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도 신사참배는 못한다"
순교자 주기철 목사 아들 주광조 장로 '나의 아버지…' 출간
"따뜻한 숭늉 먹고 싶다던 아버지, 저 세상갈 때 제가 가져가겠습니다"
朱목사, 조만식 선생 초빙으로 교회 당회장에
日, 가족 면전서 고문… 5번 구속돼 끝내 獄死
입력 : 2004.10.28 17:38 47'
▲ 주광조 장로
“어머니는 면회실로 들어가면서 문을 천천히 여셨다. 안을 들여다 보았더니, 7~8미터 앞에 푸른 죄수복을 입고 머리를 빡빡 깎은 채 아버지께서 나를 보며 웃고 계셨다. 아버님의 얼굴을 3초 정도나 보았을까?(중략) 차렷 자세로 아버지를 향해 90도로 고개를 숙여 큰절을 했다. 그리고 다시 아버지를 보고자 머리를 들었을 땐 이미 아버지의 모습은 없어지고 눈앞에는 붉은 철문이 닫혀 있었다.”
일제의 신사참배를 끝까지 거부하다 광복 1년 전 평양에서 순교한 주기철(1897~1944) 목사. 한국 개신교사의 대표적 순교사례 중 하나로 꼽히는 그의 일대기를 막내 아들 주광조(72) 장로가 수기로 적은 ‘나의 아버지 순교자 주기철 목사’(대성닷컴)를 발간했다. 주 목사 순교 당시 열두 살이었던 막내아들의 눈에 비친 아버지의 모습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결연함이 보태져 더욱 애절하고 처연하다.
경남 창원 출신으로 오산학교와 평양신학대를 마치고 고향에서 목회활동을 하던 주 목사에게 시련이 시작된 것은 오산학교 은사이자 평양 산정현교회 수석장로로 있던 조만식 선생이 그를 산정현교회의 당회장으로 초빙하면서부터다.
이 교회에 부임한 주 목사의 첫 설교는 “신사참배는 십계명의 제1계명과 같이 여호와의 이름에 대한 범죄요, 하나님께 대한 배신이다”였다. 일제의 감시를 받던 주 목사는 결국 부임 1년 반 만인 1938년 처음 구속된다. 주 목사는 모두 5차례 구속됐고 임종은 감옥에서 맞았다.
일제의 고문에 결국 굴복한 다른 목사들이 주 목사 가족을 찾아와 눈물 흘리는 장면, 일제에 의해 목사관에서도 쫓겨나 잠자리와 끼니를 걱정하는 가족에게 담 너머에서 수수, 보리, 콩, 조를 넣은 자루를 던져주는 교인들의 이야기는 독자의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일제는 때로 가족의 면전에서 ‘공중그네’를 태우고 고춧가루 물이 가득 찬 주 목사의 배를 짓밟아 물을 토해내게 하며 굴복을 강요하기도 한다.
주 목사는 부인에게 ‘솜을 안 넣은 옷’을 넣어달라고 부탁한다. 겨울날 핏물이 솜에 스며 얼어붙는 바람에 상처를 덧나게 한다는 것. 그 참혹한 충격에 막내는 실어증에 걸렸다. 그러나 주 목사는 굽히지 않는다.
다섯 번째로 구속되기 전 주 목사는 어머니에게 이렇게 기도한다. “하나님! 불의한 이 자식은 제 어머니를 봉양하지 못합니다. 오, 주님! 내 어머니를 내 주님께 부탁합니다.”
그를 지켜낸 것은 올바른 신앙 한 가지였다. 주 목사가 임종 직전 마지막 면회에서 부인에게 한 말은 “여보! 나 따뜻한 숭늉 한 그릇 먹고 싶은데…”였다. 그래서 막내아들은 자신이 죽으면 입관할 때 가슴에 숭늉 한 그릇을 올려달라고 아내에게 부탁한다. 저 세상에서라도 아버지께 따뜻한 숭늉 한 그릇 드리면서 이 세상에서 못 다한 효도를 다 하고자 하는 마음이다.
저자 주 장로는 광복 전까지는 정규학교를 다니지 못하다가 광복 후 학업을 시작해 연세대를 나와 극동방송 부사장과 상임고문을 역임하고 현재는 부친의 순교를 증언하고 간증하는 일에 힘을 쏟고 있다. 이번 책은 한국 개신교 초기 역사를 외국인들에게 전하기 위해 영한대역본으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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