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보면서 불쌍하다는 생각을 해보신 적 있으십니까?
연약한 자를 보면, 불쌍한 마음(compassion)이 드는 것이 인지상정일 것입니다.
몇 년 전, 저는 만주 지방을 여행하면서 탈북자들을 만났는데, 저들의 안타까운 현실을 들으면서 불쌍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유리창이 없기 기차와 그 지붕 위에 앉아 가는 사람들을 보았을 때,
유령의 도시와 같이 침묵하고 있는 도시들을 보았을 때,
북한의 황폐한 산하를 볼 때, 불쌍한 생각이 들었어요.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세 부류의 사람들을 만나시고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36)무리를 보시고 민망히 여기시니
민망 憫 .To be sad; to be troubled; to feel sorry about.
우리들은 이 말씀을 들으면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주님과
불쌍히 여기심을 받은 우리도 또한 불쌍히 여길 대상은 누구인가를 생각해볼 수 있기 원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저들을 불쌍히 여길 때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기 바랍니다.
1. 세상엔 불쌍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1] 병들고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마27)예수께서 거기서 떠나가실새 두 소경이 따라오며 소리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더니
이 두 사람이 왜 불쌍합니까?
[건강의 고통] 볼 수 없는 소경이기 때문입니다. 절망적인 질병 때문에 그들은 어두움 가운데서 일생을 지내야 합니다.
[경제적 고통] 제 힘으로 먹고 살 수 없습니다. 남에게 기생하여 구걸을 하고 살아야 합니다. 공 중 앞에서 구걸하고, 부잣집 대문 앞이나 성소 앞에서 앉아 있어서 거지노릇을 해야 합니다. 이집 저집을 돌아다니면서 구걸을 해야 먹고 살 수가 있습니다.
2] 어두운 영의 권세 아래서 신체적인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입니다.
본문엔 귀신이 들려 벙어리 된 자가 나옵니다.
(32)저희가 나갈 때에 귀신들려 벙어리 된 자를 예수께 데려오니 (33)귀신이 쫓겨나고 벙어리가 말하거늘
사람들은 소경들이 나가자 곧 귀신들려 벙어리 된 자를 데리고 들어왔습니다. 그의 사정은 매우 딱했습니다.
[영적 고통] 그는 귀신에게 사로잡혀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32절). 귀신에게 매여 일생을 종노릇하고 살아야 하는 귀신의 노예이니 얼마나 불쌍합니까? 귀신이 사람의 영혼을 사로잡으면 그 사람은 모든 좋은 것에 대해 침묵하게 됩니다. 노예도 격이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불쌍한 노예는 귀신의 노예입니다. 비인격적인 귀신, 악한 일만을 행하는 귀신, 어두움 속에서만 행하는 그 몹쓸 귀신에게 매여 살아야 하는 존재이니 얼마나 불쌍한 지 모릅니다.
[언어 표현의 고통] 영적 고통을 당하면서도 그 고통을 말할 수 없는 처지가 참 불쌍합니다.
3] 목자 없는 양과 같이 유리하며 방황하는 무리입니다.
(36)무리를 보시고 민망히 여기시니 이는 저희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함이라
[목자 없는 고통] 양은 목자를 잃어버릴 때, 가장 불쌍한 존재입니다. 양이란 짐승은 가장 독립성이 약한 짐승입니다.
시력이 약합니다. 1m 이상을 제대로 보지 못합니다.
지력이 약합니다. IQ가 낮은 짐승입니다.
생존경쟁력이 약합니다.
양은 길을 잃기 쉬운 동물입니다.
길을 잃었을 때 양은 무력합니다.
길을 잃었을 때 속수무책입니다.
길을 잃었을 때 위험합니다.
길을 잃었을 때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찾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짐승입니다.
그 이유는 오직 목자 때문입니다.
목자가 모든 생애를 책임지기 때문입니다.
먹을 것을 책임집니다.
마실 것을 책임집니다.
사시사철 잘 곳을 책임집니다.
털이 길면 이발을 다 해줍니다.
그렇다고 뼈빠지게 일을 시켜먹는 것도 아닙니다.
살만큼 살면서 저절로 솟아나는 우유를 나누어주고
저절로 자라는 털 나누어주고
살만큼 산 후에 살까지 다 준 다음에 생애를 마치면 됩니다.
그래서 가장 팔자가 좋은 짐승이 양입니다.
가장 행복한 짐승이 양입니다.
적어도 사람을 거느리고 사는 짐승이 바로 양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이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참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줄곧 하였습니다.
제가 이 세상에서 남보다 잘났다는 말이 아닙니다.
남보다 머리가 좋은 사람도 아닙니다.
