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은사를 온전하게 세우는 지혜
[들어가는 말]
“그런즉 형제들아! 어찌할꼬?”
왜 이런 한탄하는 말이 있어야 합니까?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도 있으며 방언도 있으며 통역함도 있”습니다.
정말 굉장한 교회요, 살아있는 교회로 보입니다. 그런데 26절 말씀에서 보니 이런 한탄이 쏟아집니다.
고린도 교회가 영적인 교만이란 소용돌이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선물인 은사를 마치 자신의 공로인 양 남용하고 있고, 잘못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들이 받은 은사에 도취하여 분수에 넘어가기 쉬운 교우들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만일 누구든지 자기를 선지자나 혹 신령한 자로 생각하거든 내가 너희에게 편지한 것이 주의 명령인 줄 알라.”
대신 할 일이 있습니다.
“사랑을 추구하며”(디오데케 텐 아가텐)
(Follow the way of love!)
은사 중에 제일 되는 것이 사랑입니다(13:13).
그 중에 제일인 사랑을 따르라는 말씀입니다.
교회에 넘치는 은사들
다 좋은데
은사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사랑을 따라 은사를 활용하라는 말씀이지요.
그러므로
사랑을 위한 은사입니다.
사랑에 의한 은사여야 합니다.
사랑의 은사입니다.
은사를 구하는 자는 "사랑을 따라" 구해야 합니다. 사랑을 실천함에 더욱 필요한 은사가 무엇인가를 알아야 하고 그 사랑을 실천하는 데 필요한 은사를 구해야 되는 것입니다.
"구하라", 붙잡기 위하여 열심으로 좇아가라는 말씀입니다.
사랑을 실천하려고 전심(專心)을 기울이는 데 있어 어떤 은사가 필요하다면 그 은사를 붙잡기 위해 열심히 좇아가라는 말씀이지요.
사랑을 따라 구해야 할,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필요한 은사 가운데 방언과 예언을 말할 수 있습니다.
방언의 예언의 은사는 사랑을 실천하려고 전심을 기울이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붙잡기 위해 전심을 기울일 만한 가치가 있는 은사이기 때문입니다. 곧, 신령한 은사를 구하여야 되나, 남들에게 유익 끼치기를 목표로 할 일입니다.
은사의 목표는 사랑으로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1. 방언은 사랑의 옷을 입을 때 아름다운 은사입니다.
1] 방언은 성도를 영적으로 부요케 하는 소중한 재산입니다.
[고전14:2]
[고전14:2]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듣는 자가 없고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
세상부자들이 가진 재산을 말할 때는 소유하고 있는 집이나 토지나 보화나 돈이나 여러 가지 재산목록을 말합니다.
방언은 영적 중의 한 가지입니다. 영적으로 부요함을 나타내주는 영적 재산 목록입니다.
[1] 하나님과의 성도의 통로 역할을 합니다.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 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하나님께 통할 수 있는 영적 통로를 하나라도 가진 성도는 행복합니다.
방언의 은사는 바로 이런 영적 통로 중 하나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방언은 영적이요, 신비적인 영역에 속합니다.
방언을 말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향한 통로 한 가지를 확보하고 있는 것이지요.
방언만이 하나님과 열린 통로라는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방언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좋은 통로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답답한 사람이 불통한 사람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성도가 하나님을 향한 통로를 잃고 사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과 형통하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
요셉은 하나님과 형통한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과 형통한 사람이었습니다.
다니엘은 하나님과 형통한 사람이었습니다.
어떤 성도가 방언으로 하나님과 형통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2] 방언은 사랑의 옷을 필요로 합니다.
[1] 오늘 날 방언이 사도 시대 방언과 좀 다릅니다.
복음적이고 개혁적인 입장에서 성경을 연구하는 분들 가운데 다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도 시대에는 그렇게 나타내셨고, 교회 시대에는 이렇게 나타내십니다.”
하나님은 주권에 따라 얼마든지 은사를 다르게 주실 수 있습니다.
사람에 따라 다섯, 두 한 달란트를 차별적으로 주실 수 있습니다.
같은 사람이라도 어떤 때는 좀 많이 주실 수도 있고, 주신 은사를 거두어 가실 수 있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에서 인도하실 때, 하나님께서는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 먹여 주셨지만,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온 다음에는 만나 내리시기를 그치셨습니다. 그렇게 되었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변하신 것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오늘날의 방언을, 사도들의 역사로 허락하셨던 그 시대의 방언과
똑같이 주셔야 한다거나 그런 신령한 수준의 것으로 생각할 수 없습니다.
