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13 March 2015

행 17:1-9 데살로니가교회

1 저희가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로 다녀가 데살로니가에 이르니 거기 유대인의 회당이 있는지라 02 바울이 자기의 규례 대로 저희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03 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야 할 것을 증명하고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 하니 04 그 중에 어떤 사람 곧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도 권함을 받고 바울과 실라를 좇으나 05 그러나 유대인들은 시기하여 저자의 어떤 괴악한 사람들을 데리고 떼를 지어 성을 소동케 하여 야손의 집에 달려들어 저희를 백성에게 끌어내려고 찾았으나 06 발견치 못하매 야손과 및 형제를 끌고 읍장들 앞에 가서 소리질러 가로되 `천하를 어지럽게 하던 이 사람들이 여기도 이르매 07 야손이 들였도다 이 사람들이 다 가이사의 명을 거역하여 말하되 다른 임금 곧 예수라 하는 이가 있다 하더이다' 하니 08 무리와 읍장들이 이 말을 듣고 소동하여 09 야손과 그 나머지 사람들에게 보를 받고 놓으니라


들어가는 말

     데살로니가 교회는 사도 바울이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하는 교회입니다. 그 이유는 1] 믿음의 역사와 2] 사랑의 수고와 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기억'한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런 아름다운 교회가 어떻게 하여 설립되었는지! 그 교회의 기초는 무엇이었는지! 그 교회에 두신 하나님의 꿈은 무엇이었는지 둥을 본문과 데살로니가 전후서 등에서 알아보기 원합니다.
그리고 우리 서머나교회에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원합니다.

1] 데살로니가 교회가 서게 된 배경

빌립보를 떠난 바울 일행은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를 거쳐 데살로니가에 도착하였습니다. 간단히 기록되어 있지만 160Km는 먼 거리입니다. 옛날 사람들 여행 속도로 하루 100리씩을 걸었다 하더라도 나흘 길이 짱짱합니다. 더구나 빌립보에서 당한 고난과 능욕의 상처는 아직 아물 여유가 없었습니다. 데살로니가에 도착하였을 때는 몸은 만신창이가 되었고, 자신들의 의지로 사역을 감당하기는 힘들었을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훗날 데살로니가 교회에 당시 복음 전한 상황을 이렇게 적었습니다.

살전2:2 너희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먼저 빌립보에서 고난과 능욕을 당하였으나 우리 하나님을 힘입어 많은 싸움 중에 하나님의 복음을 너희에게 말하였노라

2] 데살로니가의 역사적 지리적 배경

   데살로니가는 B.C 167년 마게도냐를 정복한 로마에 의해 마게도냐 제 2구역의 수도가 되었으며, B.C142년 마게도냐가 재조직되자 주의 수도가 되었으며, B.C42년 로마의 2차 내란(빌립보 부근의 싸움)시 옥타비아누스(후에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편을 들었기 때문에 자유도시의 특권을 부여받았습니다. 특히 이곳은 내륙의 풍요로운 농경지를 동쪽의 육로와 해로에 연결시켜 주는 역할을 하였기 때문에 키케로에 의해 우리 영토의 심장이라고 불리기도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마게도냐는 인구 약 20만의 큰 도시인데다가 경치, 경제의 중심지였기  때문입니다. 이곳은 발칸 반도에 복음을 전하기 위한 전략적 요충지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빌립보에서 고초를 당하고서도 무려 160Km이상이나 떨어져 있는 데살로니가로 결사적으로 들어갔던 것입니다(살전2:2). 이로 인해 데살로니가는 유럽에서 빌립보에 이어 두번째로 교회가 세워진 지역이 되었습니다.

데살로니가교회는 세가지 면에서 본이 되는 교회입니다.

  1. 믿음이 역사하는 교회입니다.

철학이나, 이성이나, 세속주의적인 상식이 역사하는 공동체가 많습니다. 그러나 데살로니가교회는 믿음이 역사하는 교회!습니다.

1] 예수 그리스도의 기초 위에 세워졌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에서도 먼저 유대인 회당에 들어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유대인들의 회당은 당시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기에 가장 적절한 곳이었습니다. 그들은 메시야에 대하여 깊은 관심이 많았고, 메시야를 전하면 누구보다도 잘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이를 알고 있는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에서 처음부터
1] 성경을 가지고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강론!했습니다.
2]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증명!했습니다.
3]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 선포!했습니다.
     바울의 전도 중심 내용은 예수님의 부활과 죽으심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곧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전2:2).

`기독교에서 십자가와 부활을 제거해 버리면 기독교는 파괴되어버린다'(존 스토트)는 말을 데살로니가 교회의 설립과정에서 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처음부터 말씀 위에 확고히 세워진 교회입니다. 그리스도 위에 세워진 교회는 믿음이 역사합니다.

