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15:42-49
부활의 주, 살려주는 영
[들어가는 말]
“이 몸의 소망 무언가!”
부를수록 신이 나는 찬송이 있습니다.
오직 우리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만 이 땅에서 갖고 사는 소망이 있습니다.
어떤 소망이 있습니까?
2000년 전,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께서 이루신 부활의 소망입니다.
1. 하늘에 속한 형상을 입는 것입니다.
[고전15:48-49]
48. 무릇 흙에 속한 자들은 저 흙에 속한 자와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들은 저 하늘에 속한 이와 같으니
49.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
1]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이 있습니다.
가인에게서 땅에 속한 자의 형상을 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던 아벨, 참 예배자인 자기 아우를 쳐 죽입니다.
그리고 나서도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고 물으시는데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입니까?”라고 뻔뻔하게 대드는 가인의 악한 모습에서 땅에 속한 자의 형상을 봅니다.
노아 시대의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창 6:5)인 노아 시대에서 땅에 속한 자의 형상을 봅니다.
로마서 1:29-31에서 땅에 속한 자의 형상을 봅니다.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디모데후서 3장,“말세에 고통하는 때”에서 땅에 속한 자의 형상을 봅니다.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롯의 길로 가는 사람은 지진이 일어나서 불의 심판을 받아 다 삼켰습니다. 우주에 블랙홀이 있다고 그러지 않습니까? 블랙홀은 태양 에너지의 4백 만 배 되는 거대한 힘이 있어서 별이고 무엇이고 간에 다 빨아들인 답니다. 오늘 이 세상은 블랙홀입니다. 죄악의 블랙홀입니다. 그래서 모두 길을 잃고 망하는 겁니다. 어마어마한 권력도, 어마어마한 재물도, 인생도 다 삼키는 것이 이 세상에 있는 죄악의 블랙홀입니다."(김삼환목사 설교문 중에서)
[빌립보서 3:18-21]에서 땅에 속한 자의 형상을 봅니다.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저희의 마침은 멸망이요, 저희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저희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
사도가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여러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기 때문입니다.
저희들의 마침은 멸망이기 때문입니다.
저희의 신은 배기 때문입니다.
그 영광은 부끄러움에 있기 때문입니다.
저희들이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기 때문입니다.
땅의 일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땅의 영광만 바라기 때문입니다.
흙에 속한 자연인 그대로의 삶을 살다 가기엔 너무 아까운 인생입니다.
2]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습니다.
그리스도의 형상입니다.
온유, 겸손입니다.
하늘의 형상은 구체적으로 그리스도의 형상입니다.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생활을 통하여 그분의 형상을 덧입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라면 이럴 때 어떤 말을 하실까요?
예수님이라면 어떤 일을 하실까요?
우리의 매일매일 삶이 그리스도와 연합하고 그리스도의 형상이 지배하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해산의 수고가 필요하지만
가장 우리가 나아가야할 목표입니다.
[갈라디아서 4:19]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토마스 아 켐피스(1380-1471)는 독일의 가난한 직공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19세에 아우구스티누스 수도원에 들어갔습니다.
그는 종신 수도사가 되기로 서약을 합니다.
그가 1471년에 세상을 떠나고 다음해인 1472년에 ‘그리스도를 본받아’라는 책이 발간되었습니다.
이 책은 근 500년 이상 그리스도인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책입니다.
그는 이 책에서 그리스도의 생애를 묵상하고 본받으려고 애쓰라고 합니다.
‘그리스도를 본받아’라고 번역된 이 책의 원래 제목은 (Imitation of Christ 그리스도의 모방)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그리스도를 모방하십시오.
땅에 속하지 않고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좇아 살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신령한 복이 있습니다.
[엡1: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2. 썩을 것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일어납니다.
[고전15:42-44]
42.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43.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44.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1] 썩을 것으로 심는 삶입니다.
42절 말씀은
'썩을 것으로 심어라.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난다'는 말씀입니다.
