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17 March 2015

빌립보2:19-30 주께서 사용하시는 인물 특징

암송할 성경 말씀 :

    (빌립보서2:25b)

    "그는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된 자요 너희 사자로 나의 쓸 것을 돕는 자라."


    [들어가는 말]

    오늘은 서머나교회가 만 12돌을 맞는 주일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12년을 하루같이 달음질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늘과 같이 아름답고 소중한 믿음의 공동체를 이루어 주셨습니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는 이 일을 하나님께서 행하셨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하나님의 은혜 아래 서머나 교회의 지체된 일꾼들의 헌신 속에서 이루어진 줄 압니다.

    오늘 성경 본문에는 기독교인의 모델이 되는 두 인물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가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이 두 사람은 초대 기독교를 세워가는 일에 있어서 매우 아름다운 모본이 되었습니다.

    주께서 사용하시는 인물 특징을 말씀 안에서 발견하고 우리의 신앙을 새롭게 점검하는 계기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1. 성도의 사정을 진실히 생각합니다.(20)

    1] 다른 사람의 사정에 대해 진실히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 세상입니다.

    21절]

    저희가 다 자기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사정을 알아주지 못하는 세상으로 인하여 고통을 당합니다.

    [이사야 40:27]

    야곱아 네가 어찌하여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어찌하여 이르기를 내 사정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원통한 것은 내 하나님에게서 수리하심을 받지 못한다 하느냐

    2] 그러나 우리 속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영은 우리의 모든 사정을 아십니다.

    [고린도전서 2:11]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3] 우리의 사정을 아시는 하나님을 알 때, 인생이 달라집니다.

    요즈음 많은 사람들에게 어필하는 영화들이 있습니다.
  ‘투모로우’나 ‘해운대’, 그리고 ‘2012’와 같은 재난 영화들입니다.
    해운대는 고국에서 10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했다는 기사를 본 기억이 납니다.
    이들 영화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세상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한 것처럼 욕망이라는 브레이크 없는 차를 타고 미친 듯 달려갑니다.
내가 어디를 향해 가는지
내 인생이 어떻게 전개될른지 모르면서 그냥 열심히 엑셀레이터를 밟습니다.
정말 바쁘게 달려갑니다.
상대의 사정을 진실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밟히면 밟으며 인정사정 없이 밟고 달립니다.

    그러나 어느 날, 재난이 닥칩니다.
    재난이 닥친 후에 자신의 삶과 주변의 사람들을 돌아보게 됩니다.
내 인생엔 액셀레이터 뿐만 아니라 브레이크 또한 존재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물론 그 브레이크를 밟는 주체는 누군가에겐 자연이고, 또 누군가에겐 어떤 절대적 존재입니다.
우리 크리스천들은 그런 작품 안에서 브레이크를 잡고 계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압니다.

   인생의 브레이크가 걸리면서 자기 인생도 종말(끝)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내 사정은 숨겨져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미 알고 계셨던 것이고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를 벗어날 수 없었음을 알게 됩니다.
내 사정을 아는 분이 계심을 알고 사는 것과 모르고 사는 것 사이에는 확연한 차이가 있습니다.
내 사정을 알고 내 인생의 종말까지 주관하시는 주 하나님을 인정할 때 우리는 엘셀레이터 잘 밟는 것만을 미덕으로 생각하지 않게 됩니다.
브레에크를 밟으실 하나님을 인정하게 됩니다.
다른 사람의 사정까지 돌아 볼 여유를 갖게 됩니다.


    4] 디모데는 성도의 사정을 진실히 생각하였습니다.

    20절]

    이는 뜻을 같이 하여 너희 사정을 진실히 생각할 자가 이 밖에 내게 없음이라

    [1] 디모데는 어릴 때, 믿음이 있는 어머니 슬하에서 태어나 성장하였습니다.

