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15 March 2015

고후1:1-11 그리스도의 위로자가 되라

[들어가는 말]


2007. 9. 9일 그 좋은 날, 전북 군산 연도 앞바다에는 가공할 타르덩어리들이 밀려들었습니다.
바다는 기름으로 덮이고, 어업이나 관광업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이 사실을 아는 전 국민에게 공포 그 자체였습니다.
해양수산부 중앙사고수습본부에 따르면 그 날, 기름유출사고의 원인은 원유유출사고로 생긴 사상 최악의 오염사고였습니다.
이른 바 태안원유 유출사고!

“삼성1호-허베이 스피릿 호 원유 유출 사고는 2007년 12월 7일 충청남도 태안군 앞바다에서 홍콩 선적의 유조선 '허베이 스피릿 호'(중국어: 河北精神號, Hebei Spirit)와 삼성물산 소속의 '삼성 1호'가 충돌하면서 유조선 탱크에 있던 총 12,547킬로리터(78,918 배럴)의 원유가 태안 인근 해역으로 유출한 사고이다. 일반적으로 태안 기름 유출 사건 등으로 불린다."고 설명했습니다.

유출로 인한 피해

“원유 유출로 인해 바닷물이 혼탁해지고 용존 산소량이 줄어들면서 인근 양식장의 어패류가 대량으로 폐사했다. 또한 어장이 황폐해지면서 해당 지역의 생업에 영향을 미쳐 지역 경제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역 경제의 정상화를 위해선 빨라야 10년 정도가 걸리는 것이 보통이며, 길게는 20~30년 걸릴 것이다(1995년 7월 23일, 전남 여천 앞바다에서 일어난 씨프린스호 원유 유출 사건의 경우, 사건 후 10년이 지난 2005년에도 침몰해역의 밑바닥에서 기름띠가 발견된 것으로 확인하였다.). 또한 해양 생태계의 원상 복귀를 위해서 최장 100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조류가 심해짐에 따라 타르 찌꺼기가 현재 안면도와 군산 앞바다까지 밀려왔으며, 원유가 뭉친 타르 덩어리는 태안에서 점차 빠르게 확산해 12월 30일 전라남도에서도 발견되었으며, 2008년 1월 3일, 타르 덩어리는 급기야 제주도 북쪽 추자도에서도 발견되었다.”

이 생각하기조차 싫은 사건을 말씀드리는 까닭은 그 사건이 국민들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가를 우리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론지어 말씀드리면, 이 사건으로 인해 대한민국 국민들의 가슴 속에는 내 나라에 대한 자존감이 한층 UP되었다는 것입니다.

특히 굴러 떨어지던 교회들은 할 일을 찾고 그 멋들어진 기독교 희생정신을 발휘하면서 위기를 극복하는 일에 일등 공신이 되었습니다. 기독교의 위상은 올라갔고, 회의적인 시각으로 기독교를 바라보던 사람들도 역시 기독교는 멋있다! 는 관점을 회복하게 된 사건이었습니다.


이런 말을 들을 때 우리는 어떤 생각을 하게 됩니까?

오늘 본문 말씀에서 가장 힘있게 다가오는 말씀은 위로라는 말씀입니다.

위로는 닦아주는 것입니다.
누군가 잘못했으니 기름은 유출된 것입니다.
하지만 그 잘못을 너나할 것 없이 손 걷고 나서서 닦아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대한민국은 저렇게 멋들어진 모습으로 서 있습니다.



1. 하나님은 위로의 하나님이십니다.

[고후1:3]
3.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오.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위로하다(comfort)는 말은 ‘확신을 준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며 내가 하는 일을 기뻐하신다는 확신입니다.



     1]  세상에서 많은 사람들은 상처투성입니다.

어떤 분이 이런 비유로 위로가 필요한 세상을 비유합니다.

