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28 March 2015

벧전1:1-5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 사람

[들어가는 말]

저는 어머님이 편찮으신 것을 본 기억이 없습니다.
어머니는 아플 수 없는 분인 줄 알았나 봅니다.
어머님께서 아픈 모습을 처음 본 것은 뇌출혈로 어머님께서 쓰러져 병원에 입원하신 때입니다.
어머님은 처음 아프셨고
처음 입원하셨고
그리고 돌아가셨습니다.

어머님이 아플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하는데 모르고 있었던 같습니다.
아니, 아프면 안 되는 사람이 아니었나 생각해 봅니다.

요즈음 위로 엄마가 아픕니다. 몸도 아프고, 마음도 아픕니다. 제가 어머니가 아프지 않으실 거라고 착각한 것처럼 사모는 아플 수 없는 사람으로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까 생각이 스쳐갑니다.

사모도 아플 수 있구나 이해하시고 병 낫기를 위해 기도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우리 성도는 늘 주변을 살피면서 이분도 아플 수 있다, 이분도 내 곁을 떠날 수 있다, 돌아가실 수 있다 생각하며 이해의 폭을 넓히면 좋겠어요.

베드로전서는 크리스천도 고난과 시련 속에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베드로전서는 고난과 시련 속에 있는 이런 기독교인들에게 구원의 소망을 알려주십니다. 그리고 인내할 이유를 제공함으로 고난당한 성도들에게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 위로를 주고자 하는데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처한 현실이 고난이요 시련의 나그네 길이라 할지라도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 이유를 찾아 사시는 축복을 받을 수 있기 바랍니다.


1.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베드로'

[벧전1:1]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베드로전서를 보낸 분은 베드로입니다. 갈릴리 바다에서 그물을 내리며 일생을 살아왔던 한 일상인입니다.
그런데 그는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라 선포합니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1] 베드로는 평범한 어부였습니다.
2]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3] 예수님 안에서 메시아를 만났습니다.
4] 예수님을 배반하였습니다.
5] 부활하신 예수님을 영접하였습니다.
6]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베드로 자신이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 사람’임을 알게 됩니다.

[예화]

나폴레옹의 말이 도망쳤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날쌘 병사 하나가 자기 말을 타고서 장군의 말을 쫓아갔습니다. 그가 말고삐를 나폴레옹에게 건네주었을 때, 나폴레옹은 병사에게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고맙네, 대위."
그 말을 들은 병사의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그리고는 깜짝 놀라 얼른 차렷 자세를 하고서 경례를 붙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장군님!"
그는 즉시 막사로 가서 짐을 챙겨들고 장교숙소로 옮겨갔습니다. 그리고 낡은 군복을 벗어 병참 담당자에게 주고는 대위의 군복을 받아들었습니다. 장군의 말 한 마디에 그는 병사에서 장교로 바뀐 것입니다. 그는 따지지도 않았고, 사양하지도 않았으며, 의심하지도 않았습니다. 그가 아는 것은 그렇게 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이 그렇게 했다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받아들였습니다. [거친 세상에서 실패하거든]. 맥스 루케이도

우리는 베드로에게서 이 담대한 군인의 모습을 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긴 직분을 받았을 때, 하나님께 즉각 경례를 붙이고, 하나님의 대사답게 감사하면서 살아갈 수 있습니까?

[거친 세상에서 실패하거든]. 맥스 루케이도

2. 말씀을 받는 수신자는 택함받고 순종하다 여러 곳에 '흩어진 나그네'입니다.

[벧전1:1b-2]

1b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2.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1] 나그네로 흩어졌습니다.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져서 정처 없이 고생하며 나그네의 삶을 사는 성도들에게 인내와 소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는 예루살렘이 아닙니다.
그들의 고향이 아닙니다.
그들의 부모가 있는 곳 아닙니다.
그들의 기업(생업)이 있는 곳 아닙니다.
그들의 꿈이 있는 곳 아닙니다.
그들의 현실적 보장도 없습니다.

어떤 성도는 생업을 잃고
어떤 성도는 부모 친척 자녀를 잃고
어떤 성도는 재산을 잃고
어떤 성도는 현실적 보장을 잃고
어떤 성도는 가족을 희생하였습니다.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는 외부의 압력에 의해서 생존을 위해서 도달한 곳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역사적으로 볼 때, 흩어짐으로 인한 상처가 많은 민족입니다.

