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S 원장은 이곳 북방에 도착한 지 20년이 넘었다.
40대에 부름을 받았는데 벌써 7순에 접어들었다.
이젠 사람들이 그 삶에서 그분의 존귀와 인자함을 만난다.
그는 때로 그를 찾아와 그 비밀을 묻는 후진들에게 말한다.
"이 시대에 누가 박사, 의사, 대통령을 존경하나?
이곳에 꼭 필요한 사람이 되라. 그러면 존경 받는 사람이 될 것이다!"
그의 생애를 조금 들쳐 보면서 가지마다 알알히 열매가 맺힌 그 인생의 뿌리를 살펴본다.
1. 바다가 그렇게 좋았던 사람, 바다를 등지다.
어린 시절부터 그는 바다를 유난히 좋아했다.
그는 때를 따라 옷을 바꾸어 입는 바다의 색깔들이 좋았다.
싱싱한 바다 냄새를 심호흡하노라면 용기가 힘 솟고는 했다.
파도가 치는 날에도 울렁거리는 바다의 설래임이 있어 그의 꿈을 부풀게 하였다.
젊은 날 뱃사람이 된 것도, 해군에 입대한 것도, 상선을 탄 까닭도 바다가 좋아서다.
바다와 함께 살 수 있다면, 돈벌이가 별로인 조그만 어선을 타도 행복했다.
바다는 생각만 해도 그에게 기쁨을 주는 좋은 동무였다.
그는 신혼의 꿈 대신 바다와 함께 사는 꿈을 꾸고 있었다.
그러나 그에게 행운을 가져다 줄 것으로 생각했던 바다가 큰 낙망을 안겨 주기도 했다. 항해사였던 그가 타야할 상선이 대만 길융항에서 출항하려던 어느 날, 산더미같은 파도가 밀려와, 상선과 동료들을 송두리째 삼켜버렸다. 순식간에 일어난 좌초 침몰 사고였다. 선원들을 급히 대피시키려고 몸부림치던 선장도, 몇 사람들을 구명보트에 실어 내보냈을 뿐, 미처 피하지 못했던 사람들과 함께 바다에 침몰하고 말았다. 그날 사망 자 가운데는 자기 대신 그날 배에 승선한 친구 항해사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가 사고를 당하지 않고 생명을 받은 것은 엉뚱한 이유 때문이었다. 그 사고가 있기 얼마 전, 그에게 갑자기 급성 맹장염이 발생했다. 이 발병으로 인하여 그는 상선 대신 병원에 실려 갔다. 친구 항해사가 그를 대신하여 배를 타야했고,그 배는 바닷 속에 가라앉고 말았다. 그리고 그 친구는 배와 함께 순직했다. 자기를 대신하여 그 항해사 친구는 죽은 셈이었다.
'곧 죽을 것만 같아 아픈 배를 움켜쥐고 병원에 실려간 나는 살아있는데...... . '
침몰된 배의 뱃머리를 멀리서 바라보며 그는 깊은 상심에 사로 잡혔다.
'네가 내 자리에서 죽어갔구나! 나의 빈 자리를 채우고!'
친구 항해사의 죽음은 예사로울 수 없었다. 어떤 곳에서 지진이 일어나 2-3천명이 몰살을 당했다는 기사를 대할 때는 안됐다 싶었다. 어떤 지역에서 폭풍과 해일이 수만명의 목숨을 앗아갔을 때도 어느정도 놀랐다. 하지만 수천 년 전, 폼페이 화산 폭발로 그 도시가 용암 속에 파묻혔던 기사만큼이나 담담한 것도 사실이였다. 그 사건이 나와 별 상관이 없어 보였다. 안타까움과 탄식이었지만, 그것은 지나가는 바람 소리처럼 내면을 스칠 뿐이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을 먼저 보내고 수장된 선장이나 그의 자리에 머물다 간 친구의 죽음은 달랐다. 세상에 보도된 그런 보편적 죽음일 수 없었다. 생명과 자리를 그와 바꾼 것이다. 자신의 목숨처럼 아프게 느껴졌다. 죽음은 여러가지나 나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또 다른 죽음이 있을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이 세상에는 분명 나의 생명과 깊은 관계에 있는 죽음이 있다. 그 선장과 친구 항해사의 죽음은 그의 마음에 매우 소중하게 다가왔다. 선장과 항해사의 희생은 다른 사람의 삶을 전제로 한 죽음인 것이다. 타인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생명은 묻은 것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그는 인생을 좀더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그토록 좋은 바다도 줄 수 없는 것이 있다. 생명이었다. 그에게 구원을 가져다 주지 못한다.
과연 바다에 남은 인생을 걸고 살아간다는 것은 올바른 선택인가?
하나님께서는 어떤 목적을 위해 그를 세상에 남겨두셨을까?
훗날 그의 누님이 전해주신 성경에는 이런 말씀이 이미 기록되어 있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사53:5)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예언하신 대로 그를 위해 2천년 전에 골고다 십자가 위에서 크고 비밀한 일을 행하셨던 하나님, 하나님께서 그 인생에 찾아와 놀라운 계획을 은밀히 추진하고 계셨다.
예수님을 영접한 후, 예수님의 대속적 죽음에 대하여 깊은 이해를 할 수 있었던 데에는 이 선장과 항해사의 죽음이 계기가 되었다. 다만 그는 하나님의 그 깊은 사랑을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2. 그때에 그의 주님은 이렇게 그를 찾아오셨다.
그는 원래 기독교인은 아니었다. 그가 좋아서 읽던 책은 럿셀의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Why I Am Not a Christian, 1927,London)와 같은 책이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런 책을 읽으면서 성경을 읽어보고 싶었다. 큰 흥미를 얻지 못한 재 덮었지만 그렇게 해서 성경을 처음으로 만나게 되었다.
미국선박회사에 취업하여 상선을 타고 미국으로 처음 출항하던 날, 그를 사랑하는 누님이 손에 소중한 책 한권을 쥐어 주었다. 성경이었다. 이는 두번 째 성경과의 만남이었다. 신앙심이 깊었던 누님은 주님 앞에 나갈 때마다 그를 위해 기도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아직도 신앙에 깊은 관심은 없었다. 큰 부담 없이 성경을 받았고, 그가 탄 배 역시 순조로히 항해를 하고 있었다. 바닷사람들이 대부분 그렇게 사는 것처럼 그는 담배와 술에 푹 젖어 있었다. 술을 적당히 마셔야 깊은 잠이 들만큼 애주가였다. 갑판에 서서 푸르른 하늘과 망망한 대해를 바라보며 담배연기로 여러 가지 멋을 만들어 보이는 애연가였다.
뱃사람이 되어 배로 바다를 받갈아 오가기 7년, 함께 하던 형제가 농담삼아 말했다.
"우리 배가 지나가는 해로에 사는 고기들은 아마 우리를 알아볼 걸"
고국을 떠나 밤낮 없이 태평양을 항해하기 3주일, 저멀리 도심의 불빛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당시 미국 회사는 한국인들의 항해술을 미심쩍어 하여 낡은 선박으로 시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멀고 먼 항해를 성공적으로 마친 것이었다. 목적지 샌프란 시스코를 향해 입항할 때, 말할 수 없는 상쾌함이 가슴 가득 몰려왔다. 아름답기로 세계적이라는 항구 도시, 샌프란 시스코를 향해 환호하는 친구의 소리가 들렸다.
"최고의 갑부 이병철씨가 이런 기분을 느껴보았을까?"
상선이 포틀랜드에 이르렀을 때, 놀라웁게도 그들을 환영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 항구를 찾는 선원들에게 전도하는 사람들이었다. 포틀랜드 시멘즈 선원센타에서 나온 Gospel Union Mission 소속의 선원 전도단이었다. 그들은 배가 도착하는 날을 맞추어 기도하며 기다리다가 그 시간에 선창가로 마중나온 것이었다. 외로운 선원들에게 다가와 선물도 나누어 주고 교회의 좋은 프로그램에 초대를 했다. 그들 가운데서 그의 인생의 전환점을 이룬 Mike Mcgrady를 만나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였다.