    [사도행전 16:1]

    "바울이 더베와 루스드라에도 이르매 거기 디모데라 하는 제자가 있으니 그 모친은 믿는 유대 여자요 부친은 헬라인이라"

    [2] 그리고 그 공동체에서 칭찬을 받는 자였습니다.

    [사도행전 16:2]

    디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 받는 자니

    우리 성도들이 세상에서 사람들에게 비난의 대상이 아니라 칭찬을 받는 일은 정말 중요합니다.

    [3] 디모데는 바울 사도를 만난 후, "믿음의 아들"이 되었습니다. (행 16:1-5/딤후 1:1-6/고전 4:15-17).

     [4] 바울 사도는 디모데와 함께 그리스도의 군사로 선교여행을 떠났습니다.

    [사도행전 17:15]

    바울을 인도하는 사람들이 데리고 아덴까지 이르러 바울에게서 실라와 디모데를 자기에게로 속히 오게 하라는 명을 받고 떠나니라

    디모데가 이렇게 바울 사도에게 단번에 뽑힘을 받아 요긴히 쓰임을 받은 비밀이 무엇일까요?

    [5] 무엇보다 디모데의 귀한 점은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다른 사람의 사정을 알았다"는 점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특징은 다른 사람의 사정에 궤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1장 21절(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대신에 빌립보서 2장 21절(저희가 다 자기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되)로 살아가는 세상입니다.

    무엇보다 다른 사람을 사정을 알고 이해하는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디모데는 이 일을 위해 뜻을 같이 하였습니다. 한 마음을 가졌습니다.
성도의 사정을 진실히 생각하는 사람이었습니다.(20)

    [예화]

    김승연 목사님의 글에서 인용한 일화입니다.

    위대한 남극 탐험가 색클톤 경(Sir Ernest Shackleton, 1874~1922)에게 그간의 많은 탐험 중에서 가장 위험했던 경험을 말해 달라 하여 이런 이야기를 했답니다.

탐험하던 어느 날, 아주 급한 상황을 당하게 되어 임시 대피소에 모든 대원을 대피시켰습니다. 대피 기간이 생각보다 길어지다 보니 식량이 거의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이제 마지막 건빵과 비스켓을 대원들에게 한 봉지씩 나누어주었습니다. 색클톤 경은 식량을 나눠주며 이것만으로 대원들을 안전한 곳까지 인솔하여 갈 수 있을까 생각하니 참으로 암담했습니다. 언제 죽음의 위협이 닥칠지 모르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녁이 되자, 극도로 지친 대원들 모두는 깊은 잠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색클톤 경은 잠을 이루지 못하며 상념에 빠져 있었는데, 사람 움직이는 소리가 순간 귓가에 들려왔습니다. 그는 잠든 척하고 숨을 죽이며 그의 행동을 유심히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대원중의 한 사람이 일어나 모두 잠들어 있는지를 일일이 확인하면서 잠든 동료대원의 건빵과 비스켓 봉지를 여는 것이었습니다. 󰡒아니, 이런 상황에서 세상에 저런 악독한 놈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저 쳐 죽일 놈 같으니라고… .󰡓 그는 한숨을 쉬면서 말했습니다.

더 충격적인 것은 그가 누구인지 확인하는 순간 너무 기가 막혀 졸도할 뻔했습니다. 󰡒세상에, 내가 그동안 저 대원에게 내 생명까지도 맡길 수 있다고 믿어왔었는데, 생사의 갈림길에서 어떻게 저런 행동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는 속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행동을 예의주시하면서 또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동료 대원의 건빵 봉지를 열어 자기의 것에서 꺼낸 건빵을 하나씩 넣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광경을 보는 순간 그는 뜨거운 감동과 위로를 받았습니다.

굶주린 배를 움켜쥔 생사의 갈림길에서 자신의 마지막 식량을 포기하면서까지 동료의 배를 조금이라도 더 채워주기 위한 그의 행동은 색클톤 경의 두 눈에 눈물 고이게 했고, 가슴 뛰게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청중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그 사람의 이름을 누구에게도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 이 자리에서도 그 사람의 이름을 밝히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사랑으로 그 일을 했기 때문입니다.󰡓

    성도의 사정을 진실히 생각하는 사람입니까?

