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2:22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 바에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거하셨느니라 23 그가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어 못 박아 죽였으나 24 하나님께서 사망의 고통을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게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22 AndreV Israhlitai, akousate touV logouV toutouV: Ihsoun ton Nazwraion, andra apodedeigmenon apo tou qeou eiV umaV dunamesi kai terasi kai shmeioiV oiV epoihsen di autou o qeoV en mesw umwn, kaqwV autoi oidate,
우리들에게는 누구나 크고 작은 문제들이 있습니다. 그 문제들로 인하여 우리의 삶에는 짙은 구름이 끼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내밀한 번민들을 누구와도 말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우리들에게 또한 그러한 문제들에 대하여 기독교는 너무나 추상적이지 않은가 하는 의문이 듭니다. 우리 신앙생활은 그런 문제에 관한한 무기력 증세에 빠져 있다는 자괴감마저 듭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은 아예 포기하고 살거나, 아니면 인간적인 방법으로 해결해 보려하지만, 결국은 원점으로 돌아와서 인생이란 그런 것이려니 하고 살아 갑니다.
그러면, 예수 그분은 우리 인생에 과연 해답일 수 있는 것일까요?
1. 예수님이 하나님 권능을 우리 가운데서 베푸시는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을 통해 주신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문제보다 훨씬 크십니다.
행2:22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 바에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거하셨느니라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힌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잔인한 유대인들의 술수에 몰려 광장까지 끌려 나왔습니다. 그녀는 인간의 원초적인 성문제를 안고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성문제로 인하여 죽을 수밖에 없었던 입장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예수님을 만나 그 문제의 답을 찾았습니다. 하나님께 수치스러운 삶을 청산하고 하나님의 위대한 용서를 온땅에 드러내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결혼 문제에 깊은 갈들을 갖고 있었습니다. 다섯 번이나 결혼에 실패했고, 지금은 여섯 번째 남자와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녀 또한 예수님을 만나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온 마을에 뛰어다니면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을 전하는 존재로 바뀌어졌습니다.
건강문제로 고민하던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서 그 문제를 해결함 받았습니다. 중풍병으로 고생하던 사람이 예수님 앞에 들려나와 죄사함을 받고, 일어섰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존재로 변화되었습니다.
너희도 아는 바에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거하셨느니라
문제 많고, 복잡한 세상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답을 얻었습니다. 하나님을 체험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같은 세상에 살면서도 예수님에게서 아무 것도 기대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베드로 에게서 설교를 듣고 있는 바로 그 유대인들입니다. 오늘 베드로에게서 설교를 듣고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큰 권능과 기사와 이적을 행하였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다만 그것은 하나님의 일과 별개의 사건으로 생각하였습니다. 나와는 상관 없는 일로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 이스라엘 사람들입니다. 다만 조상적부터 하나님을 믿기에 천하 각국에서 오순절기를 지키려고 예루살렘에 모여온 유대인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죽으신 사건을 담담히 생각할 수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이렇게 멀찌기 따를 수도 있습니다
그런 유대인들에게 오늘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행하신 큰 능력과 기사와 표적이 유대인들이 섬기는 바로 그 하나님이 하신 일인 것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거하셨느니라. 바로 그들을 위한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전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그들을 위한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바로 나의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는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는 능력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큰 능력과 기사와 표적을 나의 삶 속에서 행하시기를 원하십니다.
2. 하나님 사랑에 감복하고 그 사랑에 대한 표현을 합시다.
십자가는 ‘사랑의 표시’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십자가에 사랑하신 외아들을 내어주실 만큼 사랑하셨다는 표시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하나님 사랑하는 표시를 늘 못하고 살아갑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정반대로 표시한 대표적인 예입니다.
23 그가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어 못 박아 죽였으나
오늘 아침, 저는 6살인 아들 위로에게 예수님을 얼마나 사랑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위로는 자기가 벌릴 수 있는 만큼 팔을 벌려 ‘이 만큼!’ 사랑한다고 했습니다. 벹멘은 얼마나 사랑하느냐고 했더니, 손을 조그맣게 벌려서 ‘이 만큼’ 사랑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거실에서 그림 그리는 것을 보니까, 벹멘을 그리고 있습니다.
