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28 March 2015

벧후1,12-21 더 확실한 예언, 이것을 주의하라!

[들어가는 말]

지금 우리에게 설문 조사를 하면 ‘아멘, 주예수여 오시옵소서!’를 택하시겠습니까? ‘주님이 지금 오시지 않았으면 더 좋겠다’를 택하시겠습니까?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속에 주님의 오심에 대한 열망이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오늘은 더 확실한 예언을 소개하고, ‘아멘, 주예수여 오시옵소서!’를 회복하는 신앙을 회복할 수 있기 원합니다.


1. 생각해야 할 진리가 있습니다.

청소년 시절에 우리 세대가 좋아하던 노래 가운데 ‘등대지기’가 있습니다.

얼어붙은 달그림자 물결위에 비치며
한겨울에 거센 파도 모으는 작은 섬
생각하라 저 등대를 지키는 사람의
거룩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마음을

생각하라!

가수 양희은의 정감어린 목소리로 ‘저 등대를 지키는 사람의 거룩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마음을’ 일깨우는 애절한 가락이 겨울 같던 시대를 지나는 우리 젊은이들의 가슴을 흔들었던 것 같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 말씀은 우리가 “이것을 알고 이미 진리에 서 있”음을 아시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생각나게 하려고 이 말씀을 주십니다.

너희가 이것을 알고 이미 있는 진리에 섰으나

  '진리'는 '복음'을 말합니다, 전반적인 사도적 가르침입니다.
‘너희’는 베드로 후서를 받는 성도들입니다.

  '섰으나'는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형제를 굳게 하라'고 권면할 때 사용하신 말(Confirm, establish, strengthen)입니다. 말씀이 알려주시는 대로, 사도적 진리를 바탕으로 굳게 선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진리를 상기하고 부지런히 애써서 진리 가운데 굳게 서있게 하기 위하여 이 말씀을 주고 계십니다.

12.    ... 내가 항상 너희에게 생각나게 하려 하노라
13. 내가 이 장막에 있을 동안에 너희를 일깨워 생각나게 함이 옳은 줄로 여기노니
15. 내가 힘써 너희로 하여금 내가 떠난 후에라도 어느 때나 이런 것을 생각나게 하려 하노라
‘생각하게’ 하려는 주님의 중심이 세 번 거듭 반복되고 있습니다.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우리에게 주신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3)
생각나게 하려 하십니다.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생각나게 하려 하십니다.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 된 것을
생각나게 하려 하십니다.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생각나게 하려 하십니다.

왜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런 진리를 새삼스럽게 생각나게 하려 하실까요?

저는 무엇을 생각하고 사는가 생각해봅니다.
제가 주님을 위해서 한 일들은 대부분 않고 기억합니다.
제가 주님을 위해 드린 헌금들을 기억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교회에 다니면서 한 일
학창시절에 한 일
선교단체에서 한 일
교사시절에 한 일
전도사시절에 한 일
목사가 되어서 한 일
잘 생각합니다.
생각하면 기분이 좋습니다.

“하나님, 제가 이렇게 귀한 일들을 했습니다. 하나님도 아시지요?”

그런데 주님께서는 오늘 저에게 내가 주님께 주님을 위해서 한 쥐꼬리만 의를 생각하게 하려고 이 말씀을 주신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들을 생각하게 하려고 이 말씀을 주십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모든 사람들이 들어야 할 복음은,
모든 사람들이 생각하여야 할 일들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하신 일들인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2. 더 확실한 예언은 재림의 소식입니다.

‘우리들이 일상적으로 예언한다고 말하면 ‘장래 일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장래 길흉을 미리 알기를 원하여 점쟁이에게 찾아가고, 신통하다는 점쟁이는 귀신의 힘을 빌어서 앞으로 전개될 길흉사를 말해 줍니다.
사람들은 이런 예언을 미리 알아 흉한 일을 피하고 길한 일에 대한 기다림으로 인생을 살아갑니다.
이런 세상적 사고방식으로 우리 신앙인들 또한 하나님을 찾거나 이용하는 일이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그러한 심리를 역이용하여 앞으로 길한 일이, 혹은 흉한 일이 임할 것이라며 점쟁이가 점을 치듯이 장래 일을 말하는 것을 신앙이 좋은 것처럼 말합니다. 그런 일에 낙을 두고 일하는 사람을 선지자처럼 사도처럼 앞세웁니다.

‘predict’란 미래에 있을 일을 미리 말한다.’는 의미의 단순 예언(預言)을 뜻하며, 'prophesy’란 하나님의 계시나 뜻을 사람들에게 전한다.’는 의미로서의 예언 (預言)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예언은 말씀 언(言)자에 맡길 예(預)자를 사용한 말입니다. 인간의 미래를 미리 말하는 것 이상으로, 하나님이 말씀을 맡겼다는 뜻이 강합니다.