그러나 그는 교회보다 테니스에 관심이 깊었다. 그는 친구와 함께 배가 정박해 있던 부두를 떠나 가까운 도시 포틀랜드로 향했다.
그의 친구 가운데 바다를 유별나게 좋아하는 뱃사람 김성식이 있었다, 그는 해변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결혼식을 올렸다.
'까짓 것 배를 타다 싫증나면 파일럿이 되는 거야'
라고 노래하던 시인, 한 달이 넘는 장도의 여정에 겨우 한 줄 싯구를 만들지라도 뛸듯이 기뻐하는 진짜 해양시인이었다.
멋과 낭만에 젖어 길을 가는 두 사람, 주님께서 그들의 길에 함께 하심을 알았을까?
만취하여 길을 가는 두 청년
같은 기숙사에 사는 프린스턴 대학 친구
교회 앞을 지나다가
그 게시판에 긹된 말씀을 읽었네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느니라."
그들은 큰소리로 복창한 후
하하하 박장대소
얼마나 재미있는가?
욕심이 잋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는다니
웃으며 복창한 이 말씀이 한 청년의 심령을 흔들 줄이야.
가던 길을 돌이켜 그 교회로 들어가고
"주님 제 욕심이 잉태하여 죄를 낳았고
제 죄가 장성하여 사망을 낳고 있습니다."
회개한 그는 빛의 길로 걸어갔네
그리고 30년
미국 22대 대통령(클리브랜드)이 되었네.
그러나 다른 친구는 자기 길로 계속 나아가
옛 생활 그대로 살다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네.
어인 일일까?
한 사람은 하나님 형상 회복
한 사람은 죄에 그 기능을 마비당한 차이네
- '내가 이렇게 행복한 이유'에서-
태니스장을 향하던 그들이 테니스장에 거의 도착했을 무렵, 그들은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을 만났다. 선착장에서 전도하던 바로 그 교회의 사람들이 그들을 친절히 교회로 영접하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테니스장은 바로 교회 옆에 있었던 것이다. 그날, 그들이 포틀랜드 교회 방향으로 향하였던 까닭은 교회 옆에 있는 테니스 장에서 운동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테니스장에 들어가기도 전에 여러 교우들의 친절에 인도되어 교회 안으로 들어갔다. 주일 예배가 진행 중이었다.
그는 뒤편에 앉아 그냥 예배를 보고 있었다. 그때, 한 점쟎은 분이 그의 곁에 다가와 앉았다. 선창가에서 열심히 구제선교를 하던 바로 그 외국인, Mike와 함께 전도하러 다니는 친구였다.
강단에서 외치는 목사님의 설교는 흥미있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조선 말기, 서양인들이 처음 들어오던 시기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었다.
서양인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축구를 하고 있었다. 어떤 양반이 그곳을 지나가다 물끄러미 바라보기 시작했다. 혀를 끌끌 차며 하시는 말씀:
"상놈을 시켜 공을 차게 할 일이지 왜 저렇게 땀을 흘리며 고생을 하는고!"
설교를 듣던 교인들이 배꼽을 쥐고 웃었다. 그러나 설교를 알아듣지 못하는 Mike의 친구는 눈만 껌벅이고 있었다. 그는 메모지에 설교 중에 들려 준 이야기를 간단히 메모하여 그에게 전해주었다.
이렇게 하여 그들은 교제 통로가 열렸다. 아래 친교실에 내려가서도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한국인이 아닌, 한국인들에게는 낯설기만 한 미국인이었다. 하지만 이런 일련의 만남을 통해 생애에 영원히 잊지 못할 생명의 은인이 되었다. 그는 독실한 하나님의 일꾼이었다. 가난하고 외로운 자들을 생각할 줄 알아 구제품을 듬뿍 마련하여 선창가를 찾곤 하였다. 복음의 대사 Mike씨가 선원 전도를 하던 어느 날, 낯설고 친절하고 덕스럽게 보이는 이 한국인에게 관심이 갔다.
그가 술을 한 잔 걸친 채, 배에서 좀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던 어느날, 그 Mike씨가 그를 찾아왔다. 찾아온 손님을 정중히 모실 양으로 항해사 실로 인도했다. 그런데 웬일인가! 방에 들어서자 마자 그 점잖은 미국 신사 일행이 그 앞에 무릎을 털썩 꿇는 것 아닌가! 그리고는 눈을 감고 간절히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의 영혼 구원을 위해서, 항해 중 안전을 위해서, 그의 장래를 위해서 간절히 기도하는 것이었다. 너무나 황송했던 그는 자기도 모르게 그들과 함께 철판 위에 털썩 무릎을 꿇고 함께 눈을 감고 있었다. 하챦은 한국의 선원 한 사람을 위해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는 그들의 중심 앞에서 그의 마음은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는 조용히 죤슨 씨에게 물었다. '당신들은 전도할 때 무릎을 꿇고 하나냐'고. 그들은이렇게 복음을 전한 일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기도가 끝나고 4영리를 꺼내어 기독교 진리를 설명해 줄 때, 늘 피상적으로 겉돌던 예수님의 죽음이 나를 위한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신 죽어간 선장의 희생정신이 생각났다.
'2천 년 전 유대 땅에서 죽어가신 예수님의 희생이 나를 위한 것일 수 있다!'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는 예수님 당신의 죄때문에 죽으신 것이 아니라 세상 죄를 위해 죽으셨다는 것이 믿어지기 시작했다. 바로 죄인된 나를 살리시기 위해 대신 죽으셨다.
엊그제도 아니고 2천년 전에 십자가상에서 죽으신 사건을 상기하면서, 그를 위해 돌아가셨다는 사실이 실감 나기 시작하다니 분명 그에게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아무리 환한 보름밤이라도 두어 주일이 지나면 깜깜한 밤이 온다 말하는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듯
오늘 아무리 깜깜한 밤일지라도 두어 주일이 지나면 화안한 보름달이 떠오릅니다 말하는
그는 참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를 누리며 희희낙낙하는 자에게
당신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갈어갈 시간 앞에 서있다면 거짓말일 수 없듯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헤매며 죽을 맛인 형제자매에게
하나님 믿고 그 구원의 지팡이와 막대기만 붙드세요 생명의 길 있습니다 말하면
그는 참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복을 받아 잘산다는 인생이라도 한번 죽는 것은 정한 일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 말씀이 거짓말이 아니듯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하는 자 곧 그이름을 믿는 자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는 말씀은 참말입니다.
헛되고 헛되니 해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것이 헛되다 인생을 점검한 전도자가 거짓말쟁이일 수 없듯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하시며 당신을 위한 놀라운 계획을 가지셨다는 건 참말입니다.
사람은 죄에 빠져 하나님으로부터 떠나 있습니다 는 원리가 거짓일 수 없듯이
예수 그리스도만이 사람의 죄를 해결할 수 있는 하나님의 유일한 길입니다
전하는 그는 참원리를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의 십자가 아래서 나의 구주 나의 하나님! 외치는감격이 거짓일 수 없듯이
나를 위한 하나님의 사랑과 계획을 알고 또 그것을 체험하였다는 복음 또한 참입니다.
눈물로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둔다는 말씀이 거짓일 수 없듯
해산하는 여인의 고통이 어린아이가 태어남으로 엄마의 환희로 녹아드는 것 또한 참말입니다.
죄를 내뿜고 성령을 받아들이는 영적 호흡 누림이 살 길이라는외침 은 참말입니다."
그는 복음을 들으면서 마음 깊은 곳으로 주님을 영접하고 있었다.
사람마다 허물이 있다.
사람마다 죄와 악이 있다
사람마다 불안과 근심이 있다.
