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17 March 2015

데살로니가전서 1: 1- 4 하나님의 택함 받은 표

[암송할 성경 본문]

[살전1:4]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하심을 아노라


    [들어가는 말]

    "잡초, 그 집요한 삶 "
 
    그 동안 계속되던 가뭄이 가고
하루 걸러 비를 주신다는 일기 예보를 듣습니다.

교회 정원에 무성하게 자라는 잡초를 보며
모진 결단을 합니다.

초대받지 않은 민들레, 질경이, 크로버 등 잔디밭이 맞나 싶게
정원을 호시탐탐 평정하러 듭니다.

어떤 분은 아예 크로버 밭을 만드는 게 어떠냐는 반 농담을 하십니다.

홈페이지에 잡초 제거 시간을 올립니다.
시간이 있는 분들이 참여할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 나 자신이 헌신하기 위함입니다.

감동을 받은 한 형제가 삽을 들고 정원에 도전했습니다.
그리고 과감히 잡초가 우거진 잔디밭을 걷어올렸습니다.

기도를 마무리하고 정원에 나오니 삽으로 파올린 잔디 무더기가 산처럼 쌓였습니다.
흙을 털어 잡초를 빼어내노라니 그 잡초의 집요함이 혀를 두르게 합니다.
잔디 사이사이로 뿌리를 뻗고 줄기를 뻗어가면서 자기 영역을 넓혀갑니다.
결국 잔디는 잘 보이지 않고 온전히 잡초만 깃발을 꽂고 휘날립니다.

우상에 빠진 이스라엘 백성을 잡초가 우거진 잔디밭에서 보았습니다.
주인되신 하나님 보시기에 그 백성이 얼마나 안타까우셨을까 이해갑니다.
데살로니가 전서를 펼쳐 이단에 휘둘림 당하는 교회 되지 않도록 좋은 비유로 복음을 전합니다.

어디 이단만 우거진 잡초이겠습니까?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잡초가 우거진 잔디밭을 깨끗이 하면
세상을 사랑하여 세상에 얽혀
제 기능을 못하고 사는 하나님 백성들의 모습이 마음 아팠습니다.



    1. 주 안에서 누리는 은혜와 평강입니다.

    [1:1]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 찌어다

     발신자는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입니다.

     실루아노는 바울의 동반자로서 바울과 함께 많이 수고한 실라를 가리킵니다(행 16:19, 벧전 5:12 참조). 실라(실루아노)는 바울과 함께 제 2차 선교여행에 동행한 믿음의 동역자입니다. 그는 빌립보에서 바울과 함께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나온  후에도 함께 데살로니가 지역에 선교 여행하였기 때문에 데살로니가 성도들게게는  잘 알려져 있는 사역자였습니다.
    디모데는 바울의 믿음의 아들이요, 바울을 지근에서 동역한 귀한 후계자와 같은 일꾼입니다(고전 4:17, 딤전1:2 참조).
데살로니가서는 바울이 데살로니가인에게 보내는 편지인 동시에 모든 믿는 사람을 위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참 교회는 은혜와 평강이 표시입니다.

    수신자는 데살로니가 교회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보석 같은 사역자들이 데살로니가 교회를 생각하면서 그리스도의 심장을 나누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사랑하는 교회에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축복하고 있습니다.

    참 교회의 표지는 그 안에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있는 것입니다.

    제 인생의 중요한 주제 한 가지를 말하라면 하나님의 은혜요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오는 평강입니다.
사람마다 살아가는 양식이 있고, 삶에 있어 인생관이 있지만
나에게 있어  인생의 중요한 주제 한 가지는 하나님의 은혜하나님으로부터 내려오는 평강입니다.

오늘날 내가 어떻게 있나 놀라다가
'아, 하나님의 은혜로구나!'
깨닫습니다.

조용한 방에 앉아 하늘을 쳐다볼 때면
하나님의 평화가 쏟아져 내리는 여름날의 별같이 다가옵니다.
그 파란 하늘 아래 자라나는 푸른 나무들을 바라보노라면
하나님의 은혜 아래서 춤울 추는 잎사귀들을 봅니다.
평화롭게 나는 새들을 봅니다.

하루를 시작하기 위해 앉은 새벽의 기도 시간 주제는 당연히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교회 이곳저곳을 거니는 시간에도 하나님의 은혜가 발 앞에 널려 있습니다.
때로 교회 뜰을 정돈하노라면 하나님의 은혜가 만져집니다.
어지러운 이곳저곳을  정돈하는 시간에도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합니다.

어제도 오늘도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섭리를 느낍니다.
지나온 세월 속에 일어난 크고 작은 사건들을 반추하노라면 하나님의 은혜로 가득차 있음을 깨닫습니다.
이렇게 보면,
앞으로 오는 시간 속에서, 그리고 사건 속에서
하나님께서 그분의 은혜로 가득 채우실 것을  확신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다윗의 고백이 참 좋습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하나님께서 무한정 내려주시는 은혜를 겸손으로 받아 누리는 교회 되기를 소원합니다. (약4:6-7)

 

     데살로니가 교회가 비록 환란과 핍박 가운데 살지만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을 누림으로 이 모든 환난과 핍박을 이겨 나갈 수 있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2. 감사할 수 있고 기도하고 싶은 교회입니다.