남보다 돈이 많은 사람이 아닙니다.
남보다 건강이 좋은 것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보다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할 때 큰 기쁨이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여호와 하나님이 바로 나의 목자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죄인 되었을 때에 나의 죄를 위해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어 주셨습니다.
아직 캐나다시민권을 갖지 못하였지만 그보다 몇 천 배 귀한 천국 시민권을 주셨습니다.
지금 죽어도 들어갈 수 있는 이곳보다 훨씬 더 좋은 나라가 있습니다.
이런 영적인 축복뿐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오늘날까지 먹을 것 입을 것 마실 것 넘치게 공급을 해 주셨습니다.
날마다 나아가 예배할 수 있는 교회를 주셨습니다.
날마다 들어가 잘 수 있는 집을 주셨습니다.
매 끼니마다 먹을 수 있는 양식을 주셨습니다.
언제든지 마실 수 있는 물을 공급해 주십니다.
얼마든지 섬길 수 있는 성도들을 만나게 하십니다.
있는 힘을 다해 말씀을 연구하여 전해드리다가 하나님께서 오라 하실 때 주님 앞에 가면 됩니다.
이보다 더한 행복을 어떻게 바랄 수 있겠습니까?
여호와께서 나의 목자이시니 부족한 것이 없습니다.
이스라엘아 너는 행복자로다 하신 말씀이 바로 나를 위한 말씀입니다.
양이 좋은 목자가 없다는 것은 큰 불행입니다.
2. 주님은 우리 믿음에 관심을 갖고 계십니다.
(27)예수께서 거기서 떠나가실새 두 소경이 따라오며 소리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더니 (28)예수께서 집에 들어가시매 소경들이 나아오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대답하되 주여 그러하오이다 하니 (29)이에 예수께서 저희 눈을 만지시며 가라사대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신대 (30)그 눈들이 밝아진지라 예수께서 엄히 경계하시되 삼가 아무에게도 알게 하지 말라 하셨으나 (31)저희가 나가서 예수의 소문을 그 온 땅에 전파하니라
오늘 두 소경들은 예수님을 따라 가면서 거지들이 하는 것처럼 끊임없이 부르짖었습니다(27절).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27절).
이 소경들은 죽은 자를 살리시는 그분이 바로 그 메시야라는 사실을 깨닫고 그분께 저들의 문제를 기도와 간구하기로 결심하였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다윗의 아들로 믿고 기도하였습니다(1:1)
예수께서 집에 들어가시매 오실 메시야로 예수님을 확신한 그들은 예수님을 따라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하나님의 문은 끈질기게 강청하는 믿음의 사람들에게 열려 있습니다. 예수을 따라 집까지 따라 들어오는 것이 사람들에게는 무례한 것처럼 보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그들을 책망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믿음을 점검하셨습니다.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지금도 여전히 주님께서는 이 질문을 우리에게 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크고 비밀한 일을 하실 수 있다는 것을 믿는가?" 그리스도의 능력을 믿는다는 것은 그 능력을 확신할 뿐만 아니라 또한 그것에 우리 자신을 맡기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 질문에 대해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즉시 대답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믿었으므로 믿음을 고백하였습니다.
주여 그러하오이다
그리스도의 자비를 얻으려고 하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능력을 굳게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을 그분이 하실 수 있다는 사실을 온전히 확신해야 합니다.'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할'것을 가르치셨던 주님께서는 저들의 기도를 응답해주셨습니다. 그들의 믿음을 부끄럽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백부장은 큰 믿음을 가지고 주님 앞에 나아감으로 하인의 병을 고침 받았습니다(8:10)
중풍에 걸린 사람은 친구들의 믿음의 도움을 받아 구원을 받았습니다(9:2).
12년간 혈루병으로 공생하던 여인은 옷깃만 만져도 나으리라는 믿음으로 병고침을 받았습니다(9:22).
회당장 야이로는 믿음은 믿음으로 딸이 죽음에서 살아나는 기쁨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믿음은 하나님 사랑이란 보화를 받아들이게 하는 필수적인 수단입니다.
갈증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우물이 곁에 있다면 그 보다 더 좋은 소식이 없습니다. 그러나 두레박이나 줄이 없다면 그 좋은 우물도 마실 수 없게 됩니다.
믿음이란 물을 마음껏 마실 수 있는 두레박과 같습니다.
믿음이 때로 가녀린 실처럼 약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믿음은 소중합니다.
