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13 March 2015

행16:26-40 간수에게 임한 하나님의 구원

26 이에 홀연히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27 간수가 자다가 깨어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 줄 생각하고 검을 빼어 자결하려 하거늘 28 바울이 크게 소리질러 가로되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하니 29 간수가 등불을 달라고 하며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부복하고 30 저희를 데리고 나가 가로되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하거늘 31 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 하고 32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 33 밤 그 시에 간수가 저희를 데려다가 그 맞은 자리를 씻기고 자기와 그 권속이 다 세례를 받은 후 34 저희를 데리고 자기 집에 올라가서 음식을 차려 주고 저와 온 집이 하나님을 믿었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 35 날이 새매 상관들이 아전을 보내어 `이 사람들을 놓으라' 하니 36 간수가 이 말대로 바울에게 고하되 `상관들이 사람을 보내어 너희를 놓으라 하였으니 이제는 나가서 평안히 가라' 하거늘 37 바울이 이르되 `로마 사람인 우리를 죄도 정치 아니하고 공중 앞에서 때리고 옥에 가두었다가 이제는 가만히 우리를 내어 보내고자 하느냐 ? 아니라 저희가 친히 와서 우리를 데리고 나가야 하리라' 한대 38 아전들이 이 말로 상관들에게 고하니 저희가 로마 사람이라 하는 말을 듣고 두려워하여 39 와서 권하여 데리고 나가 성에서 떠나기를 청하니 40 두 사람이 옥에서 나가 루디아의 집에 들어가서 형제들을 만나 보고 위로하고 가니라


들어가는 말


선교는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바울 사도 일행을 불러 유럽 선교를 맡기실 때, 하나님께서 선교의 문을 열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선교사 바울의 마음을 유럽으로 열어주셨습니다. `건너와서 도우라!'는 환상을 보았을 때,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할 수 있었던 바울의 마음은 분명 하나님께서 열어 주신 마음이었습니다.
유럽의 첫 성 빌립보에서도 그렇습니다.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청종하게 하신지라! 하나님께서는 자주장사 루디아의 마음을 열어주셨습니다.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누가 이런 귀한 마음을 주셨겠습니까?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하나님께서는 빌립보 감옥의 문을 여십니다. 그리고 감옥을 지키던 간수의 마음 문도 열어 주십니다.

 감옥을 지키던 간수의 마음은 어떻게 열렸습니까?

1] 하나님 나라의 열쇠를 가지신 예수님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분이십니다. 주님께서는 그 열쇠로 닫친 문을 여시는 분이십니다. 주님께서는 그 열쇠로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문을 여시는 분이십니다.

계3:7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이가 가라사대 08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

주님께서는 그 열쇠를 베드로에게 주신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교회에 천국 열쇠를 맡기신 것입니다.

마16: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19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우리는 유럽의 첫성 빌립보에서 자주장사 루디아의 마음을 여신 것을 보았습니다. 본문에서 우리는 빌립보 감옥을 여시는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주님께서 강퍅한 빌립보 간수의 마음을 어떻게 여시는가를 보게 됩니다. 우리는 이 주님께서 우리의 문도 여시는 것을 믿습니다.

감옥을 지키던 간수의 마음은 어떻게 열렸습니까?
2]하나님의 강권적인 역사를 체험한 때문입니다.

간수는 쉽게 예수님을 믿을 사람이 아닙니다. 간수는 자다가 깨어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 줄 생각하고 검을 빼어 자결하려 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일에 대하여서는 분명히 자신을 가지고 살아온 사람입니다. 그는 책임감이 강한 사람입니다. 자기 인생을 스스로 책임지려는 사람은 쉽게 예수님을 믿을 수 없습니다.
그는 또한 바울과 실라를 가해한 가해자의 입장에 서 있습니다. 바울이 심히 많은 매를 맞을 때, 그는 그 형을 집행하는 자리에 서 있었던 사람입니다. 바울은 그의 죄수 입장에 서 있었고, 바울은 그가 지키는 감방에 갇혀있는 죄수였습니다. 이런 입장에 있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그렇겠지만, 이 간수 역시 예수님을 믿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그가 어떻게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였습니까?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을 찾아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날 밤, 갑작스런 지진이 빌립보에서 일어났습니다.  그곳은 지난 번 수만명의 희생자를 낸 터어키에서 가까운 지형입니다.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렸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구태어 하나님께서 감옥 문을 여셨다고 보도하고 있지 않습니다. 감옥 문이 다 열렸음을 보도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이 지진은  하나님께서 열어주셨다고 그는 믿었습니다.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졌다는 말씀에서 보는 대로 그 지진은 자연재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특이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등불을 들고 지진 후, 상황을 살폈습니다.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졌습니다.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린 것까지는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졌다는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간섭임을 알려 줍니다. 그는 하나님의 강권적인 역사를 체험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가득찼습니다.