요즈음의 방언 운동에는 그릇된 방언들도 드러납니다. 주님께 영광이 되지 않는 방언도 있습니다.
[2] 방언은 자기 덕을 세웁니다.
- 자기의 덕은 세우나 교회의 덕을 세우지 못하지요.
[고전14:4]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
- 남에게 복음을 전하지 못해요.
[고전14:19]
그러나 교회에서 네가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방언은, 그 듣는 사람들의 불신앙을 고쳐 주지 못합니다. 듣는 자들을 믿음으로 인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방언을 듣는 자들이 회개하고 믿는 데로 나아가지 않습니다.
- 세상 사람들은 사랑의 옷을 입지 않은 방언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고전14:23]
그러므로 온 교회가 함께 모여 다 방언으로 말하면 무식한 자들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들어 와서 너희를 미쳤다 하지 아니하겠느냐.
고린도 교인들 중에는 방언의 은사를 받은 자들이, 통역 없이 방언을 회중에게 말하였습니다. 방언은 하나님에게서 받은 은사인데 이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하나의 호기심과 자랑거리로 전락했습니다.
하나님의 보배를 세상 사람들의 호기심 거리로 가치를 떨어지게 하는 일은 통역의 옷을 입혀 세상을 아름답게 할 수 있습니다.
2. 은사는 또 다른 은사와 조화를 이룹니다.
1] 예언은 방언을 온전케 합니다.
[고린도전서14:3-4]
“3. 그러나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위로하는 것이요. ……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
예언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믿는 자들의 모임에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이끌기 위한 하나님의 메시지입니다.
예언 역사는 사도의 역사처럼 계시 시대(사도 시대)에만 있었던 단회직에 속합니다. 교회 시대에는, 예언의 후신(後身)으로서 설교가 자리 잡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양자(兩者)의 기능이 같기 때문입니다.
예언이 건덕, 권면, 위로를 그 기능으로 한 것처럼(고전 14;3), 설교도 그렇습니다. 차이라면 예언자의 경우에 있어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초자연적으로 그에게 찾아 왔으나, 설교자의 경우에 있어서는 그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성경)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곧, 설교자는, 말씀의 청지기란 말입니다. 그는 사도와 선지자를 통하여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자입니다(고전 4:1,2;딛 1:7). 다시 말하면, 설교자는 기독교의 터를 닦는 자가 아니고, 사도와 선지자가 닦아 놓은 터(고전 3:10-11) 곧,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교회를 세우는 자입니다.
설교자는, (1) 맡기운 터와 자재(資材) 곧, 성경을 그대로 보수할 책임이 있습니다
(2) 또한 그 터와 그 자재를 가지고 집 지을(교회 세울) 책임도 있습니다. 그가 성경의 말씀을 전파하며 가르치는 것이 바로 그 일입니다. 그는, 말씀을 전파할 때에 자기의 구미에 맞는 것만 골라서 할 것이 아니고, 성경 말씀 전부를 전할 책임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신자들의 영혼을 이적으로 먹여 살리지 않으시고 성경 말씀으로 먹여 살리십니다.
[고전 1:22-23]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하였습니다.
건덕, 권면, 위로의 목적을 가집니다. 고린도전서 14장 3-4절에서 말하듯이 말입니다.
[고전14:24-25]
그러나 다 예언을 하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나 알지 못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모든 사람에게 책망을 들으며 모든 사람에게 판단을 받고
25. 그 마음의 숨은 일들이 드러나게 되므로 엎드리어 하나님께 경배하며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 가운데 계신다 전파하리라
예언은 하나님의 진리를 가르쳐 신자들의 신앙 사상을 증진시킵니다.
"권면"은 경계하여 양심과 의지로 옳은 데로 움직이게 함이고, "안위"는 난관과 핍박을 당한 신자들에게 소망을 보여 주어 그들의 정서(情緖)로 하여금 기쁨과 용기를 취하도록 합니다. 이렇게 생각할 때에 "예언"은 성령의 특종 예고(特種豫告)를 전달함에 국한 한 것이 아니고, 광범위의 영적 교훈과 지도를 가리킵니다.
2] 통역으로 방언을 온전케 하십니다.
방언의 은사를 받은 사람이 교회의 덕을 세울 수 있는 길은 무엇입니까?
[1] 통역하는 은사를 받거나 통역하는 은사를 받은 사람을 세우면 됩니다.
방언이란 독특한 소통의 은사가 믿는 자의 공동체에서 유익을 끼치기 위해서는 스스로 통역하기를 기도하거나 혹은 방언을 통역하는 자가 필요하다 말씀하십니다.
