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3:9]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들어가는 말]
어제 밤 CCTP 크리스마스 콘서트가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감격한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 누가 가장 감동하는가 보았더니 주역으로 등장하는 연주자의 부모님이었습니다. 그 연주자를 가장 사랑하는 분에겐 특성이 있었습니다.
그 사랑하는 사람이 등장할 때마다 그분의 얼굴엔 남다른 감격이 넘치고 있었습니다.
얼른 구분이 되더라구요.
왜입니까?
그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에서 비교할 수 없는 사랑의 대상을 만났습니다.
그분은 그리스도 예수님이십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몸을 내어주시기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이 놀라운 사랑 관계이기 때문에 나타나는 자연스런 현상이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있습니다.
그 중 몇 가지를 말씀을 따라 나누면서 은혜 받는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리스도인의 특성이 무엇입니까?
1. 그리스도를 자랑합니다.
4절]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만]하니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1] 그리스도인은 나를 자랑하지 않습니다.
나의 육체를 신뢰하지 않습니다.(4-6절)
나의 육체를 신뢰함보다 예수 그리스도 자랑합니다.
바울 사도는 신뢰할 만한 육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자랑할 꺼리가 많았습니다.
5절]
내가 팔일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6절]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
그러나 그는 이 모든 것을 그리스도 앞에서 배설물처럼 내려놓았습니다.
그가 염세주의자였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위대성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위대함 앞에서 그의 육체, 곧 자랑거리란 초라한 걸레 같은 것이었습니다.
비교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완성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하심 앞에 할례가 어떤 의미가 있겠습니까?
하나님 나라의 왕자이신 예수님 앞에서 이스라엘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하나님의 아들 앞에서 히브리인이나 바리새인이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하나님의 열심 앞에서 그의 열심이란 것이 무슨 빛을 발할 수 있겠어요?
햇빛 앞에 있는 반딧불이나 등잔불과 같은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온전하심 앞에서 자랑거리이겠습니까?
나의 육체를 신뢰한다는 일은 헛된 것입니다.
부끄러울 뿐입니다.
우리 고국의 첫 우주인으로 쓰임을 받은
이소연 자매는 기독교인입니다.
그는 이런 간증을 남기고 있습니다.
“지구본을 보면 부산과 서울간의 거리는 정말 작다. 그 거리를 위로 세운 길이가 제가 갔다 온 거리다. 지구를 16바퀴 돈 위치가 지상으로부터 겨우 400Km 떨어진 곳이었다.
미국이 매년 한국 전체 예산에 못지않은 돈을 20여년간 쏟아 부으며 올려 보낸 게 겨우 그 거리
그렇게 피나는 노력을 해서 올라가봐야 전 우주적 관점에서 보면 사실 지구 밖에 나오지도 않은 것이다.
몸부림쳐 봐도 하나님이 만드신 세계에서는 표도 나지 않는 거리를 나온 것이더라”
그러므로
2] 그리스도 예수님을 자랑합니다.
3절]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당이라
육체를 신뢰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에게는 중요한 특성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면서
그리스도 예수님을 자랑하는 일입니다.
[예화]
이명박 대통령이 작년 12월 4일 가락시장을 방문해서 무청과 시래기를 파시던 박부자 할머니 목에 자신이 20년간 써온 목도리를 둘러드렸습니다.
그 이후로 그 할머나는 목도리 할머니 혹은 시래기 할머니로 불리고 계십니다.
이 할머니는 이 명박 대통령을 만난 후, 중요한 특성이 한 가지 생겼습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은 것이 그 하나요,
이 대통령을 자랑하며 산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밤 11시에 가락시장에 출근해서 아침 9시까지 시장을 지키며 장사를 하고 계십니다.
어느 기자가 이명박 대통령과 만난 1년을 기념하여 그분을 찾아 이렇게 질문과 답을 적고 있습니다.
-하루 얼마나 버세요? "한 2만원, 최고 많이 벌면 3만원.
새벽 1시15분. 할머니 휴대전화가 울렸다.