하나님의 선견자(先見者) ‘로에’ 와 대변자 (代辯者), ‘나비’로서, 성경의 가르침에 따르면 ‘하나님의 대변자’, ‘대언자’란 뜻이지요.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말씀을 듣거나 이상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Holy Spirit)이 인도하심 따라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하나님의 대언자이요, 대변인이기 때문입니다


(렘 23: 16-18)
16.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에게 예언하는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말라 그들은 너희에게 헛된 것을 가르치나니 그들이 말한 묵시는 자기 마음으로 말미암은 것이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온 것이 아니니라
17. 항상 그들이 나를 멸시하는 자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평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며 또 자기 마음이 완악한 대로 행하는 모든 사람에게 이르기를 재앙이 너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하였느니라
18. 누가 여호와의 회의에 참여하여 그 말을 알아들었으며 누가 귀를 기울여 그 말을 들었느냐

[겔 13: 1-4]

1.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2. 인자야 너는 이스라엘의 예언하는 선지자들에게 경고하여 예언하되 자기 마음대로 예언하는 자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3. 주 여호와의 말씀에 본 것이 없이 자기 심령을 따라 예언하는 어리석은 선지자에게 화가 있을진저
4. 이스라엘아 너의 선지자들은 황무지에 있는 여우 같으니라

모든 교훈과 권면이 자신의 순교한 후에도 보존될 뿐만 아니라 수신자들에게 계속적으로 성취되어서 진리 안에 굳게 설 성도들이 복 받게 될 할 것임을 확신하였습니다.

그 중 더 확실한 예언은 바로 재림에 관한 말씀입니다.
구약에서 메시야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탄생에 대하여
예수님의 죽음에 대하여
예수님의 부활에 대하여
예수님의 재림에 대하여
예언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부터 죽으심 부활 모든 예언이 선포되었고 성취되었습니다.
오늘 본문 하나님의 말씀은 예수님의 재림도 더 확실한 예언이라고 선포하십니다.

거짓 교사들의 그릇된 가르침으로부터 성도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종말론적인 가르침 즉, 영광 중에 오실 그리스도에 대하여 말씀합니다. 그리스도의 부활, 승천, 재림 등 사도들이 전하여 준 교훈들이 꾸며낸 이야기가 거짓 교사들이 주장하는 것과 같이 꾸며낸 이야기가 아님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재림(parousia)하실 때 온전히 성취되게 됩니다. 주님의 예언은 그분의 재림을 통해서 불법한 자와 적대자들을 심판하시고(살후 2:8;계 19:11-16) 그 나라를 온전히 완성하십니다.(계 11:15-18)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그에게 주신 확실한 예언 두 가지를 가지고 예수님의 재림을 전하고 있습니다.

     1] 예수님의 변화산 강림입니다.

16.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교묘히 만든 이야기를 따른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
17. 지극히 큰 영광 중에서 이러한 소리가 그에게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실 때에 그가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
18. 이 소리는 우리가 그와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에 하늘로부터 난 것을 들은 것이라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은 변화산상에서 예수님께서 모세와 엘리야 중앙에 변화된 모습으로 강림하심을 체험하였습니다.


'내 아들'은 유대주의에서 메시야에 대한 진술로 해석한 시 2:7의 인용입니다. 시 2편에 의하면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메시야는 '아들'이라 불리며(7절) 시온산에서 왕으로 등극하여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는 모든 적대 세력을 지배하시고 다스리십니다(8,9절).
초대 교회는 이런 시 2편을 예수께 적용시켜 예수께서 재림 때에 종말론적인 심판을 행사할 것으로 해석하였습니다.
또한 '내 사랑하는'에 해당하는 헬라어 '호 아가페토스 무'는 메시야의 칭호로서 예수께서 메시야 직분을 수행하기 위해서 선택받은 자이심을 시사합니다. 한편 '내 기뻐하는 자'는 사42:1의 인용으로 메시야 직분을 수행시키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기쁘게 선택하셨음을 시사합니다.

저가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

     여기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아들 됨을 강조합니다. '존귀와 영광'은 엄밀하게 구별할 수 없는 이중적인 표현으로 하나님께서 예수의 변형된 모습의 영광스러움에 아들로 인정하시고 존귀를 부여하셨습니다. 따라서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신성한 영광을 입으셨으며, 하나님의 대리자인 왕으로서 종말론적인 심판과 통치를 수행할 임무와 권한을 부여받았습니다.


