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6 March 2015

로마서 1: 1- 2 1 왕도를 따라 나아가는 종

[들어가는 말]

   아름다운 가을의 계절, 10월이 가고 스산한 11월이 우리에게 왔습니다.
10월 31일은 우리 기독교인들에게 종교개혁일로 마침표를 찍고 새로운 교회 역사를 연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내 주는 강한 성이요 방패와 병기 되시니 큰 환란에서 우리를 구하여 내시리로다."(384장)

  우리가 오늘 기도 전에 부른 루터의 찬송은 바로 이 종교개혁의 기치를 힘차게 진행시킨 개혁의지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보름스 국회의사당의 기왓장처럼 많은 마귀의 세력 앞에서도,
사형 선고를 내린 교황 앞에서도
흔들림 없이 종교 개혁을 수행한 루터가

   오직 성경만!
   오직 은혜만!
   오직 믿음만!

의지하여 나아갈 수 있었던 그 힘은 어디서 얻은 것일까요?

   그렇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로마서를 통해 그에게 주신 구원의 진리입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그 믿음으로 말씀만 의지하고 승리한 것이지요.
 
   한없이 흔들리며 선교지에서 돌아온 요한 웨슬레가 힘있게 붙들고 일어선 말씀이 바로 이 로마서입니다.

   로마서는 역사를 새롭게 쓰는 성경입니다.
   로마서는 인물을 새롭게 쓰는 성경입니다.
   로마서가 역사에 깊은 영향력을 남겼기 때문입니다.
   로마서를 통해 인류 역사의 주역들이 변화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대부분 목회자에게는 소원이 있습니다. 성경 중의 백미라 할 로마서를 깊이 읽고 연구하여 설교하고 싶은 생각입니다.
구원,
선교,
그리스도인의 삶을 로마서를 통해 만나고 싶은 것입니다.

   하지만 저의 부족함을 알기 때문에 한 해 한 해 미루면서 오늘까지 왔습니다. 그러나 이미 복음서도 두번씩이나 돌아가면서 설교하였고 사도행전과 에베소서를 강해설교에 담았습니다. 창세기에서 시작한 수요 예배 설교는 느헤미야서를 거쳐 에스더까지 왔습니다. 그리고 이제 저의 나이도 55살이 되었고, 더이상 지체할 수 없는 시기가 다가왔습니다.
   지금까지 말씀을 준비하고 전할 때마다, 늘 곁에서 도우신 성령께서 여전히 함께 하실 것을 믿고, 로마서 말씀 앞에 서기로 하였습니다.
   더구나 제 책상에는 저보다 먼저 로마서를 강해하신 귀한 선배 목사님들의 서적들이 즐비하게 꽂혀있습니다. 로이드 존스 존 스토트 목사님들의 책들, 옥한흠, 하용조, 김동호, 위어스비, 우찌무라 간조, 김선운, 김경연  강해설교, 박윤선 성경주석을 비롯한 몇 가지 주석들 말입니다.
   또한 여러분들도 기도하면서 이 설교에 동참하실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우신 구원의 은혜가 이 로마서 강해설교에 임하시기를 간절하게 기도드립니다.

   로마서는 이런 말씀으로 시작됩니다.

   "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바울을 통해 기록된 로마서 말씀이 우리에게 전해주시는 모두의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1.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살아갑시다.

   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사도 바울은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자신을 '둘로스 크리스투'(그리스도의 종)이라 소개합니다.

   사도 바울은 종이 어떤 존재인지를 잘 아는 사람입니다.

  [갈5:1]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종은 사람으로서는 멜 멍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종이 당시에 어떤 존재였습니까? 노예였지요. 사람으로 평가되지 못하고, 재산 목록으로 처리되는 존재가 바로 노예입니다.
전쟁에 패하여 사로잡혔을 때 노예로 끌려갔습니다.
갚아야 할 빚을 갚지 못하고 노예로 끌려갔습니다.
종의 자녀로 태어났을 때도 종이 되어야 했습니다.
그들은 인격을 매도 당하였고
일을 하는 도구와 짐승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인격적 존재로 취급을 받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자기 뜻이나 주장이 없을 리 없지만, 주인의 뜻과 주장을 따라야 합니다. 오직 주인의 의지에 따라서 살아가는 존재가 노예입니다.
주인의 뜻과 주장을 나의 뜻과 주장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그런 존재였어요.
   자신의 소유가 없습니다. 있다면 그것은 이미 주인의 것입니다. 주인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비참한 종이란 개념을 누구보다 잘 아는 바울이 왜 자신에게 적용하였을까요?