    [2절]

    우리가 너희 모두로 말미암아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할 때에 너희를 기억함은


    사역자와 하나 되어 가는 우리 의식입니다.

    바울 사도는 데살로니가 교회를 생각하면 하나님께 감사하였습니다.
기도하면 데살로니가 교회가 떠오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데살로니가서를 보낼 때 서두에 다른 서신처럼 바울이 자신의 사도권에 대한 설명을 안하고 바로 문안했는데 그 이유는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그 믿음이 순수해서 곧바로 바울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받아 들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빌립보 교회와 같이 바울의 사도성에 대하여 확신하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 사도는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망서림없이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바울 사도와 우리라는 의식이 분명하였습니다.


 

    3. 믿음 사랑 소망이 살아 숨쉽니다.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가진 내적인 특성 셋이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믿음의 역사
사랑의 수고
소망의 인내
이 세 가지 내적 특성으로 무장되어 있었습니다.


     택함받은 성도들이 교회에서 갖출 3요소입니다.


    [1:3]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

    데살로니가 교회가 가진 믿음과 사랑과 소망을 가진 사실에 대하여 감사하였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에 이 믿음과 사랑과 소망이 풍성하기 때문에 바울 사도는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마다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기도했다고 하였습니다.
믿음, 사랑, 소망은 성도들이 갖는 '3대 신령한 보화'입니다.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어야 합니다.
고전 13장에서도 이 3가지를 교회가 반드시 갖추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1) 믿음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는 택한 백성이며(요일 5:1 참조), 죽을 때까지 믿지 않는 자는 불택자이다.
믿음은 사람이 믿고 싶어서 믿는 것도 아니요 믿으려고 노력해서 되는 것도 아닙니다.
믿음은 사람에게서 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선물입니다(엡 2:8 참조).
하나님이 택한 자에게 믿음을 선물로 주시고 택한 자는 예수님을 믿을 수 있습니다(롬 8:29-30 참조). 사도행전 13:48에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구주로 믿어지는 사람은 택한 백성의 증거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 믿어지고 우리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속죄 제물이 되어 주신 사실이 믿어지는 사람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입니다.

    이런 믿음을 가진 사람에게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믿음의 역사가 있습니다.

    믿음의 역사란 행함 있는 산 믿음을 말합니다.
믿음에는 역사가 있게 마련입니다.
행함이 있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도우심을 믿고
보호를 믿고
이적을 믿고
하나님의 뜻 안에서 담대히 나가는 것이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핍박 가운데 있었지만 이런 살아 역사하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야고보 2:26에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또 야고보 2:17에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야고보 2:22]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모세의 산 믿음은 홍해 바다를 가릅니다.
아말렉과 가나안 입곱 족속을 격파하고 나아갑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실 때, 아브라함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胎)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거나 의심하거나 하지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약속하신 그것을 능히 이루실 것을 확신했습니다(롬 4:19-21 참조).
그 때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신 기한에 약속하신 말씀대로 권고하시고 말씀대로 이삭을 주셨습니다. (창 21:1 참조).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받아들이면 그 말씀이 살았기 때문에 반드시 그 말씀이 역사를 합니다.
히브리서 4 : 12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있다"고 하십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과 그 말씀을 마음으로 영접하고 믿을 때에 우리 속에서 역사하십니다.
산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고자 하는 담대한 용기가 나오고 그것이 하나닙의 능력으로 이루어지게 마련입니다.


    [2) 사랑의 수고가 있었습니다.

    참 사랑에는 수고와 희생이 뒤따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을 때, 그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 주는 수고를 감내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독생자를 주시고 또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여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는 수고를 하셨습니다.

    어머니가 자녀를 사랑할 때, 엄청난 수고가 따릅니다.
잉태하는 고통이 있습니다.
해산의 수고가 있습니다.
기르시고 교육하시는 사랑의 수고를 값으로 따질 수 없습니다.
사랑은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면 수고가 따르게 마련입니다.
자녀들을 사랑하는 부모는 아이들을 위해서 수고를 많이하게 마련입니다.
더러운 것도 더럽다 하지 않습니다.
힘드는 일인데 힘드는 줄 모르는 사람 같습니다.
또 사랑으로 수고하는 마음을 보면, 단 마음입니다.
억지로 하는 사랑의 수고가 아닙니다.
사랑하는 자를 위해서 하는 수고는 그 수고가 즐거운가 봅니다.

    [골로새서 1:24]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오늘은 2남 3녀를 키워주신 어머니를 천국에 보내고
천국 환송예배를 드리는 날입니다.
그 주인공인 김재영집사 가정에서 수백 송이의 화초 묘종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리고 교회를 빙둘러 그 예쁜 꽃들을 심습니다.
모친 천국입성을  감사하고 기념하며 어머님이 사랑하던 교회 화단에 아름다운 꽃을 심었습니다.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은혜가 감사하다며
자신의 생일에 자기 나이만큼 장미꽃을 사서
그 어머니 품에 안겨드리던 딸을 보았을 때의 감격이 밀려왔습니다.

