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말]
얼마 전, 고국의 박대통령에게 어떤 기자가 물었습니다.
통일을 어떻게 생각하는가고.
그리고 짧은 답을 들었습니다.
“대박이지요.”
저는 대통령의 짧은 답변에 감탄했습니다.
보수적인 정치노선을 견지하고 있는 분의 생각이 통일을 대박으로 본다면 통일의 날도 가깝겠구나 생각이 들더라고요.
남북한 모든 백성들이 통일은 대박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하나님께서 통일의 날을 허락하시겠다는 믿음이 생깁니다.
오늘 우리는 통일 대박보다 더 놀라운 메시지를 받습니다.
그것은 인생은 죽음은 끝이라는 첫 사람 아담의 한계 속에서 좌절하는 세상에서
제2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망을 이기고 부활하셨다는 선언입니다.
이를 믿는 우리 신앙인들도 부활한다니 대박 중의 대박입니다.
오늘 우리는 부활이 믿는 신앙인에게 대박인 이유를 알아봅시다.
1. 그날에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기 때문입니다.
[고전15:52-53]
52.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53.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아담 아래서 태어난 모든 사람은 죽게 마련이고 썩게 마련입니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미국의 소설가 헤밍웨이의 작품 중에 “노인과 바다”라는 유명한 소설이 있습니다. 이 소설은 멕시코 만류에서 고기잡이하는 한 노인을 주인공으로 합니다. 84일 동안 한 마리 고기도 잡지 못하다가 드디어 85일 만에 5미터나 되는 고기를 3일간의 사투 끝에 잡게 됩니다. 그러나 천신만고 끝에 낚은 고기였지만 돌아오는 길에 상어 떼를 만나 항구에 돌아왔을 때는 앙상한 뼈만 남게 된다는 줄거리입니다.
이 작품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있지만, 내용전체에 흐르는 주제는 허무함입니다. 헤밍웨이는 직접 전쟁에 참전해보았기에 인생의 어두운 면을 많이 보았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집에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권총 자살로 생애를 마감하는 아버지도 보았습니다. 이러한 경험을 가진 헤밍웨이는 삶을 보는 시각이 긍정적 일리 없습니다. 낚시나 여행을 많이 즐겼다고 하는 그도 결국 엽총으로 생을 마감하고 맙니다.”(임승진)
장차 예수님이 재림할 때 성도들이 주님의 부활에 동참하고 사망의 권세 아래서 썩어가지 않을 것을 선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왜 우리 신앙인들은 흔들릴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습니까?
왜 우리 신앙인들은 항상 주를 위해 수고합니까?
왜 우리 신앙인들은 주를 위해 더욱 힘을 씁니까?
요즈음 마태복음 16,17장을 묵상하 계시지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물으시는 중요한 질문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베드로의 이런 대답은 엘리야입니다. 세례 요한입니다. 선지자 중의 한 분이십니다. 말하는 사람들 틈에서 보석처럼 빛이 났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칭찬해 주십니다.
이를 알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라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윤리 도덕이나 철학 종교 선지자 정도로 알고 있는 세상 사람들 틈에서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을 볼 수 있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리스도시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그리하지 마옵소서 말리는 제자를 꾸짖으시고 십자가를 향해 나가셨습니다.
2천년 전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이로써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십자가 죽음이 인간의 죄를 담당한 대속의 죽음이었음을 증명하셨습니다.
죽었다가 죽으신지 3일만에 부활하셨습니다. 그것은 엄청난 전무후무한 기적이었습니다.
악한 원수 마귀는 사악한 인간들을 통해 예수님의 부활 사건을 역사에서 지워버리려고 갖은 수단을 다 썼습니다.
무덤오인설
시체도난설
기절설
환각설
신화설 ...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은 하나같이 맹랑하게 만들고 부활하시었습니다.
몇 년 전에도 『다빈치 코드』『유다복음』이란 책
영화『예수의 잃어버린 무덤』등이 나타나 사람들을 미혹했습니다.
예수님 부활 당시 반대자들이 예수님 시체를 찾으려고 혈안이 됐었는데......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증거가 매우 많습니다.
고전 15장에서 성경의 증거를 보았습니다.