    주께서 사용하시는 인물 디모데는 우리에게 성도의 사정을 진실히 생각하는 일의 중요성을 알려줍니다.




2.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는 사람입니다.

     [22절]

     디모데의 연단을 너희가 아나니 자식이 아비에게 함같이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였느니라

    1] 주님을 위한 생각으로 성도를 생각한다는 것은 귀합니다.

    2] 그런데 더욱 귀한 것은 복음을 위해 수고하는 일입니다.그 생각이 성도를 위한 수고에 연결되면 열매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수고'란 한자가 참 귀합니다. '손 수와 쓸 고'입니다. 달콤하지 않은 쓴 일을 위해 손을 사용하는 것이 수고입니다.
영어에서  labor라는 단어로 번역이 되기도 합니다.
'해산의 수고'란 말씀도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4:19]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3] 그 수고가 복음을 위한 수고일 때, 더욱 아름답습니다.
열매가 생명을 살리는 열매가 되기 때문입니다.

    4] 주님께서는 복음을 위해 이렇게 수고하는 삶을 소중히 여기셨습니다.

    [마가복음 8:35]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마가복음 10:29]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마태복음 24:14]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마가복음 1:38]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 이 복음을 전해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복음을 위해 수고하시고 죽으시기까지 복음을 위해 수고하셨습니다.


    5] 사도 바울은 이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는 일꾼이 된 것을 하나님 선물을 따른 것이라 고백합니다.

    [에베소서 3:7]

    "이 복음을 위하여 그의 능력이 역사하시는대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일군이 되었노라"

    그렇습니다. 복음을 위해 수고할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바울 사도는 형제를 생각만 한 것이 아닙니다. 나아가 수고하였기에 영적 거장일 수 있었습니다.

    [디모데후서 1:11]

    내가 이 복음을 위하여 반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노라


    [에베소서 6:20]

    이 일을 위하여 내가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된 것은 나로 이 일에 당연히 할 말을 담대히 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6]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니 디모데가 이 복음을 위해 수고하였습니다.

     [22절]

     디모데의 연단을 너희가 아나니 자식이 아비에게 함같이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였느니라


    7] 오늘 날도 이 복음을 위해 수고하는 일군들이 많습니다.

    [예화]

    서울 강남구 대치동 극동교회(담임목사 손길성)의 자전거무료수리센터는 지역주민에게 소문난 장소입니다.
    자전거 매니아인 채경묵 전도사는 교회 주변 아파트를 돌며 전도할 때마다 거부감을 갖는 주민들의 모습을 보고 모두가 동감할 수 있는 전도법을 찾다 자전거를 생각하게 됐습니다.
올 봄 문을 연 자전거무료수리센터에는 전도사와 자원봉사자들이 고장 난 자전거를 무료로 고쳐주고 자기 일처럼 친절하게 수리해 지역주민의 발걸음이 끊이질 않습니다.
자전거로 맺어진 인연은 1년 6개월 만에 인터넷 동호회원이 1800명이나 될 정도로 커졌고 자체적으로 소외된 이웃을 돕는 등 사랑을 실천하는 모임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8] 창립 12주년을 돌아볼 때, 서머나 교회 12년 동안 많은 지체들이 하나님의 드라마를 이루시는 일에 헌신하고 수고하였습니다.
    우리 서머나 교회가 이만큼 아름다운 교회로 세상에 서 있을 수 있는 까닭은 이 복음을 위해 수고한 일꾼들 때문입니다.
   

    전도하는 일에 수고하였습니다.
기도하는 일에 수고하였습니다.
봉사하는 일로 수고하였습니다.
사랑하기 힘든 지체들을 끝까지 사랑하는 일로 수고하였습니다.
교회 건물 유지를 위해서도 수고하였습니다.
리노베이션을 하는 일에 수고하였습니다.
잔디를 까는 일에 수고하였습니다.
지붕을 덮고 파킹장을 만드는 일에 수고하였습니다.