잠시 후 그랜저 승용차가 멈춰 서더니 우거지 두 단과 무청 한 단을 싣고 갔다.
저 손님은 꼭 일이천원씩 더 주고 가. 만날, ''더 주고 가는 사람이에요'' 그람서 전화로 우거지 있냐고 물어보고 와."
할머니는 대통령을 가리켜 ''믿는 양반''이란 말을 여러 번 했다. "울 엄니가 그렇게 교회를 잘 믿으셨어. 그려서 그런지 돌아가실 때도 편히 가셨고. 믿는 양반이 잘 허게 기도혀야지.
대통령 붙들고 울음을 터뜨렸던 할머니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말을 맺습니다.
-대통령이 다시 오면 뭐라고 하실 거예요?
"인자 웃어야지라,
대통령만 제대로 만나도 저렇게 자랑하고 사는데요. 같은 고생을 해도 힘주고 사는데요. 하물며 만왕의 왕 하나님을 만난 우리겠습니까?
주님을 자랑하고 사는 것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본분인 줄 믿습니다.
2. 그리스도로 채웁니다.
[7-8절]
7.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위대성을 만나고 나서 자신이 그렇게 유익하던 것이 무익한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모두 배설물처럼 내려놓았습니다.
자신이 자랑했던 혈통이라는 것이 무익하였습니다.
자신이 자랑했던 학력이라는 것이 무익하였습니다.
자신이 자랑했던 열성이라는 것이 무익하였습니다.
자신이 자랑했던 행위라는 것이 무익하였습니다.
그리스도를 만난 후, 자신에게 유익하던 옷들은 헌 옷 같고 벗어버려야 할 옷과 같았습니다.
그는 그 헌 옷을 벗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난 하나님 의'로 옷입었습니다.(7-9절)
1] 자신에게 유익하던 것을 무익하게 여겼습니다.
7절]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자신에게 유익하던 것을 무익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면 이것이 다입니까?
아닙니다.
그 빈 동그라미 앞에 모신 분이 계십니다.
2]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장 고상한 지식으로 채웠습니다.
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박종순 목사님은 '동그라미 인생'이란 칼럼을 쓰셨습니다.
"동그라미 그 자체는 수적 가치나 의미가 없다. 그렇다고 해서 동그라미 없는 수학이나 세계는 의미도 재미도 없다. 동그라미는 원만함과 무한한 가능성을 의미하고 긍정적 포용성을 시사한다. 그러나 동그라미가 다른 수와 연합하고 접목됐을 경우 그 의미나 가능성은 천문학적으로 변형된다.
그것은 삶의 공식과도 유사하다. 인생이란 그다지 절망적인 존재도 그렇다고 위대한 존재도 못된다. 우주선을 발사하고 정보통신의 미래세계를 열고 있는가하면 지극히 작은 질병이나 사건도 풀지 못하는 가녀린 존재이다. 우린 여기서 바울의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는 고백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바울이 말한 능력주시는 그분이야말로 더할 수도 덜할 수도 없는 절대적 가치이며 절대수임을 주지해야 한다."
동그라미와 같은 내 인생이 그냥 홀로 있으면 무익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그 동그라미 앞에 씌여지는 숫자가 되십니다.
어떤 숫자보다 더 크고 숭고한 숫자가 되어 주십니다.
나 자신이 그리스도 없이 홀로 일 때는 동그라미에 불과하지만, 그래서 부족한 존재요, 배설물과 같은 존재이지만, 그리스도를 앞에 모시면 우리도 의미있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더해질 때, 값진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3. 그리스도를 따라 삽니다.
[9-10절]
9.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10.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그리스도를 자랑하고
그리스도로 채운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를 따라 삽니다.
1]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께로서 난 의'를 따라 삽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바울은 무엇을 얻었습니까?
하나님의 의(義)입니다(3절). 바울 사도는 많은 법적인 의를 소유하고 있었으나(6절)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참된 의가 결여되어 있었습니다. 회당에 다닐 정도로 종교적이라는 것과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의롭다는 것과는 별개의 것입니다.(위어스비)
9절]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의를 그리스도 안에서 얻음으로 자아를 깨끗케 합니다.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보혈로 모든 죄를 깨끗케 합니다.