사람마다 아픔이 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허물과 죄악, 불안, 근심, 아픔을 대신 지시고 돌아가셨다. 나아가 나의 허물 때문에 예수님께서 찔리셨음을 믿기 시작했다.
나의 죄악 때문에 예수님께서 상하셨구나!
나의 불안과 근심 때문에 예수님께서 징계를 받으셨구나!
나의 아픔 때문에 예수님께서 채찍에 맞으셨구나!
이런 깨달음을 갖기 시작했을 때, 예수님의 십자가는 그 누구 때문이 아니고, 바로 나 때문이다. 나때문에 예수님께서 고난을 받으셨음을 고백할 수 있었다.
그는 숲 사이를 달리며 환호하고 싶었다. 예수님의 고난 당하신 사건은 이 세상 그 무엇보다 나와 상관이 있다.
옛 사람을 그 동료들과 함께 그리도 사랑하였던 바다와 함께 묻으리라.
보이는 물질을 찾아 바다를 헤매던 그의 인생은 보이지 않는 세계로, 위의 것을 찾아 조금씩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영적인 세계의 소중함에 눈이 띄이기 시작했다. 하나님께서 나를 찾아오셨구나! 마음 문을 두드려주시는 주님이 감사했다.
그에게 있어 하나님은 자녀를 생각하시고 그리워하셔서 늘 찾아오시는 어머니같으셨다.
아들을 늘 생각하며 사시던 어머니.
아들 만나기를 가장 즐거워 하셨지.
하나님!
아들이 그리워 찾아오시던 어머니 같으신 하나님,
나같은 죄인을 자녀 삼으시고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눈물되어 녹아 내렸다.
하나님의 사랑이 끊임없이 느껴지는 가슴으로 살아야지
그 하나님을 늘 찬양하는 입술로 살아야지
감사와 감격이 일마다 넘치는 삶으로 살아야지
기쁨이 함박꽃처럼 피어나는 얼굴로 살아야지
그는 찾아온 두 분에게 궁금한 것을 물었보았다.
당신들은 전도할 때마다 이렇게 무릎을 꿇고 눈물로 전하느냐고.
아니라고 했다. 처음이었다고.
그는 예수님을 그의 주인으로 모셔들었다
며칠 후, Mike씨가 그의 친구와 함께 다시 그를 찾아왔다. 배를 방문할 때마다 늘 그러는 것처럼 그들의 손에는 그의 정원에서 가꾼 꽃이 한 다발 들려 있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하였으니 세례를 받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그는 교회에 나아가 세례를 받기로 했다. 그러나 세례를 받기 전해 청산하고 싶은 것이 있었다. 그것은 옛사람이었다.
하지만 그의 내면에서 때로 흘러나오는 탄식도 있었다.
'아직 옛 주인이 쓰다버린 온갖 쓰레기들이 나의 방 안 여기저기에 지저분하게 널려 있고
나의 욕심들은 죽순처럼 솟아나 숲을 이루고 있구나! '
주님 오실 날은 가까워 오는데 니의 내면은 온전한 성전이 되어 있지 못하구나.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누가 나를 이 사망의 몸에서 구원할꼬?'
그를 찾아오신 주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셨다. 성전된 그의 심령을 주님께서 말씀으로 깨끗이 청소하기 시작하셨다.
"음란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가운데서 그 이름이라도 부르지 말라."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에게 명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정욕을 제어하라."
주님의 말씀이 성전된 그를 정화하기 시작하였다. 외모관리야 지금까지 곧잘 하였지만, 내면 관리는 흡족할 수 없었다. 심령은 벌판처럼 황폐해 있었다. 믿음 생활 수십 년을 가도 아직 해결청소 한 번 제대로 안한 채 건성으로 실아온 나의 속사람이여! '나도 몇 년 전에 청소한 적 있어요. 그 상쾌함이 그리워요' 첫사랑 타령을 18번으로 노래하고 살아 온 어리석음이여! 누적된 더러운 죄들이 누룽지처럼 늘어붙어서 악취가 나고 있었다. 시기, 질투, 미움, 음란, 분노 등 너무도 더러운 것들이 심령을 암 덩어리처럼 상하고 있었다.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입니다. '
회개가 비로소 강처럼 그의 깊은 내면 세계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마음 다른 한 편에서는 강한 고소가 들어오고 있었다. 네가 어떻게 천국백성이 될 수 있다는 말이냐? 옳습니다. 제가 어떻게 주님 자녀가 될 수 있겠어요. 저는 자격이 없네요. 갈등 속에 뒤척이다 이내 잠이 들었는가? 아빠와 어린 아들이 마주 앉아 대화하는 모습이 보였다.
우리에게도 변호사가 있었으면 싶어요.
다니엘 집에도 변호사가 있데요.
아빠는 마음 속에 웬 난데없는 변호사 타령이냐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아빠는 마음을 가다듬고 답한다.
우리에겐 정말 좋은 변호사가 있단다.
그가 누구지요?
보혜사 성령 하나님이 바로 우리의 변호사란다.
영적인 변호사 말구요.
그분은 영적으로만 우리를 변호하시는게 아니라 현실 속에서 우리를 변호하신단다.
아니 지난 번 카너 아빠가 우리를 수(고소) 하려고 했어요.
우린 돈도 없는데 큰일날 뻔 한거죠.
아들아, 너는 알아라.
그때,
벌써 우리 변호사이신 성령님께서 변호를 하셨단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네가 너의 죄를 회개하고 자복하면 하나님은 미쁘시고 의로우셔서 우리의 모든 죄에서 깨끗케 해주신다' 성경에 약속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그렇다. 삭개오도 비록 죄인이었으나 회개하고 주님 앞에 나아갔을 때, 주님께서 그를 찾아가시고 그의 집에 거하셨지. 주님이 거하시는 성전이 되었지. 회개한 그에게 하나님 나라가 임하였지
그의 영혼을 흔드는 예언자의 소중한 말씀이 생각났다.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찌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찌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사1:18)
그렇게도 사랑했던 술과 담배를 끊기로 했다.
술을 사랑하던 애주가가 이제 주님을 사랑하는 애주가로 변했다.
3. 양자 되어 사역자로 부르심을 받다.
30세를 갓 넘어가는 젊은이, 이제 예수님을 만나기 시작하며 복음에 젖어들어가는 성실하고 싱싱한 크리스챤! 과감히 옛사람과 결별하고 복음에 불붙은 이 젊은이의 모습에 죤슨 교수는 반하였던 모양이다. 죤슨 교수는 단도직입적으로 그에게 다가와 색다른 제안을 했다.
"내 양아들이 되어주게."
죤슨 교수는 평소 아들에게 이루어지길 기도하던 제목을 말하면서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양아들이 되어달라고 했다. 죤슨의 소원대로라면 그는 당장 배를 떠나 신학교를 가야했고 졸업 후 목사나 선교사가 되어야 했다. 싫어할 이유가 없었다. 더구나 부모님을 잃은 지 오랜 그에게 다가온 놀라운 제안은 하나님의 부르심이기도 했다. 하나님의 아들된 것도 기쁜데 이 훌륭한 교수의 아들까지 되다니......... .
이렇게 하여 1972년, 첫발을 디딘 곳이 바로 캘거리 근교에 있는 Prairie Bible Institute란 신학교였다. 이 학교는 앞장서서 선교사들을 양성하는 일에 전념하고 있었다. 북미에서도 널리 인정받는 만큼 엄격한 신학 훈련으로도 유명한 곳이었다.
식당에 가면 남녀간의 앉아 식사하는 좌석이 서로 나누어져 있었다. 도서관도 남자와 여자가 쓰는 열람실이 달랐다.
학생들에게 TV시청은 금지 되어 있었고, 세상 소식을 듣고 싶은 사람은 라디오를 이용하는 수밖에 없었다.
