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15 March 2015

고전16:15-24 교회를 세우는 마음

[들어가는 말]

어떤 분이 시간의 가치란 글을 인터넷에 올렸습니다.

10년이란 세월이 얼마나 귀한지 알고 싶으시면
명퇴하신 50대 가장에게 물어보십시오.

4년의 세월이 얼마나 귀한지 알고 싶으시면
대학을 졸업한 졸업생에게 물어보십시오.

1년이 얼마나 귀중한 세월인지 알고 싶으시면
방금 성적이 나빠서 유급당한 학생에게 물어보십시오.

1달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고 싶으시면
1달 먼저 미숙아를 낳은 산모에게 물어보십시오.

일주일의 소중함을 알고 싶으시면
주간 잡지 편집장에게 물어보십시오.

1시간의 소중함을 알고 싶으시면
애인을 기다리는 총각에게 물어보십시오.

1분의 소중함를 알고 싶으시면
방금 기차를 놓친 아주머니에게 물어보십시오.

1초의 소중함을 알고 싶으시면
사고의 순간, 간발의 차이로 살아난 생존자에게 물어보세요.

100분의 1초의 소중함을 알고 싶으시면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딴 선수에게 물어보십시오.

시간은 아무도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당신이 가진 매 순간이 바로 당신의 보화입니다

시간이 소중한 사람은 시간을 보화로 여깁니다.

하나님께 시간은 영원하십니다.

하나님께는 교회가 소중합니다.
교회를 이루고 있는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소중합니다.

그래서 그 교회가 얼마나 소중한가를 기록한 성경이 고린도 전서입니다.
지역 교회에 병들기 쉬운 문제를 하나하나 지적해 주시고 건강한 교회로 회복하라 주신 말씀입니다.
우상과 세상 철학, 인간의 이기적인 욕심들로 망가진 지역교회를 하나님의 복음으로 회복하라  주신 신약입니다.
오늘도 고린도전서를 마무리하는 지점에서 하나님께서는 이런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제시합니다.


1. 이런 사람들을 알아주라

[고전16:
15. ○형제들아 스데바나의 집은 곧 아가야의 첫 열매요 또 성도 섬기기로 작정한 줄을 너희가 아는지라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16. 이같은 사람들과 또 함께 일하며 수고하는 모든 사람에게 순종하라
17. 내가 스데바나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가 온 것을 기뻐하노니 그들이 너희의 부족한 것을 채웠음이라
18. 그들이 나와 너희 마음을 시원하게 하였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이런 사람들을 알아 주라


이런 사람들을 소중히 여기라는 말씀이지요.

1분의 소중함를 알고 싶으시면
방금 기차를 놓친 아주머니에게 물어보십시오.

1초의 소중함을 알고 싶으시면
사고의 순간, 간발의 차이로 살아난 생존자에게 물어보세요.

100분의 1초의 소중함을 알고 싶으시면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딴 선수에게 물어보십시오.

정말 절박합니다.

[고전16:15]
○형제들아 스데바나의 집은 곧 아가야의 첫 열매요 또 성도 섬기기로 작정한 줄을 너희가 아는지라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1] 첫 열매

스데바나의 회심은 2차 선교 여행 때 바울 사도 일행은 아가야지방을 방문하여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때 복음을 영접한 사람들이 있었던 것을 기록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스데바나가 아가야의 첫 열매라고 하였으니 그곳에서 영접하였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그 후, 고린도로 이사를 왔을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스데바나 개인뿐만 아니라 그의 가족 전체가 하나님의 집에 속하였습니다.
'집'에 해당하는 헬라어 '오이키안'은 '가족들'뿐만 아니라 '노예들'까지도 포함하였습니다.
따라서 스데바나가 아덴에서 회심한 이후에 그의 가족들, 그 집에서 일하는 종들까지 모두 회심시키고 성도를 섬기기로 뜻을 정한 것입니다.


2]  성도 섬기려는 결심

은혜의 열매가 된 스데바나의 가문은 거룩한 결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스데바나는 회심한 이후, 중대한 결심이 서 있었습니다.
성도를 섬기기로 뜻을 정한 것입니다.
마음을 성도와 묶은 것입니다.