2] 성도들은 복음을 받을 때에 하나님 말씀으로 받았습니다

행17:4 그 중에 어떤 사람 곧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도 권함을 받고 바울과 실라를 좇으나

  데살로니가에는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귀부인들이 있었는데 이들이 바울의 설교를 듣고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습니다. 나아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였습니다. 경건한 헬라인이란 우상숭배나 부도덕한 생활을 거부하고 유일신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생활을 하는 자들로서 회당에서 안식일에 모여 예배드리는 자들을 가리킵니다. 귀부인이란 데살로니가의 높은 지위에 있는 귀족들의 아내를 가리킵니다. 이들이 권함을 받을 때,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습니다. 그리고 바울과 실라를 좇았습니다.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느니라 !(살전2:13)

 이 말씀이 또한 그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였던 것입니다.

3] 기쁨으로 도를 받아 사도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도를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습니다.(살전1:6) 마게도냐와 아가야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습니다.(살전1:7) `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사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며'(살전1:9)란 말씀에서 보는 대로 주의 말씀을 받았을 때, 옛사람에 속한 것을 버렸습니다. 돌아와 참되신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버리고 돌아와서 섬기는 신앙에서 그들은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습니다. 데살로니가교회에서는 복음이 말로만이 아니라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입니다.(살전1:5)

4] 주의 말씀(믿음의 소문)이 그들로부터 각처에 퍼져나갔습니다.

08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지므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살전1:8)

이 복음은 에그나티아 도로라고 불리우는 아드리아  해로(海路)로부터 중동에 이르는 로마의 간선도로를 타고 급속히 퍼져나갔습니다. 데살로니가에서 큰 무리와 귀부인들이 복음을 받음으로써 기독교는 이 도로를  따라 동서로 퍼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데살로니가에 기독교가 들어온 것은 매우 중요한 사건입니다. 데살로니가 한 회당에서 바울이 전한 복음은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는 사람들에 의하여 기독교를 마게도냐와 아가야 전 지역에 퍼지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 예수 그리스도의 기초 위에 세워지고!
2] 복음을 받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고!
3] 기쁨으로 도를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고!
    4] 믿음의 소문이 그들로부터 각처에 퍼져나가는 교회!
그리하여 믿음에 관하여서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믿음에 관하여는 캡인 교회가 바로 데살로니가 교회입니다. 그리하여 데살로니가교회는 믿음이 역사하는 교회!가 된 것입니다.

  2. 사랑으로 수고하는 교회입니다.

형제사랑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너희가 친히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아 서로 사랑함이라 10 너희가 온 마게도냐 모든 형제를 대하여 과연 이것을 행하도다(살전5:9)

기독교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사랑'은 자세히 보면, 추상명사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수고가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이 사랑을 교회에서 꽃피우기 원하십니다. 열매맺기 원하십니다.
그러나 형제 사랑에 대하여는 우리 성도들이 할 말이 늘 궁색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을 위하여 외아들을 주셨습니다.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가는 것도! 형제 사랑에 그 시금석을 두고 있습니다.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형제를 미워할 때, 살인하는 자라 하십니다. 누가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줄 마음을 막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까보냐 선포하십니다. 그 근거가 어디에 있습니까? 주님께 있습니다.

요일3:16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그런데 데살로니가 교회는 형제 사랑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친히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아 서로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잠언서에 보면, 사랑은 죽음같이 강하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죽음처럼 강한 것이 없습니다.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거든요. 그런데 사랑의 힘이 죽음같이 강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달리신 십자가에서 죽음같이 강한 하나님의 사랑을 만납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데살로니가 교회 안에서 형제 사랑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다는 반가운 소식을 대합니다. 친히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아 서로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이와같이 `수고가 있는 사랑'은 교회를 교회되게 합니다. 말로만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데살로니가 교회는 `수고가 있는 사랑'을 하였습니다.

찰스 램은 그의 생애 중에서 여자에 대한 깊은 사랑을 느낀 적이  있었으나 자신의 , 특히 가끔 정신발작을 일으키는 누이 매리를  위해서 가정을 지키는 천사가 되었습니다. 미쳐버린 그의 누이가 그의  어머니를 찌른 후로 그는 누이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했습니다. 38년간 그는 지극한 정성으로  그녀를 돌보았던 것입니다. 한 친구는 램과 그의 누이가 손을 잡고 집에서 나와 다시 정신병원으로 걸어 가면서 눈물을 흘리던 일을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참으로 슬픈 이야기지만 숭고한 이야기임에  틀림없습니다. 이와같이 램이 집안에 있음으로써, 그의 집은 공허한 장소가 되지않았던 것입니다. 사랑은 어느 곳이든 천국이 되게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요일4:02).
자녀들아 !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요일3:18)

  3. 소망의 인내가 있는 교회입니다.