   1]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나서 그는 그분의 위대한 사랑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행22:6-8]

   "가는데 다메섹에 가까왔을 때에 오정쯤 되어 홀연히 하늘로서 큰 빛이 나를 둘러 비취매
내가 땅에 엎드러져 들으니 소리 있어 가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내가 대답하되 주여 뉘시니이까 하니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나사렛 예수라 하시더라 "

   바울이 어떤 사람입니까?
  하나님 나라의 참 빛이신 예수님을 대적하여 신실한 예수님의 제자들을 죽이는 일에 앞장서고 그것도 부족하여 다메섹까지 나가 예수님의 제자들을 잡아 옥에 넘겨주러 나선 악독한 인간이 아닙니까?

   그런데 주님께서는 그를 어떻게 하십니까?
하나님 나라의 진노를 쏟아 부어도 할 말이 없는 바울을 어떻게 선대하십니까?

   [사도행전 13:47]

   "주께서 이같이 우리를 명하시되 내가 너를 이방의 빛을 삼아 너로 땅 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

   "웬 말입니까? 웬 은혜입니까?

   이방인에게 나아갈 하나님 빛으로 사용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천하 만민을 복되게 하는 복의 근원으로 바울을 사용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을 찾아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빛 안에서 하나님을 새롭게 발견한 것이지요.

   "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중에 거하는 자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시24:1)

   온 우주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만난 것입니다.
그렇다면 온 우주와 모든 생명까지 주관하시는 주님의 뜻에 자신을 맡기는 것이 마땅한 일입니다.

   그 이후로 사도 바울은 고백이 달라졌습니다.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20:23-24)

   사도 바울이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 기꺼이 소개하는 까닭이 바로 이것입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뜻대로 움직이는 도구입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 종입니다.

   [갈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6절 말씀을 보십시오.

   "6 너희도 그들 중에 있어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입은 자니라"

   로마서를 받는 로마 교인들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고린도 전서 6:19-20에서도 거듭 강조하는 대로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인임을 자인하고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삶을 사는 것이 마땅합니다.

   [고전6:19-20]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맡기셨습니까?
그 모든 것에서 하나님의 주인되심을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삶으로 주님을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나는 주인이 아니라 종입니다. 주님께서 주인이십니다.
주님께서 소유주이십니다.
주님은 저에게 생존의 이유 바로 그것입니다.
오직 주님을 위해 살겠습니다.

  [롬14:8]

   "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


   나아가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형제에게도 종이 되는 자세를 갖게 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삶의 모습은 섬기는 종의 자세였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전서 5:3]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오직 양 무리의 본이 되라

   장로님들이 주장하는 자세가 아니라 섬기는 종의 모습으로 세상에 다가갈 때 양무리의 본이 된 줄 믿습니다.

   M도시에서 장로님들의 주장하는 자세로 인하여 상처를 받고, 토론토에 이주해 우리 서머나 교회에 오신 권영성 집사님이 계십니다. 그는 그 도시를 떠나면서 다시는 교회에 발을 들여놓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토론토에 오신 분입니다. 그러나 우리 서머나 교회의 모 장로님께서 운영하시는 커피집에 들르시다가 섬기는 모습에 감동하였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장로님의 헌신적 돌보심으로 취직까지 한 후, 교회에 다시 다니기로 마음을 정하신 분입니다.

   양무리의 본이 되는 섬기는 종의 모습이 우리 모두에게 있을 때,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우리 모두의 은혜가 됩니다.




   2. 부르심을 입은 사도적 삶을 살아갑시다.

   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아포스톨로스'(사도)란 말은 '사명을 띠고 보냄을 받은 자'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당시에 황제를 대표하는 사람이나 왕의 밀사에게 적용되는 말이었습니다.
그리스도교에서 '아포스톨로스'(사도)란 말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경험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명을 받아 세상으로 파송된 제자들을 그렇게 부르곤 하였습니다.
   바울은 직접 예수님의 공생애에 동행하고 배운 적은 없었지만 다메섹으로 가는 가운데 예수님을 만났고, 그분으로부터 사명을 받아 이방인의 사도로 임명을 받았습니다. 그는 그 사건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되기로 결심하였던 것이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의 종 직분은 좀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우선 그 주인의 특수성 때문입니다. 누구의 종이냐에 따라 그 가치는 매우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가 로마 황제의 총애를 한 몸에 받는 종이라면 그 존재의미는 당시 어떤 로마의 자유인 이상의 권세와 특권을 누릴 수 있었던 것처럼, 인격적인 주인의 종일 때 얼마든지 인격적인 존재로서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신앙이 있는 주인의 노예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었어요.

  창세기에 나타난 아브라함 종을 봅시다.
엘리에셀이라 알려지고 있는 이 종은 아브라함에게는 물론 그 아들 이삭에게도 매우 존귀한 존재였습니다. 그 종은 아브라함 아들 이삭의 배우자를 결정할 결정권을 갖고 하란을 방문합니다. 아브라힘과 이삭 가정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전권을 위임받고, 이삭의 아내를 선정하여 데리고 오라 파송받은 전권대사입니다.
아브라함 자신과 동일한 특권을 가지고 당당하고 신앙심 있게 움직입니다.
아브라함과 동일한 인격과 결정권을 가지고 아브라함을 대신한 대사입니다.
아브라함은 아니지만 아브라함과 다름이 없는 그런 존재로 세상에 나타납니다. 그에게서 세상 종으로서의 비굴함이나 무시당해도 좋은 어떤 요소를 찾을 길이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그를 아들처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씨를 지체하시자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이렇게 답합니다.