 ‘작정했다’는 것은 헬라어 ‘탓소’라는 말로 ‘결정하다’, ‘정하다’는 뜻과 함께 ‘임명하다’, ‘배열하다’는 뜻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이 신앙적으로 쓰일 때는 단순히 내가 작정하였다는 것만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소명을 받았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스데바나는 성도 섬기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으로 알고 그 마음에 작정했다, 미션을 받았다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출21:5]
만일 종이 분명히 이르기를 내가 상전과 처자를 사랑하니 나가서 자유인이 되지 않겠노라

사랑하니까 종의 자리에 머물겠노라 그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우리 부모님들을 보면 대부분이 자녀들의 종노릇을 기쁘게 감당합니다.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니 나가서 자유인이 되지 않겠노라”

이런 사랑을 하나님께서 알고 계십니다.

이런 말씀을 대하면서 우리는
[고전16:22]에서 선포하는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거든 저주를 받을지어다”

아멘으로 화답할 수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에게 있어서 '주님을 사랑하는 것' , 즉 주님께 대한 사랑은 필수적입니다.


2년 전에 서울에서 제자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신앙생활을 잘하던 제자인데 교회에 다니지 않고 있습니다.
이유인즉, 그가 젊은 날에 실수로 사채를 빌렸다가 큰 낭패를 했습니다. 그 절망의 수렁에서 그는 아내와도 이혼을 해야 했어요. 사채업자들이 처갓집까지 엮어서 돈을 받으려 마수를 뻗친 때문이지요.
문제는 그때, 교회 친구에게 도움을 받고 싶었는데 아무도 그의 곁에 있지 못했어요. 교회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 것입니다.
어머니는 돈이 없고, 그는 엄청난 고통 속에서 젊은 날을 보냈습니다.
그 일로 인해 그는 교회를 떠났어요.

누구도 사채더미 위에 앉은 그와 엮이기를 원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어떻게 구원을 받았는가 보니까, 어느 회사에 맨 밑바닥에서 막노동으로 몸부림치던 시절에 그 회사의 여직원이 그를 좋게 보았어요. 자기와 결혼하고 싶어 하더래요.
자매가 그 빚을 다 지불하기로 결심하고 그와 결혼했어요.
그래서 그는 채무로부터 자유인이 된 거죠.

스데바나
그는 아가야의 첫 열매가 된 후,
성도 섬기기로 작정했습니다.
하나님께 얼마나 소중한 존재입니까?



3] 함께 일하며 수고

[고전16:16]
이같은 사람들과 또 함께 일하며 수고하는 모든 사람에게 순종하라

그러므로 주님께서 이 섬김의 현장에 우리도 초대하십니다.

“함께 일하며 수고하는 모든 사람에게 순종하라”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무엇입니까?

섬기러 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3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심으로 섬기신 모습을 만납니다.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씻기기를 시작하여…저희 발을 씻기신 후에 옷을 입으시고 다시 앉아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요 13:3~4, 12~15)."

저는 이 말씀 속에서 “함께 일하며 수고하는 모든 사람”을 소중히 여기라는 주님의 뜻을 동시에 읽었습니다.

     나아가,

[막10: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자기 목숨을 많을 사람을 위한 대속물로 주기 위해 오셨다는 것은 대속함을 받은 많은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목숨까지 섬기는 일에 내놓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죄의 빚에 일평생 매여 종노릇할 수밖에 없는 우리를 소중히 여겨서  값주고 우리를 사셨고 결혼했어요. 그래서 우리는 소중한 하나님의 백성이 된 거죠.

예수님의 결심입니다.

이런 성도들과 함께 일하고 수고한 사람을 알아주는 것이 복입니다.



4] 부족한 것을 채움

[고전16:17]

17. 내가 스데바나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가 온 것을 기뻐하노니 그들이 너희의 부족한 것을 채웠음이라


'부족한 것'은 재산, 궁핍, 믿음의 교훈, 사랑을 나눔이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입니다(빌 4:10ff).

스데바나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는 고린도 교인들을 향한 바울의 충고와 애정을 대신 전해 주었고 또한 바울에게도 그를 향한 고린도 교인들의 애정을 전해줌으로 바울에게 큰 기쁨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지금은 고린도 교인들과 떨어져 있는 바울에게 그들 세 사람이 고린도 교회의 소식을 가지고 온 것입니다.

