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수요일에는 눈이 많이 왔습니다.
아침부터 조금씩 내리시더니 하루 종일 쏟아 부어주시고, 세상을 온통 하얀 눈으로 덮어주십니다.
저녁에 수요예배가 있습니다.
눈과 같이 희게 되리라는 말씀이 은혜가 됩니다.
저는 엄청난 눈에 집에 갈 엄두도 못낸 채 여름 양복을 걸쳐 입고 예배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장전도사님이 달려 와서 파킹장 눈을 깨끗이 치웁니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치웁니다.
제가 더 이상 할 수 없는 지점에서 땀을 흘립니다.
조금 있으니 김혁 집사님 내외분이 달려와 예배 준비를 합니다. 어떻게 그 험한 길을 달려왔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가장 약한 건강을 가지신 양정석집사님 내외가 앉아 은혜를 받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동역자들을 세우셔서 예배 받으심을 감사드립니다.
교회는 이렇게 서 갑니다.
그러나 고린도 교회엔 어떤 부분이 건강을 잃고 있습니다.
폭설이 쏟아졌다는 것이 아닙니다.
핍박이 왔다는 거 아닙니다.
돈이 없다는 것도 아니에요.
고린도 교회를 세울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었습니까?
오늘 하나님께서는 우리 교회에게 그 건강 회복하는 답을 몇 가지 알려주십니다.
1. 성도를 위하는 연보를 하라.(1-3)
[고전16:1-3]
1. 성도를 위하는 연보에 관하여는 내가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명한 것 같이 너희도 그렇게 하라
2. 매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수입에 따라 모아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
3. 내가 이를 때에 너희가 인정한 사람에게 편지를 주어 너희의 은혜를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가게 하리니
부활 신앙의 아름다움을 선포하신 하나님께서 "성도를 위하는 연보"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성도를 위하는 연보"는 부활신앙을 가진 성도들이 맺을 수 있는 신앙의 열매기 때문이지요.
연보라고 하면, 사람들은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거나 혹은 교회를 위한 것이라거나 선교나 구제를 위한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성도를 위하는 연보"를 말씀하시네요.
"성도를 위하는 연보"를 위해 썩을 것으로 심어라. 그리하면 썩지 않을 것으로 다시 산다는 것이지요.
하나님이 주신 재물로 성도를 위해 심어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어제 우리가 묵상한 마19:23-30 말씀을 예로 봅시다.
어떻게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물었던 부자 청년은 계명을 행하라는 답을 받았습니다.
그 계명은 자신이 이미 행하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답변은 바로 "성도를 위하는 연보"까지 나아가는 것이었습니다.
[마19:21]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하나님께서 너를 사랑하셔서 특별히 재물을 맡겼는데, 그 재물을 가지고 가난한 이웃을 위해 심으라는 말씀이셨습니다.
재물로 가난한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이지요.
고르반이라 하여 가난한 부모님께 손만 빨게 하면 안 된다는 것이지요..
부모를 온전히 공경하는 길은 가진 재물로 가난한 부모를 섬기는 것입니다.
부모님을 하늘처럼 존경하는 것도 공경이지만, 가난한 부모를 재물로 섬기는 것이 온전한 공경이라는 것입니다.
재물을 가난한 부모를 심는 것은 "성도를 위하는 연보"의 모본입니다.
가난한 형제를 위해 재물을 심는 것은 "성도를 위하는 연보"의 모본입니다.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재물을 가지고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가난한 이웃을 위해 사용할 때, 주님께서는 계명을 온전히 지키는 것으로 인정하십니다.
가난한 이웃을 위해 재물로 심는 것은 "성도를 위하는 연보"의 모본입니다.
이런 맥락 속에서 "성도를 위하는 연보"가 바로 예루살렘 성도들을 위한 연보로 연결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어려움에 처한 예루살렘 성도들에게 경제적인 도움을 주도록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어려움에 처하게 된 특별한 이유는
(1) 원래 예루살렘 교회에는 빈민층이 많았습니다.
(2) 여러 차례에 걸친 팔레스틴 지방의 흉년으로 인해 기근으로 처해 있었습니다.
[행 11:28]이 무엇을 전해주십니까?
글라우디오 때에 흉년이 들 것이라는 아가보의 예언이 전하고 있습니다.