   "아브람이 가로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나이까 나는 무자하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엘리에셀이니이다."(창15:2)

   아브라함의 종이라기보다 아브라함의 후사요, 하나님의 종이라는 표현이 더 적합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 할 때, 바로 이런 엘리에셀과 같은 인격적인 종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위임하신 하나님 나라의 전권을 가지고 세상에 나가서 그리스도의 신부와 같은 존재들을 하나님께 나아오게 하는 그런 종입니다.
그리스도의 신부를 그리스도께 데려와 화목케 하고자 하는 전권을 위임받고 세상에 파송된 종입니다. 따라서 온 우주의 영원하신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 할 때, 그 의미는 이와 같이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맡기신 전권을 가진 하나님 나라 왕국 대사입니다.

   그러므로 바울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종' 이것을 그의 명함에 적고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복됩니다.




   3.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함을 입었습니다.

   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바울이 사도로 부름을 받은 목적은 복음을 위해서입니다.

   1] 복음은 하나님으로부터 왔습니다. 복음의 기원이 하나님이십니다. 복음을 주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2] 복음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박히신 일이 바로 복음의 핵심입니다.

   [롬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바울이 복음을 위해 삶을 헌신하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요?

   3] 바울은 복음 안에서 메시아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게 된 것은 우연한 사건이 아닙니다.

   [1] 우선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 빛으로 찾아오신 예수님을 만난 사건이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행22:5-8]

   "이에 대제사장과 모든 장로들이 내 증인이라 또 내가 저희에게서 다메섹 형제들에게 가는 공문을 받아 가지고 거기 있는 자들도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끌어다가 형벌 받게 하려고 가더니
가는데 다메섹에 가까왔을 때에 오정쯤 되어 홀연히 하늘로서 큰 빛이 나를 둘러 비취매
내가 땅에 엎드러져 들으니 소리 있어 가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내가 대답하되 주여 뉘시니이까 하니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나사렛 예수라 하시더라"

   바울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천부당만부당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큰 빛이 하늘로서 그를 찾아오셨습니다.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너무 놀라 누구신 줄을 묻는 바울에게 주님은 말씀해 주셨습니다.

   "나는 네가 핍박하는 나사렛 예수라"

   주님께서는 그를 복음의 증인으로 부르신 것과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도로 부르셨음을 알려 주셨습니다.

 

   [행22:21]

   "나더러 또 이르시되 떠나가라 내가 너를 멀리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 하셨느니라"

   [사도행전 16:10]

   "바울이 이 환상을 본 후에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바울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게 된 것은 단지 큰 빛 가운데 찾아오신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4] 성경을 연구하여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발견하였기 때문입니다.
   2절 말씀을 보십시오.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하나님께서는 수천 년 동안 선지자들을 통해 메시아가 오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바울은 이 선지자들을 통해 예언하신 말씀을 깊이 상고하면서 그 언약이 예수님 안에서 성취된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1] 첫인간에게 말씀하신 여자의 후손을 예수님 안에서 보았을 것입니다.

   [창3:15]

   [2] 이사야 선지자른 통해 예언하신 '고난'을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보았습니다.

   [사53:]

   [3] 다윗을 통해 예언하신 죽음으로부터 부활하신 메시아를 예수님 안에서 확인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4] 흑암을 비추는 이방의 빛을 예수님의 사역에서 만났을 것입니다.

   [사49:6]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메시아를 예수님 안에서 만났을 때, 바울은 이 복음을 위해 생명을 내놓기로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되는 것이 영광임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마무리하는 말]


    복음이 중요한 까닭은 하나님께서 이 복음을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십니다.

    사도 바울은 이 복음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99마리의 양을 두고 한 마리 잃어버린 양을 찾아 나서는 목자와 같은 심정으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이 복음을 잃어버린 양과 같은 이방 세상에 나누어주기 위해 열정을 바쳤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에게 복음은 무엇입니까?
복음을 받지 못하여 영원히 잃어버린 바된 양이 우리 곁에 있지 않습니까?
그들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

복음을 사랑하고
복음의 주제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시기 바랍니다.
그분의 종이 되고
그분의 사도가 되어
복음을 전하며 살아갈 때 그곳에 진정한 행복이 있습니다.



[성경본문]

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2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3 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4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5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케 하나니
6 너희도 그들 중에 있어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입은 자니라
7 로마에 있어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고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8 첫째는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 모든 사람을 인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
9 내가 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뽀玖?
10 어떠하든지 이제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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