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24 February 2015

중세의 영적등대-루터(2. 회복)

죄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루터의 두려움은 지나치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가 젊은 날, 남다른 깊은 죄의식으로 몸부림친 까닭도 이 두려움으로부터 체험적 구원의 확신을 얻지 못한데서 온 번민으로 보인다. 그는 하나님의 구원을 체험적으로 확신하고 싶었다. 철저히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구원의 확신을 얻고 싶었다. 이런 루터의 체험적 신앙이 당시 많은 사람들이 안주하던 성직제도나 성례전에 쉽게 동의하지 못하게 했다.
병적일 만큼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두려워하던 루터가 회복의 실마리를 찾기 시작한 것은 몇가지 축복을 만났기 때문이다.

첫째는 좋은 스승 슈타우피츠를 만남으로서다.

"참 회개는 형벌하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한다고 되지 않는다.
참 회개는 하나님을 사랑할 때 온다."
그의 눈을 번쩍 뜨게 한 맨토와의 거듭된 만남은 그의 내면에 하나님의 사랑을 점차 회복시켜주었다. 신비주의 안에서 그에게 다가 온 구원의 길은 자아의 몸부림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임재와 사랑 앞에 자신을 맡기는 일이었다. 자신의 공로나 노력이 중요한 게 아니다. 촛불은 태양 앞에서 빛을 발하려 힘쓰지 말라. 물방울은 바다에 영향력을 미치려 하지 말라. 피조물은 창조주 안에 온전히 맡기라. 구원을 위해 몸부림 치려 하지 말고 하나님의 깊은 것에 맡기라. 슈타우비츠는 루터가 구원 신앙을 너무 어렵게 만들었음을 지적했다.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나님의 사랑하심 안에 구원이 있다. 그는 대담하게 하나님의 사랑이 가득 찬 하나님의 말씀 연구에 그를 초대했다.

그보다 천년 전에 살았던 어거스틴 또한 그의 좋은 맨토였다.

어거스틴은 루터를 자기 자신의 공로에서 벗어나 그리스도의 삶과 죽으심을 바라보도록 해 주었다. 어거스틴은 그리스도를 바라봄으로 구원을 얻도록 비젼을 심어준 스승이다.
그것은 신비 바로 그것이었다. 신비한 신앙에 버나드와 같은 영적으로 깊은 경지에 있었던 분들과의 만남이 영향을 주었음은 물론이다.

무엇보다 그를 확신 가운데 인도한 것은 성경연구였다.

그는 29세의 젊은 나이에 신학박사가 되어 성경을 강의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고 있었다. 시편, 로마서 갈라디아 히브리서 디도서 등을 연속적으로 강의하면서 진리 안에서 답을 찾아갔다.
'구원은 사람의 공로에 기초를 두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온다.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으나 아직 죄인인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추구하고 즐거워하는 사함을 받은 죄인이다.'
그는 말씀 안에서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가 올바로 맺어져 있을 때, 그곳에 구원이 있음을 깨달아 갔다. 이는 하나님의 은사이지 결코 어떤 의를 행한다고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로마서를 연구할수록 그가 확신할 수 있었던 건 복음의 주제가 죄를 용서임을 확신하게 되었고, 하나님의 약속인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신뢰하고 의존하게 되었다.

루터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갈등을 치유받고
하나님을 새롭게 바라보게 되었다.

아 오직 의인은 하나님의 사랑이신 독생자를 믿음으로 사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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