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13 March 2015

행 16:11-15 누가 유럽의 문을 열었는가?

11 드로아에서 배로 떠나 사모드라게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압볼리로 가고 12 거기서 빌립보에 이르니 이는 마게도냐 지경 첫성이요 또 로마의 식민지라 이 성에서 수일을 유하다가
13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처가 있는가 하여 문 밖 강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더니 14 두아디라성의 자주 장사로서 하나님을 공경하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들었는데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청종하게 하신지라 15 저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가로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있게 하니라


들어가는 말

바울 일행이 유럽 땅을 찾았을 때, 유럽의 형편은 중병에 걸린 시람과 같았습니다. 피가 병균과 사울 힘을 잃은 백혈병에 걸린 사람처럼 그 땅은 고통당하고 있었으나 그땅을 치료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땅에는 철학도 만개해 있었고, 종교도 많았지만 만연한 죄악의 병을 치료할 대책은 없었습니다. 죄에 대한 저항력도 없었습니다. 당시 유럽은 흑암의 땅이었습니다. 절망의 땅이었습니다.  어두움의 권세가 다스리고 있던 죽음의 땅이었습니다. 각양 우상이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습니다. 성적인 타락은 곳곳에 범람하고 있었습니다. 힘의 법칙이 다스리고 있어서 강자는 약자를 잡아노예를 삼아 짐승처럼 부려 먹는 것이 당연시 되던 사회였습니다.
이 절망적인 땅에 오늘 참빛 곧 세생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임하게 됩니다. 소망의 싻이 돋아납니다. 그리고 그땅은 변하여 향 후 1,500년 이상 복음의 등불을 놓는 등대가 됩니다.  세계선교의 본점(本店) 역할을 감당하게 됩니다. 이 놀라운 역사의 기초가 어떻게 이루어 지는가? 본문 말씀은 그 중요한 답변을 제시합니다.

1. 바울을 중심한 굇냔응?그 선봉에 섭니다.

11 드로아에서 배로 떠나 사모드라게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압볼리로 가고 12 거기서 빌립보에 이르니 이는 마게도냐 지경 첫성이요 또 로마의 식민지라 이 성에서 수일을 유하다가 13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처가 있는가 하여 문 밖 강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더니

우리는 본문에서 한 사명인들의 발빠른 움직임을 보게 됩니다. 바울 사도의 일행은 그땅을 치료할 수 있는 유일한 신구약!  복음을 들고 유럽에 투입된 것입니다. 주님의 맡겨주신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  긴급히 배로 떠나 사모드라게로 직행합니다. 지체하지 않고 바로 이튿날 네압볼리로 갑니다. 네압볼리는 상업 중심지로 빌립보의 외항입니다. 그런데 네압볼리까지 250km를 항해하는데 이틀밖에 걸리지 않습니다. 돌아올 때 5일 걸린 것과 대조적입니다. 주님께서 순풍을 주신 까닭이요, 그들이 하나님께 적극 순종한 까닭입니다. 12 거기서 빌립보에 이릅니다. 주님의 맡겨주신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 몸을 아끼지 않습니다. 촌음을 아낍니다. 빌립보성에서 며칠 머무는 동안에도 이 사람들은 사명감당을 위해 노심초사합니다.
안식일, 그들은 한가지 해답을 얻습니다. 그들은 기도처를 찾기로 한 것입니다. 기도처가 있는가 하여 문 밖 강가에 나갑니다.
  '기도처'는 회당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곳에는 여자들만 있었던 것으로 나타나 있고 또 본서의 다른 곳에서 '회당'이라는 구체적 명칭이 자주 사용되고 있기 때문입니다(17:1,10,17). 유대인의 법에 따르면 하나의 회당에는 최소한 10명의 남자가 있어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본문에서 여자들만 언급되는 점으로 보아 이곳의 '기도처'는 여자들이 관습적으로 모여 기도하던 곳으로 추측됩니다(MARSHALL).

그런데 왜 기도처를 찾는 것일까요?
기도처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난 양약, 복음을 전하기에 가장 적합한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전하지 않으면 안될 복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아침에도 우리가 말씀(잠3:8) 안에서 인도함 받으신 것처럼

08 이것이 네 몸에 양약이 되어 네 골수로 윤택하게 하리라

는 말씀처럼 양약(良藥)이요, 골수를 윤택하게 할 복음을 전하는 데에는 기도처가 가장 적합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와서 도우라!'는 환상을 보았을 때,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한 분입니다. 그는 복음의 전달자로 이땅을 찾은 사람입니다. 이 주님의 지상명령을 수행하기 위해서 기도처가 가장 적합했기 때문입니다.

