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4 March 2015

로마서 15:8-13 이방인의 소망 예수 그리스도

 [들어가는 말]

    우리는 이방인이었습니다. 유대인이 아닙니다.
그런데 왜 우리가 예수께로 나옵니까?

    찬송가 138장에는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만왕의 왕 내 주께서 왜 고초 당했나 이 벌레 같은 나위해 그 보혈 흘렸네
주 십자가 못 박힘은 속죄함 아닌가 그 긍휼함과 큰 은혜 말할수 없도다

    예수님을 만왕의 왕이라 찬양하고 있는 찬송은 열개가 넘습니다. 만왕의 왕이란 말뜻은 바로 예수님께서 유대인의 왕일 뿐만 아니라 이방인의 왕이라는 뜻입니다.

    이방인은 유대인들이 선민의식에서, 이스라엘 이외의 다른 민족을 얕잡아 이르던 말입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을 개처럼 멸시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만왕의 왕으로 보내신 것입니다. 유대인의 왕이요 이방인의 왕인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만왕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제사장으로 모신 우리는 주변에 있을 수 있는 이방인을 어떻게 섬길 것인가 하는 답까지 얻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하나님께는 이방인을 구원하시려는 언약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변하실 수 없는 진실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이방인을 구원하시겠다는 언약입니다.

    9절]

    이방인들도 그 긍휼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심이라

    11절]

    또 모든 열방들아 주를 찬양하며 [모든 백성들아 그를 찬송하라] 하였으며


    우리는 성경을 읽어가노라면

    하나님께서 구원의 복을 주시기 원하시는 대상은 바로 이방인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이방인들로 하나님의 백성을 삼아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을 돌리게 하신 것입니다.


    1] 예수님의 족보에 네 사람의 여성 이름이 나옵니다. 그중 세사람은 이스라엘 사람이 아닌 이방인입니다.

    1]  다말, 라합, 룻, 마리아는 예수님의 족보를 장식한 바로 이 귀한 어머니들입니다.
왜 이 이 네 분의 이름을 밝혔을까요?
이 가운데 세 분은 이방인으로부터 부르심을 입고 쓰임을 받은 것입니다.

    2]  요나서를 읽으시면서 우리는 어떤 메시지를 듣습니까?
바로 이방인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요나를 이방인을 구원하시기 위한 이방인의 선교사로 파송하셨습니다.
요나는 그런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결코 요나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요나를 고기 뱃속에 넣은 후, 회개케 하시고 결국 다시 니느웨로 보내셨습니다.
    끝까지 이해하지 못하는 요나는 이렇게 하나님께 항의했습니다.


    [욘4:1-2]

1. 요나가 매우 싫어하고 성내며
2.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므로 내가 빨리 다시스로 도망하였사오니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

    요나에게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욘4:10-11]

10.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재배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 버린 이 박넝쿨을 아꼈거든
11.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나님께서 아끼시는 대상은 바로 이방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요나를 이방인의 제사장으로 삼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복의 근원인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이방인 가운데 두셨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들을 통해 천하만민이 복을 얻게 하시려는 언약때문입니다.

    3] 아브라함을 이방인의 제사장으로 삼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이방인 가운데 두셨고 이방인의 삶을 살게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은 이방인을 향한 축복이 주제가 되고 있습니다.

    4]  야곱을 이방인의 제사장으로 삼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의 이름을 바꾸어 이스라엘이라 하셨습니다.
야곱은 하란 땅에서 외국인이요 이방인으로 살았습니다.
120년을 살면서 험악한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것은 이방인으로서의 삶입니다.

    5]  요셉을 이방인의 제사장으로 삼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을 12 형제 가운데서 가장 이방인 적인 삶 가운데 두셨습니다. 형님들로부터 이방인적인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애굽에 종살이 할 때에도 그는 철저히 이방인이었습니다.
옥살이 할 때에도,
심지어 국무총리란 권좌에 올랐을 때에도 그는 철저히 이방인이었습니다.


    6]  다니엘을 이방인의 제사장으로 삼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다니엘을 바벨론이란 나라의 포로 가운데 두심으로 이방인적인 삶을 살게 하셨습니다.
그는 그 땅에서 가장 귀하게 쓰임을 받았지만 그는 늘 이방인이었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베드로 사도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매우 의미 깊은 말씀을 주십니다.

    [베드로전서 2:9]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정케 함을 받은 우리 성도를  이방인의 제사장으로 삼으신 것입니다.



    2.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방인 구원 언약을 십자가에서 이루셨습니다.