교회의 덕을 세우는 입장에서 볼 때 방언은 통역이 없으면 예언을 하는 것만 못하기 때문에 예언을 하라고 하라 십니다.
[2] 교회 덕이 안되는 곳에서는 절제하는 것이 좋습니다.
[고전14:23]
"그러므로 온 교회가 함께 모여 다 방언으로 말하면 무식한 자들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들어 와서 너희를 미쳤다 하지 아니하겠느냐?"
신자들이 방언을 통역하지 않고 말하는 경우에, 그 듣는 불신자들은, 이해하지 못하고 도리어 방언하는 자들을 미쳤다고 할 것입니다. 통역을 두고 방언을 하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통역없이 방언을 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 천만인 것을 알아야지요.
3] 사랑하는 마음으로 예언을 힘쓰면 좋아요.
“신령한 것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예언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나타난 대로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은 것이고, 믿는 자들의 몸, 교회의 덕을 세우고 권면하며 안위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
아주 귀중한 선물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교회에서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안위하게 하는 이 은사는 엄숙한 체제의 정식예배로 대체되었다.
“자기를 선지자나 혹은 신령한 자로 생각”하는 자가 있었으며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자기로부터 난 것인양 혹은 자기들에게만 임한 것인양 교회의 모임을 어지럽히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3. 1] 질서의 열매가 맺힙니다.
(고린도전서 14:32-33)
“예언하는 자들의 영이 예언하는 자들에게 제재를 받나니.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시오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
- 예언을 주시는 하나님 자신이 질서와 화평의 하나님이신 만큼, 방언이나 예언과 같은 은사자들은 질서를 사랑합니다.
방언을 통역하는데 있어 반드시 모임에 질서가 있습니다.
“모든 사람으로 배우게 하고 모든 사람으로 권면을 받게 하기 위하여 하나씩 하나씩 예언”하는 것입니다
(1) 공중 질서를 지키기 위하여 한 사람씩 차서(次序)있게 할 것입니다.
(2) 또한 회중이 알도록 하기 위하여 그 말하는 방언을 통역할 것입니다.
주제 넘는 태도 또한 질서를 넘어갑니다.
오늘날 교회들 가운데도 하나님의 복음이 저희에게만 전속한 듯이 다른 교회들을 무시하며 교만하게 행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는 교회의 질서를 넘어가는 것입니다. 자기를 하나님의 자리에 올려놓고 다른 교회를 무시하는 동안 자기들도 모르는 사이에 진리에서 떠나게 되는 것입니다. 질서를 넘어가면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습니다.
여성의 남성을 다스리려는 것도 질서를 넘어가는 것입니다.
“모든 성도의 교회에서 함과 같이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저희의 말하는 것을 허락함이 없나니 율법에 이른 것 같이 오직 복종할 것이요”
남자들을 주장하는 의미의 공교훈을 성경은 금하고 있습니다.
2] 교회의 덕을 세웁니다.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신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성령의 은사들로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그러나 고린도교회는 하나님께서 주신 소중한 선물로 덕을 세우지 못하였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성령으로 인침을 받은 성도들은 받은 은사를 가지고 교회에 덕을 세우는 일이 중요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은사로 교회에 덕을 끼치는 일, 교회에 유익을 끼치는 은사에 대하여 거듭(여섯 번) 반복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회에 덕을 세우고 유익을 끼치는" 것을 은사의 원칙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만나는 통로인 방언이란 은사에 사랑의 옷(예언과 통역)을 입혀 교회의 덕을 세우는 인격이 얼마나 아름다운지요?
[마무리하는 말]
교회에서 하나님의 소통은 필수조건입니다. 예언과 방언, 방언통역 은사가 그래서 중요합니다.
그런데 은사의 기준은 "교회에 덕을 세우고 유익을 끼치는" 것이어야 합니다.
은사는 사랑의 옷을 입을 때 아름답습니다.
영적인 은사를 사모하는 성도에게 있어서 "교회에 덕을 세우고 유익을 끼치는" 원칙이 적용되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14:26]
“그런즉 형제들아 어찌할꼬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도 있으며 방언도 있으며 통역함도 있나니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
방언 은사를 받았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십시오.
사람들 앞에 나갈 때는 통역이란 친구랑 함께 가십시오.