[갈 2:10]이 무엇을 전해주십니까?
예루살렘 사람들이 비참한 빈궁 속에 빠져 있음을 전해줍니다.
이런 상황에서 갈라디아 교인들이 예루살렘 교회 교우들을 도운 것처럼 고린도 교인들도 곤궁에 처한 예루살렘 형제들을 도우라고 권면하고 계십니다.
이는 이웃 사랑의 온전한 예입니다.
연보의 의미는 여러가지로 설명되고 있습니다.
(1) 대가 없이 주는 '선물'(카리스, '은혜')이 연보입니다.(3절;고후 8:4ff.)
(2) 서로 나누는 '교제'(코이노니아, '동정')의 방편이 연보입니다.(롬 15:26)
(3) '섬김'(디아코니아)의 진정한 표현이 연보입니다.(롬 15:31;고후 8:4;9:1),
(4) 다른 사람에게 복을 기원해 주는 것(율로기아, '축복')을 합당하게 구체화 시키는 것이 연보입니다(고후 9:5).
성도를 위하는 연보를 우리 현실 속에 적용할 수 있습니다.
우리 곁에 사랑을 받아야 할 이웃이 누구입니까?
그분들을 위해서 우리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내 몸처럼 사랑하는 것이 계명의 요지입니다.
그러나 부자 청년의 차원 정도를 이웃 사랑을 이해하여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재물을 맡았으면 재물을 심어야 합니다.
저는 1996년 고 계화삼 목사님과 함께 처음 북방을 방문하였습니다.
그때 양곡 10톤을 북한에 보내는 현장에 있었습니다.
저는 그 양곡이 북한으로 보내지는 이상을 알지 못했습니다.
누구에게 가는 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혼란스럽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해부터 300만이 굶어 죽었다는 기사를 대하였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들 때문에 우리는 그 고난을 강건너 불구경하듯 하였습니다.
형제들은 삼백만이 굶어 죽어갔지만
교회는 형제 사랑을 외치기만 하였습니다.
우리끼리 경제 부흥을 이루었고 우리끼리 잘 살았습니다.
그들을 돕자는 기사를 만나기도 하였지만
슬픈 기색을 하고 대부분의 교회들은 등을 돌렸습니다.
고린도 교회 역시 그렇게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고린도 교회를 향해 오늘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성도를 위하는 연보에 관하여는 내가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명한 것 같이 너희도 그렇게 하라"
갈라디아 지방의 교회들이 예루살렘 성도들의 굶주리는 소식을 듣고 재물을 모아 연보로 심은 것처럼 고린도 교회도 재물을 모아 심으라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도
재정이 넉넉한 교회는 아닙니다.
성도들의 삶이 고되고 재정이 빠듯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성도들이 힘에 지나도록 연보를 모아 동족 어린이들에게도, 세계 각국에서 사역하시는 선교사님들에게도 보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서머나 교회를 건강한 교회라고 합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이런 심는 일에
"성도를 위하는 연보"에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열린 교우들이 되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2. '같이 주의 일에 힘쓰는 사람'을 존중합니다.
[고전16:10-11]
10. ○디모데가 이르거든 너희는 조심하여 그로 두려움이 없이 너희 가운데 있게 하라 이는 그도 나와 같이 주의 일을 힘쓰는 자임이라
11.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를 멸시하지 말고 평안히 보내어 내게로 오게 하라 나는 그가 형제들과 함께 오기를 기다리노라
바울 사도는 디모데와 함께 고린도 교회를 향해 출발하고 싶었지만, 직접 방문하는 대신 편지를 썼습니다.
고린도 전서는 해상로를 통해 직접 고린도 교회에 전달되었기 때문에 디모데보다 훨씬 빨리 도착할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편지를 통해 자신이 고린도 교회를 방문하지 못하게 되는 경위와 앞서 보낸 디모데를 부탁하고 있습니다.
디모데는 고린도 교회를 방문할 것입니다(행 19:22). 디모데는 여러 교회를 들러 고린도 교회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디모데가 고린도 교회를 찾는 이유는 고린도 교회에 발생한 분쟁을 바로 잡기 위함이었습니다.
디모데는 고린도 교회의 건강을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을 가르쳐 회복하는 것을 사명으로 하고 있었습니다.