    8절]

    내가 말하노니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위하여 할례의 추종자가 되셨으니 이는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들을 견고하게] 하시고


    12절]

    또 이사야가 이르되 이새의 뿌리 곧 열방을 다스리기 위하여 일어나시는 이가 있으리니 열방이 [그에게 소망을] 두리라 하였느니라

    예수 그리스도는 이방인 가운데 구원을 주시는 만왕의 왕으로 오셔서 이방인들에게 소망의 반석이 되십니다.

    [예화]

    구세군 창시자 윌리암 부스 대장이 마차를 타고 전도하러 가는데 갑자기 한 환상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검푸른 바다에 파도가 높이 솟아올랐다가 부서져 내렸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그 바다에 빠져 살려달라고 큰 소리로 울부짖다가 물 속으로 들어가서는 나오지 못하곤 했습니다. 이때 큰 바위가 바다에서 솟아 올라와 넓은 자리가 마련되니까 물 속에 빠져 죽어가던 사람들이 바위에 올라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바위에 올라 목숨을 구한 사람들이 바다에 빠져 살려달라고 아우성치는 사람들을 못 본체 하면서 먹고, 마시며 춤추며 놀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 넓은 바위는 십자가에 피흘려 우리를 구원해주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리고 바다에 빠진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이 지옥으로 떨어져 멸망 당하는데 놀라운 구원의 비밀을 깨달은 자들이 그 잃어버린 영혼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게 지내며 세상이 주는 즐거움만 탐닉하는 자들이 너무 많습니다.

    왜 이방인된 우리가 고통의 멍에 벗으려고 예수께로 나옵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이방인 가운데 구원을 주시는 소망의 반석이 되십니다.

    왜 이방인된 우리가 낭패와 실망 당한뒤에 예수께로 나옵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이방인 가운데 구원을 주시는 만왕의 왕으로 오셔서 이방인들에게 소망의 반석이 되십니다.

    왜 이방인된 우리가 교만한 맘을 내버리고 예수께로 나옵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이방인 가운데 구원을 주시는 만왕의 왕으로 오셔서 이방인들에게 소망의 반석이 되십니다.

    왜 이방인된 우리가 죽음의 길을 벗어나서 예수께로 나옵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이방인 가운데 구원을 주시는 만왕의 왕으로 오셔서 이방인들에게 소망의 반석이 되십니다.


    누가복음 2장 10절에 보면, 예수님이 탄생 하실 때 목자들에게 나타난 천사는 예수님 탄생을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라고 전합니다.

이 하나님의 비밀은 만민이 크게 기뻐할 비밀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방인까지 포함하는 모든 백성을 구원하실 분이십니다.

    사람들 중에도 이 간단한 해답에 대하여 감사히 받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헤밍웨이는 '노인과 바다'라는 작품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았습니다.
부귀와 명성을 가졌습니다.
아름다운 여성을 찾아서 네 번이나 이혼하고 네 번이나 결혼했지만 만족이 없었습니다.
그는 일기장 마지막 부분에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나는 전지약이 다 떨어지고 코드를 꽂으려 해도 꽂을 전원이 없어서 불이 들어오지 않는 라디오의 진공관처럼 공허하다"

61살에 결국 자살합니다.


    지금도 수많은 이방인들이 복음 밖에서 고통당하며 살고 있습니다.
    이방인적인 사고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당합니다.
이들에게 복음이 필요합니다.
소망의 반석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합니다.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해주는 제사장이 필요합니다.

    [예화]

   세계적인 심리학자 조수아 리브만이라는 학자가 있습니다.
그는 젊은 시절에 스승님을 찾아가 자신이 일생동안 누리고 싶은 희망과 소원을 말하고 조언을 구했습니다.

   1.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습니다.
   2. 달콤한 사랑을 영원토록 하고 싶습니다.
   3. 재능을 가지고 남들보다 뛰어나게 살고 싶습니다.
   4. 권력을 가지고 세상에서 뛰어난 삶을 살고 싶습니다.
   5. 돈을 가지고 남부럽지 않게 멋지게 살고 싶습니다.
   6. 명예를 마음껏 누리면서 살고 싶습니다.

    이 모든 소원을 들은 그의 스승은 제자에게 대답하였습니다.

   " 참으로 좋은 희망들인데, 가장 중요한 요소가 하나 빠졌구만. 그것은 마음의 평강이네. 왜냐하면 마음의 평강이 없으면 모든 것을 가지고 누린다고 할지라도 행복이 없다네."

    그는 스승님의 충고를 받고 마음의 평강에 대하여 찾고 연구하였는데, 결국 마음의 평강(Peace of Mind)이라는 책을 써서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이 마음의 평강이 어떻게 옵니까?
평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방인 가운데 구원을 주시는 만왕의 왕으로 오셔서 이방인들에게 소망의 반석이 되십니다.



    나 자신이 이 시대의 이방인이라고 생각하는 분이 계십니까?

