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15 March 2015

고전15:12-22 살아계신 하나님의 손 안에서

[들어가는 말]

     박종순 목사님의 칼럼을 읽다보니  '하나님의 손'이란 글이 보입니다.

     "스웨덴이 낳은 조각가「밀레스」는 1874년에 태어나 1967년에 세상을 떠난 세계적인 조각가이다. 스톡홀롬에 가면 밀레스의 조각 공원이 세워져 있는데 공원 마당 한가운데 『하나님의 손』이라는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이 작품은 1954년에 만든 작품으로 벌거벗은 인간이 하나님의 손위에 서서 하늘을 응시하는 모습이다.

     이런 글도 보입니다.

스웨덴의 세계적인 조각가 카를 밀레스(Carl Milles)가 리딩의 섬에 있는 그의 집 ... 1954년작 "Hand of God" 이 반겨준다. 로뎅의 가르침을 받은 조각가 칼 밀레는 발트 해를 굽어보는 아름다운 정원에. 그의 작품 '신의 손'으로 푸른 하늘을 받들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셨음을 믿습니다.
그리고 우리 인간은 창조주 하나님의 손 안에 거하는 것도 믿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손 안에 거하는 행복을 누리는 사람들이 성도들입니다.

     오늘 말씀은 하나님의 살아있는 손이 하신 가장 놀라운 일이 소개됩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죽인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신 일입니다.

그리고 다시 살아나신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서 하시는 일입니다.



1. 살아계신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습니다.

[고전15:12-16]
12.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13.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리라
14.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15.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언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지 아니하셨으리라
16.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었을 터이요

      오늘 우리는 본문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느냐?]에 대한 변론을 듣는 것이 아닙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는 사실을 선포하고 이것이 바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있다'는 증거라는 특별한 메시지를 듣습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고린도 교인 가운데서도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고린도전서를 기록하는 일에 쓰임을 받은 바울 사도는 좀 특이한 어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지 아니하셨으리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살아나셨겠습니까?'

이렇게 반문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사도에게 있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부활이 있다는 증거로 채택된 것입니다.

이는 당시 그리스도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일은 너무나 확실한 현실인 것입니다.

'이거 보세요.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께서도 살아나는 일이 없었어야 할 거 아닙니까?"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나타나신 것을 만나 본 증인들인데 무슨 말씀을 그리 섭섭하게 하십니까?

그럼 제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겁니까?
예수님의 제자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겁니까?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겁니까?
목격한 500여명의 성도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겁니까?

이런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구속의 사역을 그리스도 부활을 통해서 완성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세계 구원에 대한 담보가 되고, 모든 고난과 버림받음을 극복하는 표징이 되었습니다. 부활의 빛에서만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죽었으며, 우리가 그의 죽음을 통해서 하나님으로부터의 분리를 극복했다는 사실이지요.

     마귀는 인간을 괴롭히다가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독생자를 내주는 엄청난 값을 지불하고 우리를 자유케 하셨습니다. 이 사건이 예수님의 십자가요, 부활의 역사입니다.


     한 때 석가모니의 뼈가 발견되었다고 인도를 위시한 불교 국가에서는 떠들썩 했다는 글을 본적이 있습니다. 석가모니의 뼈들은 잘 진열되어 수많은 인도 사람들의 경의 속에 시가행진을 했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뼈 앞에 머리 숙여 절했습니다.

     그것을 지켜보던 한 선교사가 그의 친구에게 말했답니다.

     "만약 저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뼈 하나라도 발견할 수 있었다면 기독교는 가짜가 되고 말았을 것이다."

칼 바르트가 그럴듯한 말을 했다고 해요.

“성탄절 설교와 부활절 설교는 짧을수록 좋다. 그것은 확실한 사실이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께서는 살리는 일을 하십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손 안에서 그리스도는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리고 성도의 주와 그리스도가 되십니다.

