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17 March 2015

빌2:1-11 우리 안에 품어야 할 마음

 [들어가는 말]

   성경(개역개정)에서 1085번 '마음'이란 단어를 찾을 수 있습니다.
사랑은 555번, 믿음은 233번, 소망이 85 나오는데 마음이 이렇게 많이 나오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이 '마음'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십니다.

    성경에는 마음을 밭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말씀이 그 마음 밭에 떨어짐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사람의 마음에 심으시는 것이지요.
이렇게 보면 우리 마음이 제각각임을 알 수 있습니다.
길가와 같은, 돌짝밭 같은, 가시떨기 같은, 혹은 좋은 땅에 비유할 마음이 있습니다.

    사랑이 사람의 마음에 심겨지면 그 사랑이 자랍니다.
믿음이 사람의 마음에 심겨지면 그 믿음이 사람의 마음에서 자랍니다.
소망이 사람의 마음에 심겨지면 그 소망이 사람의 마음에서 자랍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참 재미 있습니다.
순종을 마음에 심으면 순종이 마음에서 자랍니다.

    그렇지만 밭에 무엇을 심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 심은 것들을 잘 가꾸는 것 또한 중요합니다.

    만일 마음을 잘 가꾸지 않으면 그곳에 죄가 날아와 뿌리를 내리고 그 죄가 자라서 그 인생을 망치기
죄가 거하는 장소 또한  마음입니다.
불신과 불순종, 어두움이 머무는 장소가 마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 마음의 생각을 아'십니다.[창6:5]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감찰하십니다.

   [로마서 8:27]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너희 안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하나님은 우리 마음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의 마음에서 착한 일을 새롭게 시작하셨습니다.



   이 마음에 어떤 마음을 품어야 할 것인가!
어떤 마음을 품어야 하나님 자녀답습니까?

[빌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우리가 품어야 할 마음이 그리스도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왜 우리는 예수님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까?


1.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한 마음을 품고 있지 못합니다.(1-2)


   1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에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2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빌립보 교회는 매우 좋은 교회였습니다.
사도 바울에게 가장 칭찬을 받은 건강한 교회를 들라 하면 빌립보 교회였습니다.

 복음에 대한 열정이 있었습니다.
- 빌립보 교회에는 중요한 권면이 있었습니다.
- 사랑의 위로가 있었습니다.
- 성도 사이에 성령의 교제가 있었습니다.
- 성도 간에 성령의 교제가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의 사역을 힘 있게 돕고 동역하였습니다.

선교 사역에 모범적으로 앞장을 섰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빌립보 교회는 지상에 있는 교회였습니다.
천국에 있는 교회가 아니라 광야와 같은 세상에 있는 교회였습니다.
그러므로 지상 교회가 안고 있는 결함이 있었습니다.

   [빌4:2-3]에 보십시오.

2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3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 한 자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부녀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교인 간에 마음이 갈려 있었습니다.

   분명 주 안에 있다고 말할 수 있는데 마음이 갈려 있습니다.
한 마음이 아니었습니다.

- 빌립보 교회에는 중요한 권면이 있었습니다.
- 사랑의 위로가 있었습니다.
- 성도 간에 성령의 교제가 있었습니다.
- 긍휼이나 자비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이 소중한 보배를 가진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이 갈려 있는 일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한 마음이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우리 민족이 근래에 탁월성을 인정받고 있습니다.

조선산업이 일본을 넘고,
전자제품이 소니를 추월하더니,
근래에는 현대 자동차가 일본 도요다를 추월하기 시작했다는 기사가 나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과제가 있습니다.

우리와 같이 단일민족이 둘로 갈라져 있습니다.
나라가 둘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마음은 어떻습니까?
남과 북의 마음이 전혀 다릅니다.

마음이 천 갈래 만 갈래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말씀하십니다.

   "무슨 권면이나 사랑에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다면"

   이런 것들이 다 귀하지요. 있기도 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라!"


   원래 초대교회는 한 마음으로 인하여 이루어졌습니다.

   [사도행전 2:46]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였습니다.
한 마음으로 이루어진 교회가 바로 초대교회입니다.

    이렇게 한 마음을 품었을 때, 초대교회는 빛을 발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주시기 원하시는 마음은 바로 한 마음입니다.

   [에스겔 11:19-20]

   내가 그들에게 일치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신을 주며 그 몸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서 내 율례를 좇으며 내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일치한 마음입니다. 한 마음입니다.
하나님과 하나된 마음을 주실 때, 성령께서 내 안에 계셔서 굳은 마음을 제하시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과 하나이셨습니다.
마음이 하나이셨습니다.

   [요10:30]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과 한 마음이 될 수 있습니까?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성도 간에 한 마음이 될 수 있습니까?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가족과 한 마음이 될 수 있습니까?

   오늘 교회에 필요한 사람은 이런 한 마음의 사람들입니다.


    둘로 나뉜 마음은 어떻게 하나가 될 수 있습니까?