     지난 달 저는 여러분의 기도 가운데 아이티를 다녀왔습니다.
     불과 3년 전 20만 명 이상을 땅에 묻어버린 땅, 전국민의 1/3인 약 300만의 피해자가 발생한 땅, 그러나 지금은 잊혀져 가는 아이티에 신학교를 세우고 예수님의 제자를 양성하는 이동열 선교사님의 요청을 따라 신학생 교육차 다녀온 것입니다.
      부족함이 많은 제가 12명의 신학생들을 안고 한 주간 보람 있는 교육을 마치고 올 수 있었던 까닭은 돕는 분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보이지 않았을지라도 돕는 사람들의 힘이 컸습니다.
여러분 대부분이 기도로 도왔습니다.
이번 아이티 선교사역에서 지출된 경비만도 US$4,000입니다.
교회는 비행기값 618불
신학생 교재비 430불
선교사님 맹장 수술비 1500불
숙식 활동비 선교사 선물비 1500불
총 4000불이 지불되었습니다.
누군가 교회가 후원하지 못한 80% 이상의 부족한 비용을 채웠습니다.

지금까지 원주민, 아이티, 동족을 위한 사역이 계속되었습니다.
우리 중 누군가가 이 부족한 것을 채웠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분들도 부족한 것을 채웠습니다.

동족 가운데 지금까지 탁아소가 서고 유치원이 서고 생수 공급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그 많은 일들을 하고 있다는 말입니까?
중요한 사실은 누군가 부족한 것을 채우고 있다는 것입니다.




5] 나와 너희 마음을 시원하게

[고전16:18]
18. 그들이 나와 너희 마음을 시원하게 하였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이런 사람들을 알아 주라

스데바나는 섬김으로

 “나와 너희 마음을 시원하게 했다”고 칭찬받고 있습니다.

모든 부족한 것을 보충하였을 뿐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준 분이다.”
.
참 아름답지 않습니까?


우리 삶은 어떤 면에서 성도들을 섬기고 있습니까?

오늘 우리가 주변에 있는 사람을 섬김으로 헌신할 때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케 해드리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3.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

[고전16:21-24]

21. ○나 바울은 친필로 너희에게 문안하노니
22.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 주여 오시옵소서
2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와 함께 하고
24. 나의 사랑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무리와 함께 할지어다

     오늘 고린도 전서를 마치며 우리는 22잘에서 매우 놀라운 말씀을 듣습니다.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었는가 화들짝 놀라게 하는 극단적인 말씀입니다.
주를 사랑하는 일은 필수라는 말씀이지요.

주를 사랑하는 마음이 교회를 세우는 일에 필수적 요소입니다.

[기사소개]

     70대 노모가 자신을 키워준 은혜를 저버리고 불효했다는 이유로 양아들에 대해 친생자 부존재 소송을 제기, 30여년의 모자 인연에 마침표를 찍었다.
 A씨(71)가 양아들 B씨(33)를 만난 것은 A씨가 40대 중년에 접어들었던 지난 71년 여름.
 A씨는 집앞에 버려져 있던 B씨의 딱한 처지를 안타깝게 여겨 남편과 상의한 끝에 B씨를 친자식처럼 키우기로 하고 호적에 올렸다.
 그러나 86년 양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B씨는 퇴학을 당하는 등 학교 생활이 원만치 못했으며 결혼후에도 A씨에게 용돈을 타 쓰고 돈을 주지 않으면 집안 가구를 부수고 지갑을 훔쳐 달아나는 등 행패를 부렸다.
 견디다 못한 A씨는 인연을 끝내기로 결심하고 서울 가정법원에 친생자관계 부존재 확인 청구소송을 냈다.
 법원은 "원-피고간에 친생자 관계가 존재하지 않는 사실이 명백하고 피고의 행위로 인해 모자 관계가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파탄에 이르렀다"며 원고승소 판결했다.

'저주'는 '하나님의 노여움 아래 맡겨진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께 대한 사랑도 없이 자기 생각과 행동을 고집하는 사람들에게 주의 공의로운 심판이 임할 것임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주를 사랑하지 아니한다는 뜻이 무엇일까요?
또 뒤집어 주를 사랑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1] 주님의 계명을 지킵니다.

