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 운동이 일어난 지 150여년이 지난 독일은 영적 및 사회적으로 캄캄한 밤과 같은 시대를 지나고 있었다. 성직자들은 사변적 교리 논쟁에 기우러 졌고 예배는 형식에 그쳤으며 교인들은 설교 시에 잠자는 것이 예사로운 일이 되었다. 1648년에 그친 “30년 전쟁”은 독일을 극도로 황폐하게 만들었다. 도시와 마을들은 폐허가 되었고 인구는 3분의 1로 줄어들었으며 굶어서 죽은 시체들이 곳곳에 널려 있었다. 마르틴 루터가 개혁의 봉화를 든 지 158년이 되던 1675년 독일에는 어두움을 밝히는 하나의 각성 운동이 일어났다. 즉 독일 경건주의 운동의 창시자 야콥 슈페너가 독일 경건주의 운동의 헌장이라고 할 수 있는「경건한 소원」이란 글을 발표하므로 하나의 각성 운동을 일으킨 것이었다.
슈페너는 교회와 사회의 타락상을 다음과 같이 탄식하며 묘사했다.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몸이 지금 고통과 질병으로 괴로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질병이 무엇인지를 알아내야 할 것입니다. 성령의 조명을 위한 뜨거운 기도를 하나님께 드리면서 치료의 방법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교회의 영적 비참상이 너무나도 심각하고 위태로운 형편입니다. 대부분의 정치가들은 죄와 방탕 가운데서 살고 있고 통치자들은 자신들의 유익만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성직자들의 생활은 세속적 풍습에 빠져있고 육체적 쾌락과 안목의 정욕을 추구하며 교만한 태도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좋은 자리만을 찾아 이 교회에서 저 교회로 옮기고 음모만을 꾸미고 있지 않습니까? 설교자들은 성령의 사역에 의지하지 않고 그들 자신의 인간적 노력에 의해서 성경의 문자만을 조금 배웠고 옳은 교리를 이해하고 받아들였으며 그리고 설교하는 것까지도 배워서 알지만 그러나 참된 하늘의 빛과 신앙의 생활이 무엇인지를 도무지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야콥 슈페너 한 사람의 각성의 탄식과 회개의 기도와 개혁의 제안은 독일 교회 안에 즉각적이고도 열광적인 반응을 불러 일으켰다. 슈페너는 300통 이상의 편지를 받았는데 대부분이 그의 각성 운동을 지지하는 편지들이었다. 튜빙겐 대학의 신학교 교수들은 슈페너가 제안한 개혁 방안을 공적으로 찬양하며 지지하기까지 했다. 독일 안에 영적 각성 운동이 일어난 것이었다. 회개 운동과 성경공부 운동이 일어났다. 그것은 또한 윤리적 각성으로 이어졌다. 고아와 과부들을 돌보는 일과 병자들을 돌보는 사랑 실천 운동이 일어났다. 영적 각성 운동은 선교 운동으로까지 이어졌다. 독일 경건주의의 모라비안 선교 운동은 현대 선교 운동의 시발점이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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