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17 March 2015

데살로니가전서 1: 5-10 모든 믿는 자의 본

 [암송할 성경 말씀]

   [7절]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느니라


    [들어가는 말]

    요즈음 월드컵 축구 열기가 온 지구상을 덮고 있는 듯합니다.
한국도 본선에 진출한 것만 해도 대단한 데 어제는 본선에서 그리스를 2:0으로 이겼습니다.
한국이 축구를 잘하는 것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의 생각 속에는 히딩크란 명장을 생각합니다. 한국이 히딩크란 명장을 만나서 한 단계 진화했다는 말을 합니다. 세계적인 축구를 한다는 말입니다.

    신앙 생활은 영적인 세계를 현실 속에 실현하는 까닭에 쉽게 판단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떤 멘토를 만나느냐에 따라, 그리고 그 가르침을 어떻게 실천하느냐에 따라 교회 생활, 신앙생활에 차이가 있습니다.

    어떤 교회가 그 지역에서 본이 된다는 말을 들을 때, 귀합니다.

    우리 서머나 교회가 위치한 토론토 지역에서 본이 된다는 말을 들을 때,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 지 모릅니다.
    우리 모두가 정말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은 우리가 속한 교회가 이 지역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뿐만 아니라 본이 되는 일일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성경에서 칭찬 받는 몇 교회 중 하나로 우리 가운데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살펴 보면서 우리도 하나님 앞에서 칭찬을 받는 교회, 칭찬을 받는 성도가 될 수 있기 바랍니다.


    1. 본이 되는 대상을 만났습니다.

    [5절]

    이는 우리 복음이 너희에게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임이라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떤 사람이 된 것은 너희가 아는 바와 같으니라

    데살로니가 교회가 받은 칭찬 가운데 가장 인상 깊은 칭찬은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느니라"는 말씀입니다.

     '본'에 해당하는 헬라어  '튀폰'은 '찍어서 생긴 표'입니다.

교회가 그 지역에서 본(롤 모델), 곧 '찍어서 생긴 표'가 되었다는 말이지요.
    이것은 교회가 얻을 수 있는 명예 가운데 참으로 가치 있는 일입니다.

    어떻게 데살로니가 교회가 그 위치한 지역에서 본이 될 수 있었습니까?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떤 사람이 된 것은 너희가 아는 바와 같으니라"

    답은!

    [5절]을 함께 읽어봅시다.

    "바울 사도의 일행이 데살로니가 교회 교인들 가운데서 그들을 위하여 어떤 사람" 곧 의미 있는 존재, 곧 본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가 본이 되는 교회일 수 있었던 이유 가운데 하나는 교회를 이룬 바울 사도와 동역자들이 교회의 본(롤 모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가 어떻게 이스라엘 민족을 가나안 땅에 정착시킬 수 있었을까?
    대부분의 지각있는 성경 연구가들은 모세라는 본(롤 모델)이 되는 분을 만났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바울 사도는 어떻게 데살로니가 교회에 본이 되었습니까?

    1] 복음을 전함으로 본이 되었습니다.

    바울 사도 일행이 데살로니가 교회에 전해 준 복음(복된 소식)은 그리스도께서성경대로 죽으시고 성경대로 삼일만에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과 이렇게 하신 목적은 속죄 곧 죄에서 인간을 구속하셨다는 것이었습니다(막 1:1;롬 1:2;고전 15:1-4).

    그는 복음을 전했습니다.
어느 사람처럼 그는  하고 싶은 말이 많았겠으나 그는 다른 말보다 복음을 전해주는 일을 우선순위로 하였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귀한 일은 이 복음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이 기쁜 소식을 들려주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복음을 전하는 일에 공생애를 다 사용하셨습니다.

    [누가복음 8:1]  

    그 후에 예수께서 각 성과 마을에 두루 다니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시며 그 복음을 전하실새 열두 제자가 함께 하였고

    예수님의 제자들도 복음을 전하는 일에 전념하였습니다.

    [누가복음 9:6]  

    제자들이 나가 각 마을에 두루 다니며 곳곳에 복음을 전하며 병을 고치더라




    2] 오직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이 늘 좋은 반응을 가져오는 것은 아닙니다.

    사도 바울의 경우에 있어서도 복음을 전하고도 청중들의 믿음을 불러일으키지 못할 때가 있었습니다.
    이고니온에서, 루스드라에서, 빌립보에서, 데살로니가에서 곳곳에서 환영을 받지 못하고 쫓겨났습니다.