2] 예수님의 승천하실 때 주신 말씀입니다.

[행1:6-11] 말씀대로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려지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6.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7.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9. 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
10.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11.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우리 주님께서는 재림하십니다.
당시나 지금이나 현실에 안주하는 사람들은 심판주로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 쾌락을 누리며 죄 가운데 사는 것이 더 좋기 때문입니다.

사탄도 주님의 재림을 싫어합니다.
이단도 주님의 재림을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은 사도 신경으로 늘 고백합니다.

“저리로서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마무리하는 말]

예수님의 재림은 볼 수 있게 오십니다.
1. 초림시는 구유에 오셨으나(눅2:7), 재림시는 구름을 타고 오십니다.(마25:31-32, 디도2:13, 계1:8)
2. 초림시는 멸시함을 받았으나(이사야53:3), 재림시는 기이히 여김을 얻을 것입니다.(살후1:10)
3. 초림시는 고난을 받았으나(벧전1:11), 재림시는 영광을 받으십니다.(벧전1:11)
4. 초림시는 십자가를 지셨으나(요19:17), 재림시는 면류관을 쓰십니다.(계19:12)
5. 초림시는 죄인 모양으로 오셨으나(이사야53:9), 재림시는 왕으로 오십니다.(계17:14)

  메시야의 구원사역의 완성이라고 할 수 있는 재림을 믿지 않는다면 신앙생활도 헛것입니다.
어떤 아내가 남편이 해외 취업을 나갔는데 그 남편을 보고 싶어 하지도 않고 도리어 “안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면? 바른 태도?
한 미국 병사가 월남전에 참전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아내는 언젠가 남편이 집으로 돌아올 줄을 믿고 있었지만 그 날이 언제가 될는지는 모르고 있었습니다. 어린 딸은 아빠를 몹시 보고 싶어하며 언제쯤 돌아오게 될 것인지를 얘기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그 남편이 예상보다 일찍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정말 반갑게 맞는 모습이 정상 아닙니까?

신랑 되신 주님은 올라가는 그대로 오신 다 하셨습니다.

[행1:11]
"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마24:44]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마24:37]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등불을 준비한 다섯 처녀처럼 기다리는 삶을 삽시다.

19. 또 우리에게는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를 비추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옳으니라

  '어두운 데'는 빛되신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 이라면, '예언', 하나님의 말씀, ‘더 확실한 예언’은 '어두움을 비추는 등불'입니다. (사 9:2;엡 6:12).

제정 러시아가 망하던 날은 참혹했습니다. 코카서스의 기마병들이 모스크바를 향해 쳐들어올 때, 모스크바의 피난 대열에는 금은보화를 잔뜩 실은 마차와 처녀들, 사제들, 그리고 귀족과 같은 부자들이 100만 명 이상이나 있었습니다. 먹을 것은 없고 날씨는 추워 영하 40도를 오르내려, 그 와중에 수많은 사람들이 얼어죽고 병들어 죽었습니다. 만삭이던 한 부인이 아기를 낳다가 아기와 함께 죽기도 했습니다.

등불인 예언의 말씀은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등불로서(시 119:105)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을 향해 빛을 발하는 역할을 합니다.

[역사]란 마치 마지막 날을 향해 나아가는 여행과도 같습니다.
마지막 날,  영광스러운 나팔 소리와 함께 예수님이 다시 오시리라.

더 확실한 예언을 붙들면  오늘의 능력이 됩니다.
블룸하르트는 남독일 시골 마을의 목사였습니다. 그는 예수의 재림을 고대하며  집 마당에 한 대의 마치가 준비해 두었습니다. 그는 끝 날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커다란 위로와 희망을 삼았습니다.
한 시대를 생기 있게 살다간 사람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설교성경본문]

12. ○그러므로 너희가 이것을 알고 이미 있는 진리에 서 있으나 내가 항상 너희에게 생각나게 하려 하노라
13. 내가 이 장막에 있을 동안에 너희를 일깨워 생각나게 함이 옳은 줄로 여기노니
14. 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지시하신 것 같이 나도 나의 장막을 벗어날 것이 임박한 줄을 앎이라
15. 내가 힘써 너희로 하여금 내가 떠난 후에라도 어느 때나 이런 것을 생각나게 하려 하노라
16.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교묘히 만든 이야기를 따른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
17. 지극히 큰 영광 중에서 이러한 소리가 그에게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실 때에 그가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
18. 이 소리는 우리가 그와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에 하늘로부터 난 것을 들은 것이라
19. 또 우리에게는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를 비추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옳으니라
20. 먼저 알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21. 예언profhtei,a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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