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17 March 2015

빌립보 2:1-8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암송할 말씀]

[빌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들어가는 말]

    오늘 동훈 형제와 민욱 형제가 함께 부른 찬양 좋지요?

    설경욱의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란 복음송입니다.

아버지 당신의 마음이 있는 곳에. 나의 마음이 있기를 원해요.
아버지 당신의 눈물이 고인 곳에 나의 눈물이 고이길 원해요.
아버지 당신이 바라보는 영혼에게 나의 두 눈이 향하길 원해요.
아버지 당신이 울고있는 어두운 땅에. 나의 두 발이 향하길 원해요.
나의 마음이 아버지의 마음 알아.. 내 모든 뜻 아버지의 뜻이 될 수 있기를 ...
나의 온 몸이 아버지의 마음 알아 내 모든 삶 당신의 삶 되기를!


    사람에게 있어서 마음은 중요합니다.
마음은 사람의 중요한 비중을 차지합니다.
감성이 마음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성이 마음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의지가 마음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사람의 지식, 감정, 의지 등의 정신 활동이 이루어지는 곳이 마음입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곳이 마음입니다.
인간 내면 세계의 중심지가 바로 마음입니다.
히브리인들은 정신과 육체를 구별하지 않고 인간의 가장 내부에 마음이 있는 것으로 알았습니다.
의지가 마음에서 나옵니다.
감정뿐 아니라 지적 능력이나 .육체적인 능력이 마음에서 나옵니다.

    성경(개역)에서도 1032번이나 마음이란 말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음'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시기 때문입니다.


    죄가 거하는 장소 또한  마음에는 입니다.
불신과 불순종, 어두움이 머무는 장소가 마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 마음의 생각을 아'십니다.[창6:5]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감찰하십니다.

    [로마서 8:27]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너희 안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하나님은 우리 마음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 속에 있는 의지와 계획을 움직히시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의 마음에서 착한 일을 새롭게 시작하셨습니다.

    빛이 임하는 곳이 마음입니다.
말씀에 순종하고 열매를 맺는 곳이 마음입니다.
순종하고 인내함으로 열매를 맺는 곳이 바로 마음입니다.
거듭난 인간의 믿음이 자리잡은 곳이 바로 마음입니다.

    이렇게 볼 때 마음이란 인간의 내면 전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마음에 어떤 마음을 품어야 할 것인가!
하나님 자녀가 어떤 마음을 품어야 할 것인가!

[빌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리스도 예수님의 마음을 품어야 할 줄 믿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의 마음이 무엇입니까?


    1. 한 마음입니다.(1-2)


    1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에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2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빌립보 교회는 매우 좋은 교회였습니다.
사도 바울에게 가장 칭찬을 받은 건강한 교회를 들라 하면 빌립보 교회였습니다.

    복음에 대한 열정이 있었습니다.
- 빌립보 교회에는 중요한 권면이 있었습니다.
- 사랑의 위로가 있었있습니다.
- 성도간에 성령의 교제가 있었습니다.
- 성도간에 성령의 교제가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의 사역을 힘있게 돕고 동역하였습니다.

선교 사역에 모범적으로 앞장을 섰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빌립보 교회는 지상에 있는 교회였습니다.
천국에 있는 교회가 아니라 광야와 같은 세상에 있는 교회였습니다.
그러므로 지상 교회가 안고 있는 결함이 있었습니다.

    [빌4:2-3]에 보십시오.

2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3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 한 자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부녀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교인 간에 마음이 갈려 있었습니다.

    분명 주 안에 있다고 말할 수 있는데 마음이 갈려 있습니다.
한 마음이 아니었습니다.

- 빌립보 교회에는 중요한 권면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마음이 아닙니다.

- 사랑의 위로가 있었있습니다.
한 마음이 아닙니다.

- 성도간에 성령의 교제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마음이 아닙니다.

- 긍휼이나 자비가 었습니다.
그런데 한 마음이 아닙니다.

    교인 간에 마음이 갈려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말씀하십니다.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리!"


    세상에서 한 마음처럼 힘이 되는 일이 없습니다.

    어떤 목사님(김운용)께서 자신의 딸 자랑하시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친구들은 딸이 어느 대학을 들어갔고, 전공이 어떻고... 하는데 저는 늦둥이 딸이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습니다.
    퇴근길 아빠가 힘들어 보일 때면 딸은 여지없이 손을 모으고 그렇게 현관에서 노래합니다.