어느 지역에 강한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한 생활권에 살던 사람들이 갑자기 생겨난 강으로 인하여 많은 불편을 느껴야만 했습니다. 사람들이 양쪽에 다리를 설치하자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그 위험한 계곡에 다리를 놓을 수 있다는 말입니까? 그들은 한편에서 다른 편으로 화살을 쏘았습니다. 그 화살 끝에는 가느다란 실이 매여 있었습니다. 그 실 끝에는 조금 더 굵은 실이 이어지고 결국은 강한 밧줄에 이어 영구적인 철교가 가설되었습니다.
이런 예화를 든 스펄젼 목사님은 결론적으로 말했습니다.
아무리 약한 신앙인 일지라도 그것은 여전히 최고의 가치가 있는 것이다.
3. 우리의 필요에 관심을 갖고 계십니다.
또한 목자는 양의 필요에 관심을 갖습니다.
두 소경을 만났다고 할 때, 사람들은 무엇에 관심을 가질까요? 소경이 된 원인이 무엇일까? 나면서부터, 질병으로 인해서, 또는 사고로 소경이 되었는가를 알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누구의 죄 때문에 소경이 되었는가를 토론합니다. 오히려 상처만 될 뿐입니다.
귀신들려 벙어리 된 사람을 만날 때, 사람들은 무엇에 관심을 가질까요? 그러나 선한 목자이신 주님께서는 그들의 필요에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리고 필요를 채우십니다.
1] 천국복음을 주셨습니다.
(35)예수께서 모든 성과 촌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2] 추수할 곡식을 많이 주셨습니다.
(37)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은 적으니 (38)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 하시니라
저는 어제 안경을 잃어버렸습니다. 새벽 기도 시간에 쓴 기억이 분명한데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온 사무실을 찾아도 없습니다. 차 안을 뒤져도 없습니다. 집에까지 가서 찾아도 없습니다. 그 중요한 안경인데, 잃어버리는 것은 간간하구나 생각했습니다.
헝가리 단기 선교를 가는 경옥 자매는 시민권을 잃어버려서 애를 먹고 있습니다. 가장 안전한 곳에 두었을텐데 생각이 나질 않는 것입니다.
어떤 분이 공항엘 다녀오셨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보니 부인을 공항에 두고 돌아오셨습니다. 그래 다시 실러 가는 소동을 벌였습니다.
어떤 엄마는 아이를 밖에 두고 혼자 돌아온 경우도 있었다 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자면, 끝이 없을 것입니다. 세상을 살다보면, 이와 같이 중요한 것을 잃고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늘 성경 본문은 농부가 추수할 곡식을 들에 두고도 없는 것처럼 잊고 사는 기막힌 모습을 만납니다.
이것은 우리를 위한 이야기입니다. 우리 농장이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답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의 일꾼임에도 불구하고 추수할 곡식을 무심히 들에 방치해 두고 살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추수할 곡식을 들판에 방치하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다락방은 추수할 곡식을 들판에 방치하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3] 다만 일꾼이 적습니다.
(36)무리를 보시고 민망히 여기시니 이는 저희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함이라 (37)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은 적으니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하는 죄에 빠진 영혼들을 보십니다. 바로 이런 길 잃은 양과 같습니다. 그들을 데리고 돌아갈 목자(보호자)가 필요합니다.
'그들은 목자 없는 양같이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떠나 유리하였습니다.' '그들은 세상에서 고생하고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무리를 보셨습니다.
무리를 보시고 민망히 여기셨습니다. 영적인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그들이 멸망하게 될 것을 아시고 염려하셨습니다. 그들을 동정하시고 염려하셨습니다(36절).
그는 궁핍한 촌까지 가셨습니다.
그는 공적 예배에 참석하셨습니다.
그는 '회당에서' 가르치셨습니다.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신 까닭은 바로 영혼들에 대한 동정이었습니다.
마무리하는 말
일꾼을 보내주시도록 기도합시다.
(38)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 하시니라
모든 성과 촌을 두루 다니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그려지십니까?
왜?
추수할 곡식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알곡에 대한 관심 때문입니다.
곡식은 사람에게 필요합니다.
봉사하는 일꾼이 필요합니다.
낫질할 사람이 필요합니다.
곡식을 한데 묶을 일꾼이 필요합니다
창고에 나를 일꾼이 필요합니다.
보이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는 그의 제자들에게 추수할 일꾼들을 위해 기도할 것을 권면하셨습니다.
'추수할 것은 많되 일군이 적다.'
추수하는 날은 분주합니다. 그런데 그 때에 일군들이 그처럼 적다는 것은 참 애석한 일입니다. 어린아이 같은 일손도 필요합니다. 추수를 관장하시는 하나님께 청하여야 합니다. 신실하며 지혜롭고 부지런한 일군들을 보내 주시기를 그에게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그의 사도들을 보내시기 전에 많은 시간을 기도하셨습니다(눅 6:12,13).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사 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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