주말이면 외출이 허용되었지만 영화를 보았을 경우, 그들이 본 영화를 적어 내야 했다. 여학생들은 미니스커트를 입을 수 없었다.
남자들은 단정한 와이셔츠를 입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런 일보다 그에게 힘들었던 일은 학업을 수행하는 일이었다. 그에게는 기독교적인 배경이 전무하다시피했다. 성경에 대하여서도 깊은 지식이 없었고, 그렇다고 교회 배경이 깊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신학을 공부할 수 있는 언어실력이 아직 부족했다. 그가 할 수 있는 몇 마디 회화실력으로는 심오한 신학수업을 소화시키기에 역부족이었다. 그 결과 때로는 과낙제란 쓴맛을 본 적도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신학수업 중에 남은 자보다 탈락하는 학생 수가 훨씬 더 많은 어려운 신학수업을 제대로 감당하는 일은 참으로 버거웠다. 더구나 1천명 신학생 가운데 한국학생이라고는 자기 한 사람밖에 없었다. 다행이라면 학교나 교수님들이나 학생들이 너무도 친절하고 그를 선대하였기 때문에 너무나도 힘든 고독과 싸우며 피나는 목회 수업을 계속할 수 있었다.
힘든 신학 수업도 마치는 날이 왔다. '저런 옷은 성직자들이 입는 옷!'이려니 했는데, 그에게도 입는 그런 날이 왔다. 성직자가 생각나는 옷을 옷장에 넣으며, 그는 예수님이 생각나는 옷을 꿈꾸었다. 말 한 마디, 마음 씀씀이가 '예수님이 생각나는 성직자'이고 싶은데........... .
"그리스도로 옷 입으라!"는 말씀을 생각났다. 그에게 예수님이 생각나는 그런 옷은 없을까? 예의 이 옷을 보면, 성직자가 생각나듯이, 예수님이 생각나는 그런 인격, 그런 신앙이 무얼까 생각했다.
자신의 소중한 신장을 떼어, 신장 기능 장애로 일생을 고통 당하던 이웃에게 주고, 자신은 반쪽 신장으로 이웃에 대한 사랑을 표현한 어떤 성도의 자랑스런 이야기를 들으며, 그는 예수님 생각나는 옷을 생각했다.
월남 전쟁에 참여한 미군 병사가 맨발로 수십 리를 걸어 피투성이가 된 포로, 베트공군을 업어 살린 이야기를 들으면서 성직자의 옷을 생각했다. "네 적군들에게 친절해야 한다는 걸 잊지 말아라. 하나님께서는 너를 사랑하시는 만큼 그들도 사랑하고 계시단다"는 할아버지의 작별인사를 생각하며 그 힘든 옷을 벗지 않았다, 그는 충분히 예수님이 생각나는 옷을 입었다.
그는 성직자의 길을 가는 동안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는 옷을 입으리란 다짐을 굳게 했다.
4. 행복한 길에 들어서다.
그가 힘든 신학수업을 하고 있을 때의 이야기다.
그는 하나님께 기도했다. 이역 만리에서 목회수업으로 인해 너무 외로웠기 때문이었다. 하나님 저에게 한국 사람 한 사람만 만나게 해주세요. 실컷 한국말로 이야기 한 번 해보고 싶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를 응답해 주셨다. 기도 한 얼마 후, 대학 식당에 가서 점심을 먹기 위해 줄을 서 있는데, 한 사람이 그에게 다가와서 말을 거는 것이었다. 한국 사람이냐고. 그렇다고 말하는 그에게 그는 켈거리에 한국인 한 사람을 알고 있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그는 친절하게도 그의 전화번호와 주소를 알려 주었다. 그는 너무 반가워서 먼 길을 찾아 한국인을 만났다. 참으로 오랜만에 한국인과의 만남이었고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캐나다에 온 후, 한국인을 처음 만난 사건을 계기로 그는 또 다른 한국인들이 켈거리에 살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1972년 10월부터 그곳에서 한국인끼리 모임을 갖기 시작했고, 그 모임은 교회로 발전하고 있었다. 그 외로운 사람들끼리 모인 멤버들은 저마다 독특한 철학과 지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교회를 시작하자는 점에 동의를 한 것이었다.
1973년, 그가 처음 그 모임에 초대를 받았을 때, 그들은 나름대로 연합교회 형식의 모임을 가지고 있었다. 자기들끼리 돌아가면서 나름대로 설교를 하고, 기도를 드리며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좀 어설퍼 보이는 예배였지만, 친교만은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그런 교회였다.
그에게도 한 달에 한 번씩 설교할 기회를 주었는데, 그가 신학생이란 이유에서였는지 설교 회수는 점차 늘어서 결국 설교를 전담하는 사역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교회에 대하여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교회 운영은 생소하고 미숙한 점이 많았다. 매주 예배 시간에 헌금 시간이 있었는데, 25샌트씩 헌금을 하는 분도 있었다. 어느 주일 날 사회를 보던 분은 헌금으로 25센트가 너무 적으니 1불은 하여야 하지 않겠느냐 하여 매주 1불씩 헌금하자고 제안을 한 적도 있었다. 25센드 4개씩을 내면 어떻겠느냐 것이었다.
이렇게 하다보니 그가 교회에서 처음 사례비로 받는 돈은 $100.00을 넘기 힘들었다.
그는 선교단체에 선교 후보로 신청을 하였는데 세 번 모두 거절을 당했다.
그는 구체적으로 하나님께 기업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다.
하나님께 쓰임을 받은 백성들에게는 하나님께서 맡기신 기업이 있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지파든 가문이든 기업이 있었다.
룻이나 도르가와 같은 연약한 여성들에게도 하나님께서는 포도원을 허락하셨다.
룻은 남편을 일찍 잃었고 자녀를 얻을 소망이 없었지만, 하나님과 시어머니를 위해 기꺼이 헌신했다. 그리고 다윗 가문에 명예로운 증조할머니가 되었다. 하나님 나라 기업을 얻었다.
도르가라는 여선지자에세는 내놓을만한 부모도, 남편도, 자녀도 없었다. 재산이나 지위도 없었다. 너의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질문을 받았다면, '바늘이나이다' 하였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손에 들린 지팡이를 사용하신 것처럼, 도르가의 손에 있는 바늘을 사용하셨다. 그녀는 가진 바늘로 자신의 주변 어려운 과부들을 섬겼다. 그녀는 가진 바늘로 옷을 만들어 가난한 과부들의 옷을 해 입히며 섬겼다. 맡겨주신 포도원을 기경했다. 그 헌신은 하나님께 인정을 받아 죽었어도 베드로를 통해 다시 일으킴을 받는 영광을 얻었다. 그녀는 소외되고 가난한 과부들을 포도원으로 가졌던 셈이다. 그리고 보면 하나님께서는 소중한 기업을 맡겨 주셨다.
그에게 있어 하나님은 기업을 그 종에게 맡기시는 하나님이셨다.
학교를 졸업 하고, 선교사 지망에서 거절당해 사역지를 기다리던 중이었는데, 마침 교회에서 그에게 정식 사역자로 청빙을 했다. 그러나 예라고 말하기가 힘들었다. 그의 꿈은 선교지로 가는 것인데 왜 한인 교회에서 오라는 것일까? 기도하겠습니다. 대답을 주었다.
아버지의 말씀이라면 죄와 사망의 냄새가 진동하는 이 땅이라도 내려오시고, 아버지가 침묵하시면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이라도 오르시는 예수님, 그분의 순종 덕분에 천국의 시민권을 얻고. 영생의 복을 누리는 그 자신 아닌가? 아직도 순종해야 할 여러 순간순간에 계산하고 서 있는 자신을 문득 발견하니 어느 때나 하나님의 작품은 이루어 질 것인가!
하나님께서 맡기신 기업으로 알고 기꺼이 받아들였다. 연고지도 없고 선후배도 없고, 한국 교회에서 사역해본 경험도 없는 그로서 한인교회를 섬길 수 있다는 것도 사실 큰 행복이었다.