평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십시오.
만유의 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평강을 우리 심령에 채우실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방인 가운데 구원을 주시는 만왕의 왕으로 오셔서 이방인들에게 소망의 반석이 되십니다.


    얼마 전에 수요예배에 참석하기 힘든 권사님 한 분께 기도부탁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수요예배 시에 설교하기 힘든 이유를 말씀드리고, 설교자를 위한 기도사역자가 되어 주시도록 부탁드렸습니다.
권사님은 예배 20분 전에 자리에 앉으셔서 정말 힘써 기도해 주셨습니다.
모든 예배가 끝나고 다음날 새벽이 되었습니다.
권사님께서는 저에게 설교에 은혜가 있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권사님의 말씀에 동의합니다.
기도로 설교 사역에 동참하였기 때문에 감사하였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권사님께 은혜로 채우셨기에 감사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준비된 심령에게 부어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방인 가운데 구원을 주시는 만왕의 왕으로 오셔서 이방인들에게 소망의 반석이 되십니다.


    왕같은 제사장인 성도들은 이방인 구원 언약을 이루기 위해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은혜 받을 빈그릇을 [준비]하는 일입니다.

    어릴 때 검은 피부를 희게 하려고 시냇가에 가서 모래로 손을 비벼서 손에서 피가 나와도 검은 피부는 사라지지 않더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우리의 죄로부터의 구원이 그렇습니다.
우리의 죄는 얼마나 질기고 지독한지 아무리 노력을 해도 없어지지 않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죄를 깨끗케 하십니다.
구원을 이루시는 분은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어주신 하나님이십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방인 가운데 구원을 주시는 만왕의 왕으로 오셔서 이방인들에게 소망의 반석이 되십니다.



    3. 하나님께서는 내 가까운 곳(이웃)에 이방인을 두셨습니다.

    10절]

   10. 또 이르되 열방들아 [주의 백성과 함께 즐거워하라] 하였으며

    오늘 말씀을 묵상하시면서 우리는 이 말씀이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이요 우리에게 적용되는 것을 깨달을 수 있기 바랍니다.

    세상에서는 '다른 나라에서 온사람'을 이방인이라고도 하고, 어떤 사회속에서는 주변인이나 낮선 사람을 이방인이라고 말합니다.
주인의식이나 소속감이 없이 그 사회와 동 떨어진 모습으로 살아갈 때,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나홀로 사는데 익숙해진 사람을 우리는 이방인이란 말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이방인은 소외감을 느끼며 사는 사람일 수 있습니다.

    이런 의미로 보면, 교회 안에도 이방인이 있을 수 있습니다.
놀랍게도 가족 안에서도 이방인이 있을 있습니다. 가족행사나 가족 모임에서 끼지 못하고 혼자 따로 노는 사람이라면 그는 그 가족 안에서 이방인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이방인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실까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왕같은 제사장'으로 세우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내가 열방 중에서 주께 감사하고 주의 이름을 찬송하기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열방들이 [주의 백성과 함께 즐거워하기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이방인의 제사장된 우리가 이런 은혜를 나누기 원한다면 좀더 깊이 사랑과 이해로 이웃(열방)을 만날 필요가 있습니다.


   '아담스 펫치'라는 영화에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주인공이 자살 소동을 벌이다 결국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됩니다.
병원 건물에 막 들어서는데, 환자 처럼 보이는 한 노인이 다가왔습니다.
그리고는 손가락 네 개를 펴 보이고는 이렇게 묻습니다.

(노인 환자) "이 손가락이 몇 개냐?"

(주인공): "네 개요"

(노인 환자) "네 개?" "네 개?" "바보 또 한명."

    얼마간 시간이 지난 뒤에 주인공이 그 노인 환자가 사용하는 방에 찾아 갔습니다. 뭔가 작업에 열중하고 있는 노인 곁에서 가만 지켜 보기만 합니다. 그런데 노인 책상에 놓인 종이컵이 새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테이프를 하나 떼어서 새는 곳을 막아 주었습니다.
그리고 노인에게 손가락 답이 뭐냐고 물어 봅니다. 그 노인이 다시 네 개의 손가락을 펴고 주인공에게 물었습니다.

(노인 환자):  "이 손가락이 몇 개로 보여?"

(주인공): "손가락 네 개?"

(노인 환자) : "손가락을 보지 말고 나를 봐."
"너는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문제에 초점을 맞추면 해결책을 볼 수 없어. 절대 문제에 초점을 맞추지 마.
"손가락을 넘어서 나를 봐. 몇 개로 보여?"

(주인공): "여덟 개?"

(노인 환자) : "여덟 개. 좋은 답이야."

"다른 사람들이 못 보는 것을 봐. 두려움과 게으름과 현실에 굴복 하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봐."

