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24 February 2015

윌리엄 존 매켄지

우리 고국에 선교사로 와서 1894년 소래에 교회를 세우고 약 10개월 정도 사역을 하다가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은 윌리엄 존 매켄지란 분이 있습니다.

그는 캐나다 노바스코샤의 케이프 브레튼에서 태어났습니다.
하나님께 선교사로서의 부르심을 받고 Korea를 향해 떠나던 어느날, 그는 대륙횡단 기차를 탔습니다. 기차가 록키 산맥 부근에 이르렀을 때는 토요일 밤이었습니다. 그는 깜깜한 밤에 주섬주섬 짐을 챙기더니 기차에서 내리는 것이었습니다. 그와 함께 여행을 하던 사람들이 놀라서 말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주일에는 절대로 여행하지 않겠다는 것이 그의 신앙신념이었습니다.
하지만 황량한 허허벌판에서 하룻밤 묵어갈 숙소를 찾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가까스로 역사에서 멀지 않은 곳에 불빛이 반짝이는 것을 발견한 그는 찾아가 문을 두드렸습니다. 그곳은 그가 묵을 수 있는 유일한 숙박소였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는 술주정꾼들이 술과 도박으로 밤을 새우는 곳이기도 하였습니다. 낯선 사람의 출현에 호기심을 가진 사람들이 그의 주위에 나타나 이것저것을 묻기 시작했습니다. 얼마의 시간을 보낸 그는 그들에게 한 가지 부탁을 했습니다. 자신이 취침 전에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습관이 있으니 그 기간동안 그들이 참여해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놀랍게도 그 말을 들은 그들은 술과 도박을 중단하고 침묵을 지켜주었습니다. 

그리고 이틑날 아침, 그러니까 주일 아침 11시에 예배를 드릴 것을 들은대로, 청중이 되어 나타났습니다. 성령께서 저들의 굳은 심령을 녹이셔서 눈물로 얼굴을 적시게 하였습니다. 그들은 마음으로 새롭게 되어 보다 나은 삶을 약속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다음날 눈물로 따뜻이 배웅하는 것이었습니다. 

1893년 12월 12일 제물포에 도착한 그는 서울을 거쳐 소래 땅으로 들어갑니다.
조선인 옷을 입었습니다.
조선 음식을 입었습니다.
조선말을 배웠습니다.
동학란에도 소래 사람들과 같이 있으면서 전쟁으로 다친 사람들을 돌봐주었습니다.
조선사람들의 힘을 일으켜 세워진 두 번 째 교회가 바로 그의 기도와 수고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조선사람들이 수 백년 동안 서낭제를 지내던 바로 그 자리에 교회를 세웠다니 더욱 감동적입니다.
이 교회가 세워지는데는 교인들의 헌신과 80일간, 교인들이 무료 노동을 통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는 조선 사람들과 똑같이 먹고, 똑같이 입고, 똑같이 생활을 하다가 1895년 6월 22일 거의 읽어볼 수가 없을 정도로 필체가 흐려진 필체로 마지막 일기를 적었습니다.
"예수님은 나의 유일한 희망입니다"
그리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너무 아깝게 땅에 떨어져 썩은 한 알의 밀알이 되었지만, 예수님은 그의 소망만 된 것이 아니고 우리 모든 민족의 소망이 되었습니다.
소래 사람들은 그를 보내고 "그처럼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은 없다"는 고백을 하였습니다.
윌리엄 J. 맥켄지 선교사님은 조선 사람들의 아픔에 깊은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들 사이에 파고 들어갔습니다.
그들의 문제를 함께 나누었습니다.
복음으로 변화시켰습니다.
일어나 예수님을 좇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분이 제일 빨리 배운 조선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빨리빨리입니다.
110년전에 고국땅을 밟은 선교사님이 처음배운 단어가 빨리빨리 라니 참 놀랍습니다.
그때 조선 사람들도 빨리를 많이 사용했었나 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분의 전도열정입니다.
100여년 전에 한국 땅에 복음이 전하여졌을 때, 그는 이런 사명을 잘 감당하였습니다.


이런 선교사들의 헌신적인 선교의 결과 
지금 한국에는 6만교회, 10만 목회자, 1,000만 신자가 있습니다.
새벽부터 하나님을 예배를 하는 백성들이 넘치는 교회입니다.
교회마다 성도들이 십일조를 비롯한 헌신 생활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세계 많은 교회가 굉장하게 생각하는 일들을 한국교회는 일상적으로 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한국 교회가 복을 받은 것은 12,000명 이상의 선교사를 파송하고 후원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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