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15 March 2015

고전13:4-7 내게 피어난 예수님 사랑을 보이라

[들어가는 말]

성도들이 가장 많이 애용하는 말은 무엇일까요?
사랑입니다.
사랑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부모와 자식 간을 연결시켜 주는 접착제는 사랑입니다.

친구를 연결시켜주는 접착제는 사랑입니다.

교회를 이루는 성도들을 머리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게 하는 것도 사랑입니다.

신년을 맞는 우리 성도들에게도 이 사랑이 뿌리를 든든히 내려서 예수님이 생각나는 교회, 하나님의 꿈이 이루어지는 교회되길 소원합니다.


1. 참 사랑은 거듭난 성도의 마음입니다.

[고전13:4b-6a]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5.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6.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헬라어의 '사랑'이란 단어는 앞에 정관사가 있어 “그 사랑”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참사랑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5절의 '악'이란 단어에도 정관사가 붙어 있어 악이 어느 존재로부터 나오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의 사람들에게 사랑이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배웁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시면서,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사랑이 본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사랑 그 자체입니다.

    시기 자랑 교만 이 세 가지는 서로 연결되어 있는데요. 성도에게 너무 어울리지 않는 마음입니다.
자기와 남을 비교하여 경쟁(競爭)할 때 나타나는 죄악입니다.
명예주의에 빠질 때 피어나는 독초와 같습니다.

     “그 사랑은 무엇입니까?

     [1] "시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세상 사람들은 시기하며 삽니다. 시기는 비교 혹은 경쟁하는 마음을 파고드는 사탄의 계략에서 나옵니다.

     그러나 우리 거듭난 성도들은 남을 나보다 낫게 여겨 존경하며 삽니다.
     남이 나보다 우월하다고 하여 섭섭히 여기고 불편해하는 것은 시기입니다.
내가 갖지 못한 의와 선을 남이 가졌다면 그것이 얼마나 고마운가 생각하는 것이  우리 거듭난 성도들의 마음입니다.
비교 혹은 경쟁 의식은 하나님 사람에게 어울리지 않는 마음입니다.

이웃나라 미국 한 병원에서 산모가 쌍둥이를 조산으로 낳아서 인큐베이터에 따로 따로 두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쌍둥이 동생의 심장이 안 좋아서 숨이 고르지 못하고 점점 죽어가자, 의사가 고민에 빠졌습니다.

그 때, 간호사가 “선생님 이왕에 며칠 있으면 죽을텐데 제 형하고 같이 인큐베이터에 있게 하지요.”라고 말했습니다.
병원법으로는 안 되는 것이지만, 죽을 아이니까 한 인큐베이터에 형과 동생을 나란히 눕혀 놓았답니다. 그런데, 그 쌍둥이 형이 오른손으로 동생의 목을 감아주었고, 하루가 지나자 동생이 정상으로 회복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형제가 곁에 있음으로 내가 살 수 있습니다.
형제는 시기의 대상이 아니라 나를 살리는 은인입니다.
우리 성도들이 시기하는 대신 감사하는 이유입니다.


[2] "“그 사랑은 자랑하지 않아요".

주님을 영접한 성도는 주님으로써 자랑합니다.
요셉은 어린 시절 형들에게 꿈을 자랑하였습니다. 그 어린 소년에게는 그것밖에 자랑거리가 없었기 때문일까요?
그러나 성장하여 국무총리까지 오르지만 자랑하지 않습니다.
천하를 살리는 일에 쓰임 받고 나서도 자기를 자랑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그는 자랑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이 되었습니까?
아니오.
하나님만 자랑합니다.

“하나님이 당신들의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하나님만 자랑거리로 아는 사람입니다.

바울 사도는 자랑거리가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박히신 사건만 자랑하였습니다.

[갈라디아서 6: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고린도후서 11:30]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내가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

“그 사랑은 자랑하지 않습니다.


[3] "교만치 아니하며".

"교만"은 스스로를 높이는 심보입니다.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하나님의 사랑 앞에서 교만이란 참 어색합니다.
낮아지신 하나님 사랑의 소유자가 어찌 교만하겠습니까? 교만죄는 만물 중에 제일 더럽습니다. 예수님은 나의 교만 죄를 깨끗케 하시려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습니다.
“그 사랑은 교만 대신 겸손입니다.


[4] 무례히 행하지 않습니다.

"무례"는 합당치 않게 행함입니다.