    바울은 아덴에서 웅변적인  설교를  했으나 냉담한 반응을 체험한 적이 있었습니다(행17:16-33).

    바울은 결코 인간의  지혜로가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여 말씀을 전파해야 한다는  결의를  굳게 하였습니다(고전 2:4, 5).

    복음을 전하되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전하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첫째 요소, 능력은 외적 현상입니다. '이적'(뒤나메이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말미암는 '영력'(靈力)을 가리킵니다.
다이나마이트'(daynamite)로 번역되는,  '폭발하는 힘'을 나타냅니다.
사람의 마음속까지 변화시키는 성령의 감화력입니다.
복음이 전파될 때 인간들을 파멸의 세력에서 끄집어내어 새 생명 가운데 옮겨놓은  것은 바로 이 '능력'에 기인합니다.

    둘째 요소, 성령은 능력과  확신의 원동력입니다.
'성령'(프뉴마티 하기오)은 앞에 있는 수식어인 '능력'의 출처(出處)입니다.
성령은 능력을 통해서 인간들에게 실체로 다가옵니다.
그리고 그 능력을 체험한 자들은 궁극적으로  변화됩니다.

    세번째 요소인 '큰 확신'은 성령의 내적 활동하심에  기인합니다.
본절에 '확신'으로 번역된 헬라어 '플레로포리아'는  문자적으로 '충만,풍부'의 의미를 가지며, 이는 데살로니가 교회 가운데 내적으로 역사하는 성령의 사역을 말합니다(Bruce).

    복음이 데살로니가 교회에게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전해졌을 때, 바울 사도와 동역자들은 데살로니가 교회 가운데서 그 성도들을 위하여 어떠한 특별한 존재가 될 수 있었습니다.

     2:1-12에 보면, 데살로니가 교회에는 문제가 잠재하고 있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 내에 숨어있던 바울의 적대자들은(2:2, 5:3 : 5) 동방의 신비주의 사상을 가지고 자기들만의 독특한 교회를 세운 '시몬'(행 8:9)과   '엘루마'(행 13:8) 등으로서,
항상 말로써 사기적 수법을 행하며,
사람들을 현혹시키고
복음의 진리 가운데 서지 못하도록 방해하곤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는 그들에게 전해준
"복음이 너희에게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복음은 말에만 있지 않고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을 강조합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일깨우고 있습니다.

    지금도 교회에는 침노하는 어두움의 권세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어두움을 이기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는 롤 모델이 되는 신앙인들이
말에만 있지 않고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복음으로 무장하고 교회를 지키는 일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떤 특별한 존재가 될 수 있는 멘토를 만나 본이 되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큰 기쁨입니다.

    어제(2010,6/12) 한국이 월드컵에서 그리스 팀을 맞아 2:0으로 경기에  승리했습니다. 신문을 보니까 여러가지 칭찬과 자랑들이 가득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들으니 박지성 선수의 이야기입니다. 그를 일러 히딩크의 황태자라고 합니다. 히딩크에게 발탁되고 지도를 받고, 유럽에 진출하면서 세계적인 선수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박지성은 평발이요  왜소한 체격 때문에 수많은 지도자들로부터 저평가받은 선수입니다. 박지성이 선수로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모든 팀에서 거들떠 보지도 않던 박지성에게서 "성장 가능성 보았던!" 그를 키운 이학종 감독이라고 말합니다. 박지성 선수는 본이 되는 분을 만난 것입니다.
    박지성 선수는 이제 세계 최고 수준의 선수가 되어 있지만, 주장 완장을 차고 있지만, 모든 면에서 솔선 수범을 하며 롤 모델이 되고 있습니다. 가장 많이 뛰고, 가장 헌신적인 면에서 모든 선수의 본이 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신앙에 본이 되는 분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좋은 분이셔서 우리 곁에 그 좋은 분을 주십니다.
기도하시면서 본이 되는 분을 보시고
본이 되는 분을 귀히 생각하십시오.



    2. 본을 받아 본이 되었습니다.

    [6-8절]

    6.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7.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느니라
8.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졌으므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


      데살로니가인들은 바울과 그 일행의 신앙의 모범을 따랐습니다.
기쁨으로 복음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그 복음을 받은 그들이 복음에 삶으로 반응함으로 인해 변화하였습니다.