펄벅여사의 소설 <대지>에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주인공 왕융이 장가를 들어
부인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입니다. 복숭아를 씹어 먹는 왕융이 신나게
맛있게 먹고서 속의 씨를 길가에 버립니다. 아무런 생각 이나 조건없이 복숭아를
먹었으니 그 씨를 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그 부인은 결혼하기까지 어떤 부잣집에서 하녀 노릇을 하였습니다. 하녀
생활을 통해서 주인이 버리는 것에서 새로운 생산적인 것으로 돌리는 지혜를 길러
왔었습니다. 새신랑 왕융이 복숭아를 다 먹고는 무심코 씨를 버리는 것을 보고
부인은 웃으면서 이렇게 속으로 혼자 말합니다. "이걸 심으면,또 복숭아가 열릴
텐데..." 그러고는 그 씨를 감추어 가지고 와서 자기 집안에다 심었습니다. 물론
씨가 싹이 나고 자라서 큰 복숭아 나무가 되었습니다.
"처음 와서 끌고 다니던 고물차 생각이 납니다. 처음에 산 차가 풀사이즈 케딜락이었는데 크기는 얼마나 큰지, 그 멋있던 차가 오래되다 보니 낡고 낡아서...... 덜덜거리는 소리에 귀가 아프고, 그 튼튼하던 바디는 녹이 슬고, 기계는 낡아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것이 한두 군데가 아니고, 유리창도 다 낡아 뿌연 색갈로 앞 길이 잘 안보이고, 명색이 캐딜락인데 거리를 달려도 보아주는 사람 하나도 없고, 엔진 소리는 맥이 다 빠져 조금만 언덕진 곳을 올라가도 힘들어하고, 머플러는 낡아 불쾌한 소리를 연발하고, 혹시 브레이크가 안들으면 어떻게 하나 하고 조심해야 하고, 햇볕에 페인트는 벗어져 얼룩얼룩하여 그림 그린 것 같고, 힘이 없어 장거리는 일찌감치 포기해야하는 처지의 그 고물 자동차 …
"(김무영)
그런데 그런 자동차도 원하는 사람이 있더라구요.
그분에게 드렸습니다.
펄벅여사의 소설 <대지>에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주인공 왕융이 장가를 들어
부인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입니다. 복숭아를 씹어 먹는 왕융이 신나게
맛있게 먹고서 속의 씨를 길가에 버립니다. 아무런 생각 이나 조건없이 복숭아를
먹었으니 그 씨를 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그 부인은 결혼하기까지 어떤 부잣집에서 하녀 노릇을 하였습니다. 하녀
생활을 통해서 주인이 버리는 것에서 새로운 생산적인 것으로 돌리는 지혜를 길러
왔었습니다. 새신랑 왕융이 복숭아를 다 먹고는 무심코 씨를 버리는 것을 보고
부인은 웃으면서 이렇게 속으로 혼자 말합니다. "이걸 심으면,또 복숭아가 열릴
텐데..." 그러고는 그 씨를 감추어 가지고 와서 자기 집안에다 심었습니다. 물론
씨가 싹이 나고 자라서 큰 복숭아 나무가 되었습니다.
썩을 것으로 심지 않고 영원할 것처럼 사는 사람이 많습니다.
야고보라는 선한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세상이 헛되고 거짓됨을 알고서 세상을 버리고 사회에서 정해진 자리가 없이 떠돌아 다녔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청광’(맑게 미친 자)이라고 불렀습니다. 그가 시장에서 친구를 만났습니다. 그 친구가 닭을 사서 주면서 이 닭을 우리 집에 좀 가져다 두게 하였습니다. 그러자 야고보가 닭을 받아 가지고 그 사람의 무덤에 갖다 두었습니다. 그 사람이 집에 와 보니 닭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집안사람에게 물었습니다. “내가 오늘 닭을 사서 야고보에게 주어 집에 갖다가 두라고 하였는데 닭을 가져 왔는가?” 집안사람이 대답하기를 “그런 일이 없었습니다.” 그 사람이 생각합니다. “야고보가 정말 크게 미쳤구나. 그가 나를 속였다.”
나중에 길에서 야고보를 만났습니다.
“내가 그 때 닭을 내 집에 갖다 두라고 했는데 그 닭을 어떻게 했는가?”
야고보가 대답합니다.
“내가 즉시 네 집에 갖다 두었는데 어째서 내가 안 가져다 두었다는 것인가?”
그 사람이 말하되,
“그렇다면 나와 함께 가보자.”