저는 이 모습을 보면서 정말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사랑의 표현을 그렇게 할텐데.... .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말로만 사랑한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표시를 했습니다.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창22:02)’는 말씀을 들었을 때, 정말 그렇게 순종함으로 사랑을 표시했습니다.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주님의 사랑에 대하여 사랑의 표시를 잘한 신약적 인물로는 마리아를 말할 수 있습니다. 옥합을 깨뜨려 그 향유를 예수님께 부은 자매 말입니다. 마리아는 예수님 곁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유심히 들었습니다. 그리고 깨달은 사실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죽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요 하나님의 뜻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자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다른 제자들이 아까와서 가슴을 칠만한 300데나리온 상당의 향유옥합을 깨뜨려 주님의 머리에 부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을 준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주님의 사랑에 대한 사랑을 표시하기 위해서입니다. 기념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그분의 뜻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녀는 결단을 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소중한 것을 포기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어떤 행동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장사를 준비하는 일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러한 마리아를 기념할 만한 사람으로 인정하셨습니다. 그녀가 예뻐서 기념할 만한 사람으로 인정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녀가 똑똑하고 잘나서 기념할 만한 사람으로 인정하신 것이 아닙니다. 값진 것을 바쳤기 때문에 기념할 만한 사람으로 인정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그 큰 사랑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 대한 십자가의 사랑을 알고, 그 사랑을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은 하나님 역사에서 기념할 만한 사람으로 인정받습니다.
산정현교회에 주기철 목사나 조만식 장로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표현을 할 수 있었던 기념비적인 존재였습니다.
서머나 교회가 이렇게 하나님 사랑에 감복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나아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표현을 할 수 있는 교회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이때, 이 토론토 사회에서 기념비적인 교회가 될 것입니다. 예수님을 닮은 점에서 기념비적인 교회가 될 것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면에 있어서 기념비적인 교회가 될 것입니다. 원주민들에 대한 관심을 가진 면에 있어서 만은 기념비적인 교회가 될 것입니다.
우리들이 속한 다락방 또한 하나님 사랑에 감복하는 기념비적인 모임이 되기를 원합니다. 말씀 안에서 서로 사랑하는 일에 있어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표현을 할 수 있는 기념비적인 공동체가 되기를 원합니다. 선교사를 위해 기도하는 일에 있어서 기념비적인 공동체가 되기를 원합니다. 어떤 선교사를 구체적으로 후원하는 일에 있어서 기념비적인 공동체가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 교회에도 하나님 사랑에 감복하여 그 사랑에 대한 표현을 기쁘게 감당하는 기념비적인 성도들이 있습니다. 그런 신앙의 모델들을 볼 때, 우리도 힘이 됩니다.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꿈이 생깁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서로 간에도 무엇인가 될 수 있습니다.
저는 이번 연합 집회 기간 중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중표 목사님은 부모님을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고 했습니다. 아내를 바라보면서 눈물을 흘렸다고 고백했습니다. 감사하기 때문입니다. 술충만한 그의 아버지를 생각해도 감사, 개척교회 시절 너무 힘이들어서 네 차례나 집을 뛰쳐나간 아내를 생각해도 감사해서 눈물이 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 사랑에 감복하여 그 사랑에 대한 표현을 기쁘게 감당하는 그에게는 부친이나 아내를 막론하고 그와 만난 많은 분들이 그에게 기념비적인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사랑에 감복하여 그 사랑에 대한 표현을 기쁘게 감당할 때, 우리는 서로 간에도 특별히 기념비적인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은 죄 아래서 고통당하는 우리들의 한계상황을 해결하시고 우리를 기념비적인 존재로 살게하기 위함입니다.
(요일5:11-13)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3. 하나님께서 그를 살리셨습니다.