(1) 권위(權威)를 존중히 하지 않음이 역시 "무례"입니다.
부모는 자식의 권위요,
선생은 제자의 권위요,
노인은 젊은 자들이 권위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제정하여 주셨습니다. 사람이 땅의 권위들을 존경하도록 된 것은, 그들이 그 방법을 통하여, 하나님 경외에 이르는 훈련을 받도록 한 것입니다.

[레 19:32]
"너는 센 머리 앞에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며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니라".


(2) 연하 사람이나 동료들에게 말로 상처를 주는 것 또한 무례입니다. 예수님의 사람은 개인이면서도 그리스도의 몸된 모든 지체들과 함께 살 줄을 알아야 됩니다. 속죄의 사랑을 받은 성도는 다른 사람에게 대한 예의와 하나님에게 대한 경외가 서로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어제 금식기도 중에 자녀를 키우는 학부모 가운데 어려움을 호소하며 기도제목을 주는 부모가 있었습니다.

정말 이민지에서 자녀를 낳아 신앙교육을 시키려고 교회에 나오는 것이 힘든 일입니다.

가까스로 우리 교회에 자녀를 데리고 왔는데요.

교회에 다녀온 아이가 ‘바보’가 무슨 뜻이냐고 묻더래요.

어떤 분이 그 아이에게 너는 바보냐 한국말도 못하게 하신 모양이에요.

그 아이는 학교에서 공부도 잘하고 신앙생활도 잘하는 아이입니다.
이곳 주류 사회에서도 당당히 어깨를 겨룰 수 있는 사람으로 자라고 있어요.
그런데 한국말을 잘 못한다고 바보라고 놀림 받았다는 것입니다.

우리 어른이 무례히 행한 것이지요.

그 어른이 결코 그 아이를 상처주자고 하신 말씀은 아닐 것입니다.
한국말도 잘해라 하는 속 깊은 충언이었을 것입니다.


[5]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인간을 움직이는 것은 이익입니다.
그러나 거듭난 하나님의 사람은 자기 개인의 유익을 구하는 것을 인생의 제일 목적으로 삼지 않습니다.
속죄의 사랑을 받은 사랑의 사람은, 벌써 독생자와 함께 모든 것을 받아 가지고 나옵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음"(행 20:35)을 기억하는 자입니다.


리차드 윌렘손(Richard Willemson)은 주님을 위하여 핍박을 받아 얼음 가운데 피하였다가, 자기를 잡으러 온 사람이 얼음 가운데 빠져 죽게 되었을 때에 그를 건져주었습니다.


[6] 그 사랑은 성내지 않습니다.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성내는 것은 잠재하였던 증오가 폭발함이지요.
하나님께서는 가인의 성내는 것을 경고하십니다.
남을 죽이려다가 먼저 자기를 죽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의 죄사함의 사랑을 받은, 하나님의 사랑의 사람은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요일3:16)는 말씀의 의미를 압니다.

성내지 않는 비결이 있습니까?
(1)"내가 그 형제를 위하여 죽을 책임까지 있는데"하는 생각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하여 죽으신 것을 그대로 믿는 믿음이지요.
(2)  성령 충만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7] 불의를 기뻐하지 않습니다.

(1) 불의는 하나님의 원수이니, 하나님의 자녀된 신자가 그것을 기뻐할 수 없습니다.
(2)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불의(不義) 때문에 십자가에서 죽으셨는데 신자 된 우리가 어찌 십자가의 원수로 행할 수 있습니까?
(3) 불의를 기뻐하지 않고 배척하며 떠날 그때에 참사랑이 신자의 마음 속에 피어오릅니다.

     한국인이 모여 사는 뉴욕 훌러싱에서 델리를 운영하는 분이 계셨데요.
남편은 그곳 생활에 정을 못붙이고 한국을 들락거리는, 그래서 부인이 그 가게를 도맡아 일하고 있었습니다.
     몇년 전, 뉴욕에 눈이 많이 내렸습니다. 부인은 가까스로 눈을 치우고 문을 열었지만 눈을 뚫고 찾아오는 손님은 뜸했습니다.
     그런데 그 한파를 헤치고 어떤 남루한 흑인 여자가 가게에 들어왔습니다. 그녀는 가게를 이리저리 한참 살피다가 빵 한 봉지를 들고 계산대로 왔습니다.
그리고는 햄 1LB를 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모두 털어 한 웅쿰 동전을 꺼내 세기 시작했습니다. 주로 1센트짜리였습니다.

     주인은 참을 수 없는 화가 났습니다. 한 파운드밖에 안되는 햄을 기계로 썰어야 한다는 것이 싫었고, 바닥에 떨어여 있어도 줍기 싫은 동전을 한줌이나 헤아려 받는 것도 싫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 흑인 여자가 햄을 살 돈이 부족하다면서 햄을 되돌리는 것이었습니다.