이에 야고보가 허락하고 함께 그 사람의 무덤으로 데리고 갑니다. 그랬더니 과연 거기에 닭이 있었습니다. 이에 그 사람이
“내가 너에게 내 집에 가져다 두라고 했지, 내 무덤에 두라고 했느냐?”
야고보가 대답하기를,
“이 무덤이 너의 본래 집이기 때문에 여기다 갖다 둔 것이다. 내가 어찌 너를 속였겠느냐? 네가 지금 거하는 집은 잠깐 동안 머무는 주막과 같을 뿐이고 무덤이 너의 본래 집이다.”
이에 그 사람이 ‘청광’의 지혜에 탄복합니다.(이영길)
세상 사람들은 씨앗만 바라보고 열매를 바라보지 않고 살아갑니다. 즉 그들은 눈에 보이는 세상이 전부이고 인생도 세상의 죽음으로서 다 끝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죽음 후가 없기 때문에 죽음 후를 위한 사람을 사는 것이 아니라 단지 흙에 불과한 몸에 모든 목표를 두고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잘 먹고 잘 살자는 식으로 인생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신앙인에게는 다른 점이 있습니다. 그 씨앗을 전부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씨앗이란 열매를 거두기 위한 목적으로 존재하는 것이지 씨앗 자체를 양식으로 삼기 위한 것은 아닙니다.
씨앗은 열매를 위해서는 필연코 죽어야 합니다. 죽어야 열매로 보상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의 인생이 세상에서 죽는 것을 거부합니다. 내가 죽는 것도 거부합니다. 열매를 보지 못하고 씨앗을 바라보면서 씨앗을 양식으로 삼으려고 하기 때문에 열매를 바라보지 못하는 인생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씨앗은 죽을 때 내일 영광스러운 열매로 태어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썩을 것으로 심습니다.
썩지 않을 것으로 살기 위해 썩을 것으로 심습니다.
[빌3:8-9]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라
영원한 그리스도를 얻기 위해 썩을 것으로 심습니다.
재물로 심습니다.
시간을 심습니다.
전도로 심습니다.
사랑을 심습니다.
2] 신령한 몸으로 일어납니다.
'썩지 아니할 것'(imperishable), 썩지 않을 몸이 있습니다. 부활의 몸입니다.
이 부활의 몸으로 다시 살아나려면, '썩을 것'(perishable)은 심어져야 합니다. 썩어 없어집니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닙니다.
부활의 비밀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현재의 몸은 비천하고 '욕된 것'(dishonorable)이지만 그리스도와 함께 심겨지면(십자가에 못박히면), '영광스러운 것'(glorious)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납니다.
부활의 몸은 찬란한 영광으로 가득 찬 몸으로 거듭나게 될 것입니다.
'약한 것'(weak)일지라도 그리스도와 함께 심겨지면 '강한 것'(powerful)으로 다시 살아납니다.
우리의 현재의 몸은 약합니다.
죄의 권세에 약합니다.
유혹에 약합니다.
세상 질병에 약합니다.
질그릇처럼 조금만 부딪쳐도 금방 깨지는 연약한 몸입니다.
참 약하기 짝이 없는 몸입니다.
그러나 부활의 몸은 세상 무엇으로도 깨뜨릴 수 없이 강합니다.
어떤 어두움의 권세도 흔들 수 없습니다. 절대로 쓰러지지 않게 될 것입니다.
'육의 몸'(physical body)으로 심고, '신령한 몸'(spiritual body)으로 다시 살아납니다.
지금 우리의 몸은 '육의 몸'입니다.
정신과 육체가 지배하는 자연적인 몸으로서 생로병사와 영욕을
경험할 수밖에 없는, 썩어지고 욕되고 연약하고 제한된 땅의 몸입니다.
육의 몸과 신령한 몸의 첫 번째 차이는 육의 몸은 죽고 신령한 몸은 죽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장차 우리가 부활해서 변형될 몸은
즉 '영의 몸'입니다.
육체와 정신이 우리를 지배하는 연약하고 제한된 몸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 즉 성령이 지배하는 신령한 몸으로서 영원히 썩어 없어지지 아니하고 영광스럽고 강한 하늘의 몸입니다.