  “아빠 힘내세요. 세라가 있잖아요. 아빠 힘내세요...”

   이런 이야기를 하면 친구들이 부러워서 그 딸을 하루만 빌려달라고 한답니다. 대학생이 된 자기 딸은 아빠가 쓰러지기 직전이어도 결코 그런 재롱은 부리지 않는다면서요.

    저는 그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한 마음이 된 부녀가 얼마나 복된가 생각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이 모리아 산에서 올려드린 거룩한 산 제사는 기독교 역사에 길이 남을 전후무후한 사건입니다.
    어떻게 이 놀라운 제사가 이루어질 수 있었습니까?
아브라함과 아들 이삭이 한 마음이었기 때문입니다.

    먼저 아버지인 아브라함이 자신을 죽였습니다.

    덴마크의 실존주의 철학자이자 신학자였던 죄렌 키엘케골은 [그리스도교의 훈련]에서  말합니다.
   “3일 동안 걸어가면서 아브라함은 먼저 자신이 먼저 죽임을 당하는 시간을 가졌다. 자신을 십자가에 먼저 못 박아야 했던 걸음이었다. 먼 훗날 하나님께서 당신의 독생자를 앞세우고 가셔야 했던 그 길을 아브라함이 걸어가면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십자가에 꽁꽁 못 박아 버린 다음에야 독생자를 우리 위해 내놓을 수 있었던 것처럼 아브라함도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린 다음에야 갈 수 있었던 길이 모리야로 가는 길이었다.”

    아브라함이 사흘 동안 모리아산을 향해 갔던 그 길이 바로 자아가 온전히 죽은 순종의 길이었던 것입니다.


    모리아산에서의 산 제사는 아브라함만 죽은 사건이 아닙니다.
아들 이삭 또한 죽은 사건이었습니다.
그는 얼마든지 반항할 수 있었습니다.
죽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처럼 아들도 죽기로 작정하였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은 모리아산에서 죽기로 작정하였다는 점에서 철저히 하나였습니다.

    이로 인하여 하나님의 뜻이 그의 삶 속에서 온전히 살아나신 거룩한 산 제사였습니다.


    초대교회는 한 마음 위에 이루어졌습니다.

    [사도행전 2:46]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였습니다.
마음을 같이한  한 마음입니다..
순전한 마음은 한 마음입니다.
마음으로 음식을 먹었다는 말씀을 들어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한 마음으로 이루어진 교회가 바로 초대교회입니다.
성령으로 가능하였습니다.


    다윗과 요나단은 마음이 하나였습니다.

    [사무엘상 18:1]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기를 마치매 요나단의 마음이 다윗의 마음과 연락되어 요나단이 그를 자기 생명 같이 사랑하니라


    하나님께서 주시기 원하시는 마음이 무엇입니까?
바로 한 마음입니다.

    [에스겔 11:19-20]

    내가 그들에게 일치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신을 주며 그 몸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서 내 율례를 좇으며 내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일치한 마음입니다. 한 마음입니다.
하나님과 하나된 마음을 주실 때, 성령께서 내 안에 계셔서 굳은 마음을 제하시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을 즐겁게 하는 마음이 무엇입니까?
한 마음입니다.

    [요10:30]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잠언 23:15]

    내 아들아 만일 네 마음이 지혜로우면 나 곧 내 마음이 즐겁겠고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는 것입니다.




    아놀드 토인비는 “창조적인 소수”(creative minority)에 대해서 말합니다.
창조적인 소수라 할지라도 한 마음이 될 때, 하나된 소수를 통해서 공동체가 살고, 민족이 살게 됩니다.
    어제 신문을 보다가 "日 전자업계 한국에 완패…위기감"이란 기사를 만납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삼성전자의 7∼9월 영업이익이 약 3천260억엔(4조2천300억원)으로 소니와 파나소닉, 히타치 등 일본 내 주요 9개사의 같은 기간 영업이익(1천519억엔)의 배가 넘었다고 전했다.'
    창조적 소수가 일사불란하게 일어섬으로 한국 사회에 얼마나 역동적인 기적을 선물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삼성의 이건희 사장을 비롯한 창조적 소수가 한 마음으로 집중과 선택을 창조적으로 수행함으로 한 민족이 경제적 부흥을 누리는 것입니다.
    삼성엔 노조조차 없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무엇이 옳은가를 떠나 그들이 하나되는 일에 집중과 선택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교회 역시 창조적인 소수가 한 마음이 되어 있을 때 하나님께서 역사하십니다.