이국 땅에 살며
어머니 임종조차 뵙지 못한 막내 아들의 마음이 어떨까
마음 조리며
어떻게 위로할까 이리저리 생각하던 우리 성도들의 안타까움이 그의 화안한 미소 속에 녹습니다.

그를 기르시고 하루에 다섯 번씩 교회에 나가 그 아들 잘되라 기도하셨던 어머님
그 아름다운 마음을 수백송이의 화초에 담아 꽃피우고 싶었던 것일까요?

    어머니의 사랑이 얼마나 놀라운  수고를 동반하는가를 알면 이렇게 보답하고 싶은가 봅니다.

    마찬가지로 진정한 하나님의 사랑을 소유한 자녀들은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사랑 수고가 하게 마련입니다.

    사랑하면 수고하고 싶은 것이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인가 봅니다.



    [3] 소망의 인내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바라는 소망에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히브리 6:19에 소망은 신자에게 있어서 "영혼의 닻과 같다"고했습니다. 여러가지 환난이 올 때 그 환난을 소망으로 참고 이겨 나가는 이것이 배의 닻 같은 역할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충만한 교회이었습니다. 그들의 믿음에는 역사가 있었고 사랑에는 수고가 있었고 소망에는 인내가 있었으므로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를 생각할 때마다 감사함으로 항상 쉬지않고 기억하면서 기도하였다.


    때로, 신자에게는  환난이 찾아 옵니다.
범죄했기 때문에 징계로 오는 환난이 있습니다.
이는 사랑하는 자를  바로 세우려고 주시는 사랑으로 주신 환난입니다.
그러한 환난 때에는 회개하며 바로 설 소망으로 그것을 달게 받고 인내해 나가야 합니다.
어떠한 사건 때문에 고난이 오면 그 사건에 대한 잘못이 없는가를 살펴서 회개하며 바로 처리할 일입니다.

    때로, 의를 위하여 당하는 고난이 있습니다(벧전 2 :19-20참조). 그때 하나님 앞에 가서 상이 큰 것을 믿고 잘 참고 인내하며 단 마음으로 그 환난을 이겨 나가야 됩니다.

     마태 5:10에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가서 상급이 클 것을 믿고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잘 참고 견디어 나가야 합니다.

    우리 기독교인에게는 참된 소망이 있기 때문에 그 소망으로 잘 참고 견디어 나가야 합니다.

     농부가 농사를 짓는 모습을 보십시오. 열매가 맺힐 소망을 가지고 인내를 합니다.
봄부터 씨를 부리고 가꾸며 가을에 추수하기까지 수고하며 참고 기다립니다.
    소망 가운데서 믿는 성도들은 인내가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능욕을 당하시고 심지어 얼굴에 침 뱉음을 당하시고 가시관을 쓰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는 고난을 당하시면서도 참고 견디셨습니다.
주님을 바라봄으로
소망을 붙들고 사는 사람은 어떠한 고난이 와도 달게 받으며 잘 참습니다.

    믿음의 역사가 있고 사랑의 수고가 있어도 언제나 핍박하고 방해하는 사탄의 세력은 역사하여 좌절하기 쉽고 낙망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성도에게 소망의 인내를 주셨습니다.
아름답고 존귀한 소망, 부끄럽지 않는 소망을 주시어 모든 만난을 인내하며 견디어 가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신앙이 있는 자들은 "선을 행하다가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소망의 인내를 가지고 있으면, 때가 이르면 거두게 되기 때문입니다. (갈6:9)




    [마무리하는 말]

    지난 밤 내내 하나님께서 화단과 정원에 비를 내려 주셨습니다.
지난 주에 심겨진 화초와 잔디, 그리고 백양목이 춤을 춥니다.
비가 온다는 일기 예보를 들었기 때문에 정원 단장을 한 것 아니냐는 생각을 할 수 있겠지만, 저는 하나님께 주신 은혜요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체험한 하나님은 심는 대로 거두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고 꽃을 심고 곡식을 심고 화목을 심을 때, 때를 따라 은혜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택함을 받았으니

    1]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을 누리고 살 일입니다.
    2] 생각하면 감사하고 기도할 때마다 생각나는 교회가 될 일입니다.
    3] 사랑의 수고와 믿음의 역사와 소망의 인내를 감당할 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생명의 구주로 믿으십니까?
하나님이 창세 전부터 영원까지 무한하신 그 사랑을 쏟아 부어 줄 대상자로 선택한 사람임을 믿으십시오.
하나님은 택한백성을 눈동자와 같이 지켜주시고 존귀히 여기십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잠시도 택한 백성에게서 떠나지 않고,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가 떠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택한 백성은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입니다.

     [시편 16:3]

     "땅에 있는 성도는 존귀한 자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저희에게 있도다"라고 했다.

     [이사야 49:15-16]

     "여인이 어찌 그 젖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태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영원토록 함께 하시길 기도드립니다.



    [설교한 성경 본문]


    1.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2. ○우리가 너희 모두로 말미암아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할 때에 너희를 기억함은
3.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
4.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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