그리고 나서 노인은 주인공이 컵을 고쳐 준 것을 고마워 하면서, 주인공에게 "뭔가를 고쳐 주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팻치"라는 별명을 지어 주었습니다.
그 때부터 주인공은 원래 이름을 버리고, 팻치라는 이름을 사용합니다.
눈 앞에 보이는 현실이 아니라, 그 현실을 꿰뚫고, 현실 뒤에, 현실 넘어에 있는 사람들의 소망과 아픔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눈에 보이는 병의 증세를 치유하는 의사가 아니라, 환자의 마음 속의 병을 치유합니다. 환자가 눈 앞에 보이는 자신의 병을 보지 않고, 환자라는 현실을 뚫고, 질병과 죽음의 장벽을 뛰어 넘어 소망과 희망을 보도록 인도하는 의사가 되었습니다.

   
    이방인 구원은 우리 성도들에게는 [찬송과 감사]의 주제입니다.

    11절]

    11. 또 모든 열방들아 주를 찬양하며 [모든 백성들아 그를 찬송하라] 하였으며


    [마무리하는 말]

   만왕의 왕 예수 그리스도는  이방인의 제사장이 되십니다.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배우는 사람이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감사하며 사는 사람이다”(탈무드)

     나는 어떤 사람입니까?
지혜로운 사람입니까?
행복한 사람입니까?
배우는 사람입니까?
감사하는 사람입니까?

오늘 우리는 '이방인의 제사장'에 대하여 주시는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이방인에 대하여 배우셨다면, 이방인을 위한 지혜로운 제사장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통해 이방인으로 인하여 감사하셨다면, 이방인을 위한 행복한 제사장이 될 수 있습니다.

    [엡2장 11-18]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11.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당이라 칭하는 자들에게 무할례당이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12.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13.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와졌느니라
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15. 원수 된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16.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17. 또 오셔서 먼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고 가까운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18.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성경본문]

8. 내가 말하노니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위하여 할례의 추종자가 되셨으니 이는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들을 견고하게] 하시고
9. 이방인들도 그 긍휼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심이라 기록된 바 그러므로 [내가 열방 중에서 주께 감사하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로다 함과 같으니라
10. 또 이르되 열방들아 [주의 백성과 함께 즐거워하라] 하였으며
11. 또 모든 열방들아 주를 찬양하며 [모든 백성들아 그를 찬송하라] 하였으며
12. 또 이사야가 이르되 이새의 뿌리 곧 열방을 다스리기 위하여 일어나시는 이가 있으리니 열방이 [그에게 소망을] 두리라 하였느니라
13.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예화]

    어느 젊은 청년이 밤늦게 택시를 타고 가다가 어둔 골목길을 지나갈 때 갑자기 강도로 변해 운전사 손을 찌르고 돈을 뺏어서 달아났습니다. 운전사는 달아나는 젊은 강도 뒤를 쫓아가서 그 청년의 집을 봐 두었다가 며칠 후에 운전사는 손을 치료하고 얼마의 돈을 가지고 그 청년 집을 찾아가서 이것을 가지고 자그마한 장사를 해서 행복하게 살라고 하면서 준비해간 돈을 전해 주었습니다.
그 청년이 어떻게 하였겠습니까?
울면서 회개하였습니다.
뉴스에서 보도된 사실입니다.
이 작은 사건 속에서 기독교인의 참된 용서의 모습이 무엇인가 볼 수가 있습니다. 주님께로부터 오는 영원한 평강을 누리려면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용서하는 믿음입니다.




[쉬운 성경]에는 이렇게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11. 여러분은 이방인으로 태어났습니다. 유대인들로부터 “할례받지 못한 자”라고 손가락질당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할례받은 자’라고 자랑합니다. 그들이 말하는 할례는 단지 몸의 한 부분에 행하는 의식에 지나지 않는 것인데도 말입니다.
12. 그러나 하나님 없이 살았던 지난날을 잊지 말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이스라엘 자손도 아니며 그의 백성에게 약속하신 복의 기업도 받을 수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소망도 없고 하나님도 모르는 자들이지 않았습니까?
13. 하지만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살았던 여러분이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보혈로 인해 하나님과 가까워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14. 그리스도를 통해 평안을 누리고, 유대인과 이방인이 하나님 안에서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마치 둘 사이에 벽이 가로놓여 있는 것 같았으나,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몸을 내어 주심으로써 그 미움의 벽을 허물어뜨리셨습니다.
15. 유대인의 율법에는 너무나 많은 명령과 규칙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러한 율법을 폐하셨습니다. 유대인과 이방인을 갈라 놓던 율법을 없애심으로, 이 둘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어 새 사람이 되게 하셨던 것입니다. 이로써 예수님은 우리의 평화가 되셨습니다.
16.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가로막힌 미움의 벽을 허물어뜨리셨습니다. 이 둘을 하나가 되게 함으로써 이 둘 모두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기를 바라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방인의 구원을 위해 헌신했습니다.

