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다윗이 저를 가리켜 가로되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웠음이여 나로 요동치 않게 하기 위하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도다 26 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뻐하였고 내 입술도 즐거워하였으며 육체는 희망에 거하리니 27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치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 28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셨으니 주의 앞에서 나로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리로다 하였으니
우리 나라 가곡 중에 현재명씨가 지은 ‘희망의 나라로’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노를 저어가자 험한 바다물결 (거친 언덕 넘어서)
산천 경계좋고 바람 시원한 곳 희망의 나라로
노를 저어라. 거친 바다 물결.......
이런 노래를 듣고 부르면서 자라났던 우리 어린 시절은 가난했지만, 힘이 있었습니다. 지난 100년 동안에 5백만명이나 되는 한민족이 세계로 쏟아져 나온 것도 이런 민족의 희망이 자리잡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이 선두를 개척하며, 선발대 노릇을 하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독교인이란 사실을 부인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불교가 우리 민족의 다수를 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민 사회에서만은 대부분이 기독교인들인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기독교는 희망의 종교입니다. 불교가 인간의 생노병사의 고뇌를 안고 몸부림치는 철학적 종교라면, 기독교는 죽음의 문제를 극복한 부활의 종교요, 새하늘과 새땅을 바라보는 희망의 종교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베드로는 다윗의 신앙을 빌어 선언 합니다.
“육체는 희망에 거하리니!”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1] 그 안에 계신 살아계신 주님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희망이 없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로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는 주님의 말씀 안에서 희망을 발견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주님께 분명한 신앙고백을 할 수 있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마16:16
그는 참으로 복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마16:17)는 주님의 말씀대로 그는 함께 하시는 예수님 안에서 희망을 발견하였습니다. 주님께서는 주님 안에서 희망을 발견한 베드로 위에 교회를 세우고, 그에게 천국 열쇠를 주십니다.
마16: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19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이 베드로가 가장 혹독한 야단을 주님으로부터 받는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부인했던 때가 아닙니다.
마16:21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
그가 그리스도를 오해하고 희망을 잃어버렸을 때입니다. 베드로가 왜 희망을 잃어버렸습니까? 자기 인생의 희망이신 예수님께서 죽임을 당하여 자신을 떠나버린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는 사건은 자기의 희망이 그가 그리스도를 오해하고 희망을 잃어버렸을 때입니다.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예수님을 만나지 않았다면 어디 베드로가 그렇게 희망이 넘쳤겠습니까? 그러므로 그는 말합니다.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예수님을 붙들고 간청했습니다. 그는 희망을 놓치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 일로 인하여 베드로는 주님으로부터 호된 질책을 당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죽으심이 사실로 나타났을 때 그는 많이 방황하였습니다. 디베랴 바닷가로 헤매며 방황하였습니다. 희망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이 베드로가 어떻게 희망을 회복하고 희망의 사람이 되었습니까?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나서입니다. 성령으로 찾아오신 주님을 깨닫고 나서입니다. 자신의 육체 안에 충만히 거하시는 주님을 알고나서입니다.
그후로 베드로는 영원한 희망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소망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베드로가 쓴 서신을 읽어 보십시오. 그곳에는 그리스도가 그와 함께하심으로 인한 희망이 큰 주제가 되어 있습니다. 벧전1:03을 함께 읽어보십시다.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04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베드로는 부활하신 주님 안에서 산소망을 발견하였던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그의 심령에 살아계실 때 그의 육체는 살아있는 소망으로 넘치게 되었던 것입니다.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다윗의 시편을 담대히 외칠 수 있었습니다.
“육체는 희망에 거하리니!”
이는 부활하신 주님을 영접한 사도 바울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의 주님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분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난후, 그의 육체는 희망으로 넘치게 되었던 것입니다. 산소망이 되셨습니다.
이제도 여기 서서 심문 받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 조상에게 약속 하신 것을 바라는 까닭이니 07 이 약속은 우리 열 두 지파가 밤낮 으로 간절히 하나님을 받들어 섬김으로 얻기를 바라는 바인데 아 그립바 왕이여 이 소망을 인하여 내가 유대인들에게 송사를 받 는 것이니이다 08 당신들은 하나님이 죽은 사람 다시 살리심을 어찌하여 못 믿을 것으로 여기나이까 (행26:6,7)
바울 사도는 이 그의 육체에 영생 얻을 희망이 넘치고 있었습니다. 네로황제도 그의 육체는 죽일 수 있었지만 그의 육체 안에 거하는 영생 얻을 희망을 빼았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디도에게 영생의 희망 때문에 사도가 되었다고 전했습니다.