    광야 40년 동안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문제가 많았지만 모세와 여호수아 갈렙과 같은 창조적인 소수가 한 마음이 되어 있었습니다.
    불평하고 원망하며, 싸우려고 달려드는 다수가 있었지만 그들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습니다.

    여호수아 갈렙 같은 창조적인 소수가 한 마음이 되어 있었기에 광야 교회는 살게 되었습니다.

    오늘 교회에 필요한 사람은 이런 한 마음의 사람들입니다.



    2. 겸손한 마음입니다.

3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예수님은 마음이 겸손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흙으로 만드셨습니다.  겸손한 마음에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고 겸손한 마음에 평화가 넘칩니다.


    천국은 겸손한 마음 속에 있습니다.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은 영적으로 자기 자신에게는 구원받을 아무런 자격이나 공로가 없다는 것을 알고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존하는 마음, 곧 겸손한 마음입니다.

    [이사야 57:15]

    지존무상하며 영원히 거하며 거룩하다 이름하는 자가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거하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거하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성케 하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성케 하려 함이라
    겸손한 자와 함께 하여 마음을 낮추는 것이 교만한 자와 함께 하여 탈취물을 나누는 것보다 나으니라


    겸손한 마음은 하나님을 나보다 위에 모시는 마음입니다.

    링컨 대통령은 하나님 앞에 겸손한 대통령이었습니다.
미국 연방 정부를 움직여가는 정치의 중심지 백악관에서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일을 가장 우선 순위로 삼았습니다.
그는 최고의 지도자가 거하는 백악관을 하나님 앞에 가장 낮은 기도실로 바꾸었습니다.

    그가 남북전쟁에 북군의 총사령관으로 출정했을 때, 참모들은 긴급한 보고사항이 있어서 그의 텐트로 뛰어갑니다. 그러나 흰 손수건이 그곳에 걸려 있으면 그들은 아무리 긴급한 사안이어도 밖에서 기다려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손수건은 총사령관 링컨이 기도하고 있다는 사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겸손한 지도자였습니다.


    겸손한 마음은 다른 사람을 자기 자신보다 낫게 여기는 마음입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한국이 낳은 가장 높은 지위의 외교관입니다.
그러나 그의 특징은 겸손입니다.

    그는 한참 어린 직원이라도 면담 후에는 문을 손수 열어 배웅하는 겸손함을 잃지 않았습니다.

   “절망적인 지역에 갈 때마다 비참한(humble) 상황과 도전(challenge)에 직면했습니다.난민을 만나고, 아프리카를 가고, 항상 해결책을 찾는데, 가는 곳마다 유엔과 유엔 사무총장에 거는 기대는 컸습니다”

    그러나 그는 낮은 땅을 찾아다니면서도 겸손한 마음을 잃지 않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유엔사무총장 취임 1년 7개월만에 방문한 고국 방문에 반 총장은 3일 방한 직후 공항에서 인사말을 하는데 마이크가 고장이 나 세번이나 같은 말을 반복하면서도 사람 좋은 그 미소를 잃지 않았습니다.

    마음으로 겸손한 그를 만난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왜 그가 유엔 사무총장인지를 알겠다"고 무릎을 치고 있습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성공비결로 "겸손"을 꼽습니다.


    [로마서 12:16]은 명합니다.

    서로 마음을 같이 하며 높은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체 말라





    3. 복종하는 마음입니다.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는다는 말씀은 무엇일까요?
그리스도의 심장을 품는다는 말씀은 무엇일까요?
종의 형체를 가지는 것이요
하나님께서 사람까지 낮추신다는 말이요
죽기까지 복종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 권위 아래 자신을 두는 것입니다.

    주기철 목사님은 그리스도의 심장을 품고 순교하셨습니다.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산정현 교회 교회에서 행한 유언적인 설교를 소개합니다.

    그 설교의 세 번째 대지를 여러분들에게 읽어 드리겠습니다.