죽으실 뿐만 아니라 다시 사신 그리스도는 그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 고린도 교회의 망가진 건강을 회복할 것이었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헬라 철학의 영향이 만연되어 병들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지혜가 교우들 가운데 팽배해 있었습니다.
디모데는 나이는 연소하였지만 아시아 전지역을 순회하면서 복음을 전도하는 데 큰 몫을 담당하고 있었던 담대하고 능력있는 신앙의 용장이었습니다.
다만 안타까운 사실은
고린도 교회의 분쟁은 매우 심각한데, 디모데는 아직 젊고 경험이 일천한 목회자였습니다(딤전 4:12).
디모데가 과연 그 문제의 중심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확신하기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오만한 궤변가와 논쟁적인 분파주의자들이 연소한 디모데를 궁지로 몰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고린도 교회는 디모데를 맞이하면서 가져야 할 마음이 있었습니다.
디모데의 연소함이 그 사역의 중대성을 낮출 수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나와 같이 주의 일을 힘쓰는 자"
디모데는 바울 사도의 동역자였고 그중에서도 특별한 관계를 유지하였던 신앙의 용장이었습니다.
디모데는 바울 사도 가까운 동역자였고 바울의 칭찬을 한 몸에 듣는 동역자였습니다.
바울과 함께 평생을 동역하였습니다.
디모데는 바울과 함께 복음을 위해 헌신적으로 동역한 자로서,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보낼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저를 멸시하지 않도록 바울은 자신의 젊은 동역자 디모데를 위하여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그의 연소함과 겸손함을 무시하거나 멸시하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평안히 보내어 내게로 오게 하라"
디모데의 임무가 순조롭게 진행되어 그가 떠날 때에는 어떠한 문제나 분쟁이 없이 모든 일이 원만하게 해결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빌리그래함 목사는 60년 동안 185개국에서 2억 명이 넘는 이들에게 집회를 통해 복음을 전했다고 합니다. 이 시대를 대표하는 주님의 일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복음 전도 사역이 성공적일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로 훌륭한 동역자를 듭니다.
빌리 그래함목사는 함께 일해 온 동역자들에게 감사를 전했는데 그들 중 한 사람이 바로 찬양 사역자 죠지 베버리 쉐어(George Beverly Shea)였습니다.
죠지 베버리 쉐어는 빌리 그래함의 소개를 받고 나와서 찬송가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를 불렀습니다. 90세를 얼마 안 남겨 둔 노종이 굵직한 베이스 톤으로 주님의 위대하심을 노래할 때 그의 중후한 목소리는 모인 모든 청중들을 하나가 되게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쉐어는 젊은 시절에 방송국에서 대중가요 가수로 출연 요청을 받고 이 일을 어머니와 상의했고, 어머니는 평소에 좋아하던 시 한 편을 쉐어에게 주었습니다. 쉐어는 그 시에 곡을 붙였는데 바로 그 곡이 찬송가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입니다.
쉐어는 복음을 전하는 복음성가 가수가 되어 빌리 그래함과 함께 60년을 동역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교회는 주님이 머리 되시는 주의 나라 대사관과 같은 곳입니다. 이곳에 주의 일꾼들이 있습니다. 함께 주의 일을 힘쓰는 사역의 현장입니다.
우리에게는 디모데와 같이 같이 주의 일에 힘쓰는 자들이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이렇게 그 감동을 전합니다.
빌 2:19-24
내가 디모데를 속히 너희에게 보내기를 주 안에서 바람은 너희의 사정을 앎으로 안위를 받으려 함이니 이는 뜻을 같이하여 너희 사정을 진실히 생각할 자가 이밖에 내게 없음이라. 그들이 다 자기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되 디모데의 연단을 너희가 아나니 자식이 아버지에게 함같이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내 일이 어떻게 될지를 보아서 곧 이 사람을 보내기를 바라고 나도 속히 가게 될 것을 주 안에서 확신하노라
우리 교회에서 디모데와 같이 같이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더욱 많이 일어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3. 모든 일을 사랑 안에서 행합니다.
[고전16:12+14]
12. 형제 아볼로에 대하여는 그에게 형제들과 함께 너희에게 가라고 내가 많이 권하였으되 지금은 갈 뜻이 전혀 없으나 기회가 있으면 가리라
14.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
아볼로는 고린도 교회에서 매우 중요한 분입니다.