    16-19절]

    16.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분]을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실 만하게 하려] 하심이라
17.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자랑]하는 것이 있거니와
18.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하게 하기 위하여 나를 통하여 역사]하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 그 일은 [말과 행위로
19. 표적과 기사의 능력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졌으며 그리하여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

    [예화]

    교파가 다른 세 교회가 힘을 모아 지역사회를 변화시켰다.

    서울 신당5동 예수마을교회(기감) 한일교회(기장) 산돌교회(예장합동)는 8일 관내 다산공원에서 1000여명의 주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살기 좋은 우리마을 만들기 운동' 발대식을 가졌다.

    교회는 이날 주민들과 함께 '깨끗하고 안전하고 친밀한 마을'을 만들 것을 선언했다.

    신당5동은 술집과 점집이 유난히 많은 곳. 세 교회는 5년 전부터 새벽마다 '클린(Clean) 마을'을 위해 기도해왔다.

    예수마을교회가 먼저 지역사회를 위해 문을 활짝 열었다.
청소년문화센터와 실용음악학교를 열어 청소년들을 교회로 인도했다.
독거노인 10명을 모셔와 은빛실버홈도 만들었다.

무료급식소를 만들어 매일 70여명의 노인들에게 '사랑의 점심'도 제공하고 있다.
부동산중개소에 나온 술집과 점집은 교회와 교인들이 주저없이 사들였다.
지금 신당5동은 문화의 거리로 변모하고 있다.

점집과 술집 대신 서점 제과점 양품점 커피숍이 늘어났다.
'우리는 술을 팔지 않습니다'라고 아예 써붙여놓은 음식점도 있다.
처음에는 '뭐 이런 음식점이 다 있나'라고 푸념하던 사람들이 많았으나 지금은 손님이 넘쳐나고 있다.

예수의 열두 제자에 이어 '열세번째 제자'라는 뜻을 담은 레스토랑 '서틴(Thirteen)'도 술이나 칵테일을 전혀 취급하지 않는다.
그래도 호황이다.

교회가 운영하는 가정폭력상담소 무료법률상담소 노인시설은 모두 술집을 인수한 것들이다.

이처럼 교회와 교인이 소신을 갖고 운영하는 가게와 시설이 신당 5동에만 무려 18곳이나 된다.
올해는 청소년들이 발벗고 나섰다.
청소년봉사단이 발족돼 매주 한번씩 마을청소를 시작했다.

담배꽁초와 휴지가 널브러졌던 다산공원은 말끔한 산책공간으로 변모했다.
청소년들이 매주 공원을 청소하는 것을 보고 주민들이 '이곳에서는 절대 담배를 피우지 맙시다'라고 현수막을 걸어놓았다.

교회가 세운 '마을 도서관'도 주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자녀들이 편안하게 공부할 수 있는 쾌적한 공간은 주민들의 오랜 숙원이었다.

주민들은 이제 "교회가 있어 살맛 난다.
교회가 있어 안심이 된다"고 고백하고 있다.

이 운동을 처음 시작한 장학일 목사는 "신당5동을 예수가 사는 마을처럼 만들겠다는 꿈을 갖고 교회명도 신당제일교회에서 예수마을교회로 바꾸었다"며 "교회는 지역사회를 변화시킬 힘을 길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일교회 이승구 목사는 "이곳에 살고 있는 우리가 바로 마을의 주인이다.
살기좋은마을운동을 시작한 청소년들이 참으로 대견스럽다"면서 "세 교회가 형제처럼 연합해 지역사회를 변화시킨 좋은 사례를 남기고 싶다"고 말했다.




[쉬운 성경]

