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13 March 2015

행 16:6-10 성령에 연합한 사람

06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07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아니하시는지라 08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 갔는데 09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가로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10 바울이 이 환상을 본 후에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줄로 인정함이러라


들어가는 말

하나님께서 역사를 주관하십니다. 사건을 주관하십니다. 사도행전은 성령께서 교회를 시작하시고 인도하시는 역사의 기록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은 성령행전이라고도 합니다. 성령께서 하신 일을 기록한 것입니다. 주님께서 고난 당하시기 전에 이미 약속하셨던 그 성령께서 인류 구속의 큰 시간표를 따라 일하십니다. 오늘 본문은 성령께서 하나님의 큰 계획표를 펼치시고  그 종 사도바울을 인도하십니다. 그리고 바울은 하나님의 계획을 따라 유럽대륙에 들어갑니다. 그것은 또 하나의 '땅끝'을 향한 거보인 것입니다. 이 일로 인하여 로마의 빗장은 열리고 하나님의 큰 꿈은 이루어 집니다.
오늘 말씀을 들으면서 우리 안에서 오늘도 일하시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이 구체적으로 이루어 질 수 있는 우리 자신과 가정과 서머나 교회가 이루어 질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1. 허락치 아니하는 하나님의 사랑

사도 바울에게는 가고 싶은 곳이 있었습니다. 가고 싶으나 아직 가지 못한 곳이 있었습니다. 선교하기로 계획된 곳이 있었습니다. 그곳은 비두니아란 땅입니다. 근래에 터어키 지진이 휩쓸어 1만 명 이상이 사망하고 3만 명 이상이 아직도 묻혀있다는 그 이츠미트 지역입니다. 소아시아의 중부지역 안디옥과 루스드라와 더베에 복음의 깃발을 꽂은 바울은 이어서 소아시아의 남부와 동부에도 복음의 깃발을 꽂았습니다. 이제 소아시아의 북부지역에 복음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그곳에 바울은 복음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그곳은 바울이 힘을 기울여 복음을 전하고 싶었던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도 있지요. 이 선한 사역의 길이 막히는 것입니다.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아니하시는지라

그의 주님이 되시는 예수님께서 결제를 하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기쁘시게 하기로 결심한 종의 신분이니 성령의 결제를 받아야겠는데 주님을 위해 가고자 하는 비두니아의 길이 열리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아니하셨다!는 말씀의 내용을 우리가 온전히 알 수는 없습니다. 어떤 분은 바울이 비두니아로 가려고만 하면 바울의 병이 도졌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성령이 어떠한 방법으로 누구에게 뜻을 전했는지 언급되어 있지 않습니다. 누가는 사실 '자체'에만 관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환상을 보거나 꿈을 꾸었을 수도 있고(9절;23:11) 주변 환경(環境)의 영향때문에(예를들면 유대인의 반대) 계획을 변경했을 수도 있습니다(Neil).
확실한 것은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아니하셨다!는 것입니다. '허락히다는 말은 '상관않고 버려두었다'는 것입니다.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아니하셨다!는 말씀은 주님께서 '상관하셨다! 개입하셨다! 그냥 버려두지 않으셨다!'는 말씀입니다. 거룻줄이나 닻이 없는 배처럼 바울을 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바울이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의 복음은 전하는 일이니 상관하지 않고 내버려 두지 않았습니다. 대신 사도의 발걸음을 간섭하셨습니다. 섬세하게 인도하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종인 사도 바울이 하나님의 꿈을 이루는 선한 도구로 쓰시길 원하셨습니다. 종인 바울이 하나님의 비젼을 따라 움직이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잡히시기 전날밤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을 흘려 기도하셨습니다. 기도의 제목은 할수만 있으면 '쓴잔' 곧 십자가를 피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요나는 니누웨로 가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풍랑으로 막으셨습니다.
져드슨 선교사는 인도와 이프리카 지역을 두드렸지만 길이 열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위대한 결과를 기대했고, 하나님을 위해  위대한 일을 시도했던' 많은 사람들에게 때로 하나님은 그 길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하나님께서는 다른 길을 열어 두셨습니다.