[요14: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요14:21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계명은 율법입니다.
율법을 압축한 것이 십계명입니다.
십계명을 더 압축하여 주님께서는 율법사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마22:37
36.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따라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계명입니다.

계명을 잘 지키는 것이 사랑입니다.

요14:24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

요15:10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요15:12
내 계명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예수님의 이런 말씀을 들으면서 사랑과 계명이 하나인 것으로 다가옵니다.

우리에  그런 일이 불가능하게 느껴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요5:42
다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너희 속에 없음을 알았노라.


예수님만 사랑과 율법을 하나로 생각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 사도를 통하여 선포된 로마서 말씀에도 동일한 메시지가 나옵니다.


로마서13:8-10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9.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10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우리가 고전13장에서 사랑이란 말을 예수님으로 바꿀 때 너무 딱 들어맞는 이유가 있습니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예수님은 율법의 완성이십니다.

갈5:13-15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
14.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
15.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성령의 열매를 말씀하시기 직전에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다는 의미를 새겨보게 하십니다.



사도 요한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 말씀이 동일한 주제인 이유를 우리가 만나는 것은 당연합니다.

요1서 3:18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23.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요일4:21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요1서 5:2-3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지킬 때에 이로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를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
3.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요한2서1:6
또 사랑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 계명을 따라 행하는 것이요 계명은 이것이니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바와 같이 그 가운데서 행하라 하심이라


요한1서2:5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이로서 우리가 그의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
7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쓰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처음부터 가진 옛 계명이니 이 옛 계명은 너희가 들은 바 말씀이거니와


놀랍게도 십계명을 주실 때, 그 십계명은 하나님 사랑의 다른 면을 이루고 있음을 알려주십니다.



[신7:9]
그런즉 너는 알라.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오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 그를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그의 언약을 이행하시며 인애를 베푸시되

신30:16
곧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하는 것이라 그리하면 네가 생존하며 번성할 것이요 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차지할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임이니라

     사울과 다윗의 차이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사울은 하나님의 계명을 무시합니다.

      하나님의 법을 무시하고 제사를 지냅니다.

     다윗을 향해 사랑의 법을 지키지 않습니다.

     웃시아 왕이 왜 문둥병자가 됩니까?

그가 어떠한 죽음을 당합니까?

     다윗이 하나님께 용서를 받는 모습과 주의 율례와 원수에 대한 사랑을 실천한 것과 대조를 이룹니다.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마무리하는 말]

"주께서 임하시느니라"
그렇습니다.
우리 성도의  '소망'이 '마라나타'입니다.

'우리 주님이시여 오시옵소서'(our Lord, Come!)
'오소서 주여'

그날을 바라보며 우리는 오늘도 교회를 세우는 일에 헌신합니다.


우리 교회가 오늘날 이렇게 은혜 가운데 설 수 있는 비밀이 무엇입니까?

1. 주를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2. 성도 세우려 결심한 성도들입니다.
3. 부족한 것을 채우는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수고하는 성도 여러분 위에  고전을 마무리하며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의 축복이 함께 하시기 바랍니다.

[고전16:23-24]
2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와 함께 하고
24. 나의 사랑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무리와 함께 할지어다



[설교 성경 본문]
15. ○형제들아 스데바나의 집은 곧 아가야의 첫 열매요 또 성도 섬기기로 작정한 줄을 너희가 아는지라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16. 이같은 사람들과 또 함께 일하며 수고하는 모든 사람에게 순종하라
17. 내가 스데바나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가 온 것을 기뻐하노니 그들이 너희의 부족한 것을 채웠음이라
18. 그들이 나와 너희 마음을 시원하게 하였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이런 사람들을 알아 주라
19. ○아시아의 교회들이 너희에게 문안하고 아굴라와 브리스가와 그 집에 있는 교회가 주 안에서 너희에게 간절히 문안하고
20. 모든 형제도 너희에게 문안하니 너희는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21. ○나 바울은 친필로 너희에게 문안하노니
22.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 주여 오시옵소서
2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와 함께 하고
24. 나의 사랑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무리와 함께 할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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