   2. 높은 곳에 있는 자가 낮은 곳으로 찾아가십시오.

   [5-8절]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근본 하나님이시던 그분은 아기로 말구유에 찾아오셨습니다.
흑암의 땅 갈릴리 지역에 찾아가 자라셨습니다.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 낮은 곳으로 찾아가셨습니다.

    그분이 찾아오신 인간이 고귀하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입에 담기에도 불경스럽지요.
죄인인 우리에겐 하나님의 의가 없습니다.
불경건한 우리는 하나님의 경건이 없습니다.
더러운 우리에겐 하나님의 청결이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과 하나일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를 하나님의 가족으로 맞아들이셨습니까?
어떻게?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죄인 되었을 때에 죄 없으신 분이 죄 많은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경건치 않았을 때에, 경건하신 하나님께서 경건치 않은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연약할 때에 강하신 분이 연약한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보실 때, 하나가 되고 싶으셔서 찾아오신 것입니다.


오늘 날 남과 북, 누가 더 강합니까?강하다고 생각하는 편이 찾아가야 하나  될 수 있습니다.
의롭다고 생각하는 편이 찾아가야 하나 될 수 있습니다.
옳다고 생각하는 편이 찾아가야 하나 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그렇게 하셨던 것처럼, 그렇게 찾아가야 합니다.

    7-8절을 읽어 보십시오.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주님의 본을 따라 의롭다고 생각하는 분이 불의한 분을 찾아가면 답이 나옵니다.
오직 자기를 비워 종의 모양으로 찾아가야 합니다.
그 사람의 모양으로 자기를 낮추고 찾아가야 합니다.
죽기까지 복종하는 종처럼 찾아가야 합니다.

    3절처럼 찾아가야 합니다.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

    낮은 곳으로 찾아가야 합니다.

    변화산에서 그리스도와 모세 엘리야를 만났던 제자들은 그곳에 초막 셋을 칠 수 없었습니다.
낮은 곳에서 고통당하는 누군가를 보살펴야 했기 때문입니다.

    리빙스턴이나 슈바이처 박사가 아프리카를 찾아간 사건이 중요합니다.
밥퍼 목사님께서 밥이 필요한 사람들을 찾아간 사건은 우리 한국교회의 자랑이 되었습니다. 그에게 밥을 받아먹은 사람들이 얼마나 가치있는 존재인가를 말하는 것은 의미 없는 일입니다.

     인간이 인간에게 꽃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이태석 신부, 그가 의사를 포기하고 수단을 찾아간 것은 그가 할 수 있는 가장 숭고한 결단입니다.

    찾아가는 곳에서 하나님께서는 일하십니다.
    사랑실천을 하다보면 자연 선교사역이 이루어집니다.
킬링필드가 힐링필드로 변하게 되어 있습니다.ㅅ
중국의 고아들, 공산당도 고민하는 문제를 지원하므로서, 그 빗장이 열리고 낮은 곳으로 찾아간 사람들을 좋아하고 칭찬하게 됩니다.
자연히 선교가 이루어집니다.
기독교에 대하여 적대적인 사람들을 녹이는 감동, 그것은 낮은 곳을 찾아가는 사랑입니다.
캄보디아, 베트남 등에서 일하는 많은 선교사님들의 보고에서 우리는 얼마든지 이런 변화를 만나게 됩니다.

    겸손한 마음은 다른 사람을 자기 자신보다 낫게 여기는 마음입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한국이 낳은 가장 높은 지위의 외교관입니다.
그러나 그의 특징은 겸손한 마음으로 연약한 지역을 찾아가는 일입니다.
겸비하게 찾아가는 그분을 귀히 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는 한참 어린 직원이라도 면담 후에는 문을 손수 열어 배웅하는 겸손함을 잃지 않았습니다.

  “절망적인 지역에 갈 때마다 비참한(humble) 상황과 도전(challenge)에 직면했습니다.난민을 만나고, 아프리카를 가고, 항상 해결책을 찾는데, 가는 곳마다 유엔과 유엔 사무총장에 거는 기대는 컸습니다”

   그러나 그는 낮은 땅을 찾아다니면서도 겸손한 마음을 잃지 않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3. 하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 낮아지신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를 높이실 것입니다.

   [9-11절]

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는다는 말씀은 무엇일까요?
그리스도의 심장을 품는다는 말씀은 무엇일까요?
종의 형체를 가지는 것이요
하나님께서 사람까지 낮추신다는 말이요
죽기까지 복종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 권위 아래 자신을 두는 것입니다.

    낮은 곳으로 찾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어떤 일을 행하실까요?

9-11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낮은 곳으로 찾아가신 예수 그리스도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게 하셨습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존귀하게 높임을 받는 분은 하늘 영광 버리고 십자가까지 낮은 곳으로 찾아오신 예수님이십니다.

    낮은 곳으로 찾아가는 자들이 현실 가운데 영광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십자가가 있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이루기 위해 낮은 곳으로 찾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늘 그를 높여 주셨습니다.