남쪽 유다 왕국 또한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하고(B.C. 586년)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바벨론에서 귀환한 이후에도 그들은 계속해서 애굽, 소아시아, 아르메니아, 그리스, 이탈리아, 이란, 그리고 로마제국의 여러 곳으로 이주했습니다.
헬라의 알렉산더 대제와 톨레미 1세는 유대인 분산정책에 의해서 유대인을 애굽으로 강제 이주시켰습니다.
수리아의 안티오쿠스 4세는 약 2,000 세대의 유대인을 소아시아로 강제로 대이동시켰습니다.
A.D. 70년, 예루살렘을 점령한 로마의 폼페이 장군은 모든 유대인을 팔레스타인 지방에서 쫓아내 로마제국 전지역으로 해산시켰습니다.

그들은 ‘흩어진 나그네’ 민족으로 아픔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안으로는 유대인들이 율법파괴자라고 핍박하고, 밖으로는 로마 황제의 무서운 해를 받아 내우외환의 고통을 현재 당하고 있었습니다.



2] 여러가지 시험을 당하였고 근심하였습니다.

[벹전1:6]

6.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이 서신을 받는 많은 기독교인들이 힘든 현실에 봉착하고 살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기독교는 무서운 박해 속에서 자라난 종교입니다. 지금도 세계 도처에서 선교사들이나 교회지도자들의 순교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네로 황제가 로마 대화재(A.D. 64년) 사건을 빌미로 기독교 대박해를 시작한 이후 기독교는 로마제국에 의해 처절한 박해를 받아야만 했습니다. 네로 당시 로마시는 목재 건물로 되어 있었고 길은 매우 좁았기 때문에 대 화재의 위험성이 언제나 상존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도시에 화재가 발생하자 로마의 전 도시가 삽시간에 화염에 휩싸이게 되었고 3일이 지나서야 겨우 불길이 잡혔습니다.

로마시민이라면 이 화재가 네로의 소행임을 모두가 다 알고 있었습니다. 역사학자들은 그가 방화한 이유로써 대 건축가로서 로마시를 재건해 보려는 네로의 야망을 지적합니다. 또한 방화의 주범으로 황제숭배를 거부하는 기독교인들을 몰아 기독교를 발본 색인하는 계기로 삼으려는 일석이조의 속셈을 가졌다고 합니다.
무서운 박해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때의 박해로 기독교인들은 몸이 찢기고 삶의 터전을 잃어버리는 처절한 아픔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기독교인들을 굶주린 사자가 으르렁대는 원형극장에 몰아넣어 처참하게 물어 뜯어먹도록 하였고, 또 양의 가죽을 기독교인들에게 입혀 사냥개로 물어뜯어 먹게 하였으며, 온 몸에 역청을 바르고서는 불을 붙여 인간 횃불을 만들어 죽였고, 산 채로 십자가에 매달아 죽였습니다. 그러므로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카타콤 같은 토굴 속에서 살기도 하였습니다. 그들이 이런 핍박 속에서도 신앙을 지키고 순교를 기꺼이 맞이하게 되었던 것은 영광스러운 하늘나라가 자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소망 때문이었습니다.


3] 그러나 그들은 오히려 크게 기뻐하였습니다.

[벧전1:6]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그들은 어떠한 환난과 핍박 속에서도 기독교 신앙을 굳게 지키었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여러 가지 고난의 상황 속에서도 꿋꿋하게 믿음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무슨 이유 때문입니까?
그들이 오히려 크게 기뻐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벧전1:2]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1]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곤고한 땅을 종일 걸어가도 피곤하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미리 아심을 따라가기 때문입니다.

[2]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순종은 아무나 할 수 없습니다.
성령으로 거룩하게 하심을 받은 자만이 순종할 수 있습니다.

[예화]

몇 해 전 알래스카에서 발생하였던 지진으로 한 마을에 새로운 신앙적인 기운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이 마을에는 All St. Church와 St. Josep 교회가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위치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두 교회는 이상한 경쟁을 하고 있었습니다. 누가 더 교회를 더 호화롭게 장식하고 파이프 오르간 같은 기물들을 더 고급품으로 들여놓느냐 하는 경쟁을 벌이는 것이었습니다. 두 교회는 모두 경제적으로 넉넉한 교인들로 구성되어 있었으나 구제나 선교를 위한 프로그램은 참으로 빈약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예수님의 수난일이었는데 지진이 발생했습니다. 그렇게 평온하던 동네는 마치 전쟁이 일어난 것처럼 거의 다 파괴되었고 아름답게 꾸며졌던 두 교회 역시 재가 되다시피 무너져 내리고 말았습니다.
부활절 아침이 되었습니다. 그 두 교회 성도들은 비교적 덜 파손된 성 요셉 교회에 모여 함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 잿더미 위에서 드린 부활절 연합예배는 참으로 감격스러운 눈물의 예배였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아름답던 교회당이 흉측하게 파괴되고 나서야 비로소 자신들의 잘못된 허영심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날 그 도시의 시청 게시판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한 쪽은 "필요한 물품을 적어 넣으시오"
다른 한 쪽은 "재해민에게 나눠줄 물품이 있습니까?"
놀라운 것은 두 교회를 합친 150여명이 한 명도 필요한 물건을 요청하지 않고 모두가 한 가지씩이라도 나누어 줄 수 있는 물건을 내놓은 것이었습니다. 부활절 아침에 그들은 지진 때문에 새로운 그리스도인들이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령을 받아 순종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성령 충만은 순종 충만으로 연결됩니다.