고린도 교회에 그를 추종하는 분파가 있을 만큼 영향력이 컸던 영적 거인이었습니다.
아볼로는 어떤 분이었습니까?
“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아볼로라 하는 유대인이 에베소에 이르니 이 사람은 학문이 많고 성경에 능한 자라.”
그는 알렉산드리아 출신, 유대인으로서 학문이 많고 성경에 능한 분이었습니다.
알렉산드리아는 당시 아프리카 애굽의 정치와 문화 중심 도시였습니다. 이 도시에 유대인들이 1/3을 차지할 만큼 많이 살고 있었습니다.
기원전 3세기에는 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하였습니다. 유명한 70인경이라는 헬라어 구약성경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아볼로는 성경을 많이 배운 것으로 생각됩니다.
하지만 아볼로에게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가 일찍 주의 도를 배워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
아볼로가 구약뿐만 아니라 예수님에 대한 것도 많이 알아 가르칠 정도의 학식을 가진 것은 감사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는 단지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아볼로를 사랑하셔서 좋은 동역자를 만나게 해주셨습니다.
그가 회당에 들어가서 성경을 풀어 설명을 할 때에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의 가정을 붙여주셨던 것이지요.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를 시작하거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듣고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자세히 풀어 이르더라.”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했으나,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는 그의 말을 듣고 그를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자세히 설명해주었습니다.
세례 요한이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가리킨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지시고 죽으셨고,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감사한 것은 아볼로는 학문이 많은 자이었지만, 겸손한 분이었던 것 같아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에게 겸손히 배웠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겸손한 것은 참 중요합니다.
아볼로는 그 만남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고린도를 포함한 마게도냐 곁에 있는 큰 지역, 아가야로 건너갔습니다.
“아볼로가 아가야로 건너가고자 하니 형제들이 저를 장려하며 제자들에게 편지하여 영접하라 하였더니 저가 가매 은혜로 말미암아 믿은 자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니 이는 성경으로써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거하여 공중 앞에서 유력하게 유대인의 말을 이김일러라.”
아볼로가 아가야 지방 즉 고린도로 건너가고자 했을 때, 에베소에 있는 형제들은 그 곳의 제자들에게 편지하여 그를 영접하라고 부탁하였습니다.
아볼로는 그 곳에 가서 성경을 가지고,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공중 앞에서 힘 있게 증거함으로, 유대인들의 말을 이겼습니다.
믿는 자들에게 신앙에 많은 유익을 주었습니다.
이런 결과 고린도에는 아볼로를 통해 그리스도에 대하여 아는 사람이 다수 생겨났고 그들은 아볼로파를 형성할 정도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전서를 기록할 때, 이런 아볼로의 역할을 전하고 있습니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른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뿐이니라”(고전3:6-7)
영적 거인으로 인정받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아볼로의 위대한 신앙은 오늘 본문에 나타납니다.
[고전16:12]
형제 아볼로에 대하여는 그에게 형제들과 함께 너희에게 가라고 내가 많이 권하였으되 지금은 갈 뜻이 전혀 없으나 기회가 있으면 가리라
“가라고 내가 많이 권하였으되 지금은 갈 뜻이 전혀 없”다고 전합니다.
왜 갈 뜻이 전혀 없을까요?
자기를 통해 복음을 영접한 사람들이 대대적으로 환영할텐데 왜 갈 뜻이 전혀 없을까요?
여기에 그의 아름다운 신앙인품이 나타나 있습니다.
교회에 자신이 나타남으로 교회가 나뉘는 것을 두려워한 것이 아닐까요?
다만 예수 그리스도만 나타나면 되지 아볼로가 누구냐 하는 마음씀씀이가 진정한 그리스도의 성숙한 모습이지요?
이것이 바로 교회를 살리는 사랑으로 행하는 모습입니다.
[고전16:14}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
사랑 안에서'(in love) 행하라는 명입니다. 전치사 '엔'은 '범위'를 나타내기 때문에 사랑의 영역에서 행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요구되는 사랑은 그들의 행동을 위한 부수적인 수단이 아니라 행동 그 자체이어야 합니다.
사랑은 최고의 열매입니다. 최종적인 열매입니다.