5 게바(=베드로)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6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7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8 ....내게도(=바울에게도) 보이셨느니라
예수님은 구약 성경의 예언대로 십자가에 죽었다가 부활하셨습니다.
여러 사료들을 역사학자의 관점에서 검토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임을 증명하는 분이 많습니다.
토머스 아놀드(Thomas Arnold 1795∼1842, 前 옥스퍼드大 역사학 교수, 『로마사』저자)의 증언을 들 수 있습니다.
“나는 수년 동안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았다. 다른 사람보다 나 자신을 위해 확실한 답을 얻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 결과 기적의 사건인 예수의 부활보다 더 완벽하게 증명할 수 있는 사실(史實 Historical Fact)은 인류 역사 상 없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예수님의 부활 사건만큼 사료가 많은 예를 찾아보기 힘들다고 증언합니다.
기독교 역사상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을 죽기까지 증언하신 수많은 순교자들의 존재입니다. 순교자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부인할 수 없어서 목숨까지 바친 사람입니다. 거짓을 위해 자기 목숨을 바치는 어리석은 사람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처형을 받으시고 부활하신 이후 오늘날까지 수많은 순교자가 나오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 승천 이후 초대교회 시대에는 사도들은 물론이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부활을 증거하다가 순교했습니다.
기독교에서 ‘증인’이란 말은 훗날 ‘순교자’라는 말, 헬라어로 ‘증인’(μαρτυr)이란 말이 영어에서 ‘순교자’(martyr)라는 말로 쓰입니다.
부활 신앙은 무엇보다 이와 같은 역사적 진실을 믿는 신앙입니다.
부활의 신앙을 가진 성도들을 향한 진군의 나팔 소리를 들려주십니다.
부활주일을 앞두고 부활의 메시지를 받은 성도 우리들이 왜 주의 나라를 향해 힘써 수고해야 하는 지 답을 찾을 수 있기 원합니다.
그런고로 육신의 죽음은 잠시 흙으로 돌아가 대기하다 재림 시 새로운 부활체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썩지 않고 죽지 않고 강하고 아름답고 신령한 몸으로 변화됩니다. 그 때는 사망 끝! 질병 끝! 장애 끝! 부활은 완전한 회복이요, 완전한 치유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변화된다는 사실이 부활 신앙의 중요한 요소입니다.
최선수 장로님의 간증 가운데 마음에 담아 둔 이야기들이 있는데 자녀들의 결혼에 관한 것입니다.
결혼 적령기에 다다른 세 자녀를 두고 선교지로 떠날 때, 사람들은 염려를 하더랍니다. 자녀들의 좋은 배필을 얻도록 자녀 결혼 과정을 도와야 하지 않겠느냐는 권면이었습니다.
하지만 주님의 명령을 순종하여 떠났고 자녀들을 하나님의 손에 맡겼습니다.
결과는 순종이 옳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자녀들에게 가장 적합한 배필들을 짝지어 주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하나님의 손에 맡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선교는 우리가 선교지 사람들을 위해서 희생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의 명령에 따라 선교하기 위해서 떠나는 사람은 손해를 보는 것이 아니라 복을 받는 것이지요.
파인애플 스토리를 전에 함께 나눈 적이 있습니다.
선교사님이 파인애플을 먹을 수 있었습니까?
병원문을 닫기까지 원주민들로부터 파인애플을 지키려들 때였습니까?
상점을 폐쇠하여 원주민들의 필수품을 끊을 때였습니까?
아니면 무서운 개를 풀어 파인애플 밭을 지키게 할 때였습니까?
그때 그 선교사님은 세상 사람들이 선교사라고 말해 주었을 뿐입니다.
자신도 선교사라고 생각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그러나 그에게 선교를 받는 원주민들은 그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언제 그 선교사님은 원주민들에게 예수님을 믿는 것으로 인정을 받습니까?
파인애플의 주권을 내려놓았을 때입니다.
파인애플의 주권을 하나님께 올려드렸을 때입니다.
파인애플의 주권을 원주민들에게 주었을 때입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는 말씀은 바로 그것입니다.
내 것이니 차지하겠다고 몸부림치면 칠수록
내가 먹어야 한다고 주장하면 할수록 수렁은 깊어갑니다.
그러나 드렸을 때, 주민들이 갖도록 올려 드렸을 때, 내 것이 되었습니다.