24 하나님께서 사망의 고통을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게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모든 사람이 사망의 문제 앞에 속수무책입니다. 우리는 주변의 사람들이 허무하게 이 사망의 권세 앞에 모든 것을 잃고 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른들의 사랑을 독차지 하던 최정윤이란 어린이가 갑자기 쓰러져서 병원에 입원하더니 세상을 떠났습니다. 우리와 함께 예배를 드렸던 강희성 형제가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도 우리보다 더 젊은 사람이요, 이민의 꿈을 안고 이땅에 온 사람입니다. 사망의 권세는 모든 사람에게서 맞춤표를 찍어버립니다. 그러나 지난 주간에 저는 한국에서 5년간 함께 신앙생활을 하던 이만평 성도님 소천 소식을 듣고 아쉬움과 함께 감사함이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그의 부인의 꿈에 나타나서 먼저 가서 기다리겠노라고 웃으면서 구름타고 떠나더랍니다. 예수님은 죽음의 권세까지도 이기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런 부활의 예수님을 사랑하고 있을 때, 그는 이미 예수님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나같은 죄인이 용서함 받아서 주 앞에 옳다함 얻음은 확실히 믿기는 어린 양 예수의 그피로 속죄함 받았네.’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신 예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결론
오순절 성령 사건에 예루살렘이 벌컥 뒤집혔습니다. 베드로는 놀라서 몰려온 무리들에게 이 사건의 전말을 전해주어야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베드로의 설교입니다. 그가 전한 메시지는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에 관한 것입니다. 천지를 진동케 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증거한 설교의 첫 번째 대지는 술취한 것이 아니라 요엘 선지자를 통해 주신 하나님 말씀의 성취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는 예수님께서 행하신 사역(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이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이었음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그 아들을 내어주시기까지 여러분을 사랑하신 하나님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죽음의 권세를 깨치시고 그를 다시 살리심으로 그 말씀을 성취하신 메시아이심을 하나님께서 증거하고 있습니다.
24 하나님께서 사망의 고통을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게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나사렛 예수! 그분에 대하여서는 검증이 끝났습니다. 세상 죄를 지고 가신 하나님의 어린 양이심을 세례 요한이 충분히 증거했습니다. 세상 죄를 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그분이 행하신 일이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증거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도 그분께 주신 큰 능력과 기사와 표적에서 뿐만 아니라, 사망의 고통을 풀어 살리심으로 증거하셨습니다.
요5:36 내게는 요한의 증거보다 더 큰 증거가 있으니 아버지께서 내게 주사 이루게 하시는 역사 곧 나의 하는 그 역사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나를 위하여 증거하는 것이요
그러므로 이 말씀을 받는 우리는 이제 결단해야 합니다. 당시 유대인들처럼 23 그가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어 못 박아 죽이든지, 아니면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을 깨닫고 그 사랑에 걸맞는 삶을 결단하든지 말입니다. 가룟유다는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 대신 세상을 택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300데나리온보다 귀한 하나님의 사랑을 선택했습니다. 그리하여 그녀는 기념비적인 존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이런 하나님의 사랑을 믿기로 결단하는 자에게 마리아에게 주셨던 그 기념비적인 면류관을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eiV umaV dunamesi kai terasi kai shmeioiV)을 베푸시는 분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거하셨느니라
출애굽 시에 하나님
출 13장 3절: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애굽에서 곧 종 되었던 집에서 나온 그 날을 기념하여 유교병을 먹지 말라 여호와께서 그 손의 권능으로 너희를 그 곳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이니라
사단의 권세를 권능으로 부신 하나님
출 15장 6절: 여호와여 주의 오른손이 권능으로 영광을 나타내시니이다 여호와여 ! 주의 오른 손이 원수를 부수시니이다
사망의 권세를 부신 예수님
빌 3:10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11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다스리실 예수님
계 11장 17절: 가로되 `감사하옵나니 옛적에도 계셨고 시방도 계신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친히 큰 권능을 잡으시고 왕노릇하시도다
장차 오실 하나님
마26: 64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말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
기사
히2:04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가지 능력과 및 자기 뜻을 따라 성령의 나눠 주신 것으로써 저희와 함께 증거하셨느니라
이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증거하십니다.
요5:32 나를 위하여 증거하시는 이가 따로 있으니 나를 위하여 증거하시는 그 증거가 참인 줄 아노라
1] 33 너희가 요한에게 사람을 보내매 요한이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였느니라 34 그러나 나는 사람에게서 증거를 취하지 아니하노라 다만 이 말을 하는 것은 너희로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35 요한은 켜서 비취는 등불이라 너희가 일시 그 빛에 즐거이 있기를 원하였거니와
2] 36 내게는 요한의 증거보다 더 큰 증거가 있으니 아버지께서 내게 주사 이루게 하시는 역사 곧 나의 하는 그 역사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나를 위하여 증거하는 것이요
3] 37 또한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친히 나를 위하여 증거하셨느니라 너희는 아무 때에도 그 음성을 듣지 못하였고 그 형용을 보지 못하였으며 38 그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지 아니하니 이는 그의 보내신 자를 믿지 아니함이니라
4] 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40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이 확실한 증거 가운데 특히 하나님의 증거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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