2.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대신 주님께서는 그에게 환상을 하나 보여주셨습니다. 그것은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하나님의 꿈이었습니다.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가로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바울의 꿈과는 달랐습니다. 그가 가고 싶었던 비두니아와는 방향도 달랐습니다. 문화도 달랐습니다. 사람들도 달랐습니다. 그러나 그 꿈은 너무나 선명했고, 확실했습니다.
마게도냐 사람 하나! 그는 누구일까요? 우리가 누구입니까?

어떤 이들은 드로아에서 바울에게 도움을 구했던 마게도냐인이 바로 누가였다고 주장합니다. 이는 누가가 마게도냐인 즉, 빌립보 출신이라는 사실에 근거한 것으로, 대화하는 가운데 이미 누가가 바울에게 마게도냐에 복음이 필요함을 깨닫게 하였을 것이며 또한 하나님께서 이 만남을 환상 가운데 이용하셔서 바울 일행을 마게도냐로 가게 하셨을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또 혹자는 드로아에서 바울이 실제로 마게도냐인들의 방문을 받은 바 있고, 이것이 심층 심리 속에서 작용하여 꿈으로 나타났으리라 추측하기도 합니다(H.Marshall). 어쨌든 이 환상이 하나님이 보내신 초자연적인 환상임에 분명합니다. 하나님께서 베드로에게 각양의 짐승들을 보이신 것처럼 바울에게도 환상 가운데서 마게도냐 사람을 보이신 것입니다(Lenski). 그리고 또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의 계시가 그 담지자에게 명확히 전달되었다는 것입니다.

아무튼 이 꿈은 하나님께서 주신 환상이었습니다. 바울은 밤에 환상을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과 그 비젼을 나누고 싶으셨습니다.
환상의 내용은 '우리를 도우라!'는 것입니다.

요즈음 우리는 터어키로부터 '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음성을 듣습니다. 세계의 시선이 그곳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북한 국경지대에 있는 중국 땅에는 목숨을 걸고 넘어 온 북한 사람들로 넘치고 있습니다. '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음성을 우리는 현지의 선교사님들을 통해서 듣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김범규 목사로부터 북아프리카에서 '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음성을 듣습니다.
우리가 영적인 눈을 열고 하나님을 묵상하고 이웃을 생각하기 시작하면, '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음성을 듣습니다.
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꿈에 동참하는 성도는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3.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

'우리를 도우라!'는 음성을 들었을 때, 바울은 즉각 하나님의 꿈에 동참했습니다.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줄로 인정함이러라

'우리를 도우라!'는 음성을 들었을 때, 바울은 즉각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줄로 인정했습니다.
여기서 인정했다는 말이 중요합니다. 인정했다는 말에 해당하는 '쉼비바초'란 단어의 뜻은 '연합하다'란 의미입니다. '비시디아로 가리라'는 자신의 꿈울 접고,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의 구속사에 자신을 연합시켰다는 말입니다. 자신을 접고, 하나님의 꿈에 자신을 연합시키는 의지야말로 바울이 지닌 최고의 믿음입니다.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셨구나!
이 하나님의 꿈에 자신을 연합시키는 바울이 얼마나 귀합니까?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하나님의 꿈을 보았을 때, 얼마든지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를 도우라'는 하나님의 꿈을 보았을 때, 구제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병을 고쳐달라는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정치에 관심이 많은 사람은 해방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그러나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셨구나!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1:16-17)

로마인들에게는 사실 복음을 받아 생명을 얻는 믿음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우리는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하나님의 꿈을 듣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나를 부르셨구나!'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우리 서머나 교회는 말씀의 사역을 강조하는 교회입니다.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하나님의 꿈에 열려 있는 교회입니다.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나를 부르셨구나!'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교회입니다. 교회모임에서, 다락방에서, 가정에서, 친구들과의 만남에서  복음을 전하라고 나를 부르셨구나!'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바울사도는 꿈을 하나님께 맞추었을 뿐만 아니라,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썼습니다. 자신의 비젼을 하나님의 구속사에 자신을 연합시켰을 뿐 아니라'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썼다고 합니다. 즉각적인 사도의 순종! 일분도 지체할 수 없는 종의 순종!이 하나님의 축복의 물고를 열어줍니다. 순종함으로 바울이 받은 축복은 드로아에서 우리로 기록하고 있는 의사 '누가'를 만난 것입니다.