“컵이 깨어지면 그 깨어진 부분은 뾰족하고 매우 날카로워 그곳에 손이 닿으면 거기에 찔려서 아프고 상처가 난다. 내면이 상한 자들의 마음도 이와 같다. 그들의 마음은 깨어진 컵과 같아서 어떤 때는 높은 산처럼 교만함으로, 어떤 때는 깊은 골짜기처럼 열등감과 절망으로, 어떤 때에는 사막처럼 길을 찾을 수 없는 답답함으로 채워져 있으며,”

그래서 자꾸만 상처를 줍니다.
아파서 그래요. 깨져서 그래요.
정말 기도해주어야 합니다.
아픈 사람은 위로해 주어야 합니다.


2] 그러나 세상엔 위로자가 없습니다.

[전4:1]
“학대 받는 자가 눈물을 흘리되 저희에게 위로자가 없도다.”

사람이 환난과 고난 가운데 있으니 위로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위로자가 없습니다.

"가장 큰 질병은 결핵이나 문둥병이 아닙니다. 아무도 돌아보지 않고 아무도 위로해 주는 이 없고 아무도 사랑하지 않고 아무도 필요로 하지 않는 것. 이것이 가장 무서운 질병입니다. 세상에는 빵이 없어서 죽어가는 사람도 많지만 작은 사랑과 위로가 없어서 죽어가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마더 데레사 수녀]

욥의 친구들이 위로하기 위해 먼데서 와 곁에 머물러 있었지만 위로가 되지 못하였습니다.

세상은 진정한 위로자를 기다립니다.
세상에는 진정한 위로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3] 그러나 성도에게는 위로자가 계십니다.

하나님의 사도에게도 환난과 극한 고난이 많았습니다.

4.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6. 우리가 환난 당하는 것도 ......우리가 받는 것 같은 고난을
8.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9.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오늘 성경 본문에서 아홉 차례나 사용하고 있는 '환난'이라는 단어는 그리스도인의 현실이 환난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말해줍니다.

[고후1:8-9a]
8.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9.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고후6:4-5]
4.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천하여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고난과
5. 매 맞음과 갇힘과 난동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 가운데서도

그러나 사도는 위로가 필요하다고 목매지 않습니다.
오히려 위로를 전합니다.
위로를 고린도 교회에 전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만 위로가 되심을 알아요.

세상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위로자요 왕 되심을 알지 못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께 뽑힘을 받았기 때문에 환난을 당합니다.

[요 15:19,20]
19.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20. 내가 너희에게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은즉 너희도 박해할 것이요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것이라

그러나 같은 환난 가운데 있어도 참된 그리스도인은 어떤 점이 다릅니까?

     그러나 감사한 사실이 있습니다. 이러한 환난에는 언제나 하나님의 위로하심이 주어진다는 사실입니다.

[고후7:4]
4. 나는 너희를 향하여 담대한 것도 많고 너희를 위하여 자랑하는 것도 많으니 내가 우리의 모든 환난 가운데서도 위로가 가득하고 기쁨이 넘치는도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4] 하나님께서는 위로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고후1:3+10]
3.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4.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위로하사'(파라칼론)는 '안위하다', `위로하다'는 뜻의 '파라칼레오'의 현재 분사형입니다.
하나님의 위로하심이 중단 없이 계속됨을 뜻합니다. 연속되는 환난과 그에 상응하여 계속되는 하나님의 위로하심이 역설적으로 결합됨으로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실존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성령 하나님은 ‘파라클레이토스’이십니다. 위로자이십니다.
곁에서 성도를 돕도록 부르신 하나님의 영이십니다. 도우미이십니다. 성령님께서는 위로의 영이십니다.

[요14:16-18]
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17.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18.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성령 충만한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습니까?

너무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고난 당하는 자 곁에 서서 변호해주고 위로해주는 위로가 충만한 사람입니다.

[시편 119:50]
“이 말씀은 나의 곤란 중에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음이니이다”

삼위 하나님께서 위로자이시며 그분의 말씀이 위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 분의 말씀을 통하여 위로 받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증거하다 여러 차례 극심한 환난을 겪었으나 그 가운데서 하나님의 위로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체험하였습니다.