질서와 교회의 덕이란 열매가 맺힐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연약한 교우들을 사랑함으로 지혜에 장성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덕 세우기를 위하여 풍성하기를 구하라”
성경은 늘 우리의 관심이 공동체의 유익에 있다는 점을 생각할 때, 공동체안에서 우리의 모든 말과 행동이 전체의 유익, 질서와 품위를 생각하고 있는지를 곰곰이 따져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사랑을 추구하며 신령한 것을 구하는 자의 첫 번째 덕목인 셈입니다.
[고전14장]
1. 사랑을 추구하며 신령한 것들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2.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듣는 자가 없고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
3. 그러나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위로하는 것이요
4.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
5. 나는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하나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하노라 만일 방언을 말하는 자가 통역하여 교회의 덕을 세우지 아니하면 예언하는 자만 못하니라
6. 그런즉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서 방언으로 말하고 계시나 지식이나 예언이나 가르치는 것으로 말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7. 혹 피리나 거문고와 같이 생명 없는 것이 소리를 낼 때에 그 음의 분별을 나타내지 아니하면 피리 부는 것인지 거문고 타는 것인지 어찌 알게 되리요
8. 만일 나팔이 분명하지 못한 소리를 내면 누가 전투를 준비하리요
9. 이와 같이 너희도 혀로써 알아 듣기 쉬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그 말하는 것을 어찌 알리요 이는 허공에다 말하는 것이라
10. 이같이 세상에 소리의 종류가 많으나 뜻 없는 소리는 없나니
11. 그러므로 내가 그 소리의 뜻을 알지 못하면 내가 말하는 자에게 외국인이 되고 말하는 자도 내게 외국인이 되리니
12. 그러므로 너희도 영적인 것을 사모하는 자인즉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그것이 풍성하기를 구하라
13. 그러므로 방언을 말하는 자는 통역하기를 기도할지니
14.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15. 그러면 어떻게 할까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송하고 또 마음으로 찬송하리라
16. 그렇지 아니하면 네가 영으로 축복할 때에 알지 못하는 처지에 있는 자가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고 네 감사에 어찌 아멘 하리요
17. 너는 감사를 잘하였으나 그러나 다른 사람은 덕 세움을 받지 못하리라
18. 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19. 그러나 교회에서 네가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20. ○형제들아 지혜에는 아이가 되지 말고 악에는 어린 아이가 되라 지혜에는 장성한 사람이 되라
21. 율법에 기록된 바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방언을 말하는 자와 다른 입술로 이 백성에게 말할지라도 그들이 여전히 듣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22. 그러므로 방언은 믿는 자들을 위하지 아니하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이나 예언은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는 자들을 위함이니라
23. 그러므로 온 교회가 함께 모여 다 방언으로 말하면 알지 못하는 자들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너희를 미쳤다 하지 아니하겠느냐
24. 그러나 다 예언을 하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나 알지 못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모든 사람에게 책망을 들으며 모든 사람에게 판단을 받고
25. 그 마음의 숨은 일들이 드러나게 되므로 엎드리어 하나님께 경배하며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 가운데 계신다 전파하리라
26. ○그런즉 형제들아 어찌할까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도 있으며 방언도 있으며 통역함도 있나니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
27. 만일 누가 방언으로 말하거든 두 사람이나 많아야 세 사람이 차례를 따라 하고 한 사람이 통역할 것이요
28. 만일 통역하는 자가 없으면 교회에서는 잠잠하고 자기와 하나님께 말할 것이요
29. 예언하는 자는 둘이나 셋이나 말하고 다른 이들은 분별할 것이요
30. 만일 곁에 앉아 있는 다른 이에게 계시가 있으면 먼저 하던 자는 잠잠할지니라
31. 너희는 다 모든 사람으로 배우게 하고 모든 사람으로 권면을 받게 하기 위하여 하나씩 하나씩 예언할 수 있느니라
32. 예언하는 자들의 영은 예언하는 자들에게 제재를 받나니
33.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 ○모든 성도가 교회에서 함과 같이
34.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그들에게는 말하는 것을 허락함이 없나니 율법에 이른 것 같이 오직 복종할 것이요
35. 만일 무엇을 배우려거든 집에서 자기 남편에게 물을지니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라
36.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로부터 난 것이냐 또는 너희에게만 임한 것이냐
37. ○만일 누구든지 자기를 선지자나 혹은 신령한 자로 생각하거든 내가 너희에게 편지하는 이 글이 주의 명령인 줄 알라
38. 만일 누구든지 알지 못하면 그는 알지 못한 자니라
39. ○그런즉 내 형제들아 예언하기를 사모하며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
40. 모든 것을 품위 있게 하고 질서 있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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