   찬송가 246장 3절에는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이 교회 위하여
   눈물과 기도로
   내생명 다하기까지
   늘 봉사(수고)합니다

   누구든지 이 복음을 위해 수고한다면 바로 주님의 기쁨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작은 수고까지 아십니다.
그리고 축복하실 줄 믿습니다.



    3. 사역을 돕고 채우는 형제입니다.

   25절]

 그러나 에바브로디도를 너희에게 보내는 것이 필요한 줄로 생각하노니 그는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된 자요 너희 사자로 나의 쓸 것을 돕는 자라


    1] 에바브로디도는 교회와 성도들을 [생각]하는 선한 부담감을 가진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26절]

    그가 너희 무리를 간절히 사모하고 자기 병든 것을 너희가 들은 줄을 알고 심히 근심한지라

    그는 순복하는 마음을 가졌으며, 자신이 아니라 다른 교우들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비록 그가 몸이 아파 거의 죽게 되었지만 바울과 빌립보 교회에 대하여 생각하는 선한 부담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에바브로디도는 바울 사도를 생각합니다.
그를 파송한 빌립보 교우들을 [생각]합니다.
균형잡힌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바울 사도가 그를 "형제"라 부르는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그가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성도를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에는 이런 선한 부담감을 가지고 사는 다른 성도를 생각하는 일꾼들이 필요합니다.
선교를 위해서 뿐만 아니라
교회를 위해서 필요합니다.
 

    2] 나아가 에바브로디도는 주님을 위해, 사도를 위해, 성도를 위해 [수고]하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그를  "함께 수고한 자"라 부릅니다. 그가 복음을 위해 자신을 수고했기 때문입니다.


    3] 그러나 에바브로디도의 참 진가는 이곳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돕는 데서 나아가 부족함을 채우는] 역할을 잘 하였습니다.

    [30절]

    저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아보지 아니한 것은 나를 섬기는 너희의 일에 부족함을 채우려 함이니라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교제(형제애)를 중요시합니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영혼을 구원하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영적 전쟁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봉사를 중요시 합니다.

에바브로디도는 성도를 생각하고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고
영적 전쟁에서 함께 싸울 줄 아는 균형잡힌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그런데 바울 사도는 그를 "함께 군사된 자"라 부릅니다.
그가 성도를 생각하고,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함께 수고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나아가 함께 싸우는 영적 군사!
어떻게 함께 싸웁니까?
한 걸음 후방에서 어씨스트를 해주는 돕고 채우는 군사입니다.

    운동 경기에서 뒤를 받쳐주고 어씨스트해주는 선수가 골을 넣는 선수 못지 않게 중요합니다.

    에베브로디도는 주의 종 바울 사도를 섬기기 위하여 자기의 생명을 아끼지 않았습니다(30절- "자기의 생명을 돌아보지 아니한 것은"). 그는 주의 종 바울에게도 매우 축복된 사람입니다! 어려운 상황 속에 있는 바울 사도와 함께 기도하며 사도 바울을 격려하였습니다.
사도 바울과 함께 수고하였습니다.

    에바브로디도는 빌립보 교회에도 축복이 되었습니다. 그가 바울 사도 곁에 있으면서 충성되게 사역함으로 인해서 빌립보 교회는 바울의 사역에 동참하였습니다.

    에바브로디도는 돕고 채우는 마음을 가졌으며, 그의 희생과 봉사로 인하여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세상과 교만을 이기고 승리하는 유일한 길은 놀랍게도 돕고 채우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통해서입니다.
성령과 말씀으로 하여금 우리의 생활에서 역사하도록 허락할 때에 우리는 이 마음을 받을 수 있습니다(2:12-13).