책은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원주민들이 내게 와서 말했습니다.
“투-완, 드디어 그리스도인이 되었군요. 그렇죠?”
“이봐요. 나는 그리스도인이 된 지 20년이나 되었다구요.”라고 대꾸하고 싶었지만 참았습니다.
대신 “왜 그런 말을 하는 거죠?”라고 물었지요
원주민들이 말했습니다.
“우리가 파인애플을 훔쳐도 화를 안 내니까요.”
이것은 정말 계시처럼 나에게 찾아온 깨달음이었습니다.
이제야 나는 원주민들에게 가르친 대로 살기 시작한 것입니다.
나는 원주민들에게 서로 사랑하라, 서로 친절하게 대하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면서도 나는 항상 내 권리를 앞세웠고, 원주민들은 그것을 다 알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머리 좋은 젊은이 하나가 잠시 생각하더니 내게 물었습니다.
“왜 이제 더 이상 화를 안내시는 거에요?”
“내가 그 밭을 어떤 분한테 줘버렸거든. 그 밭은 이제 내 밭이 아니고, 너희들이 훔친 파인애플도 내 것이 아니니 이제 더 이상 화낼 필요가 없지.”
그러나 놀랍게도 하나님 앞에 내려놓은, 원주민들이 자유롭게 차지하도록 허용된 파인애플은 자신 앞에 놓여 있었습니다.
................ .
선교사님 가족이 파인애플을 먹으려고 둘러앉았을 때에 그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주님, 저희들이 이제 주님의 파인애플을 먹습니다. 파인애플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난 몇 년 동안 원주민들은 내가 하는 말을 들으면서 내 행동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내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내가 변하기 시작하자 그들도 변했습니다. 곧 많은 원주민들이 그리스도인이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내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원리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효과가 있었습니다.
나는 다른 것도 하나님께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하루는 우리 아들이 아파서 죽을 지경에 이르렀는데 의사에게 데려갈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 순간 아들을 하나님께 드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 아들을 하나님께 드립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십시오.”
...................
그날 밤 아들은 열이 내리고 회복되었습니다.
그는 성경 번역하는 일이 지체됨에도 불구하고 원주민들이 원하는 일들을 돕기 위해 시간을 내어 섬기기 시작했습니다.
원주민들은 계속 이렇게 말했습니다.
“투-완이 그리스도인이 됐어. 우리한데 서로 사랑하라고 말만 하더니 이제 정말 우리를 사랑하기 시작했어.”
우리 서머나 교회가 교회로 출발한 이래로 대부분의 학생들이 원주민 선교에 부분적으로라도 헌신하였습니다.
개척할 때부터 지난 십육 년 동안 학생들이 원주민 마을에 나누어 주었던 선교가 그들의 누구에게 더 유익을 주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늘 돌아오면서 우리 학생들이 큰 유익이 되었다고 확신합니다.
우리 학생들이 시간을 냈습니다.
우리 부모님들이 물질을 냈습니다.
서머나 교회가 후원하고 고생들을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을 통해 가장 유익을 얻는 사람들은 우리 자녀입니다.
지난해까지 두 차례에 걸쳐 아이티에 갔습니다.
많은 분들의 후원과 기도를 받고 다녀왔습니다.
누가 가장 이익을 얻는다고 생각하십니까?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이 있다고 하십니다.
주는 자에게 유익이 있습입니다.
다녀온 정근이 지훈이 태희가 얼마나 성숙하게 되었는지 우리는 눈으로 봅니다.
우리가 무엇을 줄 수 있습니까? 저는 민폐만 끼치고 올까 염려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간 학생들은 작은 선교사로 무엇인가 주려고 몸부림하지요.
그리고 무엇인가 준 이상으로 부자가 되어 오는 것은 준 사람들입니다.
저는 우리 아이가 너무 이기적으로 자라는 것을 보면, 소름이 끼칩니다.
이것은 아닌데 이게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뜻이 아닌데 싶어요. 그런데 똑같은 우리 아이들이 원주민 마을에 가면 섬기는 아들의 성숙한 모습을 봅니다. 정말 아름답게 섬기는 아들을 보거든요.