[행14:19]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와서 무리를 충동하니 그들이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시외로 끌어 내치니라

     하나님의 위로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한 하나님의 사람, 바울 사도는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12:10)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2.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위로를 넘치게 받습니다.

[고후1:4-5]
4.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5.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1] 예수님께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을 초대하십니다.

[마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집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 그리스도의 고난은 자신의 잘못한 결과로 오는 고난이 아니라 무고한 고난입니다.

[사53:5-8]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8. 그는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갔으나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살아있는 자들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받을 내 백성의 허물 때문이라 하였으리요

그 고난의 결과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주는 '메시야적 고난'입니다.
우리 성도들이 그리스도와 관계를 맺고 있는 한 이런 고난은 필연적(必然的)인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자신의 육체에 채워갔습니다.(골 1:8)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여하기 위하여 당연히 받아야 하는 것이 고난이라 합니다(롬 8:17).

바울 사도는 복음을 증거하다가 루스드라에서 유대인들에게 돌로 맞아 거의 죽을 지경까지 갔었습니다.(행 14:19)
빌립보에서는 귀신들린 여종을 낫게 해주었다가 도리어 고소를 당해 매를 맞고 투옥되기도 했습니다.
유대인 자객단에 의해 살해당할 위험도 겪었었습니다
(행 23:12-15).

그러나 바울 사도는 그러한 고난에 비할수 없는 위로를 받았으므로 고난에 비례하는 위로에 대해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위로는 고난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오는 위로입니다.




3. 그리스도를 통해 온 하나님의 위로가 우리 속에 역사합니다.

[고후1:6]
6. 우리가 환난 당하는 것도 너희가 위로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요 우리가 위로를 받는 것도 너희가 위로를 받게 하려는 것이니 이 위로가 너희 속에 역사하여 우리가 받는 것 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

[이사야 40;1]
“너희 하나님이 가라사대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사 40;1)

[이사야 40:1]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내 백성을 위로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내 백성”이라고 하십니다.

저런 사람을 위로합니까?
정죄하고 싶은 분도 계실거에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들을 환난 가운데 내버려두지 않고 위로하시는 중요한 목적이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위로 받은 자는 극한 고난을 견뎌낼 수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위로를 받은 사람은 환난에 처한 다른 사람을 위로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위로를 받는 성도는 모든 은사를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타인을 섬기는데 사용합니다.

요나단은 다윗이 환난 날에 진정한 위로자가 됩니다.

15. ○다윗이 사울이 자기의 생명을 빼앗으려고 나온 것을 보았으므로 그가 십 광야 수풀에 있었더니
16.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일어나 수풀에 들어가서 다윗에게 이르러 그에게 하나님을 힘 있게 의지하게 하였는데
17. 곧 요나단이 그에게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 아버지 사울의 손이 네게 미치지 못할 것이요 너는 이스라엘 왕이 되고 나는 네 다음이 될 것을 내 아버지 사울도 안다 하니라


[벧전4:10-11]
10.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11.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 아멘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를 통해 오는 풍성한 하나님의 위로를 받고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위로자가 됩니다.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를 통해 오는 하나님의 위로를 받는데서 그친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당한 숱한 고난이 고린도 교회가 받은 위로를 가져오는 위로의 도구가 됩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은 모든 성도를 구원하는 위로였습니다.

그리스도를 본받아 위로자로 선 사도 바울의 고난이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위한 위로이기를 원한 것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사도로서 이것을 분명히 의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당하는 고난을 극복하게 하는 하나님의 위로 또한 그의 서신을 읽게 될 고린도 교인들과 아가야의 성도들을 위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가 환난을 당하든지 위로를 받든지 여전히 고린도 교인들에게 유익이 됨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고후4:10-12]
10.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11.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12.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역사하느니라

왜냐하면 그들이 고난과 핍박을 받을 때에 먼저 고난을 경험한 바울의 예로부터 하나님의 권능의 손길을 목격하고 위로를 받으며 지혜롭게 처신해 나감으로 온전한 구원을 이루어 나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무리하는 말]

[고후1:2]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어떻게?
하나님의 교회에 은혜와 평강이 넘칠까요?
철학이 다른데
은사가 다른데
경험이 다른데
어떻게 교회에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넘칠 수 있을까요?