유럽이란 흑암의 땅이 복음의 땅으로 바꾸어지는 데는 하나님의 대사 바울 일행의 이같은 충성과 헌신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 열정적인 일행의 모습 속에서 우린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모든 하나님의 대사들이 어떤 경주를 해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충성되고 헌신적인 경주가 갖는 영적인 의미가 얼마나 큰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적용]
우리 서머나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이 교회 안에서 어떤 일을 이루시기 원하신다고 믿으십니까? 이 교회는 이 병든 시대를 구원할 수 있는 복음을 투약하는 기도처가 되어야 합니다.

이런 하나님의 뜻을 알고 난 우리는 무엇을 해야합니까?
바울 일행처럼 주님의 뜻이 이루어 질 장소와 사람들을 찾아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구체적으로 누군가를 찾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만나야 합니다. 그분과 교제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분을 그리스도께 접붙여져야 합니다. 그분이 복음을 받고 구원을 얻도록 우리를 헌신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서머나 교회 안에서 이런 분들을 대하면서 감격을 합니다.


2. 루디아는 터를 닦았습니다.

15 저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가로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있게 하니라

 두아디라 성의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에 대해서, 렌스키(Lenski)는 누가가 여격을 사용해 개인의 이름을 소개하고 있기 때문에 여기의 루디아는 개인의 이름이 분명하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많은 신학자들은(Bruce 등) '루디아'가 이름이 아니라 단지 고대 루디아 왕국의 영토였던 지방에 살던 사람 즉 '루디아(출신의) 여인'이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으로 생각합니다. 당시 루아디라는 직조와 자색 염료 사용 기술로 유명했는데 루디아가 빌립보에 온 것이었을 것입니다. 빌립보에서 직매점을 운영하는 사람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루디아가 유럽을 축복하시는 하나님의 선한 도구로 쓰임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루디아의 귀한 점은 믿음의 고백이 확실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바울 사도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들었을  때, 그녀는 분명한 결단을 합니다.

저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

당차고 대담한 결단을 우리는 루디아로부터 만납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분이 바로 참 진리로구나 확신하게 되었을 때 저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는 것입니다.
세례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에 동참하는 것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죄에 대하여 죽는 것이요, 하나님께 대하여 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지체가 되는 것입니다.
루디아가 온 집과 함께 다 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온 세상을 향하여 자신의 가문이 하나님의 가문에 속하였음을 선포한 것입니다.

예화]
피카소의 조각 중에 `황소 머리'란 작품이 있답니다. 부르는 게 값이란 진귀한 이 작품의 재료는 피카소가 쓰레기장에서 주어 온 고물 자전거였다 합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쓰레기는 위대한 가능성을 가졌다!'고. 물 자전거 자체는 쓰레기요, 큰 의미가 없지만 피카소의 손에 붙들린 그 고물 자전거는 소망이 있는 것이요, 새롭게 빚어진 `황소머리'는 위대한 것입니다.

루디아! 그녀는 세상에서 큰 의미가 없는 존재일 수 있습니다. 이름 석자 반듯이 세상에 내놓을 수 없는 자주장사에 불과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루디아는 자신을 찾아온 그리스도의 종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영접하였고 세례를 받은 후, 하나님의 꿈에 참여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를 어떻게 빚으셨습니까? `황소머리' 정도의 값으로 빚으신 것이 아닙니다. 유럽에 하나님 나라를 세우시는 영적 기초로 삼으신 것입니다.

루디아는 이론적으로만 자신의 삶을 주님께 개방한 것입니다. 루디아는 이론적으로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가문에 속한 것을 선포한 것이 아닙니다. 곧 이어서 삶으로 자신이 그리스도인임을 선포합니다. 직접 하나님의 꿈에 동참합니다.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있게 하니라

이 말이 무슨 뜻입니까? 자신이 하나님께 속하였으니까 자신도 하나님의 꿈에 동참할 수 있는 기회를 받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집을 사도 바울의 일행에게 개방합니다. 자신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것들을  하나님의 가족과 함께 나눕니다. 소극적이 아닙니다. 적극적입니다. 억지로가 아니라  강권하여 있게 합니다. 자신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것들을  하나님의 가족과 함께 나눈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성숙한 하나님의 사람에 있어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꿈에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 하나님의 가족이 가진 특권입니다.
그러나 이는 쉬운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헌신되지 않은 사람에게는 힘든 일입니다.

[적용]
금주에는 김성일 선교사의 가정이 이곳 토론토에 옵니다. 안식년을 맞아 얼마동안 머무를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머무를 곳이 확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루디아가 절실히 필요한 시점입니다. 루디아의 생애에서 바울 사도의 일행과 함께 보낸 며칠이 가장 의미있는 시간이었으리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 어디엔가 김성일 선교사님을 위해 머물 처소를 마련해 놓으셨겠으나 저의 소망은 우리 중 누군가를 사용하셨으면 합니다.