     사실 먹고 마시는 일은 우리가 죽음에 직면해서 행해야할 그 어떤 다른 일들보다 훨씬 의미심장한 일이 못됩니다. 그런데도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죽음이 불가피한 이런 상황에서 여전히 이런 슬픈 삶의 지혜에 머물러 있기만 할 뿐이지 이런 죽음의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어떤 환상에 집중해서 살아가지 않습니다. 아마 죽은 자의 부활이라는 환상을 근거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 무미건조한 삶에 빠져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만약 예수님이 죽음으로부터 부활하지 않았다면 기독교의 신앙은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이런 보편적 진리에서 고립된 기적이 결코 아닙니다. 부활에 관한 사신은 오히려 우리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과연 우리 인간들에게 실질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우리의 손으로 생산해낼 수 있는 것들만 실질적인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습니까? 아니면 우리에게 낯익은 것들만이 그럴까요?

 "하나님"은 죽음을 뛰어넘어요.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지 못한다는 어떤 사람들의 주장은 단지 보이는 세계에 갇힌 자의 선입견에 불과할 수 있습니다.우리의 일상적이고 일반적인 경험의 주변에서 사실상 이것과 똑같은 일들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근거한 것이지요. 따라서 일상적인 경험과 수천 번 반복된 익숙한 사건의 진행을 전체적인 현실성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죽은 자가 결코 다시 살아날 수 없다는 명제를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일상 경험과 사물의 낯익은 과정을 이렇게 일반화시키는 태도는 보지 못하는 영적인 세계, 하나님께서 다스리는 세계를 눈에 보이는 것만의 잣대로 재려는 우를 범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우리는 세상과 인간과 우리 자신을 부활절 아침의 새로운 빛 가운데서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는 것을 배워야합니다. 여기서 사람들과 우리 자신과의 새로운 관계가 생깁니다. 우리는 결코 죽음을 최종적인 것으로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눈앞에 보이는 것만을 판단의 기준으로 삼지 않고 살아가는 것을 배워야합니다. 우리가 현안의 척도로만 사람이나 사물을 대하는 것은 곧 사랑 없이 대하는 게 됩니다. 사랑은 어떤 사람이나 사물과의 관계에서 현안보다는 실질적인 것을 훨씬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부활절을 향해 열려진 하나님의 미래라는 빛에서 실질적인 것을 내다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2. 예수님의 제자들은 다시 사신 그리스도를 증거했습니다.

[고전15:15]
15.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언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지 아니하셨으리라

그때나 이제나 교회에 다닌다 하여 다 부활을 믿는 것이 아니란 것을 알게 됩니다.

     1] 사실 유대인 종교지도자 가운데도 바리새인들이 부활을 믿었던 데 반하여, 사두개인들은 부활을 믿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우리 가운데에 부활을 믿지 않는 교인이 혹 있더라도 너무 이상하게 생각할 것은 아닙니다.

     사두개인들도, 일부 고린도 교인들도, 부활을 믿지 못하였습니다.

     저도 젊은 한 때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지 못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던 사람들도 원래부터 그런 사람들은 아니었습니다.

     2] 예수님의 가장 가까이 있었던 제자들도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었다면 무덤에 기름을 가지고 새벽같이 달려갔겠습니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누구보다 십자가에 못 박히기전 예수님과 부활하신 후 예수님을 식별할 수 있었던 사람들에게 집중적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기 전에도 따르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죽으시자 허탈한 마음으로 모든 것을 청산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던 중이었습니다. 그들은 가면서 서로 예루살렘에서 일어났던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그들에게 다가가 말을 걸어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눅24:25]

25. 이르시되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26.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제자들에게는 예수님의 부활 사건이 생명의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베드로는 이렇게 외칩니다.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벧전1:3).