8. 내가 여러분들에게 이 점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드러내시고 하나님께서 우리 조상들에게 하신 약속을 확증]하기 위해서 할례받은 사람들의 종이 되셨습니다.
9. 그래서 이방인들이 하나님께서 베푸신 자비에 대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 것입니다.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이방인 중에서 주님을 찬양하고, 주님의 이름을 찬송하겠습니다.”
10. 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방인들아,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기뻐하여라.”
11. 또한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 모든 이방인들아, 주님을 찬양하여라. 너희 모든 백성아, 그를 찬송하여라.”
12. 또 이사야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새의 뿌리에서 나와, 이방인들을 다스릴 이가 올 것이다. 이방인들은 그분에게 소망을 두리라.”
13.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신뢰할 때 소망의 하나님께서 모든 기쁨과 소망으로 여러분을 채우셔서, 성령의 능력으로 여러분에게 소망이 차고 넘치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14. 나의 형제 자매 여러분, 나는 여러분이 선함이 가득하며 완전한 지식이 있으며, 서로 권면할 만한 능력이 있다고 확신합니다.
15. 그러나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 때문에 여러분이 기억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몇 가지 일에 대해 담대하게 이렇게 글을 씁니다.
16. 하나님께서는 나를 이방인을 위한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게 하셨습니다. 나는 이방인들이 성령으로 거룩하여지고,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제물이 되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제사장의 직무를 담당하였습니다.
17. 그러므로 나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섬긴 일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18. 그리스도께서 내가 전하는 말과 행동을 통해 이방인들을 하나님께 복종하게 하신 일 이 외에는 어떤 것도 감히 말하지 않겠습니다.
19. 이방인들이 하나님께 복종하게 된 것은 표적과 놀라운 일과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나는 예루살렘에서부터 일루리곤에 이르기까지 모든 지역을 다니며 그리스도의 복음을 충만하게 전파했습니다.
20. 나는 다른 사람이 닦아 놓은 터 위에 집을 세우지 않으려고 그리스도의 이름을 들어 보지 못한 지역에 다니며 복음을 전하는 일에 힘썼습니다.
21.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님에 대한 소식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볼 것이요, 듣지 못한 사람들이 깨달을 것이다.”


[예화]

    한 청년이 맥도날드 앞, 벤치에 안아 햄버거를 먹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자동차 한대가 가게 앞에 멈추더니 한 여자가 내려 햄버거를 사서, 자동차에 앉아 있는 남자에게 가져다 주었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청년은…
‘나도 옆에서 챙겨주는 비서가 있어서, 저렇게 자동차 안에서 편안하게 햄버거를 먹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자동차 안에서 햄버거를 먹던 사람은 벤치에 앉아 있는 그 청년을 부러운 듯 바라보고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나도 저 청년처럼 다리가 건강해서 집에서 혼자 걸어와 햄버거를 사 먹을 수 있다면, 그리고 벤치에 앉아 맑은 공기를 마시며 점심을 먹을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예화]

    4세기 기독교수도승 작가인 에바그리우스 폰티쿠스는 에 대하여 서술한 바 있습니다. 이분에 의하며, 그 세가지 영역은 탐욕적인 영역, 감정적인 정신적인 영역인데, 이 각 세 영역에 다시 세 가지 악습을 연결시켰습니다. 탐욕적인 영역에는 음식, 섹스, 소유입니다. 무엇이든지 자기 안에 더 많이 집어 넣어야 만족하는 욕망입니다. 감정적인 영역은 슬픔, 화, 그리고 아케디아(권태,나태함)입니다. 이것은 제어할 수 없는 공격성으로 나타납니다. 이 공격성이 때로 힘이 될 수 있지만 그것이 자기 자신을 향하면 절망과 괴로움이 되어 자신을 잠시도 쉬지 못하게 하는 어둠의 힘으로 작용합니다. 그리고 정신적인 영역은 명예욕, 질투심, 그리고 오만입니다. 이것을 한 마디로 자만이라 했습니다. 자만은 자기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현실을 바라보고 받아들이는 것을 거부합니다. 자신을 높이 올려놓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한 비천한 모습임을 확인하는 순간, 그 위치에너지를 분노로 표출하고, 절망하거나 좌절하게 됩니다. 어둠의 권세에 빠져들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세상 사람들의 내면세계입니다. 우리라고 예외일 수 있을까요? 이 세상 가치관 대로 살아가면 필경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잠14:12 “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 그 죽음의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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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스
존슨 대통령이 전화
주무시고 계시니 아무도 바꾸지 말라 하였습니다.
나는 대통령 위하여 부름을 받은 것이 아니라 주인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기에 깨어드릴 수 없습니다.
그 가정부 백악관으로 보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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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잎이 물에 젖지 않는 이유
한겨레 | 기사입력 2008.11.12 18:36

[한겨레] 과학향기
불교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청정한 것을 비유할 때 연꽃을 든다. 진흙층이 쌓인 연못에 뿌리를 내리고 있지만 결코 그 더러움에 더럽혀지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연꽃잎을 자세히 관찰해보면 잎에 떨어진 빗방울이나 아침 이슬은 잎을 적시지 못하고 동그랗게 뭉쳐서 주르륵 미끄러져 떨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때 표면에 있던 오염물이 물방울과 함께 씻겨나가기 때문에 연잎은 항상 깨끗한 상태를 유지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육안으로 보면 연꽃잎은 다른 잎들보다 훨씬 매끄럽게 보인다. 단순히 표면이 매끈매끈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현미경으로 나노 크기를 볼 수 있을 만큼 확대해서 들여다보면 육안으로 보이는 것과는 확연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사실 연꽃잎 표면은 3~10㎛ 크기의 수많은 혹(bump, 융기)들로 덮여 있고, 이 혹들은 나노크기의 발수성(water-repellent) 코팅제로 코팅되어 있다.

