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말]
어떻게 하면 고난으로 흩어진 나그네 성도들이 영구한 도성을 향해 힘있게 나아갈 것인가?
어떻게 해야 이 극한의 상황 속에서 신앙으로 승리할 것인가?
히브리서 말씀을 마무리하면서 흩어진 성도들에게 오늘 주님께서는 중요한 교훈을 각인하십니다.
1.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가지라.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건 호흡이고,
성도에게 가장 소중한 건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예배를 통해서 입증됩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과의 좋은 관계였나를 알려면 모리아 산에 서의 예배로 입증됩니다.
[창22:12]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예수님께서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 고난을 받은 중심은 죄인된 우리와 거룩하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키시려는 것입니다.
[히13:12]
12.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그리스도께서 당하신 고난 곧 십자가 상의 죽음은 이방인들에게 수치스러운 일이었으며, 유대인들에게는 하나님의 저주 아래있는 것으로 이해되었습니다(신 21:22,23; 갈 3:13)
1] 몸의 제사로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가질 수 있습니다.
[히13:13]
13. 그런즉 우리도 그의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
예수님께서는 영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심으로 우리로 예배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우리 사이를 막고 있는 죄의 벽이 허물어졌습니다.
주님께서 몸을 십자가에 드림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이 되심으로 우리의 예배는 온전히 열납되게 되었습니다.
이제 성도는 예수님께서 열어주신 길로 주님을 따라 영문 밖으로 나아가면 됩니다.
영문 밖, 주님께서 지신 십자가 아래서 하나님과의 관계는 회복됩니다.
우리도 몸으로 영문 밖으로 나아가 올려드리는 예배는 온전해지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몸으로 드리신 제사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우리들은 그 공로를 의지하고 우리도 몸을 헌신함으로 온전한 제사에 참여하는 예배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성도들이 몸으로 드리는 예배는 산제사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구약 백성들 같이 소나 양 같은 짐승으로 제사를 드릴 필요는 없습니다.
로마서에서는 ‘너희 몸을 산 제사로 드리라’ 하십니다.
[롬12:1]
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우리들을 거룩하게 하시려고 고통의 십자가를 지시고, 우리들도 자기 십자가를 지고, 성문밖으로 나아가셨으니, 우리는 무죄하신 하나님 독생자의 보혈을 의지하고 몸으로 나아와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드릴 영적 예배입니다.
자기 십자가를 몸으로 지고 주님 가신 좁은 길, 고난의 길, 희생의 길을 따름으로 영적 예배자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교우 가운데는 참 먼 곳에서 예배를 드리기 위해 교회에 오시는 분이 있습니다.
몸의 수고가 남다릅니다.
그러나 영문 밖으로 어려운 십자가를 지고 나아오는 그 몸의 예배는, 마음의 진정성만 함께 한다면 하나님과의 관계를 입증할 수 있습니다.
몸으로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삶은 진정한 영적 예배입니다.
몸밖에 드릴 것 없어
이 몸 바칩니다.
2] 찬송의 제사로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가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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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13:15]
15.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1] '예수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가질 수 있습니다
(1) 그리스도인들이 드리는 찬미의 제사가 옛 언약의 제사장들에 의해서 드려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드려지는 것입니다.
(2) 그리스도인들이 드리는 제사는 더 이상 옛 언약의 제사장들이 드렸던 동물 희생 제사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에 의해 온전한 희생제사가 단번에 드려졌으므로 더 이상 속죄를 위한 동물 희생 제사를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도리어 그리스도인들이 드려야 할 제사는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찬미하는 제사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오직 찬미의 제사를 드린다는 사실은 그리스도께서 드리신 희생 제사가 하나님께 온전하게 열납되었기 때문입니다.
2] '항상'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가질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드려지는 찬미의 제사가 지속적이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끊이지 않고 하나님께 찬미의 제사를 드리는 일은 하나님의 은혜와 선하심을 계속적으로 경험할 때 가능하며 하나님의 약속의 불변성을 확신할 때 이루어집니다.