감옥을 지키던 간수의 마음은 어떻게 열렸습니까?
3] 사도 바울이 전한 말씀 때문입니다.

간수가 마음 문을 열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게 된 까닭은 사도 바울이 전한 말씀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과의 만남 속에서 생긴 믿음에 근거한 것입니다. 그는 바울 사도 일행이 감옥에 들어 온 처음부터 그들을 예의 주시하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바울 사도와 실라가 감옥에 수감되었을 때, 그들은 엄청난 매를 맞아 피는 낭자했습니다. 온몸은 파김치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날 밤, 그는 그들의 입에서 원망과 신음 소리를 듣지 못했습니다. 대신 감옥창살을 뚫고 은은히 울려 나오고 있는 기도와 찬송소리를 들었습니다. 특이한 경험이었습니다. 그들은 위험하거나 도망칠 그런 유의 죄수가 아님을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안심하고 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큰 지진이 온 감옥을 흔들어버렸습니다. 모든 감옥 문은 열렸습니다. 조그만 틈만 보여도 결사적인 탈옥을 시도하는 죄수들의 속성상 간수가 자다가 깨어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 줄 생각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옥문이 완전히 개방되어 열려 있으니 이는 죄수들이 나갔다는 증더가 아닙니까? 그래서 그는 검을 빼어 자결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감옥에 있는 사도들로부터 긴급히 들려오는 구원의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있을 수 없는 두 번 째의 일을 체험하게 된 것입니다. 고난과 죽음의 위험 가운데서도 찬미할 줄 아는 사도들과 재난 중에 자살하려고 하는 이교도 로마인 간수 자신은 얼마나 서로 대조적입니까? 그는 지진을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을 치험했었습니다. 극한 상황 속에서도 바울과 실라 안에 계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한 것입니다.
그가 체험한 이 두 가지 사건은 그에게 한가지로 연결되어 다가왔습니다. 자신이 철통같이 잠궈두었던 옥문과 착고를 지진으로  여신 하나님이 옥문이 열렸음에도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있는 바울 안에 살아계신다! 그는 참으로 놀라운 일을 체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간수는 바울과 실라가 하나님의 능력있는 사자임을 인지하게 되었습니다.  간수는 자신들이 고문했고, 감방에 가두었고, 착고에 채웠던 자들 앞에 이제 엎드렸습니다.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감옥을 지키던 간수의 마음은 어떻게 열렸습니까?
4] 간수 자신의 열린 믿음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크신 위엄 앞에 엎드린 간수의 마음은 한없이 가난해진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의 엄청난 하나님의 진노 가운데 있음을 자신이  절실히 인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위엄 앞에서 회개하지 않으면 당장 하나님의 진노의 벼락이라도 맞을 것 같은 위기감 앞에 서게 된 것입니다.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간수는 하나님의 임재 앞에 자신의 죄악됨을 회개하며, 구원의 길을 찾고 있습니다. 그가 바울 일행을 매로 때리고, 옥에 가두고 그들을 착고에 채운 가해자 중의 하나였다는 사실이 그의 마음을 더욱 가난하게 하였을 수도 있었습니다. 사도는 대답합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

기독교 역사상 가장 감동 깊은 복음(福音)입니다. 바울은 간단한 이 복음으로 진리를 전했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가난한 자에게는 `주 예수를 믿으라 !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 이것으로 충분한 것입니다. `우리가 어찌할꼬?' 외치던 예루살렘 백성들에게 베드로가 한마디로 집약해 전한 그 메시지입니다.  본절은 초대 교회 복음 증거자들이 전한 메시지의 대주제였습니다(2:38,39;3:19-26; 4:12;8:12;10:43;13:38,39). 동시에 이 말은 시대를 초월하여 영원한 기독교 진리의 핵심입니다. '피스튜손'(*, '믿다')은 당연히 단순과거입니다. 왜냐하면 한 사람이 진정한 믿음을 갖게 되는 그 순간, 구원은 그의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믿음이란 항상 주 예수께 신뢰와 의탁을 두는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권능을 체험하고, 사도의 복음을 체험한 간수는  마음이 하나님을 향해 온전히 열렸습니다. 그는 옛사람에 관한 것을 모두 버리고, 새사람이 되는 중대한 결단의 시간을 갖게 됩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하고 하나님의 가문에 속하기로 결심합니다. 구원의 반열에 들어간 것입니다. 그의 믿음은 온전해졌습니다. 바울을 향한 자세도 변화되었습니다.