이것이 13절에 말씀하고 있는
“깨어 믿음에 굳게 서” 있는 모습이오 “남자답게 강건한” 모습입니다.
요즈음 고국에서 가장 커다란 교회당에 입당한 모 교회가 분란에 휩싸여 있어서 많은 분들을 안타깝게 합니다.
어떤 분은 그 교회가 많은 사람을 모으는 일에 힘쓸 일이 아니었다고 말합니다. 그 교회가 대 형화 되는 동안 수많은 작은 교회들이 희생되었다는 것이지요. 그 반대로 작은 교회들을 살리기 위해 수평 이동하는 교인들을 흩어서 작은 교회에 심었더라면 오늘의 분란은 없었을 것 아닌가 안타까워합니다.
[고전16:14}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
아볼로가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게 행하였을 때, 교회를 살리기 위해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할 때, 교회는 건강해지는 것처럼 말입니다.
[마무리하는 말]
지난 목요일에 있었던 일입니다.
이웃집 아주머니 한 분이 교회에 찾아오셨습니다.
중학교 3학년쯤 되는 아들의 손을 잡고.
교회에 가끔 거리의 사람들이 오기 때문에, 오늘은 상당히 깨끗한 사람이 찾아왔구나 생각하고 주머니에 손을 넣었습니다. 줄 수 있는 돈이 있는가 생각하면서.
그런데 그분은 돈을 달라고 말하는 대신 미안하다고 인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아들을 내 앞으로 인도하면서 직접 말하라고 했습니다.
아들은 자기가 교회 옆에 지워놓은 창고에 낙서를 한 사람이라고 고백하는 것이었습니다.
자기 손으로 한 낙서를 모두 지우겠다는 말도 했습니다.
지난 몇 주 동안 우리 교우들은 이 낙서를 보고 여러 가지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한 가지 사건으로 인해 봄눈 녹듯 회복이 됨을 느꼈습니다.
예배드리는 시간을 알려주면서 주일에 오도록 초대하고, 뜨끈뜨끈한 쵸콜렛 한 잔을 사주면서 영하 10도가 넘는 한파 속에서 낙서를 지우느라 애쓰는 그를 격려하였습니다.
우리에게는 소망이 있습니다.
이런 좋은 이웃을 교회 주변에 두셨습니다.
이분들을 위해 폭설이 내려도 길을 깨끗이 쓸어갑시다.
하나님 나라로 인도할 길을 마련하고 초대합시다.
이 악한 세대에서 교회가 주변 사람들이 하나님과 더불어 건강한 관계를 맺도록 돕는 일은 중요합니다.
1. 성도를 위하는 연보를 존중합니다.(1-3)
2. '같이 주의 일에 힘쓰는 사람'을 존중합니다.
3.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는 사람을 존중합니다.
[성경본문]
1. 성도를 위하는 연보에 관하여는 내가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명한 것 같이 너희도 그렇게 하라
2. 매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수입에 따라 모아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
3. 내가 이를 때에 너희가 인정한 사람에게 편지를 주어 너희의 은혜를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가게 하리니
4. 만일 나도 가는 것이 합당하면 그들이 나와 함께 가리라
5. 내가 마게도냐를 지날 터이니 마게도냐를 지난 후에 너희에게 가서
6. 혹 너희와 함께 머물며 겨울을 지낼 듯도 하니 이는 너희가 나를 내가 갈 곳으로 보내어 주게 하려 함이라
7. 이제는 지나는 길에 너희 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만일 주께서 허락하시면 얼마 동안 너희와 함께 머물기를 바람이라
8. 내가 오순절까지 에베소에 머물려 함은
9. 내게 광대하고 유효한 문이 열렸으나 대적하는 자가 많음이라
10. ○디모데가 이르거든 너희는 조심하여 그로 두려움이 없이 너희 가운데 있게 하라 이는 그도 나와 같이 주의 일을 힘쓰는 자임이라
11.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를 멸시하지 말고 평안히 보내어 내게로 오게 하라 나는 그가 형제들과 함께 오기를 기다리노라
12. 형제 아볼로에 대하여는 그에게 형제들과 함께 너희에게 가라고 내가 많이 권하였으되 지금은 갈 뜻이 전혀 없으나 기회가 있으면 가리라
13.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라
14.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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