'항상'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갖는 걸 의미합니다.
우리가 값없이 구속함을 받은 은혜 생각하며 감사하며 드리는 찬미의 예배입니다.
다윗처럼,
내가 누구오며
내 집이 무엇이관데
나로 이에 이르게 하셨나이까?
감사의 예배
찬송의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우리 위해서 주신 사랑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피흘리시고, 죽으심으로 이루신 속죄의 은혜를 찬양하는 것입니다.
304장은 바로 그런 성도의 중심을 노래한 찬양입니다.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말로다 형용 못하네
저 높고 높은 별을 넘어 이 낮고 낮은 땅 위에
죄 범한 영혼 구하려 그 아들 보내사,
화목제로 삼으시고 죄 용서 하셨네.
하나님 크신 사랑은 측량 다 못하네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 성도여 찬양하세
우리의 입술과 마음과 뜻을 모아서 감사드리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감사하고, 찬양하는 것입니다.
(엡5:19)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은 하나님의 명령이요, 의무입니다.
이 찬미의 제사는 예배 시간을 통해서 드려집니다.
우리의 전 삶을 통하여 드려집니다.
이 찬미의 제사는 항상 드려집니다.
전 인격을 다해 목소리를 높여서 찬양의 제사를 올려 드립니다.
하나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하나님의 베푸신 은혜를 찬양합니다. 이것이 찬양의 제사입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3] 선행의 제사로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가질 수 있습니다.
[히13:16]
16.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누어 주기를 잊지 말라 하나님은 이 같은 제사를 기뻐하시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은혜로 구원을 받았으면 그 복음에 합당한 행실을 하기 원하십니다.
그것은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누어 주기를 잊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선행의 제사입니다.
선행의 제사가 있을 때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가질 수 있습니다.
오늘날 성도들은 하나님께 몸으로 예배를 드립니다.
찬송의 제사를 드립니다.
그런데 세상에 나가서는 인색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좋고, 하나님을 찬양으로 높일 수 있으니까 너무 아름다운 모습인데요,
세상에서 불신자와 다를 것이 없다면 아쉽습니다.
생활에 변화가 무언가 달라야 하는데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일상 중에서도 우리들의 삶을 통해서 영광을 받으시길 원하시는데 말입니다.
어떻게 아버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세상 사람들을 기쁘게 할 수 있을까요?
선행의 제사를 드리는 겁니다.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누어 주기를 잊지” 않는 겁니다.
하나님께 구원을 거저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계속하려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한 행위를 해야합니다.
삶의 현장에서 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누어 주기를 잊지 않아야합니다.
자기를 먼저 생각하고 자기중심의 삶을 살았던 내가 바뀌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이 무엇인가 생각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을 행해야지요.
자신만을 생각하고, 살던 사람이 자기 가진 것을 서로 나누어주는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은 받으실 영광이 있으시기 때문이요, 많은 사람의 유익을 위해서 살도록 하심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사람은, 모든 사람에게 유익을 끼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예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3년째가 되던 1948년 9월이었습니다.
뉴욕에서 서부의 로스앤젤레스로 달리는 특급열차 속에 이누가이 미찌꼬라는 일본인 유학생이 타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지금 몬로비아에 있는 폐결핵 요양소를 찾아가는 길이었습니다.
폐병이 심해 축 늘어져 있는 그녀에게 승무원은 “어디까지 가느냐?”고 물었습니다.
몬로비아 병원에 간다고 대답하자 승무원은 난감해 하였습니다.
몬로비아 역은 이주 작아서 특급열차가 서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미찌꼬양 역시 그 사실을 알고서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얼마 후 열차 안의 확성기를 통해서 다음과 같은 안내 방송이 흘러 나왔습니다.
“승객 여러분, 이 열차 안에는 몬로비아 병원을 찾아가는 한 일본인 유학생이 타고 있습니다.
