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스피스 사역과 연구를 하는 간호사 최화숙 교수의 '아름다운 죽음을 위한 안내서'란 책을 읽으면 임종을 맞이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이 나옵니다.
"죽으면 끝이잖아요" 다 큰 남자가, 그것도 가족이 아닌 사람 앞에서 죽음이 두렵다며 우는 사람이 있습니다.
허공을 노려보며 검은 옷을 입은 남자들이 여러 명 왔다고. '저리 가! 저리 가!' 소리를 지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죽음 앞에서 당하는 두려움은 어떤 고통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고통을 면하기 원하여
강한 수면제를 먹습니다.
강한 진통제를 먹습니다.
항암제를 맞습니다.
그런 것도 통하지 않을 때
죽고 싶도록 아픈 통증으로 인하여 어떤 사람은 자살을 감행한다는 말도 듣습니다.
그러나 고 양 영숙권사님은 이런 통증이 없이 죽음의 강을 건넜습니다.
양권사님께서 받은 축복 중의 하나는 죽음의 강을 건너는 분들이 흔히 겪는 고통이 그분에게는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그분의 눈을 감겨드리며, 양권사님께서 참 고통 없이 가셨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얼굴에 고통이 스쳐간 흔적을 전혀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파스칼은 이런 명언을 남겼습니다.
'당신은 나를 바꾸기 위해 병을 이용하고 계십니다'
죽음 앞에서 고통을 당하는 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하나님께서는 때로 그 자녀를 깨끗케 하시려고 고통을 허락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양권사님께 무엇을 더 깨끗케 하시기 위해 고통을 주실 필요가 없으셨는지 모릅니다. 양권사님께서는 평소에 회개를 많이 해두셨거든요.
고통 없이 죽음의 강을 그냥 건너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주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주안에서 죽는 자들이 복이 있다는 말씀대로 우리 눈에 뵙기에도 복이 있는 모습이셨습니다.
수년 전 양권사님께는 불면증으로 고통을 당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불면증이란 것이 얼마나 사람을 어렵게 합니까? 마음이 여리신 권사님께서는 어떤 사람이 가볍게 던진 조크 한 마디에도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시면서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권사님께서는 로마서 8장을 암송하기 시작했고 이 말씀을 암송하는 가운데 불면증이 깨끗이 치료되었습니다.
이것이 체험이 되어서 양권사님께서는 평생 시간만 있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암송하였습니다. 그리고 성경공부를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성경을 암송하도록 훈련하셨습니다.
권사님께서는 성경을 암송하심으로 병을 이기셨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 말씀대로 삶을 고쳐가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장례식장에서 적절한 성경말씀을 찾기 위해 고심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권사님에게서 고통을 다 극복할 수 있게 하였던 이 말씀을 그대로 전해드리면 되었기 때문입니다. '누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양 권사님을) 끊을 수 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죽음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양권사님을 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 또한 끊을 수 없음을 믿습니다.
무엇보다 감사한 것은 7순이 넘으신 지난주까지도 사람을 키우는 한 알의 밀알로 쓰임을 받은 것입니다.
장례 예배 중에 기도와 사랑의 편지를 낭독한 이 세은 자매, 그리고 이화연 집사님은 양권사님과 최근까지 성경공부를 한 분들입니다.
권사님께서는 세 그룹의 사람들에게 매주 세 차례 창세기 성경공부를 인도하셨습니다.
이세은 자매는 양권사님께서 세상을 떠나시던 날 밤 6시, 양권사님께 성경을 배우기 위해 양권사님 게시던 집 문을 두드리고 있었습니다. 약속을 어길 리가 없는 양권사님께서 그 시간 약속을 지킬 수 없었던 까닭은 바로 그 시간 세상을 떠나 하나님 나라로 여행을 떠나셨기 때문입니다.
양권사님께서는 이화연 집사님께 창세기 성경공부를 전하심으로 귀히 쓰임을 받으시도록 늘 기도하셨는데, 하나님 나라로 떠나시던 그날에도 이화연 집사님 집을 찾아가 함께 기도하셨습니다. 다만 Good Bye!라고 인사를 남기지 않았을 뿐입니다.
이집사님은 "보석이 없으셔도 빛나던 분, 믿음의 어머니로 저의 곁을 든든히 지켜 주셨던 사랑하는 " 양권사님을 눈물로 환송하며 '사랑의 편지'에서 이렇게 묻습니다
"하지만 권사님 제게 약속을 어기셨어요 아시죠? 창세기 8과가 끝났을 뿐인데 20과까지 내 주신 숙제검사도 하셔야죠."
양권사님께서는 세상을 떠나셨기 때문에 그분이 섬기던 세 그룹의 성경공부팀은 선생님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양권사님께서 그분들 안에 한 알의 밀알로 다시 움틀 것을 저는 믿습니다.
한 알의 밀 알이 땅에 떨어져 썩으면 반드시 많은 열매를 맺기 때문입니다.
저는 양권사님의 죽음이 하나님께서 마련해 주신 무대에서 아름다운 작품을 올려드리고 무대를 내려오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분의 생애는 최선을 다한 한 편의 감동적인 드라마였어요. 주역을 맡았다고 말할 수 없을지 모릅니다. 경성의전을 들어가셨을 만큼 능력이 있었지만, 6.25후, 당시 이발사 아저씨들만큼도 남편감 후보로는 인기가 없었다는 신학생과 결혼하셨으니까요.
지금은 2000명의 영혼들을 매일 섬기는 하남 장로교회로 성장했지만, 당시 권사님께서 부군과 함께 교회를 개척하실 때, 맡으신 배역이란 공동묘지 곁에 흙벽돌을 찍어 하늘이 훤히 보이는 교회당을 세우고, 거적 위에 무릎을 꿇고 밤마다 귀신과 더불어 싸우며 기도하시던 일이 권사님의 맡은 일이셨습니다.
목사도 되어보지 못한 채, 경겁간에 세상을 떠나신 부군을 보내고, 일곱 살 난 아들의 손을 붙들고 태평양을 건너 홀로 자식을 키우기 35년!
권사님은, 비록 아역이랄 수밖에 없는 위치에 늘 계셨지만 당신에게 맡겨진 배역을 훌륭하게 감당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퇴장하셨습니다.
총 감독이신 하나님의 흡족한 웃음을 생각해봅니다.
죽음을 '걱정은 되지만 대단치 않은 것'쯤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지만, 권사님의 경우 죽음은 참 숭고하셨어요.
지금 지구 동쪽 끝에서 사역하고 계시는 최장로님께서 양권사님께서 돌아가셨다는 부음을 들으시고 보내오신 편지를 읽음으로 글을 맺습니다.
권사님이 남기신 아름다운 여운들은
오랫동안 메아리쳐 올껍니다.
편히 쉬세요.
안식하기에는
그곳이 훨씬 좋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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