    노모와 처자와 교우를 주님께 부탁합니다
“나는 80이 넘은 어머님이 계시고, 병든 아내가 있고, 어린 자식들이 있습니다. 아들로서의 의무도 지중하고, 가장으로서 아비 된 책임도 무겁습니다.

    1) 자식을 아끼지 아니하는 부모가 어디 있으며, 부모를 생각지 아니하는 자식이 어디 있겠습니까? 내 어머님이 나를 낳아 애지중지 키워주시고, 가르쳐 주신 은혜 태산같이 높습니다. 어머님을 봉양하지 못하고 잡혀 다니는 불효자의 신세, 어머님 생각이 더욱 간절합니다. 내 어머님이 금지옥엽으로 길러주신 이 몸이 남의 발길에 채이고 매 맞아 상할 때, 내 어머님 가슴이 얼마나 아프실까! 춘풍추우 비바람이 옥문에 뿌릴 때 고요한 밤 달빛이 철창에 새어들 때, 어머님 생각 간절하여 눈물 뿌려 기도하였습니다. 어머님을 봉양한다고 하나님의 계명을 범할 수도 없습니다.
주님 십자가에 달리실 때 당신의 아픔도 잊으시고, 십자가 밑에서 애통하는 어머님 마리아를 제자 요한에게 부탁하시던 주님 심정 어떠하였습니까? 십자가 밑에서 가슴 치며 애통하시는 성모 마리아의 아프신 가슴 어떠하였을까? 오! 당신 어머님을 요한에게 부탁하신 주님께 내 어머님도 부탁합니다. 불효한 이 자식의 봉양보다 무소불능하신 주님께 내 어머님을 부탁하고, 나는 주님 자취를 따라 가렵니다. 연약한 나를 붙들어 주옵소서. 사랑하는 나의 어머님을, 80이 넘어 늙으신 내 어머님을 자비하신 주님께 부탁합니다.

    2)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가 남편을 연모하는 것은 인지상정입니다. 내 아내는 병약한 사람으로 일생을 내게 바쳤지만, 나는 남편 된 의무를 못합니다. 병약한 아내를 버려두고 잡혀 다니는 이내 마음 또한 애처롭습니다. 오! 주님께서 당신의 신부되시는 어린 교회를 뒤에 두고 골고다로 나가시는 심정이 어떠하셨습니까? 병든 내 아내도 주님께 부탁하고 불초 이 내 몸은 주님의 자취! 주님의 눈물 자취를 따라가렵니다. 연약한 나를 붙들어 주옵소서.

    3) 세상에 제 자식을 돌보지 않는 자 어디 있으며, 자기 아버지를 의지하지 아니하는 자식이 어디 있겠습니까? 나도 네 명의 아들이 있고, 그 중에는 어린 것도 있습니다. 아버지로서 자식을 키우고 가르칠 의무를 다하지 못하고, 우는 어린 것들 뒤에 두고 잡혀 다니는 마음 또한 애처롭기 그지없습니다. 아버지가 나라에 역적으로 잡혀 죽으면 그 자식들이 어디서 어떻게 살 수 있겠습니까? 짐승도 제 새끼를 사랑하거늘, 어린 자식 떼어 두고 죽음의 길을 떠나야 하는 이 내 마음 끝없이 비참합니다.
    주님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밤에 당신의 자식 같은 제자들을 앞에 모으시고 위로하시는 말씀 한 마디 한 마디가 눈물 어린 말씀이었고, 교훈하시는 말씀, 말씀이 피 끓는 소리였습니다. 어린 자식과 같이 연약한 제자들을 뒤에 두고, 십자가에 달리시는 주님의 마음 어떠하였을까? 연약한 제자들을 뒤에 두시고, 골고다로 향하신 주님께 나의 자식을 부탁합니다. 어미 죽은 어린 자식들을 주님 품에 부탁합니다

    4) 나에게는 주님께서 맡기신 양떼, 나의 사랑하는 교우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나는 저들을, 내 양떼들을 뒤에 두고 다시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나야 합니다. 험한 세대, 악한 세상에, 이리 때 가운데 내 양들을 두고 가야 합니다. 맡기나이다. 맡기나이다. 내 양들을 대목자장 되시는 예수님의 손에 맡깁니다.