       1]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들였습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바울이 전한 말씀을 기쁨으로 받아들였습니다.


       2] 복음 전하는 자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바울이 전한 말씀을 기쁨으로 받아들여, 신실한 믿음 생활을 하였습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바울이 전한 말씀을 기쁨으로 받아들여,'환난', 즉 외적 환경에 의해 생기는 고통과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많은 환난 가운데서도 성령이 주시는 기쁨으로 환난을 넉넉히 이겨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복음을 받기 전에는  죄의 세력에 매이는 생활을 했으나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이 전하는 복음을 받아들인  후에는 전혀 다른 삶, 즉 성령의 능력에 힘입은 삶을 살았습니다.
    신앙은 주(主)를 믿는 것이나 신앙 생활은 보다 앞선 성도를 본받는데서  향상됩니다. 그러므로 주의 복음을 증거하는 자는 복음을 전할 뿐 아니라 자신의 생활에서 모본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부담감을 갖게 마련입니다.
    바울이 전한 복음을 받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바울의 신앙을 본받는 자들이 되었고, 궁극적으로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3] 나아가 다른 교회와 그 성도의 본이 되었습니다.
 
    [7절]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는지라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이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신앙의  본이 되었던 것처럼  데살로니가인들도 전(全)헬라에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신앙의  본이 되었습니다. '마게도냐와 아가야'는 B.C. 146년 이후 헬라 지경의 두개의 거대한 주로서 로마의 지배 아래 있었는데  마게도냐의 수도는 데살로니가이며 아가야의 수도는 고린도였습니다. 특별히 마게도냐의  수도인 데살로니가는 남방 유럽의 상업 중심 도시로서 이러한 지리적 조건에 의해  그들의  신앙을 더욱더 급속히 헬라 전 지역에 전파(傳播)할 수 있었습니다.

     본을 받고, 본이 되는

      아름다운 선순환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의 진보는 데살로니가를 출발점으로 하여 온 헬라 경내에 퍼져갔습니다. '소리가 울려나가고, 물결이 퍼져나가는 것처럼,  나팔 소리가 울려나가는 것처럼, 크고 분명하게 선포되었습니다.



    3. 생활 양식이 변화했습니다.

    [9-10절]

    9. 그들이 우리에 대하여 스스로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너희 가운데에 들어갔는지와 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는지와
10.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것을 너희가 어떻게 기다리는지를 말하니 이는 장래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


    1] 우상을 버렸습니다.

    교인들은 대부분 헬라계 이방인으로 헬라의 다신교적 우상을 숭배하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완전히  전환하였습니다.

    2] 하나님께 돌아왔습니다.

    하나님은 죽은 우상과 대조되는 살아계신 분이며, 허탄하고 비실재적인 것과 대조되는 참되신 분이십니다.
사시고 참되신 하나님께 돌아왔습니다.

    회개하였습니다.
'마음을 고침'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우상 숭배에 빠져 방황하던 자들이 참 하나님에 대한 복음을 듣고 이제는 이전의 모든 생활( 우상 숭배 등)에서 돌이켜 거룩한 성도가 되었습니다. 이렇듯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옛날의 악습들에 대한 단호한 단절, 즉 생(生)의 근본적이고도 전인격적인 전환을 수반합니다.


    3]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전심읕 다해 살아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강조하며,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그리스도의 사도가 된 감격을 나타냅니다.


     4] 재림을 기다립니다.

     [10절]

     그리스도의 부활과 재림, 최후의 심판 등의 중요한 교리들이 제시(提示)되며,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을 둘러싼 종말의 사건들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하늘로부터 강림하심을 기다린다고 말하니 - 그리스도의 '재림'은 본서와 데살로니
가후서의 중요한 주제입니다.
그의  재림을 기다린다는 것은 성도가 갖는 최고의 소망이며, 아울러 그 소망을 이루기 위해서는 믿음과 인내가 요구됩니다.

  이는 장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 - 이는 궁극적으로 마지막 날에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함께 임하게 될 하나님의 진노와 형벌을 뜻합니다(습 1:14;요  3:36;롬 9:22;엡 5:6;골 3:6).
    그러나 성도들은 이때를 두려워하기보다는 오히려  구원의  때라고  생각하여 기다리는 인내심이 필요합니다.