그는 별로 크지 않은 교회에서 일하게 되었지만, 하나님의 품꾼으로 사역하게 된 일에 대하여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사역에 무슨 큰 능력이 나타나지도 않았다. 말주변이 별로여서 사람을 울리고 웃기는 은사도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시고 인도하셔서 하나님의 기업을 맡기셨다고 믿었다. 365일 변함없이 새벽마다 주님을 찾아 뵙고 여쭐려고 힘썼다.
"오늘도 주님의 품꾼이 왔습니다. 오늘은 어떤 일을 할까요?"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작은 일이라 하더라도 그는 자신이 하나님의 품꾼임을 믿고 충성했다.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결코 작은 일로 생각하지 않으시리라. 그는 그렇게 믿었다. 주인께 맡은 사역으로 인하여 그는 행복했다.
그가 하나님께로부터 보너스로 받은 또다른 행복은 그가 결혼할 수 있는 축복을 받았다는 점이다.
어느 날, 어떤 여전도회장이 여전도회를 대표하여 그를 찾아왔다. 한국에 가는 비행기표와 약혼 선물을 살 수 있는 돈을 가지고.
"한국에 가서 결혼을 하고 오시면 해서요."
39살이 넘도록 결혼하지 않고 홀로 사는 사역자가 몹시 부담스러우셨던 모양이다. 더구나 주변엔 추천하기에 적합한 사모감이 없었다.
원래 그는 가족들에게나 친구들에게나 자신엑 결혼하지 않겠다고 선포한 독신주의자였다. 바다를 사랑했고, 바다에서 살다가 갈 사람에게 가족이란 책임질 수 없는 부담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그의 심중에도 변화가 왔다. 목회 수업을 하고 교회를 섬기면서 결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해졌다.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그 창조 원리를 깨달아 가면서 결혼이란 소중한 것임을 알았다. 다만 공부에 쫓기고 경제적인 여건이 마땅치 않아 결혼을 추진하기가 힘들었을 뿐이다.
더구나 외국인들이 주일에 어린 아이에게 예쁜 옷을 입혀 함께 교회에 나가는 모습은 참으로 부러웠다.
그는 여선교회장의 권면을 받아들여 기쁨으로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5년만의 고국 방문이었다. 그가 결혼을 위해 한국에 온것을 알자 사람들은 기절할 만큼 놀라며 기뻐했다. 당시 마흔이 다 되도록 독신을 고집하던 그의 심경이 변한 것을 안 친지들의 기쁨은 컸다. 하나님의 뜻 안에서 결혼을 기도하던 박숙자 사모를 만났다. 그녀는 하나님 앞에서 동역자를 위해 마지막 기도를 모으는 중이었다. 하나님의 계획이 그들을 인도하고 계셨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서로간에 비젼과 믿음과 인격이 하나인 것을 깨닫고 그들은 하나님께 감사했다.
전격적인 약혼을 하고 40일만에 카나다로 돌아왔다.
결혼 안에서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기쁨은 그가 생각했던 어떤 것보다 컸다.
하나님께서는 두 부부를 회복시키자고 외아들을 내놓으셨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외아들을 값으로 치루셨기에 그 은혜를 입은 그들은 이렇게 하나님의 축복받은 부부로 서 있는 것이다. 십자가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는 쓰러질 수밖에 없는 두 부부의 버팀목이 되어주셨다. 하나님의 아들이 그들의 버팀목이 되신 것이다. 그래서 두 연약한 부부는 하나님 앞에 쓸만한 존재로 하나님 앞에 서게 되었다. 그들의 가장 고귀한 버팀목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십자가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이 그들을 견고히 지탱하고 있었다.
봄날,
우리는 따스한 주님의 은혜 가운데 깨어난 새 싹이었습니다
꽃망울이 우리의 꿈처럼 붉게 피어나고
제비랑 날렵하게 찾아온 새들이 머리 위에서 장난하며 놀 때,
주님, 우린 참 행복했습니다.
늦은 봄날,
우리는 따스한 주님의 은혜 가운데 돋아난 화초였습니다.
알록달록 예쁜 나비, 춤을 추다 갓 피어난 꽃 위에 머물고
흠뻑 이슬에 젖은 꽃잎들을 열고 꿀을 빨며
우리 품에서 저들이 서로 사랑할 때
주님, 우린 참 행복하였습니다.
초여름,
우리는 하루가 다르게 쑤욱쑥 자랐습니다.
푸르름이 차오르는 신록으로 우리의 청년시절은 모든 게 뿌듯하였습니다.
뿌리에서 잎사귀까지 우리의 젊음 속에는 하나님께서 부어주신 기름이 흘러넘치고 있었습니다.
피곤하고 곤고한 사람들의 눈 속에 우리들의 소망이 머무는 걸 보았을 때
주님, 우린 참 행복하였습니다.
한 여름,
우리의 가지엔 녹음이 우거졌습니다.
머나먼 길 여행을 떠나는 나그네들이 우리의 그늘 아래서 쉬어 갔습니다.
철새들은 우리 가지에 둥우리를 틀고 새끼를 낳으며 살았습니다.
그들이 우리 품에서 노래하며 사랑할 때
주님, 우린 참 행복하였습니다.
5. 사람들이 뭐래도 아닌 건 아닙니다.
바다를 유난히 사랑하던 그는 해군에 자원하였다. 훈련을 마친 그와 몇 사람이 특별한 사명 수행을 위해 상부로부터 차출된 것을 알았다. 그는 몇 사람과 함께 북한에 들어가 특수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직무였다. 그의 고향이 북한이었기 때문일까? 그는 상부 명령에도 불구하고 아니라고 항명하였다. 고향도 좋고, 애국도 좋지만 그런 일에 생명을 내놓고 싶지 않았다. 그 항명으로 인하여 그는 신체적으로 심리적으로 많은 압박을 받았다. 해군본부 바닥을 하루종일 닦는 일부터 시작하여 여러가지 벌을 받아야 했다. 무엇보다 괴로운 것은 온종일 앉지 못하는 기압이었다. 다리가 통통 부어올랐다. 하루면 멏 번이고 탈영을 하고 싶은 생각이 스쳐갈 정도였다. 어떤 상관은 찾아와 자기의 항명이 사형에 해당하는 것을 아느냐고 물었다. 그래도 그는 아니라고 그는 대답했다. 목숨을 걸고 아니라고 항명하는 그의 마음을 바꿀 어떤 수단도 사람들은 찾을 수 없었다.
그가 아니라고 항명했던 두 번째 사건은 공교롭게도 캐나다 보수적인 신학교에서 신학 훈련을 받던 중에 일어났다. Prairie Bible Institute는 당시 엄격한 신학 훈련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남녀간의 식당이 서로 달랐다. TV시청은 금지 되어 있었고, 세상 소식을 듣고 싶은 사람은 라디오를 이용하는 수밖에 없었다. 주말이면 외출이 허용되었지만 영화를 보았을 경우, 그들이 본 영화를 적어 내야 했다. 그는 어느 주말에 데미안을 읽고 싶어서 책방에 책을 신청하였는데, 그 책이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볼 때 가진 문제점들을 적어 주어서 책과 함께 받은 적도 있었다.