    나의 어머님도 주님께 부탁합니다. 나의 병든 아내도 주님의 손에 부탁하는 것이 이 못난 사람의 도움보다 좋을 줄 압니다. 나의 어린 자식들을 자비하신 주님의 품에 두는 것이 변변치 못한 아비의 손으로 기르는 것보다 복될 줄로 믿습니다. 나의 양떼도 선한 목자 주님께 부탁합니다. 병들고 상한 자를 주님이 싸매어 주시고, 길 잃고 헤매는 자를 주님 손수 인도하여 주시고, 낙심하고 범죄 한 자를 주님의 보혈로 사유하여 주시옵소서. 악하고 험한 세상에 양떼를 두고 가는 이내 마음 차마 못 할 일입니다. 저들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 주님 지켜 주시옵소서.
나의 늙으신 어머님과 나의 병든 아내를 주님께 부탁하고 나의 어린 자식들과 나의 사랑하는 양떼들을 자비하신 주님께 부탁합니다. 그리고 나는 마지막으로 이 산정현 강단을 떠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님을 따라, 주님을 따라 주님의 피 자취를 따라가려 합니다.

    나의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나는 내 어머니, 내 아내, 내 자식들을 여러분에게 짐 되게 할 마음은 없습니다. 다만 무소불능하신 하나님께 부탁합니다. 여러분, 사람이 제 몸의 고통은 견딜 수 있으나, 부모와 처자를 생각하고 철석같은 마음도 변절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린 자식의 우는 소리에 순교의 길에서 돌아선 자도 허다합니다.
인간의 얽히고 얽힌 인정의 줄이여, 나를 얽어매지 말라. 주님 따라가는 나를 얽어매지 말라. 부모나 처자를 예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예수께 합당치 아니합니다.”



     안도현 시인은 “너에게 묻는다”라는 시에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사람들의 눈에 쓸모없어 보이는 연탄재
그러나 시인의 눈에는 남을 위하여 자신을 불태운, 아름다운 헌신물로 남아있는 연탄재가 우리에게 메시지를 보여줍니다.

그는“연탄 한 장”작품에서

'연탄은 일단 제 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
온몸으로 사랑하고/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나는 누구에게 연탄 한 장 되지 못하였네/
생각하면 삶이란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

    저는 이런 작품을 읽으면
우리를 온몸과 온 마음으로 사랑하셔서 모든 것을 다쏟아 주시고 하나님 나라의 사랑으로 불을 내어주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합니다.


    [마무리하는 말]


     북극해를 여행하다가 보면 빙산을 보게 됩니다. 바람이 강하게 불면 무엇이든지 바람과 같은 방향으로 밀려가야 합니다. 그런데 빙산은 바람의 반대 방향으로 간다고 합니다. 왜 빙산은 바람 부는 방향을 향해서 갈까요? 그것은 빙산의 90%가 물속에 가라앉아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이란 바다 속에 가라앉아있는 빙산과 같습니다. 이 마음이 움직이는 곳으로 우리 인생이 갑니다.

거듭나기 전의 인간은 마음을 지배하는 죄에 의해서 움직여 갑니다. 빙산이 가라앉은 90%에 의해서 움직여 가는 것처럼 말입니다.

    하나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의 마음을 품으십시다. 하나이신 그리스도의 마음이 나의 인생을 움직여 갈 것입니다.
    겸손하신 그리스도 예수님의 마음을 품으십시다. 겸손하신 그리스도의 마음이 나의 인생을 움직여 갈 것입니다.

    복종하시는 그리스도 예수님의 마음을 품으십시다. 복종하신 그리스도의 마음이 나의 인생을 움직여 갈 것입니다.

    [히브리서 10:22]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시편 57:7]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

    [설교할 성경 본문]

1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에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2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3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4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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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마음이 얼굴을 빛나게 합니까?


즐거운 마음입니다.

    [잠언 15:13]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니라

    즐거운 마음입니다.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을 때, 마음이 즐거울 수 있습니다.





온유한 마음입니다.

    [마태복음 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신명기 30:6]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마음과 네 자손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사 너로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게 하사 너로 생명을 얻게 하실 것이며

   

    주님께서는 이 마음을 가진 자에게 천국을 약속하셨습니다.

    [마태복음 5: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을 사용하십니까?

    [출애굽기 36:2]

    모세가 브살렐과 오홀리압과 및 마음이 지혜로운 사람 곧 그 마음에 여호와께로 지혜를 얻고 와서 그 일을 하려고 마음에 원하는 모든 자를 부르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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