"나의 의는 이것 뿐 예수님 피밖에 없네."
하나님께로서 난 의를 따라 살아갑니다.
내 행함의 열매를 먹고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의의 열매를 먹고 삽니다.
[예화]
세계적인 골프 여제라는 칭찬을 받고 있는 신지애 선수에게 세상적인 봄이 왔습니다. LPGA에서 신인왕에 오름과 동시에 상금왕도 거머쥐었습니다. 그런 그가 오늘에 이른 공을 돌아가신 어머니께 돌린 글을 읽었습니다.
"어머니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시면서 나온 보험금 중 빚을 청산하고 남은 1,700만원으로 골프를 했다. 그리고 돈을 아끼기 위해 동생이 입원한 병원에서 먹고 잤다.
엄마라는 존재와 그리고 돌아가셨을 때 그런 아픔의 시간들이 지금의 침착함과 냉정함까지 생길 수 있게 된 큰 동기가 됐다."
오늘 날의 영광은 어머니의 희생 위에 핀 꽃입니다. 신 자매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의를 덧입고 그 의를 따라 삽니다.
2] 부활하신 주님의 권능을 따라 삽니다.
구원받기 이전의 바울은 종교적인 사람이었으나, 그의 종교는 그를 구원할 수없었습니다. 그가 영원한 생명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자기의 종교를 잃어야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개들"이라고 불렀으나, 여기서 바울 사도는 할례를 강조하는 유대 선생들을 "개들"이라고 불렀습니다. (위어스비)
참된 예배는 성령으로 이루어지며(요 4:20-24) 육신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참된 예배는 인간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는 것입니다.
육신의 힘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달려 있습니다.
바울은 유대의 랍비로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명성을 지닐 수 있었습니다. 출생과 훈련에 있어서 그는 친구들보다 훨씬 뛰어났습니다(갈 1:11-24). 그에게는 유대 종교가 생명이었습니다.
너무도 열성인 나머지 자기와 다른 사람들을 박해하기조차 하였습니다.
열심으로 천국에 가야 할 사람이 있다면 그는 바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는 잃어버린 죄인이었습니다!
그리스도를 만났을 때 그는 세상과 육신의 모든 학식과 재능을 배설물로 여겼습니다!
조심스럽게 측정해 보고, 스스로 평가해 보고, 그리스도를 떠난 그의 모든 종교와 세상의 명예는 그럴 만한 가치가 없는 것으로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는 그리스도를 원하였습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 바울 사도는 그 부활의 권능을 덧입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자기의 생활 가운데서 부활의 능력을 체험하였습니다(엡 3:14-).
"일들"에 둘러싸여 있어서 그 결과, 그리스도 안에서 마땅히 누려야 할 기쁨과 평화를 잃어버리는 그리스도인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이들은 "땅의 일들을 생각하여"(3:19) 헌신한 신자로서 가져야 할 신령한 마음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부활의 권능을 덧입어야 합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권능을 덧입습니다.
3] 그리스도의 고난을 따릅니다.(11)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합니다.
10절]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을 받는 특권을 가졌습니다(빌 1:29참조).
고난 받는 것이 자신에게 유익이라 선포합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합니다.
[마무리하는 말]
11.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이는 그리스도인의 목표입니다.
우리는 죽은 자와 방불합니다.
이미 죄로 죽은 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위해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피로 맺어진 예수 그리스도 친백성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자랑합니다.
우리를 비우고 그리스도로 채웁니다.
내 마음대로 살지 않고 그리스도를 따라 삽니다.
그리스도 부활의 권능을 덧입고
기꺼이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합니다.
아담 안에서 우리가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지만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죽음으로부터 부활에 이를 것입니다.
할렐루야!
[설교할 성경 본문]
1. 종말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
2.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손할례당을 삼가라
3.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당이라
4.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만하니 만일 누구든지 다른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5. 내가 팔일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6.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
7.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9.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10.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11.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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