***사도행전에서 '우리'라는 표현이 처음 등장하는 것은 바로 이 드로아에서입니다(10-17절). 이 '우리'라는 형식과 관련하여, 바울 일행이 빌립보로 갈 때에 동행한 빌립보 주민이 있었다는 점과 그 사람이 누가였다는 점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1)이 '우리'라는 표현이 빌립보에서의 사역에 관한 기사(11-40절) 이후에는 멈추어져 있습니다. (2)두번째 '우리'라는 부분(20:5-15)이 전도자들의 3차 전도여행 중, 빌립보를 재방문할 때 시작되어 있습니다. (3)본장에서 빌립보에서의 사역이 매우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누가에 관해서는 우리가 첫 번째 설교에서 이렇게 전했습니다.
안디옥에서 출생한 헬라인입니다. 그도 남부럽지 않게 공부를 했습니다. 그리고 의사가 되었습니다. 그의 저술을 볼 때, 그의 식견과 역사의식 또한 대단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바울의 선교여행 대부분을 그의 의사로서 동행하였습니다. 누가는 사도가 2차,3차 선교 여행을 할 때 늘 그의 곁에 있었습니다. 바울 사도가 죽음의 위협을 느끼면서 마지막 예루살렘을 방문할 때도, 죄수의 몸으로 로마에 압송될 때도, 로마 감옥에 갇혀있을 때에도 감옥 안에까지 그를 따라 갔습니다.
누가가 왜 그토록 사도 바울을 끝까지 따라갔을까요? 많은 이유가 있었지만 바울의 연약함 때문입니다. 사도는 매우 연약한 건강을 갖고 있었습니다. 육체에 가시가 있었습니다. 그는 이 가시를 놓고 하나님께 수 차례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그 가시는 치료되지 않았습니다. 누가는 사도 바울의 허약한 육신을 자신이 받은 달란트인 의술로 치유하며 복음전파의 사명을 다하도록 도왔습니다.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끝까지 바울과 동행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바울 사도의 연약함을 돕는 직분을 택한 것입니다.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그림자처럼 바울 사도 곁에 머물면서 바울 사도의 연약함을 도왔습니다. 그리고 그가 듣고, 또는 직접 체험한 성령의 역사를 기록하였습니다. 그것이 바로 누가복음이요, 사도행전인 것입니다. 그리하여 누가는 기독교 역사에 하나님을 닮은 사람으로 길이 기억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꿈을 후세에 실현한 값진 하나님의 도구가 되었습니다.

바울 일행이 즉각 순종함으로 이루어진 하나님의 계획은 무엇보다 유럽 선교의 빗장이 열린 것입니다.


맺 는 말


허락하지 아니하시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환상을 대신 마음에 담아 주셨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나를 부르셨구나!' 이렇게 생각을 하나님의 꿈에 연합시킨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리거 즉각 그 명령에 순종하여 사명의 땅으로 떠난 사람이 있습니다.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쓴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그 믿음의 사람들과 함께하셔서 로마를 복음화 시켰습니다. 하나님의 꿈을 이루셨습니다.
그 오늘도 하나님이 우리 주변에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두고 계십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있어 매우 중요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지금 우리가 아니면 하나님의 사랑을 만날 수 없는 절박한 형편에 놓여 있습니다.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음성을 들을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람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음성을 들었을 때,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하나님의 중심을 이해하고  즉각 하나님의 꿈에 동참하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그 순종의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의 꿈은 오늘도 힘있게 이루어져 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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