이러한 울퉁불퉁한 독특한 구조 덕택에 연잎 위에 떨어진 물방울은 잎 속으로 스며들지 못하고 흘러내리게 된다. 즉 연꽃잎 위의 물방울은 돌기 위에 떠 있기 때문에 표면에 접촉하는 면적이 크게 줄어들어 표면장력이 떨어진다. 실제로 연꽃잎과 물방울의 접촉 면적은 덮고 있는 표면의 2-3%밖에 되지 않는다. 물방울이 공기 위에 떠있는 모양이라고 보면 된다. 이렇게 불안한 상황이다 보니 물방울이 모이고 합쳐져서 무거워질 때 땅으로 미끄러져 떨어지게 된다. 이때 잎에 앉은 먼지들도 물에 씻겨서 덩달아 떨어지면서 스스로 깨끗하게 씻어내는 것이다.

이런 특징을 학술적으로 '연꽃잎 효과(lotus effect)'라 한다. 이를 처음으로 명쾌하게 설명한 사람은 독일의 본대학교의 식물학자 빌헬름 바르트로트(Wilhelm Barthlott) 교수였다. 그는 현미경을 통해 연꽃잎을 관찰하고 나노규모에서는 거친 표면이 매끄러운 표면보다 더 강한 초소수성(疏水性 : 물과 친하지 않는 성질)을 나타낸다고 밝혔다. 울퉁불퉁한 표면 덕택에 연꽃잎에서는 물방울이 떨어지면 방울 형태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고, 표면이 조금이라도 기울어져 있으면 미끄러져 내린다는 것이다. 덕분에 아무리 심한 소나기가 내리는 동안에도 연꽃잎이 늘 마른 상태를 유지할 뿐만 아니라 먼지들은 물방울에 쓸려 내려가도록 해 연의 잎은 자정작용을 하게 된다.

반면 연꽃잎은 물방울의 상태에 따라 친수성 역할을 하기도 한다. 밀리미터 크기의 물방울에 대해서는 방수 역할을 하는 연꽃잎이지만, 응축된 수증기에 대해서는 전혀 다른 성질을 보인다. 예를 들어 연잎을 수증기가 나오는 위치에 두면, 수 분 후 물은 연잎 상에서 작은 물방울들이 모인다. 아주 가는 입자가 합쳐져서 물방울로 되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수증기의 작은 물방울이 연잎에 존재하는 나노크기 실타래 같은 것 사이에 갇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이런 연꽃잎의 자정 능력은 어디에 사용될 수 있을까? 독일 본대학교 연구팀은 이런 원리를 이용한 꿀 숟가락을 개발하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아무리 표면이 매끈매끈한 숟가락이라도 꿀이 넓게 퍼져서 잘 떨어지지 않지만, 연꽃잎 효과를 응용하면 달라진다. 연구팀은 꿀 숟가락은 표면에 수μm(마이크로미터·1μm는 100만분의 1m) 크기의 특수 실리콘 돌기를 붙였다. 이 돌기 덕택에 꿀은 숟가락에서는 이 표면에 묻은 꿀은 퍼지지 않고 구슬 모양으로 뭉치게 된다.

비만 내리면 저절로 깨끗해지는 유리창, 물만 한번 내리면 깔끔해지는 변기, 비 한번 맞으면 청소가 자동으로 되는 자동차 등의 개발이 가능하다. 실제로 청소를 하지 않아도 깨끗한 상태를 유지하는 유리창, 하얀 면바지에 콜라를 흘려도 손으로 툭툭 털어 내면 깨끗한 원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면 섬유, 가죽·나무·섬유 등에 뿌리면 물과 오염을 방지해주는 스프레이 등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또한 화학 및 바이오센서 등의 마이크로 소자와 액정표시장치(LCD), 플라스마디스플레이패널(PDP) 등 차세대 대형 디스플레이의 표면 코팅에서도 연꽃잎 효과를 이용한 코팅 기술이 사용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한편 '초친수(超親水)' 현상에 대한 연구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표면에 물방울이 묻으면 얇게 펼쳐지는 초친수 현상은 일본에서 가장 먼저 연구됐다. 도쿄대 연구팀이 이산화티타늄을 이용해, 초친수성을 구현해 낸 것이다. 이후 미국 벨연구소 톰 크루펜킨 박사팀은 초발수성을 띠게 만든 실리콘 기판에 전기를 걸면 표면이 초친수성으로 바뀐다는 사실을 밝혀냈고, 우리나라에서도 포스텍 화학공학과 조길원 교수팀은 2006년 물질 표면 일부만의 특성을 변화시키는 기술을 개발했다.