   신앙을 더욱더 급속히 헬라 전 지역에 전파(傳播)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요인은 그들이 자신들의 믿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부지런히 전하였다는 것에 있으며, 아울러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본이 되었다는 데에 있다. '본'에 해당하는 헬라어  '튀폰' '찍어서 생긴 표', '일격을 가한 흔적'이란 뜻으로서 '똑같이 따르게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무리하는 말]

초대받지 않은 민들레, 질경이, 크로버 등
잔디밭이 맞나 싶게
정원 잔디밭을 무서운 속도로 잠식합니다.

이 무수한 정원 잡초는 온전히 제거될 수 있을까?

뽑고 또 뽑아내어도 다시 자라나는 잡초들!
작년도 재작년도 많은 사람들이 땀을 흘렸는데
그 모든 수고를 비웃는듯이 잡초들로 인하여 정원은 어지럽습니다.

지나가던 어떤 분이 말합니다.
잔디밭을 아예 크로버 밭으로 만드는 게 어떼요?
물론 농담입니다.
또 다른 어떤 분은 말합니다.
잡초가 20%를 넘으면 잔디밭을 그대로 유지하는 건 불가능하데요
잡초가 20%를 넘은 지 버-얼써 오랩니다.

교회 정원에 무성하게 자라는 잡초를 보며
혼자 질문을 해봅니다.

이 정원 잔디밭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없을까?

저는 요 며칠 동안 잡초 제거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습니다.
그리고
한 결론을 얻었습니다.

"이 잔디밭은 변화될 수 있다!"

도전은 시작되었습니다.


잔디밭의 회복에는 주인의 의지가 중요합니다.

감동을 받은 한 형제가 삽을 들고 정원에 도전했습니다.
그리고
절망도 잠깐,
과감히 잡초가 우거진 잔디밭을 삽으로 파 올리리 시작하였습니다.

이 거룩한(?) 사역에 동참한 것만도 감사하여 망서리고 있노라니
삽으로 파올린 잔디 무더기가 산처럼 쌓였습니다.
잡초가 우거진 잔디떼장을 뜨는 것입니다.

잔디 사이사이로 줄기를 뻗어가면서 잔디를 질식시킨 것만이 아닙니다.
그 강인한 잔디  뿌리 사이까지 잡초뿌리를 내린 것입니다.
그냥 엉겼습니다.

우리는 파 재낀 잔디 무더기에서 흙을 털고
거기서 잡초를 빼어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잡초를 빼어낸 남은 잔디를 제자리에 심습니다.
잔디 사이사이로 덩굴처럼 휘감아 뻗어간 크로바 줄기를 떼어내며
잡초의 집요함에 혀를 내두릅니다.

그러나 잡초를 빼어낸 채 새로 심겨진 잔디밭이 점차 넓어져 갑니다.

결국 잡초는 뽑혀가고
그 자리에 남은 잔디는 새로운 의상으로 갈아 입습니다.

세속화 되어가는 교회
세상에 물들어가는 교회 모습을
이 잡초 우거져가는 잔디밭에서 봅니다.
우상에 빠진 이스라엘 백성을 잡초가 우거진 잔디밭에서 봅니다.

주인되신 하나님 보시기에 그 백성이 얼마나 안타까우셨을까 이해갑니다.

답은 주인의 의지에 달려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전서를 펼쳐 이단에 휘둘림 당하는 교회 되지 않도록 좋은 비유로 복음을 전합니다.

어디 이단만 우거진 잡초이겠습니까?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잡초가 우거진 잔디밭을 깨끗이 하면
세상을 사랑하여 세상에 얽혀
제 기능을 못하고 사는 하나님 백성, 나의 모습이 마음 아팠습니다.

    우리는 변화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지가 있기에 변화될 수 있습니다.
본이 되는 멘토를 주셨기에 변화될 수 있습니다.
본을 받으려는 의지와 본이 되려는 마음이 있기에 변화될 수 있습니다.
아름답게 변화됨으로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일 설교 본문]

5. 이는 우리 복음이 너희에게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임이라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떤 사람이 된 것은 너희가 아는 바와 같으니라
6.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7.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느니라
8.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졌으므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
9. 그들이 우리에 대하여 스스로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너희 가운데에 들어갔는지와 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는지와
10.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것을 너희가 어떻게 기다리는지를 말하니 이는 장래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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