그래서 저의 소망은 아들이 이번 여름에 아이티 선교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저의 간절한 소망은 우리 부모님들이 함께 혹은 먼저 선교지에 나가는 것입니다.
가서 나누어 주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녀들도 부모님이 받은 축복을 체험하고 살도록 독려하는 것입니다.
위험을 생각할 수 있어요. 그래서 우리 어른들이 먼저 살펴보고 위험하지 않는 곳을 찾아 귀하게 쓰임을 받을 수 있는 곳을 알아두기도 했어요.
그래도 안전한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 자녀들이 이곳에만 있다고 해서 안전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봄을 기다리는 농부의 마음으로 썩어지지 않을 것으로 다시 살 것을 기다리며 심어가야 합니다.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심이 있는 고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둠이 있는 곳에 광명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심게 하소서...
위로 받기보다는 위로하며
이해 받기보다는 이해하며
사랑 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하여 주소
우리는 줌으로써 받으며
용서함으로써 용서받으며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생을 얻게 됨을 알게 하소서.
(성 프랜시스)
용서를 심고
기도를 심고
구제로 심고
선교로 심고
전도로 심어가야 합니다.
그날이 오면 썩지 않을 것으로 다시 살 것이기 때문입니다.
2.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고전15:54-57]
54.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 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55.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56.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5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모든 인간은 인간이 지닌 가장 큰 한계는 아직까지 극복되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죽음입니다. 인간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은 언젠가 죽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많은 돈을 가졌어도 그 돈 쓰지 못하고 죽어야 합니다. 아무리 큰 권력을 가졌어도 죽으면 한 가닥 바람만도 못합니다. 제갈공명 같은 천재적인 머리도 죽으면 더 이상 작동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고대로부터 죽음을 극복하기 위한 과학적, 비과학적인 시도가 수도 없이 있어왔지만 단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고, 성공에 근접한 적조차 없었습니다. 자신이 이룩한 절대 권력을 영원히 향유하기 위해서 불로초를 구하려고 했던 진시황은 겨우 49세의 나이로 죽음을 맞이해야 했습니다. 과학과 의학의 발달, 그리고 식생활의 개선으로 인간의 수명이 많이 늘었다고는 하지만, 죽음이라는 대명제 앞에서는 너무나 초라하고 희미한 반딧불에 불과합니다. 근래에 들어와서는 인간을 복제한다는 개념과 실험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궁극적으로 죽음을 극복하는 방법이 되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인간에게는 죽음이 가장 두려운 적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 누구도 죽음을 극복하지 못했고, 그 죽음으로부터 도망치는 데 성공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죽음은 지금까지 불패의 신화를 이어왔습니다.”(이정선)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그리고 이 죽음의 권세 앞에 굴복합니다.
프랑스의 루이 14세는 절대 군주요 폭군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어떤 점쟁이가 혹세무민(惑世誣民)한다는 소문을 듣게 됩니다. 당장 끌어다가 그 앞에 꿇어 앉혔는데, 마음속으로 사형시키려고 작정하고 잠시 확인하는 차원에서 이렇게 물었습니다.
“그래, 많은 사람들의 미래를 예언했다고 하던데, 너 자신이 언제까지 살 수 있으려는지 예언해 봐라!”
그랬더니 그 점쟁이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저,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대왕께서 돌아가시기 사흘 전에 죽을 것 같사옵니다.”
루이 14세가 죽이지 못했다고 합니다.
죽음이 두려웠던 것이지요.
그러나 사실 인간을 멸망시키는 것은 죄요 죄의 삯이 사망입니다.
인간에 일평생 매여 종노릇하는 것은 죄입니다.
그리고 사망의 권세 앞에 굴복합니다.
우리는 죄의 권세 아래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 권세 아래서 늘 사망을 맛보고 삽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 보니까 그 막강한 죽음을 향해서 외치는 소리가 있습니다.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예수님께서 죄와 사망을 이기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이 사망의 권세로부터 구원하기 위해 보내신 예수님,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죄와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고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마틴 루터가 종교 개혁을 할 때,,
585장 내주는 강한 성이요
“이 땅의 마귀가 들끓어 우리를 삼키려 하지만 겁내지 말고 싸워라, 진리가 이기리로다. 내 힘을 의지할 때는 패할 수밖에 없지만,
힘 있는 장수인 예수 그리스도가 나를 대신하여 싸워주시므로 반드시 이깁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온전히 성숙하기 위해서는 부활의 권능을 덧입어야 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성도를 승리 가운데 인도하십니다.