      창조주 하나님은 위로자이심을 알 때 은혜와 평강이 옵니다.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찾아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위로자이심을 알 때, 은혜와 평강이 옵니다.

      그리고 성령의 위로가 성도 안에서 넘칠 때, 교회에 은혜와 평강이 옵니다.

하나님은 위로자이십니다.
예수님은 위로의 통로이십니다.
성령님은 위로의 영이십니다.

성 프란시스의 기도문 가운데
이런 말씀을 읽을 수 있습니다.

“위로받기 보다는 위로하며”

위로자를 세상도 기억합니다.

하와이 몰로카이에서 나환자들을 위하여 사역하던 다니안 신부는 나병에 걸려 세상을 떠납니다. 1936년 벨기에 정부의 요청으로 다미안 신부의 시신은 그의 고향 땅에 옮겨졌습니다. 몇 년이 흐른 후에 몰로카이 사람들은 사랑하는 신부님의 일부라도 그들에게 되돌려 달라는 요청을 벨기에 정부에 하였습니다. 그들은 다미안 신부의 오른팔을 다시 얻게 되었습니다. 모든 이들이 그들을 배척할 때 그들을 어루만져주고 위로해주며 안아주었던 바로 그 손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손은 위로하는 손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발은 위로하는 발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입은 위로하는 입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마음은 위로하는 마음입니다.

윤복희는 인생의 참 외로울 때, 이런 작품을 남겼어요.
윤항기의 작곡 임재범이 부른 ‘여러분’이란 노래가 있습니다.

네가 만약 괴로울 때면
내가 위로해 줄께~~
네가 만약
서러울 때면
내가 눈물이 되리
어두운 밤
험한~ 길 걸을 때
내가 내가 내가
너의 등불이 되리
허전하고 쓸쓸할 때
내가 너의 벗 되리라
나는 너의
영원한 형제야~
나는 너~의 친구야
나는 너의
영원한 노래여~
나는 나는 나는 나는
너의 기쁨이야

네가 만약 외로울 때면
내가 친구가 될께~~
네가 만약
기~쁠 때면
내가 웃음이 되리
어두운 밤
험한~ 길 걸을 때
내가 내가 내가
너의 등불이 되리
허전하고 쓸쓸할 때
내가 너의 벗 되리라
나는 너의
영원한 형제야~
나는 너~의 친구야
나는 너의
영원한 노래여~
나는 나는 나는 나는
너의 기쁨이야
나는 너의
영원한 형제야~
나는 너~의 친구야
나는 너의
영원한 노래여~
나는 나는 나는 나는
너의 기쁨이야
나는 너의
만약 내가 외로울때
누가 나를
위로해 주지 여러분
아 아아아 아아아 아 아
아 아아 아 아아
아 아아아
아 아아아 아아아 아 아
아 아아 아 아아
아 아아
아 아아아
아아아
아 아 아아

위로자 하나님을 만나셨습니까?
위로자로 서십시오.
위로자 성령님의 전입니까?
위로에 여러분 신앙 승부를 거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와 교회에 은혜와 평안을 주실 것입니다.



[성경본문]
1.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과 형제 디모데는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와 또 온 아가야에 있는 모든 성도에게
2.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3.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4.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5.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6. 우리가 환난 당하는 것도 너희가 위로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요 우리가 위로를 받는 것도 너희가 위로를 받게 하려는 것이니 이 위로가 너희 속에 역사하여 우리가 받는 것 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
7. 너희를 위한 우리의 소망이 견고함은 너희가 고난에 참여하는 자가 된 것 같이 위로에도 그러할 줄을 앎이라
8.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9.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10.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실 것이며 이 후에도 건지시기를 그에게 바라노라
11. 너희도 우리를 위하여 간구함으로 도우라 이는 우리가 많은 사람의 기도로 얻은 은사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우리를 위하여 감사하게 하려 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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