복장도 매우 엄격하여서 여학생들은 미니스커트를 입을 수 없었다. 남자들은 단정한 와이셔츠를 입게 되어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학생들이 와이셔츠 입은 위에 넥타이를 메야 한다는 지침이 나왔다. 자유 분방하게 살아온 그로서는 와이셔츠뿐만 아니라 넥타이까지 메야 한다는 학교 방침이 이해 되지 않았다. 아니 받아들일 수 없었다. Dean 학장을 찾아가 넥타이를 메는 것이 왜 참된 기독교인을 만드는 척도가 되는가 따졌다. 당시 한국 땅에서는 묶은 넥타이도 풀고 재건활동에 전념하던 시절이었다. 학장은 넥타이 하나 때문에 기독교인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하면서, 전교생 가운데 그 혼자만 넥타이를 메지 않아도 된다는 예외 조항을 학장이 허락해 주었다. 그러나 Dean 학장은 마음이 넓은 인격자였다. 그가 불면증으로 잠못 이루는 밤이 많은 것을 아는 분이었고, 그를 위해 기숙사 독방을 따로 배려해 주는 섬세한 제자 사랑을 보이고 있었다. 그는 Dean 학장의 넓은 생각을 만나가면서 그의 노타이 주장을 조용히 접었다. 사랑은 모든 허물을 덮느니라는 말씀이 생각났다.
그러나 그는 훗날 이런 보수적인 강한 훈련이 북방에서의 사역을 인내로 이겨내게 한 소중한 자산이 된 것을 감사하게 되었다.
6. 흩어진 양들을 찾아 사명의 땅으로 가다
캘거리한인연합교회에서의 목회는 행복했다. 한국에서 신학을 한 것도 아니고 교회에서 봉사한 경험도 없었기 때문에 캐나다에 이민 온 한인들을 대상으로 목회한다는 것이 교인들게 어설픈 면이 없지 않았다. 캐네디언 교회 목사님에게 어떻게 축도를 하느냐고 물어 축도를 했다가 교인들이 낯설어 했던 적도 있었다. 캐나다 연합교회를 형편에 맞게 이식한 독특한 교회 조직이었다, 한인들을 어떻게 섬겨야 할 줄을 몰라 당혹스러운 때도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고 성도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성심을 다해 섬기려고 힘썼다.
몇 사람 모이지 않던 교인들의 수는 날이 갈수록 늘어나더니 성인만 300명 가까이 모이기 시작했다. 길지 않은 몇 년 사이에 교회당이 비좁아 두 차례나 캐내디언들의 교회당을 사서 옮겼다. 누가 보아도 상당히 성공적인 이민 목회였다.
그러나 이상했다. 외적인 풍요가 분명 있었는데 마음에 만족은 없었다. 이민 목회는 내 인생의 목적지가 아니라 과정이라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가야할 궁극적인 목적지는 다른 곳이라는 생각이 끊임없이 내면에서 일어났다.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주님의 말씀에 따라 그가 가야할 곳은 땅끝이었다. 북방이었다.
사람들은 선교지를 향한 그의 꿈을 접도록 극구 말렸다.
이 교회의 성장을 보라. 하나님의 뜻이 아닌가? 지금은 이 때까지 심은 수고의 열매를 거둘 때다.
나이가 얼마냐? 제 2의 인생을 낯선 곳에서 새로 개척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선교를 위해 무슨 준비를 했는가? 후원자도 마땅히 없는 처지에 그 척박한 땅에서 무얼 해먹고 산다는 말이냐?
어떤 분이 들려 준 소박한 글이 생각났다.
"주님, 빈 잔을 들고, 황야를 지나, 당신에게로 기어갔습니다. 기운을 회복할 수 있도록, 한 방울이라도, 얻을 수 있을지 의심하면서.... . 그러나 제가 당신을, 단지, 좀더 잘 알았더라면, 양동이를 들고 달려 왔을 텐데."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놀라운 분이시다.
분명 어떤 일을 새로 시작하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았다. 결혼을 40 다들어 했으니 50 가까운 불혹의 나이에 무엇을 새롭게 개척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하나님 생각은 다르다. 모세, 80세에 새롭게 시작하도록 강권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의 생각은 점차 확고해져 갔다. 몇 년이 남았든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이루기 기뻐하시는 그 목적을 이루어드리고 싶었다. 목회 기간에도 그랬지만 하나님께서 그의 삶 속에서 일하시는 손길을 선교지에서 확인하고 싶었다.
복음이 미치지 못하는 곳의 백성들도 하나님의 평화를 누려야 한다.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전해져야 한다. 이는 단지 하나님의 꿈만이 아니었다. 그의 믿음이었고, 그 안에 간직한 신념이 되었다. 하나님 나라의 평화를 더 많은 백성이 얻을 수 있도록 땅끝까지 가야 했다. 평화의 대사로.
1980년대는 불안, 불신, 불확실이 세상을 온통 뒤덮고 있었다. 허무주의와 실존주의적 사고가 많은 사람들 마음에 전염되어 있었다. 이데올로기의 극단적인 대립이 사람들을 더욱 불안하게 하였다. 그래서 더욱 사람들은 평화를 그리워 했다. 평화를 갈망하고 있었다. 그에게는 하나님의 평화를 흑암의 땅에 심는 사역이 커 보였다. 노벨상도 평화상이 꽃이 아닌가? 어떤 사람이나 평화를 갈망한다. 어떤 나라와 민족이나 평화가 필요하다. 건강도 좋고 재물도 좋고, 권력도 좋다지만, 평화가 없으면?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신 목적도 성경에 평화를 주시기 위함이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믿는 자들에게 평화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바로 이 평화를 주시려고 유대 땅 베들레헴에 태어나셨다.
평화의 왕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셨다.
말대신 나귀 타고 평화의 왕으로 찾으셨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이 시대의 3불을 일시에 날려버릴 수 있는 평화의 왕이시다.
그래서 어느 시대나 평화를 위해 일하는 peacemaker들은 환영 받는다.
평화, 평화로다.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그는 하하늘 위에서 내려주시는 평화를 위한 대사로 남은 생애를 살고 싶었다.
이 일을 위해 그는 구체적인 기도에 들어갔다.
"하나님의 평화를 세상에 심을 수 있도록 저의 지경을 넓혀 주소서!"
"주의 종에게 주님을 위해 일할 수 있는 하나님 나라의 포도원을 넓혀주소서. 제가 그곳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화를 심겠습니다."
그는 하나님 나라의 기업을 주시도록 간절한 소원으로 기도했다. 평화를 심기 위한 지경, 그 영혼들을 기도했다. 신학을 시작하면서 부터 끊임없이 가지고 있었던 기도제목이기도 했다.
어디로 갈 것인가?
그가 신학교를 졸업하고 선ㄱ사가 되기 위해 처음 선교기관을 찾아갔을 때, 그는 두 가지 장벽에 부딪쳤다. 하나는 그가 외국 선교 기관의 선교사로 파송되기에 적합한 인물인가 하는 장벽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한국인이 선교사로 외국에 나아가 성공한 사례들이 전무하다시피 하였기 때문에 제3세계 백성, 그것도 한국인이 선교사역을 잘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을 갖기 힘들었다. 더구나 신학교 배경도 한국에 없고 그를 후원할 만한 빵빵한 후원자도 없는 그에게 누가 사역비를 후원할 것인가?
또 한 가지의 장벽은 그가 가서 섬기고 싶은 지역이 북방이라는 것이었다. 그가 '북방 백성을 섬기겠습니다' 기도제목을 부탁하였을 때, 그들은 한결같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리고 그곳이 사역지로서 부적합한 요인을 여러가지로 말해 주었다. 북방에는 대부분 문이 굳게 닫혀 있었기 때문이다. 역사적인 관점에서 보더라도 북방은 선교사에 매우 배타적이었다. 사상적으로도 기독교는 북방에서 환영받지 못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은 북방은 평화를 위한 대사가 머물만한 적합한 곳이 없다고 생각하였다. 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북방에 대한 자료나 이해는 충분하지 못했다. 이런 장벽은 그를 후원해주어야 할 한국인들에게는 더 높았다. 이데올로기의 충돌에 고통을 당했던 과거의 체험적 상처가 북방으로 나가는 길을 더욱 낯설게 하였다.