     3] 예수님을 따라 다니던 도마라는 제자는 예수님이 부활 했다는 소식을 듣고도 예수님의 손바닥과 허리에 나있는 창 자국에 자기의 손가락을 찔러 확인해 보기 전에는 믿지 못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여자들이 전해 주었던 부활의 소식을 듣고도 믿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손을 못자국과 창자국에 넣어보지 않고는 믿지 않겠노라 장담하던 제자 도마가 어떻게 문화도 엄청 다르고 거리도 너무 멀고, 인종과 언어도 다른 인도까지 나아가서 예수님을 위해 목숨을 내어놓았던 이유입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그는 부활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4] 예수님의 부활은 예수님이 미쳤다는 사람들의 수근거림에 동의하여 예수님을 잡으러 왔던 주님의 동생 야고보도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나서 주님을 위해 자신의 인생을 내어놓았습니다.

그는 부활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5] 주님의 원수, 사울도 주님의 부활을 믿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람의 부활에 대하여 믿음을 가지고 있었던 바리새인 거두 사울은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자신을 찾아오신 것을 체험한 후, 부활은 교리를 넘어 삶(생명)으로 다가 온 것입니다.

더 이상 부활은 교리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확실히 알아볼 수 있었던 사울은 도 바울은 누구보다 확실하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에 부활은 교리가 아니라 자신의 생명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그는 부활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시지 않았다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이나 우리의 믿음이 헛것이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고전15:13-14).

왜냐하면 제자들의 설교 주제는 그리스도께서 성경의 약속대로 부활하셨다고 전파하였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죽은 지 사흘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것을 믿고 전파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부활의 증인임을 말하고 있지만, 사실은 제자들이 원래 부활을 믿지 않았던 이야기로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도 예수님이 부활하리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부활을 그들에게 귀가 따갑게 들려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말씀의 의미를 몰랐습니다.

그런 그들은 놀랍게 부활하신 예수님을 뵙고 부활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부활의 증인일 수 있었던 사실 자체가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증거입니다.




3. 성도는 살아계신 그리스도 안에서 삶을 얻습니다.

[고전15:19-22]

19.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21.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1] 이제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잠자는 자"란 말은 죽은 자들의  비유입니다.

     하나님께 처음 익은 열매를 바치면서 성도들은 수입되는 곡식 전부가 하나님의 것입니다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첫 열매를 바친다’는 의미는 ‘하나님이 바로 제게 맡긴 곡식 전부의 주인입니다’ 하는 고백입니다.

     이는  또 구주 예수님의 대속적 구원 원칙을 보여줍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심으로 그의 백성의 부활도 얻어진 것입니다.
     그는 머리요 그의 백성은 몸이니, 머리가 부활하였은즉 몸된 교회도 부활하도록 되어있습니다(롬 6:5;골 1:18).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우리의 믿음도 헛될 뿐만 아니라 우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만일 부활의 신앙을 갖지 못한다면, 우리는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자입니다.

[고전5:19]
19.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우리 그리스도인들과 세상의 믿지 않는 사람들과의 가장 근본적인 차이점이 무엇입니까?

부활의 주님을 체험하고 사는 복입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성도들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손 안에 사는 행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손 안에 살면서 부활하신 주님을 체험합니다.

예수님께서 '너희가 나를 떠나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하신 말씀을 '아멘!'으로 받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그 능력으로 부활하신 부활하신 주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손 안에서 모든 일을 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셨을 뿐만 아니라, 사흘 만에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부활하시므로 우리의 주와 그리스도가 되셨습니다.

부활 신앙을 가지고 사는 성도는 그가 살아가는 삶의 방식과 태도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부활의 신앙을 갖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의 생활은 그저 현세에 머물러 잘 살고 즐겨 보려는 것에만 초점 맞추며 삽니다. 그러나 부활 신앙을 가진 성도는 현재뿐만 아니라, 영원한 세계를 품고 삽니다.

   눅12장, 어리석은 부자 이야기가 나옵니다.

     부활의 소망이 없는 사람의 대표적 삶의 모습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들 가운데서 우리가 가장 불쌍한 자입니다.