[고전15:5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심으로 우리를 그 사망과 죄와 율법에서 구원하시고, 우리에게 승리를 주신 것입니다 (롬 8:1-2).
예수님께서 사망을 이기셨기 때문에 우리도 사망을 이길 것입니다.
사망과 죄와 율법이 우리를 더이상 지배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은혜 아래 있고 율법 아래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롬 6:14).
부활하신 예수님이 성도와 함께 하신다는 ‘현재적 임재’를 믿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이것은 우리 신앙에 역동적인 에너지가 됩니다.
예수님이 부활 후 승천하시면서 마28:20(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을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보내신 성령님을 통해서 함께해 주시겠다는 겁니다.
요14:18~19 보면
“18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19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것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아 있겠음이라”
예수님이 성도들과 언제 어디서나 함께 해 주실 거라는 약속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늘 살아계셔서 우리와 함께 해 주십니다. 우리 삶에 임재해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 죄를 사하시고, 은혜를 베푸시고, 힘과 용기를 주시고, 승리하는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영적인 에너지를 공급해 주십니다. 이 믿음으로 항상 부활하신 예수님과 동행하시기 바랍니다.
부활 신앙인은 견실하고 흔들리지 않는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 부활의 신앙 위에 굳게 서서 흔들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부활의 신앙이 흔들리기 쉬운 이유는 세상에서 너무나 터무니없는 것으로 취급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활을 말하면 정신 나간 사람 취급을 당한단 말이지요. 이성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3.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습니다.
[고전15;49-50]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
50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심는 대로 거두게 하십니다. 콩 심은 데 콩이 나게 하십니다. 팥 심은 데는 팥이 나게 하십니다.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육신, 즉 우리의 썩을 피와 썩을 육체는 하나님의 나라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몸은 썩을 몸이기 때문에 썩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가 없습니다. 하늘나라는 영원한데 우리 몸은 죽어 썩어질 몸이니 하늘나라에서 우리 몸이 죽으면 우리가 그 영원한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 몸이 변화되어야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다 죽어 잠잘 것이 아니라 마지막 나팔 소리에 순식간에 다 변화될 것입니다. 우리 몸이 변화는 순간적입니다. 52.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하나님의 나팔 소리가 나면 무덤에 있던 죽은 사람이 썩지 아니할 몸을 입고 부활할 것이며, 살아 있는 사람들은 변화되어 죽을 몸이 죽지 아니할 몸을 입게 될 것입니다 (살전 4:16-18).
영원한 생명이 보장되었습니다.
[고전15: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우리의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음을 압니다.
주의 일에 수고하는 것은 결코 손해 보지 않는 확실한 투자입니다.
1885년 4월 5일 부활절 아침 개신교 최초로 언더우드 선교사, 아펜젤러 선교사가 제물포 항에 도착했습니다.
이제는 우리 한국교회가 수고하고 있습니다. 복음 증거를 위해 수고하고,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수고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축복을 받고, 혹 그렇지 못하다면 천국에서 영원한 복락과 상급을 받게 됩니다.
영원한 생명이 보장되었으니 이제부터는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그 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위한 수고는 헛되지 않습니다.
세계 기독교 역사에 가장 유명한 설교자로 스펄젼을 말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어떤 사람이 그 비밀을 물었습니다. 스펄젼은 그분을 모시고 그의 설교를 위해 헌신적으로 기도하는 분들을 보여드렸습니다.
그분의 설교를 위해 헌신한 수십 명의 기도자들이 있었습니다.
우리 교회도 제가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일을 위해 기도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래서 오늘까지 부족한 제가 말씀 사역을 감당해 오고 있습니다.
저는 부족함이 많은 목사입니다.
부족한 제가 하나님 말씀을 감당하려면 여러분의 도움이 절대로 필요합니다.
제가 설교본문과 제목을 보내드릴 때, 저와 함께 말씀 사역에 동역자가 되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제가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대언할 수 있도록 기도해주십시오.