이 열차는 몬로비아 역에 서지 않지만, 몸이 아픈 그녀를 위해 철도청 본부로부터
임시 정차할 것을 허락받았습니다. 불편하시더라도 잠시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승객들은 모두 자기 일처럼 기뻐했습니다.
놀라운 호의에 감동받은 일본인 여학생은 뜨거운 눈물을 흘렸습니다.
몬로비아 역에는 역장과 구급차가 마중 나와 있었습니다.
기차에서 내리는 여학생에게 승객들이 말했습니다.
“용기를 내세요. 빨리 나아야 돼요.”
이 여학생은 생각했습니다.
“아, 하나님을 섬기는 나라가 바로 이런 것이구나.”
이것이 선행의 제사입니다.
이 같은 제사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고 했습니다
.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갖게 하는 제사가 무엇입니까?
1] 성문 밖에서 고난당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밑으로 우리 몸이 나아가야합니다. 그 은혜 아래 죄사함을 얻고, 몸으로 헌신하는 예배자가 되어야 합니다.
2]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통해 주신 구속의 은혜를 감사하며 찬양하는 제사입니다. 찬양의 제사는 입술로 드릴 수 있는 온전한 열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의 중심으로 드리는 감사와 찬양의 제사를 즐겨 받으십니다.
3] 선한 행위, 이웃과 나누는 착한 행실은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갖게 하는 제사입니다.
몸으로,
찬양으로,
선한 행위, 이웃과 나누는 착한 행실로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가짐으로
하나님과의 좋은 관계를 갖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길 기도드립니다.
2. 영적 지도자와 좋은 관계를 가지라.
[히13:17-19]
17.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그들은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신들이 청산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그들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18.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 우리가 모든 일에 선하게 행하려 하므로 우리에게 선한 양심이 있는 줄을 확신하노니
19. 내가 더 속히 너희에게 돌아가기 위하여 너희가 기도하기를 더욱 원하노라
당시 히브리 그리스도인 공동체에는 그들을 인도하는 '지도자'들이 있었습니다.
당시 그들은 인간적으로 출중하지 못했습니다.
많이 배운 것도 아니요, 많이 가진 자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성도들의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신들이 청산할 자인 것 같이’ 하는 영적 지도자였습니다.
'경성하기를'의 헬라어는 양떼들을 돌보기 위해 밤을 지새우는 목자상을 은유적으로 나타내는 단어입니다. 신약성경에서 주님 오실 날 '깨어 있음'을 가리키고 있습니다(막 13:33; 눅 21:36; 엡 6:18,
교인들의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신들이 청산할 자인 것 같이 합니다.
이는 목자가 양떼들을 돌보기 위해 밤을 지새우는 그것과 비교할 수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지도자들에게 부여하신 목회적 권위와 책임감이기도 합니다.
적용]
우리들에게‘우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신들이 청산할 자인 것 같이 하’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우리 부모가 우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신들이 청산할 자인 것 같이’ 한다면 그 부모는 바로 영적 지도자입니다.
우리 목회자가 우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신들이 청산할 자인 것 같이’ 한다면 그 목회자는 바로 영적 지도자입니다.
우리 선생님이 우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신들이 청산할 자인 것 같이’ 한다면 그 선생님은 바로 영적 지도자입니다.
우리 장로님이 우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신들이 청산할 자인 것 같이’ 한다면 그 장로님은 바로 영적 지도자입니다.
우리 순장님이 우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신들이 청산할 자인 것 같이’ 한다면 그 순장님은 바로 영적 지도자입니다.
그 사람이 누구이든지 우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신들이 청산할 자인 것 같이’ 한다면 그는 바로 영적 지도자입니다.
2] 그런 영적 지도자들을 존경하고 복종해야 합니다.
“그들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그런 영적 지도자들은 맡은 성도들의 영적 생활과 복리를 위해서 날마다 깨어 있어 돌보는 사명을 가지고 있는 사역자들입니다.
어려움이 닥칠 때는 지도자들은 자기가 회계할 자인 것같이 책임의식을 느낍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을 전파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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