05 그러나 유대인들은 시기하여 저자의 어떤 괴악한 사람들을 데리고 떼를 지어 성을 소동케 하여 야손의 집에 달려들어 저희를 백성에게 끌어내려고 찾았으나 06 발견치 못하매 야손과 및 형제를 끌고 읍장들 앞에 가서 소리질러 가로되 `천하를 어지럽게 하던 이 사람들이 여기도 이르매 07 야손이 들였도다 이 사람들이 다 가이사의 명을 거역하여 말하되 다른 임금 곧 예수라 하는 이가 있다 하더이다' 하니 08 무리와 읍장들이 이 말을 듣고 소동하여 09 야손과 그 나머지 사람들에게 보를 받고 놓으니라

오늘 유대인들의 소행을 보십시오. 경건한 헬라인들과 적지 않은 귀부인들이 구원의 도를 받아들이는 것을 보고 유대인들이 시기하였습니다. 시기심이 무섭게 그들을 마비시켜 놓지 않았습니까? 그 똑똑한 유대인들인데, 시기에 사로 잡히니까 야만인보다 나을 것이 없습니다.
불량배들을 동원하여 폭력을 행사합니다. 당시 도시 중심부에는 대개 시장이 형성되어 있었고 거기에는 건달과 불량배 등이 할일 없이 빈둥거리고 다녔습니다. 유대교인들은 이들을 데리고 떼를 지어 성을 소동케 하였습니다. 스스로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이 있노라 자부하는 유대주의자들이 깡패를 동원하여 하나님의 일을 대적하였던 것입니다. 종교적인 시가와 독선이 얼마나 사람을 잔인하게 바꾸어 놓을 수 있는 지를 잘 보여줍니다. 진리는 무뢰한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유대인들은 영적으로 소경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사람이 시기의 노예가 될 때, 영적으로 무지해지고 마음이 강팍해지고 복음을 대적합니다(행28:25-27,히6:6). 폭력뿐 아닙니다.
 `천하를 어지럽게 하던 이 사람들'이란 폭언을 합니다. `이 사람들이 다 가이사의 명을 거역하여 말하되 다른 임금 곧 예수라 하는 이가 있다 하더이다'면서 죄를 조장하여 말을 만듭니다. 첫째, 로마 제국안에서 국가적으로 승인되지 않은 종교를 가르침으로 천하를 어지럽게 했고 둘째, 가이사의 명을 어기고 다른 임금 곧 예수를 왕이라고 선포했다는 것이 바울과 실라를 고소하는 죄목이었습니다. 로마 당국에 문제 집단이란 인식을 불러 일으키려고 하는 모함이었던 것입니다. 로마가 식민지를 다스릴 때에 다른  문제들에 대해서는 대체로 관대하였으나, 반역과 소용에 대해서는 엄하게 다스렸기 때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고소 내용은 경계의 대상이 되었지만 읍장들이 보기에도 증거가 불충분하였습니다. 기독교인들은 처벌할만한 특별한 잘못이 없었습니다. 다만 만일에 사태를 방지하기 위하여 야손의 일행에게 보를 받고 놓아 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편, 이 부당한 폭력 속에서도 인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끌고 가면 끌려가고 때리면 맞고, 벌금을 매기면 돈을 내어놓고. 그들에게 무슨 죄가 있어서입니까? 아닙니다. 소망이 있어서입니다.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의 중심에 굳게 잡고 나아가는 것이 있습니다. 그들이 가진 소망 때문입니다. 주께서 재림하시면 그 영광의 기운으로 악의 권세를 소멸하실 것입니다.

그 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저를 죽이시고 강림하여 나타나심으로 폐하시리라 (살후2:8)

그들이 기독교인으로서 이런 환난과 핍박을 받는 일은 이번만은 아니었습니다. 계속적인 박해와 환난을 인내와 믿음으로 극복하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1:4 그리고 너희의 참는 모든 핍박과 환난 중에서 너희 인내와 믿음을 인하여 하나님의 여러 교회에서 우리가 친히 자랑함이라 3:5 주께서 너희 마음을 인도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가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맺 는 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 말씀을 마무리하면서 몇 가지 진지한 질문을 해봅니다.
예수님을 주로 영접하고 무엇을 버리고 돌아왔는가? 어떻게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가?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어떤 수고를 하고 있는가?
우리 서머나 교회의 소망은 무엇이며, 그것을 위해 나는 무엇을 인내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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