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구 선생은 자기에게 성공할 요소가 하나도 없는 것을 늘 탄식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소중한 가르침을 받습니다.
"얼굴 좋음이 몸 좋음만 못하고, 몸 좋음이 마음 좋음만 못하느니라."
이 말에 용기를 얻고 좋은 마음 갖기에 힘썼습니다.
그분이 가진 좋은 마음에는 하나님과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너의 소원이 무엇이냐?"
"나의 소원은 대한의 독립입니다."
이런 소원을 마음에 담고, 그 소원을 믿음 안에서 실천하던 훌륭한 기독교인이었습니다.
오늘 디도서에서는 하나님의 나라의 독립을 위해 충성한 두 사람을 소개 받습니다.
사도 바울과 디도입니다. '같은 믿음을 따라 된 나의 참 아들'[디도서1:5]로 소개한 것처럼, 디도는 사도 바울의 전도를 받고 신앙을 갖고 난 후, 좋은 동역자가 되었습니다.
디도는 두 곳에서 초대 기독교사에 중요한 인물로 등장합니다.
예루살렘 총회에 바울 사도와 함께 참석하였습니다.(행 15:2 갈 2:1, 3),
고린도 교회가 내적 진통을 겪고 있을 때, 그 문제들을 수습해 주는 인물로 등장하고 있습니다(고후 7:6-7; 8:6, 16-23).
그들의 동역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그레데 사역입니다. 바울 사도는 디도와 함께 그레데 섬에서 전도 사역을 할 때, 바울 사도와 디도가 전한 복음을 듣고 신자가 된 사람들이 그레데 섬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한 곳에 머물 수 없었고, 그의 바쁜 일정 때문에 그레데 섬을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디도는 그레데에 남아 그레데 교회를 책임 맡게 되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참 아들이 그레데 교회를 잘 세워갈 수 있도록 서신을 보냅니다.
우리는 두 사람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신 성령의 음성을 들으면서 어떻게 충성된 사역자가 되어 주님의 몸된 교회를 바로 세워갈 것인가 답을 얻기 원합니다.
1. 사역자에게는 정체성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종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로마인이 랍비를 찾아 와서 말했습니다.
'당신들은 하나님 이야기만 하고 있는데, 도대체 그 하나님이 어디에 있는지 가르쳐 주시오. 그러면 나도 하나님을 믿겠소'
.
랍비는 그 로마인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 눈부신 태양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태양을 똑바로 쳐다보시오."
그러자 로마인은 눈부신 태양을 힘들게 쳐다보다 이내 포기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많은 것들 가운데 한 가지에 불과한 태양 하나 제대로 바로 볼 수가 없으면서 어떻게 위대하신 하나님을 눈으로 볼 수 있겠소."
그에게는 위대하신 하나님께 대한 분명한 확신이 있습니다.
나에게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그분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생명을 주셨습니다.
나는 그분과 특별한 관계에 있음을 믿습니까?
바울 사도의 경우,
하나님과 그 보내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확신!
그리고 그분과의 관계에 대한 확신!
이것이 사역을 감당하게 하는 그 정체성이 있습니다.
1] 하나님의 종
본문은 바울 사도께서 디도에게 보내는 문안 인사입니다.
바울 사도는 짧은 문안인사 속에 서신을 보내는 사역자의 정체성을 이렇게 적습니다.
"하나님의 종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바울"
"하나님의 종"이란 말의 의미는 무엇이겠습니까?
'종'은 '노예'입니다.
가장 낮은 신분입니다.
당시에는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노예와 당나귀는 똑같은데 노예는 말을 할 줄 알고 당나귀는 말을 하지 못한다."
노예는 자기 이름도 없다.
자기 생각도 있을 수 없다.
자신의 의지나 꿈, 계획도 없다.
말할 줄 아는 짐승 정도의 취급을 당했습니다.
자존심도 없습니다.
오직 주인이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종입니다.
[갈라디아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예수님을 만난 후, 자원하여 주의 종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자신을 위해 행하신 구속의 은혜를 깨닫고 자원하여 "하나님의 종"이 되었습니다.
독생자까지 내어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감사하며 즐거이 하나님을 섬기는 종, 하나님이 원하시며 기뻐하시는 일에 헌신한 종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하나님의 종의 아름다움을 가장 잘 드러내신 분이십니다.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생각하지 않고, 종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만 종이 되신 것이 아니고, 사람들에게도 섬기는 자로 계셨습니다.
[요한복음 13:14]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허리에 수건을 동이시고 종처럼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우리에게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함을 강조하셨습니다.
[마가10:41-45]
41. 열 제자가 듣고 야고보와 요한에 대하여 화를 내거늘
42. 예수께서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43.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44.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 모세가 하나님의 종이었습니다.(신 34:5; 시 105:26; 말 4:4)
-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종이었습니다.(수 24:9)
- 다윗은 하나님의 종이었습니다.(삼하 3:18; 시 78:70)
-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종이었습니다.(암 3:7; 렘 7:25)
바울 사도는 예수님처럼, 모세와 같은 선지자들과 같이 '하나님의 종'으로서 복음을 전하는 이 사실이 너무 감사하고 자부심으로 넘쳐나게 합니다.