그러나 그는 봇짐을 꾸렸고, 여행을 떠났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을 생각하면서 두벌 옷이 없을지라도, 후원자가 확보되지 않았을지라도, 생계를 위한 뚜렷한 대책이나 기술이 없을지라도 떠났다. 북방을 향해서. 이미 알고 있었던 대로 문들은 꽁꽁 잠겨 있었다. 아무데서도 환영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이미 길을 닦아놓은 어떤 길도 발견할 수 없었다. 아직 북방에서 멀지만 우선 활동이 비교적 자유로운 도시에 거주지를 정한 후, 들어가 일하고 싶은 곳을 찾아 가는 통로를 찾기로했다. 그리고 기도했다. 그는 간단한 주님의 말씀을 신뢰했다.
구하라 그러면 얻을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
문을 찾아 두리번거리기 2년,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백성들을 섬길 수 있는 기술이 무엇일까? 주님께서 만나게 해주신 사람을 통해 치공기술을 배우면 좋겠다는 결론을 얻었다. 사모와 함께 치공 기술을 배우기 위해 팔을 걷어 붙였다. 맡겨진 백성들을 섬길 수 있는 기술을 갖출 수 있게 된 아주 중요한 기술이었다. 그러나 아직도 들어가 일하고 싶은 지역에 도달할 방법은 없었다. 생각다 못한 그는 비장한 각오를 하고 기도했다. 주님, 이 나라에 망명을 신청하면 안될까요?
천당 다음 999당이 캐나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 귀한 시민권을 포기한 채 아직 열악한 환경 속에 있는 그 나라 시민으로 귀화하겠다니........ .
그러나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일하고 싶은 사역지에 도달할 길이 없어 보였다. 물론 그 나라가 그의 망명을 허용할른지는 전혀 다른 문제였지만.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 기도의 소원도 기억하셨다.
2년의 몸부림이 지난 후, 기다리던 봄은 왔다. 불가능해 보이던 현실이 점차 가능으로 열리더니, 그를 북방에서 평화의 대사로 일하라는 주님의 발령장이 났다. 사역지에 도착했다. 사모는 사역지에서 일할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
현지에 도착한 그는 주신 사명을 따라 병원 설립을 기도하기 시작했다. 무일푼인 그가 병원을 설립하겠다니, 건물은 어떻게 지을 것이며, 그 안에 기기는 어떻게 채울 것인가? 그 병원 안에서 일할 맨파워는 어디서 충당할 것인가? 아무 것도 준비된 것은 없었다. 황량한 광야에 서서 그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바라보았다. 꿈도 당차게 기도하고 바라보는 그를 하나님께서는 부끄러워하지 않으셨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마치 그가 이 일을 시작할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후원을 하기 시작했다. 병원 건물은 세워져 가고 그 안에 필요한 좋은 기기들이 채워졌다. 일할 수 있는 의사와 간호사들이 채워졌다.
수준 높은 병원이 몇 년 사이에 우뚝 섰다. 그는 하나님의 손을 현실 속에서 보는 듯했다.
7. 고향 있는 그 땅에서 생의 마침표를 찍을 수 있을까?
그의 고향은 북녘땅이었다. 그러나 그에게 북녘 땅은 맨 마지막으로 가야할 땅으로 생각되었다. 젊은 시절, 국가에서 그를 불러 북녘땅을 위해 쓰고 싶어했을 때, 그는 아니오라고 했다. 목숨을 내놓고 거부했다. 그리고 여러 사람들이 북녘을 향해 발걸음을 떼어 놓을 때도 그는 늘 뒷걸음질을 했다. 그에게 북녘 땅은 끝까지 사랑해야할 땅이었으니까.
그에게 있어 남북한은 숙명적인 사랑으로 맺어져야 서로 살 수 있는 부부와 같은 존재였다.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의 노년 시절 이야기가 생각났다.
병든 다리로 인하여 고통당하던 루스벨트는 노년에 부인 엘리나 여사에게 이렇게 말했다.
'폐품과 같은 나를 아직도 사랑하오? '
그녀는 담담히 대답했다.
'나는 당신의 다리와 결혼한 것이 아니쟎아요.
당신의 전부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북한 동족이 그에게는 사랑의 대상이었다. 북한의 질병이 치유되고 남북한이 하나가 될 때, 한민족은 하나님 앞에 크게 쓰임받을 것이다.
그러나 남북한의 많은 사람들이 서로를 극복의 대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 문제였다.
월드컵 축구 4강 전이 벌어지던 날이었다. 6월 25일이었다. '아, 잊으랴. 어찌 우리 그날을!' 바로 그 날이었다. 16강만 올라가도 대성공이라던 한국은 8강 4강까지 치올라 감으로 온 땅을 붉은 색으로 덮어버렸다. 그리고 바로 꿈에도 있지 못할 6월 25일, 준결승 진출을 놓고 독일과 맞붙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날 승리하기 힘들겠다는 생각을 했다.
독일이 축구 강국이라는 차원을 떠나 상암경기장으로부터 온 세계에 울려 퍼졌던 독일 국가(國歌)는 벌써 심상치 안았다.
독일 국가의 내용이 무엇이었든 간에, 우리에겐 익숙한 시온성과 갖은 교회 그의 영광 한없다!"는
의미만 감돌고 있었으니까!
더욱 그렇겠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J 박사의 간증이었다.
자신이 두만강 가에서 체험한 바로는 한국은 아직 승리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대한민국의 승리를 기뻐하지 못하는 북한 2,500만의 동족과 조선족들을
자기 눈으로 똑똑히 보고 왔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독일은 이미 통일을 이루었고 한마음으로 승리를 기도하는데, 아직까지 둘로 나누어진 대한민국이 무슨 힘으로 승리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세계 4강에 머물러야 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에게 맡긴 지상명령은 4위로만 머물 수 없었다.
그가 20년 이상 북방에서 그 지역 주민들을 섬기며 사는 동안 그 도시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어느날인가는 먼곳에서부터 편지가 한통 날아 왔다. 놀랍게도 수신인 주소란에는 그 북방 도시의 이름만 달랑 쓰여 있었고 그 도시 이름 밑에는 번지수도 없이 이름만 달랑 적혀 있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우편배달원이 그런 편지를 그에게 전해준 것이었다. 그는 이제 이 북방도시를 가장 사랑하는 꼭 필요한 존재가 되어 있었다.
북방의 도시에 첫 외국인으로 발을 내딛은지 20년, 병원사역도 본 궤도에 오르던 1990년 송년 때였다. 그가 머무는 정부는 그를 비롯하여 외국인으로서 존경받는 외국인 지도자들을 만찬에 초대하였다. 그 자리는 한국에서 이곳에 와서 사업을 하는 분들도 참석했지만, 그가 정말 기도하고 가고 싶은 나라 도시에서 온 그곳 지도자들도 함께 초대한 자리였다. 그들은 자연스럽게 어울려 좋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북방에 아름답게 선 병원에 대하여 보고 듣고 아는 사람들이라 그들이 사는 도시에도 그런 병원을 세워보는 것이 어떠냐 하는 공감대가 자연스럽고 진지하게 논의되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초대받은 사람들은 흥분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한결같이 그 신비한 나라에 사랑을 전해주고 싶지만 길을 찾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조용히 자리를 떴다. '나는 아직 때가 아닙니다'는 생각도 한 이유였다. 그러나 더 중요한 이유는 동족에 대한 사업은 척해서 될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의 사랑은 척하는 사랑이 아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는 척하지 않았다. 사람들로부터 거절당하신 척하지 않았다. 제자에게 배반당하신 척하지 않았다. 백성을 위해 고난 당하신 척하지 않았다. 하나님으로부터 끊어지시는 척하지 않았다. 우리를 위해 죽으신 척하지 않았다. 밤새도록 기도하셨고, 치욕스럽게 맞으셨고, 가시로 만든 관을 쓰셨고, 찢긴 상처 자국에서는 피가 철철 흘렀다. 그리고 참으로 그날 죽으셨다. 그분이 나에게 주신 사랑은 척하는 사랑이 아니다.이것이 빚진 그가 동족을 위한 한 방울의 땀을 척할 수 없는 이유였다.