    4] 하나님께서는 이런 에바브로디도를 축복하시고 그를 회복시켰습니다(28-30절)

   28절]

   저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나 하나님이 저를 긍휼히 여기셨고 저뿐 아니라 또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내 근심 위에 근심을 면하게 하셨느니라

    많은 사람들이 낮아진다는 것은 나를 잃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높아질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스스로 주님처럼 낮아지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종의 자리까지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은 주님을 높게 하나님의 아들의 자리까지 올리셨습니다!


    5] 바울 사도는 "주안에서 그를 영접하라"고 권면합니다(살전 5:12-13참조).

    그리스도의 충성된 종은 정당하게 존중하라는 의미입니다.

    "이와 같은 자들을 존귀히 여기라"

충성된 교회의 지도자에 대해 적절한 존경을 표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마무리하는 말]

    디모데나 에바브로디도는 오늘날을 사는 우리 성도들에게도 축복이 됩니다. 우리는 그의 생애와 사역을 읽고 묵상하면서 얼마나 큰 유익을 얻고 있는지 모릅니다.

    디모데나 에바브로디도는 성도들을
생각하고
수고하며
사역자를 채워주며 돕습니다.


    그들의 생각과 수고와 채워줌은 주연보다는 조연으로서의 생각과 수고와 채워줌입니다.

    복음 전파 사역에 주연은 바울 사도로 나타납니다.
디모데나 에바브로디도는  늘 조연이었습니다.
그러나 디모데나 에바브로디도는 조연으로 그리스도를 섬기는 법을 알고 있었습니다.
주님을 위하여 자신을 기꺼이 희생하려고 하였습니다.
디모데나 에바브로디도는  기꺼이 바울의 조력자요 대리자 자리에 머물렀습니다.
조연 역을 잘 감당함을 통해서 자신이 주님께 충성스러운 것을 스스로 입증하였습니다.

    연극은 주연만으로 될 수 없습니다. 수많은 조연과 엑스트라들이 등장합니다.
위대한 연출가이신 하나님의 구원 드라마를 이루는 일에 내가 조연으로라도 쓰임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너무 감격적인 일이 아닙니까?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가 서있는 자리가 무엇입니까?
조연입니까?
주연입니까?
아니면 잠깐 등장했다가 내려가는 엑스트라입니까?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을 생각해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복음을 위해 수고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역자가 그 사역을 잘 할 수 있도록 채워주고 도와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일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헌신함으로 주께서 사용하시는 소중한 인물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설교할 성경 본문]

 19. 내가 디모데를 속히 너희에게 보내기를 주 안에서 바람은 너희 사정을 앎으로 안위를 받으려 함이니
 20. 이는 뜻을 같이 하여 너희 사정을 진실히 생각할 자가 이 밖에 내게 없음이라
 21. 저희가 다 자기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되
 22. 디모데의 연단을 너희가 아나니 자식이 아비에게 함같이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였느니라
 23. 그러므로 내가 내 일이 어떻게 될 것을 보아서 곧 이 사람을 보내기를 바라고
 24. 나도 속히 가기를 주 안에서 확신하노라
 25. 그러나 에바브로디도를 너희에게 보내는 것이 필요한 줄로 생각하노니 그는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된 자요 너희 사자로 나의 쓸 것을 돕는 자라
 26. 그가 너희 무리를 간절히 사모하고 자기 병든 것을 너희가 들은 줄을 알고 심히 근심한지라
 27. 저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나 하나님이 저를 긍휼히 여기셨고 저뿐 아니라 또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내 근심 위에 근심을 면하게 하셨느니라
 28. 그러므로 내가 더욱 급히 저를 보낸 것은 너희로 저를 다시 보고 기뻐하게 하며 내 근심도 덜려 함이니
 29. 이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서 모든 기쁨으로 저를 영접하고 또 이와 같은 자들을 존귀히 여기라
 30. 저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아보지 아니한 것은 나를 섬기는 너희의 일에 부족함을 채우려 함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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