[3] 예수 그리스도의 피뿌림을 얻기 위한 택하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신 목적은 우리의 허물과 죄를 씻어주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성도를 깨끗케 하시려고 택하셨습니다.

어거스틴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상하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다니......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이 세상에서 가장 놀라운 신비는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나를 사랑하시되 이 세상에 마치 사랑할 사람이 나밖에 없는 것처럼 사랑하신다.
이상하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다니.....'

[벧전1:6]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오히려 크게 기뻐하며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왜입니까?

1]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셨습니다.

[벧전1: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우리의 산 소망이십니다.
예수의 부활은 썩지 않는 소망입니다. 더러워지거나 쇠하지 않는 소망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시지 않았다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의 대속의 죽음을 대신 하지 않았다면,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지 아니하셨다면 우리에게는 산 소망이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께서 다시 살지 아니하셨다면 우리는 여전히 죄와 죽음의 권세 가운데 고통당하고 있을 것입니다(고전15:17).

그리스도께서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하셨기 때문에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부활할 수 있는 산 소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늙어감의 미덕(The Virtues of Aging)』이란 책이 있습니다.
카터는 대통령 재선에서 닉슨에게 패배한 뒤 고향인 조지아 주 플래인스 땅콩 농장으로 돌아갔습니다.
백만 달러가 넘는 빚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아 삶의 터전이던 땅콩 농장과 자기 집을 다 팔아도 모자랄 만큼 많은 것이었습니다.
자신은 나이 많아 이제는 너무 늙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카터 안에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살아 계셨습니다.
집한 채 없이 사는 소외된 사람들이 보였습니다. 그는 그들을 돕는 "사랑의 집짓기 운동(habitat for humanity)"에 나섰습니다.

대통령 이후의 삶이 더 아름답게 빛나고 만인으로부터 존경받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대통령직은 더 큰 일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일시적 과정에 불과하였다."


2]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고 산소망이 있게 하셨습니다.

엡2:3에 보면 '우리도 전에는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습니다.

[엡2:12]에서는 '그때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했습니다.
원래, 우리는 아무런 소망이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산 소망이란 잠시 있다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것이며, 이 땅에 사는 동안만 있는 것이 아니라 죽음 너머에도 있는 소망입니다. 성도가 산 소망을 가지게 된 것은 오늘 본문 3절 말씀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셔서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음 가운데서 다시 살아 나셨다는 것은 나도 죽지만 예수님처럼 다시 살 수 있다는 보증이기 때문에 우리는 산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소망 중에는 산 소망이 아닌 소망이 있습니다. 부끄러움을 당할 소망도 있습니다. 그런데 성도들 중에도 부끄러움 당할 소망을 가지고 그것을 위해 인생을 바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D.L. Moody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영국에서는 길에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몇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터덜터덜 혼자서 걸어가는 사람은 가난한 사람이다.
그리고 걸어가는데 뒤에 시중드는 사람이 한 사람 따라가면 상당히 돈이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시중드는 사람이 두 사람 쯤 되는 사람은 남길 유산이 상당히 많은 사람이다.

한두 사람 더 따라다니는 인생이 되는 것을 소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시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엡1:18,19)

바울 사도는 이같은 산 소망이 있으므로 담대히 전했고, 또 하늘에 쌓아둔 소망을 인하여 늘 감사했습니다.


3] 우리 성도를 위해 하늘에 간직하신 유업을 잇게 하셨습니다.

[벧전1:4]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여기 '유업‘이란 영리를 목적으로 경제활동을 하는 기업(企業)이 아니라 대대로 물려받는 재산 즉 상속 재산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유업을 잇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말씀이요, 동시에 하나님 나라와 영광스러운 축복을 상속함을 의미합니다.

[로마서 8장 17절]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구약시대 기업은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하나님의 백성 각자가 소유할 지분(持分)이었습니다. 그 가나안의 기업은 장차 완성될 하늘 기업의 예표였습니다.

성도가 누릴 기업은 하늘에 간직된 영원한 것입니다.
'하늘에 간직되었다'는 것은 어떠한 위험이나 오염이 접촉할 수 없는 절대 안전 지역에 있다는 말씀입니다


세상의 기업은 죽으면 끝!입니다. 죽음으로부터 보호받을 하나도 없습니다.