우리 믿는 성도들이 하나님을 만나고 그 놀라운 사랑을 알아서 자신을 하나님의 종의 자리까지 내려 놓을 수 있다면, 그것은 말할 수 없이 감사한 일이요 영광이 됩니다.
"나는 하나님의 종입니까?"
일생을 무엇에 매여 종노릇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의 정체성은 하나님의 종입니다. 고백할 수 있다면 그는 특별한 사람입니다.
2]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입니다.
‘사도’는 ‘보냄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훈련시키신 후 세상에 하나님 나라의 대사로 보내셨습니다.
바울 사도의 경우,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라는 정체성이 분명합니다. 그는 사도로 인정을 받는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실제로 그는 처음 예수님의 12 제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대부분의 서신에서 가장 먼저 자신의 사도로서의 정체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를 찾아오셔서 이방인의 사도로 보내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명령에 따라 사도로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하게 되었다 선포합니다.
사도는 오직 하나님의 뜻에 따라 부름을 받은 제자들이 그분의 뜻을 이루어 드리기 위해 일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다른 표현으로 소명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부르심과 관련하여 매우 중요합니다.
주님으로부터 부르심을 입었다는 말씀입니다. 소명이 분명한 사역자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모든 성도는 바로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성도에게는 각자 다른 은사들이 있고, 주님은 그들이 가진 것들을 가지고 교회를 세워가는 일들을 위해서 사용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이런 정체성을 가지고 주님의 뜻을 알고 그분의 뜻을 따라 행할 수 있어야 합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주님의 부르심 가운데 있다는 사도적 정체성을 갖고 행해야 합니다.
사역자가 사도적 사명을 저버릴 때 어떻게 됩니까? 요나를 보세요. 처음에는 순풍에 돛을 단 것 같았지만 결국은 남들까지 고생을 하게 하고 손해를 보게 하고 고기 뱃속에 들어가서 사흘 동안 죽을 고생을 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의 종인 우리가 하나님 주신 사명을 인식하고 귀중히 여기고 사명을 다하려고 애쓰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2. 사역자에게는 사역의 목표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의 믿음과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과 영생의 소망을 위함이라"
사역자에게 무엇을 위해 사역하느냐는 매우 중요한 주제입니다.
사역자에게는 사역의 목표가 중요합니다.
사도 바울의 사역 목표는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1]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의 믿음
2]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
3] 영생의 소망
사역의 목표가 이것입니다.
1]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의 믿음
믿음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그릇된 믿음 속에서 고통을 당합니다.
힌두교를 믿던 어떤 인디아의 여인은 외아들을 죽여 우상에게 바쳤습니다. 이의 잘못을 알려준 선교사님께 그 여인은 이렇게 절규합니다.
당신은 왜 이제 왔습니까?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의 믿음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2]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
이 믿음에 지식이 더해지면 사람을 살리게 됩니다.
사람을 살리는 믿음은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함께 하심을 믿는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입니다.
[예화]
비행사 해들레이 페이지(Hadlay H. Page)가 옛날 비행기를 만들어서 아라비아에서 시험비행을 할 때였습니다. 비행기가 공중을 날고 있는데 언제 들어왔는지 큰 쥐 한 마리가 들어와서 비행기의 중요한 부분을 갉아먹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 쥐를 그대로 방치해두면 그 비행기에 구멍을 내서 추락시킬 수도 있는 것이었으나. 비행도중 어찌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쥐는 높은 대기권에서는 살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고 그는 곧장 높이 올라갈 수 있는데 까지 올라갔습니다. 그러자 그 갉아먹는 소리가 멎었습니다. 안심한 그는 무사히 시험비행을 마치고 지상에 내려와서 비행기를 살펴보니 큰 쥐 한 마리가 죽어 있었습니다. 세상에는 죄와 물욕과 정욕과 명예, 시기와 질투 등 이 쥐와 같은 것들이 우리의 영혼의 벽을 갉아먹어 그 영혼을 지상으로 추락시키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이때 우리는 좀더 하늘 높이 올라가야 합니다. 그리하여 세상의 죄와 죽음을 멀리해야 합니다.
그가 비행기를 만들어서 공중을 날 수 있다는 믿음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가 쥐를 죽이기 위해 높은 곳을 향하여 날아가 그의 지식 또한 금상첨화입니다.
3] 영생의 소망
믿음이 좋고 지식을 더하면 더 귀하지만, 영생의 소망이 더해져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은 땅에 그치는 것이 아니고 보이지 않는 영원한 세계까지 이어집니다.
영생에 대한 소망이 그래서 중요합니다.