     울화통이 터지기 직전, 그 흑인 여자는  매우 미안한 표정으로 사정을 이야기 했습니다.
사실 남편이 트럭 운전을 하는데 먼곳에 나갔다가 눈에 갇혀 일주일 째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고. 집 안에 식구들이 며칠 째 굶주리고 있는데 돈이 부족해서 그렇다고.
지금 돈이 부족하지만 만일 저 햄을 외상으로 주면 남편이 돌아오면 갚겠다고.

     주인 여인의 가슴에 치밀어오르는 분노가 순식간에 사라지고, 대신 뭉클한 무엇이 울컥 솟아올랐습니다. 남편 때문에 속상한 자신의 처지보다 더 안타까운 사정을 듣고 햄 뭉치를 들어 몇 덩이를 썰어 그녀에게 주었습니다.
그리고 돈도 돌려주었습니다.

     그녀는 몇 번이나 고맙다는 인사를 남기고 눈길로 사라졌습니다.

     그녀가 나가자 주인도 문을 닫고 집에가려고 나섯습니다. 저 건너 앞서간 여인을 기다리는 다섯 명의 아이들과 할머니 한 분이 보였습니다. 그녀는 반갑게 맞는가족을 향해 햄과 빵이든 봉지를 힘차게 흔들고 있었습니다.

     주인은 주기를 잘했다는 마음으로 뿌듯하였습니다.

     다음 날 아침, 가게를 열자마자 얄미운 흑인여자가 문을 열고 들어왔습니다. 일부러 문 앞에서 미끄러지고 경찰에 고소하여 현재 재판이 걸려있는 참으로 못말리는 여자였습니다. 큰 소리로 굿 모닝 하더니 너는 참 좋은 사람이라고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어제 내가 한 일이 온 아파트에 알려졌다면서 나에 대한 고소를 취하한다는 것이었습니다.


2. 참사랑은  예수님 마음입니다.

[고전13:4a]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고전13:6b]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사랑을 그림으로 잘 보여주시는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그래서 고전13장을 더 잘 이해하고 싶은 분은
“사랑은”
이란 말 대신에
“예수님은”
을 대입하면 완벽한 이해를 얻곤 합니다.

“예수님은 오래 참고
예수님은 온유하며
예수님은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정말 뚜렷이 그 개념이 들어옵니다.

“오래참음, 온유” 이 두가지 덕행은, 공격(攻擊)을 받거나 괴롭힘을 당하여도 보복(報復)하지 않으신 예수님의 성품입니다.

     "오래 참고"

     예수님은 열화같이 공격하는  원수들에게 화를 내지 않습니다. 격동성(激動性)있는 감정을 피합니다.

     "온유"란 친절을 베풀기로 준비된 태도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온유함이 천하 모든 사람보다 빼어나다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마음이 온유하다” 말씀하십니다.


     사랑이 있으면, 아무리 성급한 사람이라도 오래 참고 온유할 수 있습니다.
(1) 그 사랑은 수고할 수 있는 강한 힘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고...... 사랑은 많은 물이 꺼치지 못하겠고 홍수라도 엄몰하지 못하나니 사람이 그 온 가산을 다 주고 사랑과 바꾸려 할지라도 오히려 멸시를 받으리라"(아 8:6,7).

     죽음보다 강한 사랑은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인하여 온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관계된 사랑입니다.
우리는 무슨 일에나 예수님이 나를 위하여 죽으신 사건을 생각하면 웬만한 어려움을 참게 됩니다.

그뿐 아닙니다.

     그 사랑은 소망을 내포(內包)하고 있기 때문에 참습니다.

믿음, 소망, 사랑, 이 세가지는 항상 함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속죄적 죽으심이 단지 사랑의 완성을 성립시킴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다시 살아나심으로 세상을 이기셨습니다.
다시 사신 예수님은 승천하시고 그날에 다시 오십니다.

우리 성도들이 영원하신 주님의 사랑을 이해할 때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재림신앙을 갖게 됩니다. 모든 난관을 참게 됩니다.

[약 5:7-8]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자가 문밖에서 계시니라"



     (3) 예수님은 불의를 기뻐하지 않습니다.

[고전13:6b]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진리와 함께 기뻐하십니다.
복음 진리가 가르친 선과 의, 곧 진리를 기뻐하심은 하나님의 마음이십니다.
"진리"는 여기서 복음 진리를 가리킵니다


3. 참사랑은 그리스도인의 모든 것입니다.