저를 통해 선포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삶에 적용하시고 열매를 서로 나눌 수 있기 바랍니다.
그 열매를 가지고 영적으로 굶주린 사람들을 섬기십시오.
설교자와 함께 말씀 사역에 동역하는 일은 중요한 사역입니다.
가치 있는 수고를 하는 것입니다.
[고전15: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나라를 위해 기도하는 수고는 나라를 세웁니다.
선교사를 기도하는 수고는 하나님 나라를 세웁니다.
주님을 위하는 수고에 대해서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서 백 배나 갚아 주시고 천국에서 무한한 영광을 주실 것입니다 (막10:28-31, 롬 8:18).
누구든지 예수님의 제자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면,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않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마 10:40-42).
하물며 주님의 이름으로 복음을 전해 한 사람에게 영원한 생명을 소개시켜 주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상을 주시지 않겠습니까?
뿐만 아니라 교회에서 주님을 섬기는 마음으로 봉사하고 남을 섬기고 병든 사람을 도우는 일도 결단코 상을 잃지 않게 될 것입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행하는 우리의 수고가 헛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 큰 복이 될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6:8]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마무리하는 말]
‘신앙의 대박’을 위해
부활 신앙을 회복하십시다.
역동적인 우리 신앙생활로 변화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이 무기력하고 형식적인 것에 머물러 있다면, 부활 신앙을 회복하십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십니다.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이 부활의 주님께 내 인생을 접목시킨 성도 여러분
우리가 오늘 주의 일에 더욱 힘쓸 때
1.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게 됩니다.
2.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게 됩니다.
3. 유업으로 하나님 나라를 받습니다.
부활의 주님과 동행하며 세상을 이기고, 주의 일에 더욱 힘쓰시는 부활신앙의 용장으로 이 시대를 섬길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성경본문:고전15:50-58]
50.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51.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52.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53.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54.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 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55.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56.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5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지난 주간에 새벽기도 후에 맥도날드에 몇 분이 앉아 커피타임을 갖고 있었습니다.
대화 중 한 분이 수요 이사야 강해를 위해 기도하고 있음을 말씀하셨습니다.
기대하고 기다리고 기도하고 있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는 그 말을 들으면서 큰 힘을 얻었습니다.
사실 저는 기도가 많이 필요합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대로 많이 부족한 설교자입니다.
그런 제가 어떻게 이사야서를 강해할 수 있겠습니까?
수십 년을 거의 하루도 빼지 않고 설교하는 사람이지만
바로 설교한다는 일이 어렵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한 주일에 한두 번 오시는 분이 많으신데 그분들을 위한 말씀 사역은 아무리 강조하여도 부족합니다.
그래서 요즈음은 카톡에 설교 본문과 설교 제목과 대지를 보내드리고 기도를 부탁합니다.
제 힘으로 할 수 없는 부분을 여러분의 기도로 채워주시기 원합니다.
그런데 이 설교를 기대하고 기도한다는 말씀을 들을 때, 얼마나 힘이 되는지 모릅니다.
설교는 제가 준비하는 것 같지만 우리 모두를 향해 내려주시는 양식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영적 양식입니다.
나라를 대표해서 운동장에서 경주를 하는 선수들은 국민들의 응원을 부탁합니다.
축구를 하는 선수들이 국민들의 응원의 힘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홈코트의 이점이 있다는 말을 합니다.
응원의 중요성을 말하는 것이지요.
어머니가 밥을 지어 가족을 섬기는 일에 설교를 비교하는 분도 계십니다.
어머니가 음식을 만들어 가족을 섬길 때, 어머니 생각에 최선의 음식을 준비합니다.
우리가 식당에 가면 맛있는 음식이 있지만 사람들은 그 맛이 조미료 맛이란 말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 어머니는 될 수 있으면 조미료를 치지 않습니다.
맛이 좀 없어도 자녀들의 건강에 도움이 되는 음식을 마련하기 위해 애를 씁니다.
우리 가족들이 어머니의 음식을 기대하고 기다리고 기도한다면 어머나는 많은 힘이 될 것입니다.
감사함으로 받고 어머니의 봉사를 칭찬해 드리는 자녀는 귀하지요.
우리가 말씀을 하나님으로부터 받기 위해 기도하고 기다릴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체험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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