육의 몸과 신령한 몸의 두번째 차이는 육의 몸은 썩지만 신령한 몸은 썩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린 시절 지니고 있던 고운 살결이 나이가 먹으면서 색이 달라지고 모양이 달라지며 전에는 보이지 않던 점들이 보이는 것은 모두 우리의 몸이 조금씩 썩고 있음을 경험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육의 몸은 아무리 좋은 처방을 해도 언젠가는 죽게되고 마침내 썩고 맙니다. 그러나 신령한 몸은 죽지않기 때문게 썩지도 않습니다.
존 웨슬리 목사님은 임종시 이런 추억어린 유언을 남겼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좋았던 순간은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실 때였다."
3. 살려주는 삶입니다.
[고전15:45-46]
45.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46.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사람이 아니요 육의 사람이요 그 다음에 신령한 사람이니라
"산 영"이란 하나님이 아담의 몸을 지으시고 거기 생기를 불어 넣으시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창 2:7).
첫 사람 아담의 몸에 담아두신 이른바 "영혼의 몸"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담은 하나님의 작품이니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릅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은 작품입니다.
그러나 "산 영"이 남을 살리는 영은 못 되었습니다.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예수 그리스도를 "마지막 아담"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이유는, 그가 말세에 나타나서 인생들을 구원하여 완성시키기 때문입니다(히 9:25-28a).
살려준다는 것은 여러가지로 좋은 일입니다.
토마토 케첩을 좋은 음식이라고 먹는 사람을 별로 본 기억이 없습니다.
하지만 웬만한 restaurant에 가면 토마토 케첩은 식탁에 놓인 단골입니다.
음식의 맛을 살려주기 때문입니다.
감자 튀김 fries 등의 웬만한 맛을 더 내고 싶으면 토마토 케첩을 찍어 먹으면 맛을 살려줍니다.
양념장이란 것도 그걸 반찬으로 먹는 사람은 별로 없어요.
하지만 칼국수 수제비 전골 같은 음식에 넣으면 맛을 살려줍니다.
고기라고 다 맛있는 것은 아닙니다. 좋은 레스토랑에 가면 맛이 좋은데요. 맛이 좋은 소스를 준비하고 있더라구요.
다른 음식의 맛을 살려주는 음식, 그래서 식탁의 귀한 자리를 차지하는 음식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살려 주는 영이 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시기 전에도 몸은 영혼을 지닌 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부활하셨을 때, 몸은 남을 살려줄 수 있는 영이 되셨습니다. 이와 같이 생명을 주시고 살려주시는 일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일입니다.
역사 속에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정신이 들어가면 역사가 달라집니다.
한반도가 5천 년 역사에 가난과 외세 침략으로 얼룩져 일그러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선교사님들을 통해 들어오신 이후로 엄청난 축복을 누리고 있습니다. 며칠 전 신문을 보니 국력이 세계 9위래요. 그 조그만 땅덩어리에서 세계 9위의 국력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저는 그리스도께서 다스리는 여러 나라에서 그 영광을 봅니다.
개인이나 가정이나 회사도 같은 맥락입니다.
그리스도의 영은 살려주는 영이시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통치 속에 있는 대상은 살아나게 되어 있습니다.
경기가 어렵고 직장생활이 힘든 요즘같은 때 남편들은 살려주는 아내의 말 몇 마디에 용기를 얻는 사람이 많습니다.
부모의 살려주는 말을 듣고 자란 자녀들은 그렇지 못하고 자란 아이들과 차이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살기를 원하십니까?
살려주시는 영이신 부활의 주님의 영을 영접하시기 바랍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살려주시는 영이 되셨으므로 그리스도와 함께 연합하여 살아갈 때, 살게 되어 있습니다.
[마무리하는 말]
우리에게는 한 꿈이 있습니다.
우리 다음 세대가 우리 교회에서 믿음과 꿈을 펼쳐 나가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한 꿈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유언 행1:8이 우리 교회에서 실현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닮아
진리에 순종하고
예수님 가족답게 사랑하고
세상에 나가 선교함으로
하나님의 꿈을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1. 하늘에 속한 형상을 입는 것입니다.
2.썩을 것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일어납니다.
3. 살려주는 삶입니다.
[설교본문]
42.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43.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44.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45.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46.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사람이 아니요 육의 사람이요 그 다음에 신령한 사람이니라
47.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48. 무릇 흙에 속한 자들은 저 흙에 속한 자와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들은 저 하늘에 속한 이와 같으니
49.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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