[고전13:7]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1) 신자와 모든 것. 여기 "모든"이란 말이 네 번 나옵니다.
주어는 사랑은 입니다.
사랑이란 주어에 연결되는 동사는 무엇입니까?

참으며
믿으며
바라며
견디느니라

그리고 그 동사들은 "모든 것을"이란 목적어에 연결되어 있습니다.
영어성경에는 "always"라고 하여 동사를 수식해주는 "항상"이란 부사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사랑은 항상 참으며
사랑은 항상 믿으며
사랑은 항상 바라며
사랑은 항상 견디느니라

죄사함을 받은 신자들의 삶의 태도가 항상 참고, 믿고 바라고 견디는 바로 그것을 사랑이라고 설파하고 있는 것입니다.

항상 참는다는 말이 무엇입니까?

상대방이 어떻게 대하든 침묵하고 대항하지 않는다는 말입니까?
원어(스테게이)는 '지붕을 덮는다''보호한다,protect'는 뜻이 있습니다.

 '오래 참음'과 '온유'는 한 켤레의 신발과도 같습니다.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성도들이 서로 어떻게 사랑하여야 하는지에 대해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으로 사랑 가운데 서로 용납하라"(엡4:2)말하였습니다. 여기서 '서로 용납하라'는 말은 '서로 너그럽게 보호하라'는 말입니다.

상대편의 용서하기 힘든 허물과 실수, 죄를 놀라는 대신 덮는 것이 참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인에게 ""여자여!" 존재말을 씁니다.
그리고 돌로 치려드는 군중으로부터 보호해주고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 타일러"  삶의 길을 열어 줍니다.

사랑은 이런 주님을 한 번만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덮어주며 존중하며 보호해주며 열어주는 것입니다.

'오래 참음'과 '온유'는 성도들의 삶 속에서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로 나타나는 선물입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뒤에 남는다, 끝까지 남는다"는 뜻을 생각하면 "견딘다"(휴포메네이)는 사랑의 의미 끝자락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나오미에게는 불우한 운명이 앞에 있습니다. 한 번 살아보자고 떠났던 길이 불행하게도 모든 것을 잃는 운명으로 전락하게 된 것입니다.
모압 땅에서 남편을 잃고
두 아들을 잃었습니다.
그 곁에는  두 며느리가 남아 있습니다.

그녀는 두 며느리에게 떠나가라 합니다.
그리고 쓸쓸하게 발걸음을 고국땅으로 돌립니다.

오르바는 시어머니의 곁을 떠납니다.
그 때, 룻이 나섭니다.

[룻1:15-17]
15. ○나오미가 또 이르되 보라 네 동서는 그의 백성과 그의 신들에게로 돌아가나니 너도 너의 동서를 따라 돌아가라 하니
16.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17.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

     끝까지 나오미 곁에 남아서 결국 나오미의 고향 베들레헴까지 함께 옵니다.

     하나님께서는 끝까지 견디는 룻을 보아스와 짝지음으로 인해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이 되게 하십니다.

     "자기 아들을 내어 주신 하나님이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습니까?"(롬 8:32).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 8:37).
성도는, 자기를 위하여 독생자의 보혈까지 주신 하나님의 사랑이 어디까지든지 실패하지 않을 줄 믿습니다.
이 믿음으로 그는 참으며, 이 믿음으로 바라보며 견딥니다.

일상생활에서 승리 생활을 하면, 승리는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성도가 일상 생활에 사랑으로 승리를 거두지 못한다면 순교의 때가 와도 그 기회에는 참여할 수 없습니다. 일상 생활의 모든 어려움에 있어서, 성도의  그 참는 것은 하나님을 기다리는 일이고, 지혜있는 일이다.

      이렇게 하나님의 큰 사랑을 받는 자로서는 모든 것이 다 자기에게 복이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 성도는 기뻐하면서까지 약속을 바라봅니다.



[마무리하는 말]

사랑은 어떤 색깔일까요?
핑크빛일까요?
붉은 빛일까요?

사랑을 겉으로만 보면 핑크빛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사랑의 개념입니다.

그러나 속까지 들여다 보면 붉은 빛입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몸으로 보여주신 것을 압축해서 사랑이라 표현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을 몸으로 보여주셨습니다.

금년 우리 교회 교우들이
“내 인생에 피어난 예수님 사랑을 보라”
외치며 세상을 향해 나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경본문: 고전13:4-7]
4.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5.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6.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7.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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