누가 유럽의 문을 열었습니까?
3. 주님께서 여셨습니다.

14 두아디라성의 자주 장사로서 하나님을 공경하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들었는데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청종하게 하신지라

하나님의 대사 바울 일행은 `와서 도우라!'는 환상을 보았을 때,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하였습니다. 주님의 뜻이 이루어 질 장소와 사람들을 향해 나아갔고, 기도처를 찾아 기도하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바울이 전한 복음을 듣고 받아들인 루디아는 온 가족과 함께 세례를 받고, 자신의 삶을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내어놓았습니다.
이 두 사람의 헌신과 믿음 위에 유럽 선교의 문이 열리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가장 깊이 들어야 할 복음이 있습니다.

바울 사도 일행이 유럽에 입성함으로 유럽에 복음의 문이 열렸습니다. 그러나 사실 유럽 성(城)으로 바울 사도 일행을 인도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아시아에서 하나님은 바울 일행의 발길을 유럽으로 옮겨놓았습니다. 그리고 오늘 그 문의 빗장을 열어주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하나님을 공경하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의 마음을 열고 계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청종하게 하신지라

유럽 성의 빗장을 여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바울이 전한 복음을 들을 때에 그녀의 마음을 열어 복음을 받아들이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셨습니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 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 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뿐이니라"(고전3:6,7)

는 바울의 고백을 생각나게 하는 대목입니다. 하나님의 몸된 교회가 서는데는 심는 수고자가 있어야 합니다. 물을 주는 루디아가 필료합니다. 그러나 누구보다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이 교회의 머리로 계셔야 합니다.
누가 유럽에 구원의 축복을 쏟아부으셨습니까? 하나님 한 분이십니다. 우리가 찾아가고 만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시간 하나님께서 그를 찾으시고 만나주셔야 구원이 그에게 임하게 됩니다.

맺음말

[예화]
스코틀란드 한 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일년이 가도록 한 사람밖에 전도하지 못한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그것도 어린이 한 명이었습니다. 당회원들이 찾아왔습니다. 사임을 원하였습니다. 낙심해 있는 목사님께 전도한 그어린이가 찾아왔습니다.
"제가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한 후, 선교사가 되고 싶어졌습니다. 제가 선교사가 될 수 있도록 지도해 주십시요."
그는 가진 것도 없고 배운 것도 없어서 정원사로 생계를 연명해 가는 사람이었습니다. 선교회에서조차 그를 거부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목사님의 지도를 잘 받은 그는 훗날 위대한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다른 선교사들은 엄두도 못내던 때에 케이프타운에서 900Km나 내지로 뚫고 올라가서 선교지를 개척했습니다. 그곳에 자신이 배운 정원술로 아름다운 동산을 꾸미고 원주민 언어를 배우며 성경을 번역했습니다. 7명의 자녀 중에 5명을 선교사로 키웠습니다. 그가 바로 그 유명한 아프리카의 선교의 대부인 모페트 선교사입니다.
그분의 사위 가운데는 데이빗 리빙스턴이란 분이 있습니다. 리빙스턴은 중국대륙 복음화를 위한 선교사역을 위해 준비를 위해 준비를 했으나 아편전쟁으로 인하여 꿈이 좌절되었습니다. 낙심천만이던 어느날 그는 이 아프리카 의 모페트 선교사를 만납니다. 그리고 힘을 얻은 그는 모펫 선교사가 개척한 케이프타운으로부터 1,000Km떨어진 내지보다 훨씬 깊은 곳까지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유럽을 바울과 루디아를 일으켜 복음의 불길을 일으키신 하나님께서 훗날 무명의 목회자, 모페트와 리빙스턴 선교사들을 일으켜 아프리카를 축복하시는 것입니다. 유럽이든 아프리카든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바울과 루디아는 이 놀라운 하나님의 사역 도구로 하나님께 쓰임을 받고 있습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정하신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시려고 바울과 루디아와 같은 신실한 종을 찾고 계십니다. 오늘은 누가 바울과 루디아처럼 하나님의 사역에 쓰임을 받을 수 있을까요? 모펫도 좋습니다. 리빙스턴도 귀합니다. 그러나 오늘 누가 주를 위해 그 계획에 쓰임받을까요?

어떤 어린이가 잠자기 전에 이런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은 너무 즐거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내일 화요일을 위해서는 어떤 계획을 세워놓으셨나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꿈에 동참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999년 9월 5일 토론토서머나장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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