초친수 성질과 연꽃잎 효과를 함께 구현할 수 있는 기술이 있다면, 활용범위가 훨씬 넓어진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잉크젯 프린터다. 잉크를 뿌려주는 노즐에 초소수성질을 응용하면 잉크 노즐에서는 잉크를 방울방울 떨어지게 만들 수 있고, 초친수성을 이용하면 종이에는 잉크를 얇게 퍼지게 뿌려줄 수 있다. 이렇게 노즐의 성질을 원하는 대로 변화시켜 적은 수의 노즐로도 다양한 인쇄가 가능해진다.

또한 약이 몸속에서 효과적으로 작용하는데도 이 기술을 활용할 수 있다. 즉 당뇨병 환자가 정기적으로 맞아야 할 인슐린의 경우, 환자의 몸속에 뭉쳐진 형태의 약을 주입한 다음, 필요할 때 얇게 퍼지게 한다면 약효를 오랫동안 지속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나노단위에서는 표면에 따라 다양한 성질을 나타내기 때문에, 이를 구현하기 위한 연구가 국내외에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진흙 속에서도 결코 자신을 아름답게 지키는 연꽃잎에 대한 연구는 나노기술의 발전과 함께 이제 우리의 삶을 보다 편리하게 바꿔 놓을 것이다.

글 : 유상연 과학칼럼니스트
과학향기 출처 : KISTI의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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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미국의 샌프란시스코 종합병원에서  랜돌프 버드(Randolf Byrd) 박사는 기도의 효력에 대하여 10개월에 걸친 실험을 한 바가 있습니다.

이 실험에서 대상은  관상동맥질환으로 심장병을 앓고 있는 환자 393명이었습니다. 이 393명을 컴퓨터로 무작위로 2개의 그룹으로 분류하였습니다.
A 그룹은 201명은 병원의 스케줄에 따른 일상적인 치료를 받게 했습니다.
B 그룹은 192명으로서 역시 스케쥴에 따른  일상적인 치료를 받게 했습니다. 단, B 그룹에 속한  환자 한 사람당 기도 5~7명으로 된 매일 중보 기도지원그룹을 배정했습니다. 이 중보 기도 지원 그룹은 모두 기도의 능력을 믿고 중생의 경험이 있는 자들로 구성했습니다.
실험의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하여 이중 맹검법(Double-blind test) 사용하였습니다. 즉, 의사와 간호사들은 기도의 실험에 대하여 전혀 모르게 하였으며, 어떤 환자가 A 혹은 B 그룹에 속하고 있는지 전혀 비밀로 하였습니다.
나아가서 환자 자신도 이러한 기도의 실험이 있는지, 자신이 어느 그룹에 속한 지 전혀 모르게 했습니다.
  또한 중보기도 지원 그룹도 그들이 위해 기도하는 환자를 전혀 만나지 않았으며, 다만 병원에 입원한 환자의 사진이나 이름만 가지고 기도한 것입니다.
10개월 동안의 실험이 끝난  후 결과가 나왔습니다.
어떤 결과가 나왔을 것 같습니까?

기도를 받지 않은 A 집단과 기도를 받은 B 집단 간에는 아래와 같은 다섯가지의 분명한 차이를 나타내보였습니다.

매일 기도 지원 받은 B그룹의 환자들은

1. 항생제 필요로 하는 비율이 5배나 줄어들었다.
2. 폐에 물이 차는 폐부종에 걸릴 확률이 3배나 낮았다.
3. 목에 인공호스를 넣는 삽관법 치료를 요하지 않았다. 이에 비해 비 지도       지원그룹에서는 12명이나 삽관법 치료를 받았습니다.
4. 폐렴과 심폐정지 증상을 덜 겪었다.
5. 사망률이 낮았다.

이에 대하여  무신론 과학자들과 의사들이 크게 반발하였습니다.  몇 년 뒤 그들 팀을 조직하여  랜돌프 버드 박사와 유사하게 기도의 효력에 대한  실험을 시도하였습니다. 심지어, 그들의 실험대상에 에이즈 환자, 불임증 여성들도 포함시켰습니다.

  그 결과는1996년 6월24일자 미국 [타임지] 표지에 "신앙과 치유"라는 제목의 특집기사로 실린 적이 있습니다. 이 기사는 무신론자인 과학자들과 의학자들이 영적인 혹은 종교적인 신앙이 병의 치유에 미치는 영향에 대하여 실험 연구한 내용이 담겨져 있습니다. 결론은 랜돌프 버드 박사와 거의 동일한 것이었습니다.

기도는 효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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