만찬석상에서 만나 서로간에 진지한 대화를 나눈 분들이 만나 북한 청진에 들어갔다. 전반을 살펴보고 돌아온 그들은 30만불 프로젝트를 신비한 나라에서 받아와 가지고 그에게 내밀었다.
더 이상 뒷짐만 지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가 동족을 돕는 일에 적극적인 이유는 단순했다. 형제가 힘들게 살면 돕는 것이 최선이다는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북한 동족이 어려울 때, 정말 도움이 필요할 때 돕는 일은 함께 복을 받는 최선의 지름길이라는 것이 그의 생활지론이었다.
지혜로운 농부의 이런 이야기가 있다. 농사철에 큰 가뭄이 들었다. 천수답으로 어렵게 살아가는 농부 한 사람이 가뭄을 극복하기 위해 밤새워 계곡에서 져 나른 물로 논을 채웠다, 새벽녘이 되자 파김치가 될 만큼 지친 몸을 가지고 집에 돌아와 잠이 들었다. 아침 나절에 밤새 채워 둔 몰로 살아났을 벼들을 생각하면서 천수답에 올라갔다. 그런데 놀랍게도 자신이 길어다 부어놓은 물은 바로 아랫 논에 다 흘러내려서 출렁거리고 있었다. 아래 논 주인이 몰래 구멍을 뚫어놓고 위의 논에서 물이 흘러내리게 해둔 것이댜. 너무 기가 막히고 황당한 농부는 이를 악물고 참았다. 그리고 다음날 밤 다시 밤새워 계곡에서 물을 길어다가 자기 논에 채웠다. 그런데 비양심적인 아랫 논의 주인은 다시 구멍을 뚫어 그 몹슬 짓을 한 것이었다.
너무도 기가 막힌 그 농부는 하루 종일 생각한 끝에 지혜로운 방법을 생각했다. 늘 물을 빼내가던 그 얄미운 이웃의 천수답부터 물을 채워주었다. 다음날 새벽에도 물을 빼내갈 양으로 논에 나아왔던 그 아래 논의 주인은 깜짝 놀랐다. 자기 논에 물이 가득 채워진 것이다. 그는 윗논 주인을 찾아가 미안함을 전하고 더 이상 윗논에서 물을 빼오지 않으리라 결심 했다. 그 비양심적이고 원수 같던 이웃이 그의 믿음에 감복하여 기독교인이 되었다.
그의 북한에 대한 관점도 이와 비슷했다. 그는 힘든 시기를 가는 북한에 물을 먼저 데줌으로 함께 평화를 누리자는 평화론자였다. 그는 워치만 리의 책에서 가뭄을 극복한 농부의 지혜를 얻었다. 결과를 떠나서도 그는 예수님이라면 이렇게 하지 않으셨을까 하는 생각을 붙들고 동족을 돕기로 했다.
결국그 신비한 나라에 들어가는 날이 왔다. 그들의 환영은 따스했다. 그리고 북방에 이어 북한에도 아담한 병원이 섰다. 누군가 캐나다 시민권자인 그에게 노년을 어디서 보내고 싶습니까 묻는다면 스스럼 없이 말하고 싶은 대답이 준비되어 있다.
'북한에서요.'
에필로그
그에게도 이제 고희란 황혼은 다가 오고, 믿음의 용장은 경주를 거의 마무리할 준비를 하고 있다
그는 사랑하는 친구 항해사가 그의 자리에서 세상을 떠났을 때, 그 죽음 앞에서 다짐했던 약속을 돌아본다. 친구가 다 하지 못하고 간 일들이 무얼까? 그는 그 삶을 기억하고 싶었다. 그래서 세상에서 무엇인가를 놓고 싶었다.
나그네로 살았다. 천로역정의 크리스챤처럼. 자신의 이름을 내는 삶을 접었다. 끊임없는 단련을 통해 통장 비우기를 힘썼다. 평생 내 집 한 채 갖지 않은 삶을 살았다. 소유욕을 버리고 가난하게 살기를 원했다.
그는 바다에서 배운 중요한 삶의 철학이 있다.
"작고 낡은 배를 타든 크고 좋은 배를 타든 바라보는 바다는 같다."
주의 종인 그가 마지막 전하고 싶은 설교 주제는 '사랑'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사랑을 가지고 이웃을 사랑하라 전하고 싶다.
자녀들에게 남기고 싶은 한 마디를 남기라면 '자원해서 주님 잘 섬기고 감사하라'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칠 만큼 그렇게 순수하게 하나님께 소중한 것을 바치고 살아라. 이는 그의 체험적인 증언이다. 그의 생애라고 어려움이 없었으랴. 그러나 헌신한 후, 일단 감사하는 일에 우선을 두었다. 한 알의 밀알이 되기까지 헌신하고 범사에 감사하였더니 절망이라고 생각되던 많은 일들이 합력하여 선으로 바꾸어짐을 많이 체험했다.
"궂은 일고 좋게 받으니 좋게 되더라"
그가 만난 하나님은 범사에 감사하는 자에게 모든 일을 합력하여 선으로 바꾸신다.
주의 종이 되겠습니다. 펄펄 뛰는 젊은이에게
"신학인이 되지 말고 신앙인이 되라."
선교지에 나가겠습다고 인사차 온 후진에게 그는 말한다.
"오자마자 일부터 하려하지 말고, 좀 배워라 넉넉히 배우라."
그에게는 어떤 찬송이 정말 부담스럽다.
내게있는 모든 것을 아낌없이 바치네.
아낌없이 바치지 않는 사람들이 아낌없이 바치지 않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서 이런 찬송을 죄책값이 드릴 수 있더라며,............ .
가을,
귀밑에 하얀 서리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우리의 혈색은 단풍처럼 변하여 가고 푸석푸석한 얼굴엔 주름이 깊어갑니다.
그러나 주님, 더 따스한 나라로 떠나는 새들을 보며
다감한 벗들이 낙엽처럼 하나 둘 떨어지는 것도 더 좋은 나라로 가는 거로구나 생각할 때
주님, 우린 참 행복하였습니다.
가을이 기울고
우리는 남은 마지막 잎새의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살고 있습니다.
보름을 바라보던 달이 구름 사이로 총총히 지나갔고
달빛 아래서 호수가 미친 듯이 출렁이던 밤, 멜로디로 물결치는 우리의 찬양은 어둠에 잠겨드는데
서둘러 어디론가 간 줄 알았던 우리의 동무 물새들이 서로 몸을 부비며 추위를 이기는 걸 볼 때
주님, 우린 참 행복하였습니다.
겨울
메마른 나목으로 추위에 맨몸으로 맞서야 합니다.
첫눈 내리는 거리로 허리가 굽은 노인 한분이 어디론가 총총히 떠납니다.
젊은이들의 사랑하는 모습이 어느새 고와 보입니다.
의욕이 넘치던 젊은 시절은 저물었지만 하얀 세마포처럼 오염된 심신을 덮어줄 흰 눈으로 인하여
주님, 우린 지금 참 행복합니다.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
한 해 십년 넘겨가던 세월도 쌓이고 쌓여 마지막 몇 장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이것들이 다 넘어가면 우리의 공연도 끝나겠지요?
이제 우리는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사역의 무대에서 내려와야 합니다.
하지만 주님, 연출자이신 주님의 품에서 충성하며 사역하였던 지난날들로 인하여
주님, 우린 이렇게 행복합니다.
그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 날이 오면
나는 다시 한번 이보다 더한 영광스런 환영을 받을 것이고
나는 주님의 세마포 옷을 입고 천국에 입성할 것입니다.
그날도 나는 환영을 받을 아무런 공로 없으나
주님의 십자가 공로만을 의지하여 뭇천사의 환영을 받으며 천국에 입성할 것입니다.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