[예화]
송나라 법문공이 관상쟁이를 찾아가서 자기가 재상이 될 수 있는지 관상을 보아 달라고 하자 재상이 될 수 없겠다고 하는 것이었다. 법문공은 재상이 될 수 없으면 의사는 뒬 수 있는지 보아달라고 하였습니다. 그 당시 의사는 천한 직업이었기에 관상쟁이는 놀라 "재상을 바라는 분이 의사는 왜 바라느냐?"고 물었습니다. 법문공은 "재상이 되어 도탄 속에서 헤매는 백성을 구하고 싶으나 재상이 못되겠다니 의사가 되어 병고에 시달리는 백성들이나 돕고 싶소."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관상쟁이는,
"관상은 색상(色相), 골상(骨相), 심상(心相)을 보는데 당신은 색상, 골상으로는 도저히 재상이 될 수 없으나 심상을 보니 재상이 되고도 남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마음에 영원한 생명에 대한 지식을 품고 있는 믿음이 귀합니다.
사람들은 남들의 가벼운 피부병은 걱정하면서도 자기 자신의 깊은 병은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믿음을 가지고 경건하게 살며 영생의 소망을 갖도록 하라!
3. 영생을 전도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2b-3절]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약속한 것인데
3. 자기 때에 자기의 말씀을 전도로 나타내셨으니 이 전도는 우리 구주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내게 맡기신 것이라
1] 영생이 무엇입니까?
"아이오니오스"(영원한)라는 말이 "조에"(생명)라는 말과 합쳐진 말입니다. "영생"이라는말은 문자적으로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1) 이것은 첫째로 시간적으로 "끝없이 지속되는 생명"을 의미하고,
2) 둘째로 질적으로 "인간의 삶과는 다른 신적인 삶"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영생이란 말에는 시간적으로 영원한 삶이란 의미와, 하나님 안에서 누리게 되는 신적인 삶이란 의미를 둘 다 포함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영생"을 가리켜서 "영원하신 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영생"은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중보자이신 "아들"을 아는 것이 바로 영생입니다.
"안다"는 말은 지식적인 앎을 넘어서 친밀한 인격적인 교제를 통해서 전인적으로 아는 것입니다.
주님은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나, 이 세상에서 자기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12:25).
주님은 베드로에게 주님을 위해 가족을 버리고 헌신한 사람들은 내세에서 "영생"을 얻지 못할 사람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막10:30)
주님을 믿는 자는 이미 영원한 생명을 가졌으며, 그 축복을 주님 안에서 현실 속에서도 누릴 수 있다고 말합니다. 주님은 자신에 세상에 오신 것은 "양들에게 생명을 주고, 그들이 현실 속에서 풍성한 삶을 누릴 수 있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10:10).
영생은 믿는 자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하나님은 그 생명을 아들에게 주셨으며, 이로 인해 주님은 우리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분이 되셨습니다(요 5:26, 11:25). 이러한 점에서 주님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하셨으며,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 것이며,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라고 선포하셨습니다(요 11:25-26, 14:6).
어떤 랍비가 안식일에 예배당에서 설교를 하고 있을 때, 갑자기 그의 두 아이가 집에서 죽고 말았다. 아내는 아이들의 시체를 이층으로 옮긴 뒤 흰 천으로 덮어 주었다.
마침내 랍비가 집에 돌아오자.아내는 '당신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어요. 어떤 사람이 저에게 귀중한 보석을 잘 보관해 달라고 맡기고 갔는데, 어느 날 갑자기 그 주인이 나타나 맡긴 보석을 돌려 달라고 했어요. 그럴 때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랍비는 어렵지 않다는 듯이 '말할 것도 없이 맡은 보석은 주인에게 돌려주어야 되겠지.' 그때 아내가 울먹이며 말했다.
[실은 조금 전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기셨던 귀중한 보석 두개를 찾아가지고 하늘로 돌아갔어요.]
랍비는 아내의 말을 알아 듣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하나님을 인정하고,
영생을 인정하는 신앙이 우리를 살립니다.
[마무리하는 말]
모기를 연구하는 세계 보건기구의 한국학자 방 박사가 모기에 관하여 설명하기를, 모기는 수십 종이 있는데 거의 지상으로부터 2m이내에서 살고 2m부터 5m사이에 있는 모기는 극소수며 5m이상 높은 곳에서는 모기가 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 땅에는 많은 해충들이 있으나 높은 곳에는 없습니다.
그러나 높은 곳에는 독수리와 같은 무서운 맹금이 있듯이 마귀가 공중 권세를 잡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이 좀더 하늘로 올라가면 생명을 유지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좀더 높은 곳으로, 좀더 신령한 곳으로 오르고 또 올라서 자연히 죄와 죽음을 물리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종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로, 믿음으로, 믿음에 경건한 지식을 더함으로, 영생에 이르는 축복이 임하시길 기도드립니다.
[설교 본문]
1. 하나님의 종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나 바울이 사도 된 것은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의 믿음과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과
2. 영생의 소망을 위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
3. 자기 때에 자기의 말씀을 전도로 나타내셨으니 이 전도는 우리 구주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내게 맡기신 것이라
4. 같은 믿음을 따라 나의 참 아들 된 디도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구주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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