     부활은 현재에서 나아가 미래에도 소망을 줍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죽음을 두려워 하며 일생동안 종 노릇하는 인간들에게 사망의 권세 아래 있는 사람들에게 영원한 삶을 주시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1967년 6월 30일 열 일곱 살의 운동 선수 조니 에릭슨은 체사피크 만에서 다이빙을 하다 사고를 당했습니다. 그로 인해 목 아래부터 전신이 마비된 그녀는 쓰라림, 좌절, 원망, 분노, 심지어 자살하고 싶은 침체까지 인간이 겪을 수 있는 모든 감정에 휩싸였습니다. 하지만 재활 훈련 및 치료 기간을 통해, 그리고 부모님, 자매들과 친구들의 열렬한 후원을 통해 점차 깊은 블랙홀에서 빠져 나왔습니다.
그녀는 입으로 그림을 그리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후원하는 모임도 만들었습니다.
그녀의 변화의 중심에는 부활하신 주님이 계셨습니다.
그녀는 자기처럼 ‘움직이지 못하고 무력하며 마비된 채’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에 대한 환상을 보면서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녀에게 가장 큰 도움을 준 것은 부활이었습니다.

“나는 이제 미래에 대한 소망이 있다. 성경은 우리의 몸이 하늘에서 ‘영화롭게’된다고 전하고 있다. 그때는 내가 여기에서 죽은 후 내 발로 춤을 출 것이다. 손가락은 오그라들어 구부러지고, 근육은 쇠약해지고, 무릎은 비틀리고, 어깨 아래로는 아무런 감각이 없지만, 내가 언젠가는 가볍고 밝으며 강력하고 눈부신 의로 옷 입은 새로운 몸을 가지게 될 것이다.”




[마무리하는 말]

     어제 밤, 우리 교회에서는 아이티의 밤 행사를 진행하였습니다.
     이를 위해 여러분들이 기도해 주셨습니다.

     에스더 선교회에서는 김밥과 간식을 만들어서 오신 헌신자들을 행복하게 섬겼습니다.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저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이 행사는 아이티로 나아가는 저를 하나님께서 준비시키는 예배라는 마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살아계셔서 나를 나보다 더 잘 아시는 주님께서 2월 10일 아이티 신학교 강의를 준비하고 있는 저를 위해 헌신하는 시간을 갖게 하시는구나 감사했습니다.

    우리 믿는 성도들에게는 주어지는 사건 한 가지 한 가지가 우연으로 생각되지 않습니다.

     모두 살아계신 하나님의 손 안에 서 진행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만나는 사람들이 우연으로 생각되지 않습니다.
전개되는 사건들이 우연으로 생각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진행시키는 일정표에 있다는 생각이지요.

     태양이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궤도를 따라 돌듯이, 내 삶에서 주어지는 크고 작은 일들이 하나님의 일정표를 따라 우리 곁에서 진행되는 것처럼 생각됩니다.

     20여년 전, 목회자 네 분이 예수원이란 기도원에 모였습니다. 밤늦도록 선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목회초기였기에 선교에 관하여 대화하는 일이 재미있었습니다.
     GAP(미전도종족 선교)을 이야기한 것이 그때였습니다.

그리고 세월은 흘렀습니다.

훗날, 그 GAP에 속하여 일하던 이동열 선교사님이 우리 교회에서 전도사로 일한 적이 있던 주은경 전도사님과 함께 지진으로 폐허가 된 아이티에 들어갔다가, 이동열 선교사는 그곳에서 계속 사역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재작년과 작년에 우리 교회 젊은 자녀들을 그곳에 보내셨습니다.
.
     저에게도 아이티 신학교가 출범하면서 강의 요청이 왔습니다. 그러나 답을 하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던 중, 지난 해 말 응답을 받고 2월 10-18까지 그곳에서 강의를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은 말씀은 우리 가운데 하나님께서 살아계셔서 일하고 계신다는 겁니다.

      오늘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신 살아계신 하나님의 역사를 통해서 힘을 얻고 삶에서 승리하는 축복을 받으실 수 있기 바랍니다.

[설교본문 고전15:12-22]
12.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13.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리라
14.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15.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언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지 아니하셨으리라
16.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었을 터이요
17.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18.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19.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21.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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