33 밤 그 시에 간수가 저희를 데려다가 그 맞은 자리를 씻기고
자기와 그 권속이 다 세례를 받은 후 34
저희를 데리고 자기 집에 올라가서 음식을 차려 주고
저와 온 집이 하나님을 믿었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

 주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를 삶의 주인으로 모신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를 삶의 주인으로 모신다는 것은 이처럼 삶의 방식이 변화됨을 의미합니다.
-1. 낮에만 해도 주의 종을 때리고 비난하던 자가 밤, 그 시간에 똑같은 주의 종의 그 맞은 자리를 씻깁니다. 예수를 주인으로 모셔들인 간수의 태도는 이처럼 확연합니다.

`나의 모든 것 다 변하고 !'

그 피로 구속 받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람들에 대한 자세가 이토록 놀랍게 변화했습니다.

- 2. 자기와 그 권속이 다 세례를 받으므로 하나님 가문에 입적했습니다. 국적을 바꾸어 버렸습니다. 로마의 간수이기 전에 그는 하나님 나라의 국민임을 선포한 것입니다. 그 구체적인 증거를 다음 행동에서 봅니다.
- 3. 모든 위험을 감수하고 저희를 데리고 자기 집에 올라가서 음식을 차리는 것입니다. 이는 너무 위험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가문에 들어 온 자들로서의 야무진 결단이 아니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아직 중한 죄수로 갇친 죄수 바울과 실라를 데리고 자기 집에 올라가서 음식을 차리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생사를 나누려는 결단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뿐 아닙니다.
- 4. 기쁨의 내용이 달라졌습니다. 전날의 그의 기쁨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었다면, 이제는 그들의 기쁨이 저와 온 집이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이전에 좋던 것 이제는 값없다! 는 찬송 가사대로입니다.

[삶의 적용]
우리는 빌립보 간수가 예수를 삶의 주인으로 모신 후에 변화된 분명한 삶의 표지들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을 믿기 전과 후가 너무도 확실한 그의 변화를 통해서 우리 자신을 점검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아직 주의 사람들을 때리고 옥에 가두는 입장에 서 있지는 않습니까? 아니면 그들의 맞은 자리를 씻기는 입장입니까?
우리는 아직 세상 시민권자로 살고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 나라의 국적을 확실하게 소유한 자로 살아갑니까?
우리는 갇친 죄수 바울과 실라를 데리고 자기 집에 올라가서 음식을 차리는 간수처럼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생사를 나누려는 결단을 가지고 있습니까?
기쁨의 내용이 달라졌습니까? 우리를 기쁘게하는 것이 과연 무엇입니까? 아직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입니까? 온 집이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까?

맺는 말

우리는 2천년 전 빌립보에서 옥문을 여신 하나님께서 오늘빌립보 간수의 마음까지 여신 것을 깨닫게 됩니다.
천국의 열쇠를 가지신 주님께서 황무지와 같고 광야와 같은 간수에게 권능을 베푸셨습니다.
은혜를 체험한 사도를 통해 구원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마음을 여신 주님 앞에서 마음이 가난해진 간수는 복음을 받아들입니다. 예수를 자신의 구주로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나서 그는 변화되었습니다.
 때리고 비난하던 자가 그 맞은 자리를 씻깁니다
 세례를 받으므로 하나님 나라에 입적했습니다.
모든 위험을 감수하고 저희를 데리고 자기 집에 올라가서 고통을 나누고 있습니다.
기쁨의 내용이 달라졌습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은 이렇게 하여 그 삭막한 빌립보에 임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빌립보는 유럽 선교의 전초기지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하신 우리의 삶이 이렇게 변화됨으로,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과 교회를 하나님 나라의 전진기지로 삼는 축복을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참고] 우리는 여기서 간수가 어떻게 구원을 얻으리이까 간청할 수 있었을까를 생각 해보게 됩니다. 그가 어디서 어떻게 구원이란 진리를 알 수 있었느냐는 것입니다.

- 그는 당시 빌립보의 톱 뉴우스였던 귀신들려 점하다 깨끗함을 받은 소녀가 외쳤던 소리를 통해 `구원을' 들었을 수 있습니다.
- 또는 그가 바울을 심문하는 자리에서 구원에 관한 내용을 들었을 수가 있습니다.
- 감옥에 갇친 바울 일행을 통해 구원에 관한 메시지를 들었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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