    리빙스턴이나 슈바이처 박사가 아프리카를 찾아간 사건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높여 주셨습니다. 그들은 신앙적으로 인격적으로 동시대에 어떤 인물들보다 탁월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냥 있는 곳에서만 그렇게 살았다면 얻을 수 없는 영광을 얻게 하셨습니다.

    밥퍼 목사님으로 더 알려진 최일도 목사님께서 밥이 필요한 사람들을 찾아 낮은 곳으로 찾아갔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분을 높여 주셨습니다.
우리 한국교회의 위상까지 높여 주셨습니다.

     이태석 신부님이 의사직분을 포기하고 낮은 곳인 수단을 찾아갔을 때,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그를 높여주셨는 지 모릅니다.

    주기철 목사님은 그리스도의 심장을 품고 순교라는 낮을 곳까지 찾아가셨습니다.

   산정현 교회 교회에서 행한 유언적인 설교를 소개합니다.

   그 설교의 세 번째 대지 부분입니다.

   노모와 처자와 교우를 주님께 부탁합니다
“나는 80이 넘은 어머님이 계시고, 병든 아내가 있고, 어린 자식들이 있습니다. 자식을 아끼지 아니하는 부모가 어디 있으며, 부모를 생각지 아니하는 자식이 어디 있겠습니까?
   나의 어머님도 주님께 부탁합니다. 나의 병든 아내도 주님의 손에 부탁하는 것이 이 못난 사람의 도움보다 좋을 줄 압니다. 나의 어린 자식들을 자비하신 주님의 품에 두는 것이 변변치 못한 아비의 손으로 기르는 것보다 복될 줄로 믿습니다. 나의 양떼도 선한 목자 주님께 부탁합니다. 병들고 상한 자를 주님이 싸매어 주시고, 길 잃고 헤매는 자를 주님 손수 인도하여 주시고, 낙심하고 범죄 한 자를 주님의 보혈로 사유하여 주시옵소서. 악하고 험한 세상에 양떼를 두고 가는 이내 마음 차마 못 할 일입니다. 저들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 주님 지켜 주시옵소서.
주님을 따라, 주님을 따라 주님의 피 자취를 따라가려 합니다. 부모나 처자를 예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예수께 합당치 아니합니다.”

    주님의 피자취를 따라 낮은 곳으로 가신 주기철 목사님을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존귀하게 하셨는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죽기까지 순종하고 원수를 찾아가 그를 아들로 삼은 손양완 목사님을 얼마나 존귀하게 하셨습니까?

    낮은 곳을 찾아가 섬기신 분들을 하나님께서 존귀하게 하신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 우리는 행복합니다.


    [마무리하는 말]

    안도현 시인은 “너에게 묻는다”라는 시에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사람들의 눈에 쓸모없어 보이는 연탄재

'연탄은 일단 제 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
온몸으로 사랑하고/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나는 누구에게 연탄 한 장 되지 못하였네/
생각하면 삶이란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


    이 서글픈 시를 직접 무엇에 대입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저는 동족을 생각할 때,
다 타버린 연탄재와 같은 부분을 생각하는 때가 있습니다.
에스겔 골짜기의 마른 뼈를 생각하는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절망하지 않습니다.
   다만 다 타버린 연탄재이니 쓸모가 없다고 해서, 함부로 발로 차지는 말자는 것입니다.

    우리가 연탄재와 같은 존재였을 때,
우리를 차버리지 않으시고 찾아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는 사랑합니다.
온몸과 온 마음으로 사랑하셔서 모든 것을 다쏟아 주시고 하나님 나라의 사랑으로 불을 내어주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연탄재와 같은 우리가 오늘날 이렇게 정금같은 성도로 살아가는 까닭은 우리를 차버리지 않으시고 찾아오신 예수 그리스도 때문인 줄 압니다.

    북극해를 여행하다가 보면 빙산을 보게 됩니다. 바람이 강하게 불면 무엇이든지 바람과 같은 방향으로 밀려가야 합니다. 그런데 빙산은 바람의 반대 방향으로 간다고 합니다. 왜 빙산은 바람 부는 방향을 향해서 갈까요? 그것은 빙산의 90%가 물속에 가라앉아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이란 바다 속에 가라앉아있는 빙산과 같습니다. 이 마음이 움직이는 곳으로 우리 인생이 갑니다.

    거듭나기 전의 인간은 마음을 지배하는 죄에 의해서 움직여 갑니다. 빙산이 가라앉은 90%에 의해서 움직여 가는 것처럼 말입니다.

   하나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의 마음을 품으십시다. 하나이신 그리스도의 마음이 나의 인생을 움직여 갈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의 마음을 품으십시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시면 그리스도께서 나의 인생을 움직여 갈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주님처럼 낮은 곳으로 나아가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높여주실 것입니다.



   [설교할 성경 본문]

1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에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2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3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4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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