부자가 죽었다고 합시다. 세상 사람들의 관심은 그가 유산을 얼마나 남겼을까에 쏠립니다. 그러나 죽은 사람 입장에서 보면, 대답은 간단합니다. '다 남기고 갔을 뿐입니다'
한 푼도 못가지고 가는 것입니다.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습니다.

더럽지 않는 유업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시간이 지나면 다 더럽혀 집니다.
옷이나 가구를 처음에 사서 입을 때는 하얗고 좋은데 시간이 지나면 그저 그렇습니다. 낡아집니다.
자동차도 새로 사면 깨끗하고 좋지만 얼마가 가지 않으면 여기저기 부딪히고 긁힙니다.

또 쇠하지 않는 유업입니다.

[마 6:19-20]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4] 하나님의 예비하신 구원을 얻게 하시려고 능력으로 보호하십니다.

[벧전1:5]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유업을 주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십니다.

우리의 궁극적인 구원은 말세 즉 마지막 순간에 이루어지지만 그 때에 구원받기로 작정된 자는 현세에서도 하나님의 보호를 받습니다.
하나님의 후사로서 하늘의 유업을 상속받고, 현재의 삶속에서도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보호함을 받습니다.

이 땅에서 사는 성도에게도 많은 시험과 박해와 위험과 불안과 염려와 고난들이 외면하지 않고 엄습해 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때 하나님의 능력으로 성도는 구원을 누리게 됩니다.
성도는 사단으로부터 공격을 받게 되나 굴복을 당하지 않습니다. 그 구원의 보장이 하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이 성도를 안전하게 보존할 수 있습니다.

[이사야 31:5]

"새가 날개 치며 그 새끼를 보호함 같이 나 만군의 여호와가 예루살렘을 보호할 것이라"

[신명기 32:10]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이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의 눈동자 같이 지키셨도다"

우리를 이 악한 세상에서 세밀하게 지키시는 하나님이 계시기에 성도는 폭풍우가 몰아쳐도 담대하게 항해할 수가 있습니다. 나의 삶을 보호하시고, 책임지시는 하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어제 말씀을 준비하고 있는데 우리 교우로부터 좋은 글이 전송되어 왔습니다.

“그리스도에 대해 들어 볼 기회를 얻었고 그래서 그를 믿게 된 사람들만이 이 새 생명을 얻는다는 것은 엄청나게 불공평한 거 같지 않습니까?
우리는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구원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압니다. 그러나 그를 아는 사람들만 그를 통해 구원받을 수 있는 가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하나님은 왜 적군이 점령한 이 세상에 변장을 하고 들어와 일종의 비밀 결사대를 통해 마귀의 세력을 전복하시려 합니까? 하나님은 세상을 침공하실 겁니다. 그런 날이 일어나는 날은 바로세상이 끝나는 날입니다 극작가가 무대 위로 걸어 나오면 연극은 끝난 것입니다. 그 때 하나님은 변장하지 않은 모습으로 나타나실 겁니다 그 때는 선택의 때가 아닙니다 그때는 우리가 참으로 어느 편을 선택했는지 드러나는 때이고 우리가 그 사실을 전에도 알았는지 몰랐는지 깨닫게 되는 때입니다 지금, 오늘 이 순간이야말로 옳은 편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의 때입니다. 영원히 지체하시지는 않을 것입니다.”

‘순전한 기독교’ -p115-

[벧전1:6]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마무리하는 말]

베드로 사도는 흩어져 나그네 된 성도들에게 ‘오히려 우리가 크게 기뻐하는 이유’를 전합니다.

이 놀라운 이유를 발견한 성도 한 분이 이런 예쁜 답글을 남겼습니다.

'나는 부끄러운 마음으로 뒤를 돌아보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나의 낭비한 시간과 죄를 다 아시기 때문입니다.
모두 주님께 맡겼고, 주님께서 용서하시고 잊으셨습니다.

나는 불안한 마음으로 앞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나의 갈 길을 다 아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함께 계시며
또 모든 시련을 능히 이기게 하실 것입니다.

나는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리지 않습니다.
삶을 공격하는 높은 파도가 많으나
진정한 위로와 안식은 주님께로부터 오기 때문입니다.

나는 실망스럽게 나 자신을 돌아보지 않습니다.
내 속에는 믿을 만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나는 믿음을 가지고 위를 쳐다봅니다.
예수님의 얼굴을 보는 것입니다.
거기에 쉼이 있고
거기에 소망과 기쁨과 빛이 있기 때문입니다. '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는’ 성도 여러분,

초대교회 성도들이 발견한 주님을 바라보시고 ‘오히려 크게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설교 본문 말씀]

1.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2.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4.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5.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
6.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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