자기 기도가 왜 나옵니까?
어떤 사람은 예루살렘 지역 영험한 진흙을 이겨 눈에 바르고 실로암 못에 가서 열심히 씻어서 나았다고 합니다. 예루살렘 지역 진흙이나 실로암 못의 물이 치료에 도움이 되는 어떤 약효가 있어서인 것처럼 말합니다.
그러나 오늘 이 주인공은 다릅니다.
11 대답하되 예수라 하는 그 사람이 진흙을 이겨 내 눈에 바르고 나더러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하기에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노라
그는 예수님께서 그에게 하신 일을 그대로 드러냈습니다.
이것이 참된 전도입니다.
2006년,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서 어떤 일을 행하셨는지 말씀하실 수 있습니까?
오늘 밤이 가기 전에 적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2007년에 만나는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 내 인생에서 행하신 일을 증거하실 수 있기 바랍니다.
내가 얼마나 소경이었던가를 증거하십시오.
주님께서 얼마나 놀라운 일을 행하셨는가를 증거하십시오.
그 때, 여러분의 다락방은 곱절로 부흥할 것입니다.
그 때 여러분의 교회는 곱절로 부흥할 것입니다.
[마무리하는 말]
'2006년,
이 한 해의 주된 관심사는 무엇이었습니까?
이 어두움이 누구 때문인가로 너무 많은 시간을 낭비하지 않으셨습니까?
간음한 여인을 향해 돌로 칠 것이냐 말 것이냐' 그런 것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이 여인을 어떻게 구원할 것인가?
이 사람이 소경 된 것은 누구의 죄인가를 아는 일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이 소경에게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행하실 것인가입니다.
금년도 하나님의 은혜를 넘치게 받은 우리 자신인데, 이 모든 눈을 뜬 사건이 내 공로라고 자화자찬하며 떵떵거리며 연회석에 앉은 사람들에게 허세를 부리지 않으셨습니까?
우리가 이런 구원 사역에 쓰임받으실 수 있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밤이 가기 전에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2007년에 만나는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 내 인생에서 행하신 일을 증거하기 바랍니다.
주일설교본문
요9:1-11
1 예수께서 길 가실 때에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을 보신지라
2 제자들이 물어 가로되 랍비여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로 인함이오니이까 자기오니이까 그 부모오니이까
3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
4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5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
6 이 말씀을 하시고 땅에 침을 뱉아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7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8 이웃 사람들과 및 전에 저가 걸인인 것을 보았던 사람들이 가로되 이는 앉아서 구걸하던 자가 아니냐
9 혹은 그 사람이라 하며 혹은 아니라 그와 비슷하다 하거늘 제 말은 내가 그로라 하니
10 저희가 묻되 그러면 네 눈이 어떻게 떠졌느냐
11 대답하되 예수라 하는 그 사람이 진흙을 이겨 내 눈에 바르고 나더러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하기에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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