나의 사도 된 것은 ...... 영생의 소망을 인함이라(딛1:2-3)
하나님은 이러한 희망 중에 살기 원하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절망 속에 사는 사람보다는 희망 속에 사는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를 더 크게 체험합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심리학자 가운데 빅터 프랭클이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저서에서 "나찌 수용서에서 말할 수 없이 잔인한 고문과 무서운 형벌과 비인간적인 학대 속에서 나를 생존하게 만든 것은 희망이었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그는 나찌의 무서운 고문을 받으면서 마음 속에 이런 꿈을 키웠습니다. 무서운 고문의 시대가 언젠가는 끝난다. 그러면 나는 이 수용소에서 나가 내가 붙잡은 이 삶의 희망을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말해 주겠다. 이 끔찍한 고문을 넘어서서,이 절망적인 환경을 넘어서서 저 건너편에 있는 희망을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나는 끝까지 이 고문을 견디겠다. 그의 희망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그런 후 그는 극적으로 살아났습니다. 그리고는 정말로 지금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이 삶의 의미와 희망의 의미를 말하는 위대한 심리학자가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여러분의 육체에 살아있는 희망이 넘치고 있습니까? 이는 부활하신 주님이 살아계시기 때문인 것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육체에 희망이 넘치는 것은 성령받은 자의 명백한 표시입니다. 하늘의 소망이 넘치는 사람은 성령충만하다는 증거입니다.
“육체는 희망에 거하리니!”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2] 그 안에서 자라고 있는 하나님의 생명 때문입니다.
약 100년 전 애굽에서 3천년 된 고분을 발굴했는데 미이라가 나왔고 그옆에 꽃병이 하나 있었습니다. 이 꽃병을 런던의 대영박물관으로 보냈는데 사람의 실수로다. 꽃병이 깨지자 바닥에 몇 개의 완두가 있는 것을 발견했는데 너무 오래되어 겉이 쭈글쯔글했고 차돌처럼 딱딱했습니다. 전문가들이 연구 검토한 후 땅에 심었더니 30일 후 새파란 싹이 돋아났습니다.
3천년간 침묵을 지킨 완두콩의 생명이 대지의 품 안에서 깨어났던 것처럼, 우리 안에 살아 있는 희망은 하나님 안에서 언젠가는 분명히 이루어 집니다. 믿음을 잃지 맙시다. 생명은 사람에게 잘 보이지 않고, 잘 자라지 않은 것 같지만, 반드시 자랍니다.
세계 제 2차대전 때 독일 쾰른의 지하실에는
"나는 태양이 빛을 발하지 않을 때도 그 태양을 믿으며,
나는 사랑을 느끼지 못해도 (그분의 사랑을)믿으며,
하나님이 침묵하고 계실 때도 그를 믿는다."
라고 쓴글이 있었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희망을 간직하고 인내로 기다리면 하나님은 반드시 이뤄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이 소망이 있는 것은 영혼의 닻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며 휘장안에 들어간다"(히6:19)
샤니라는 한 프랑스인이 나폴레옹의 비위를 건드리게 되었습니다 나폴레옹은 샤니를 지하감옥으로 보냈습니다.샤니는 그의 친구인 나폴레옹에게 버림을 받은것 같았고 바깥세계의 모든 사람들도 그를 잊은듯 했습니다. 어느날 지하감옥바닥의 돌틈에서 푸른싹이 돋아 나왔습니다. 샤니는 매일 간수가 주는 물을 싹에 부어주었습니다. 마침내 싹은자라서 파아란 꽃을 피웠습니다.이 외로운 죄수는 전에 벽에 써놓았던 말들을 지워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 "하나님께서 보호하신다"라고 새기었습니다.하나님께서 는 샤니를 더욱 축복하셨습니다. 샤니의 옆방친구에게 어린 딸이 있었는데 이 딸이 면회를 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린 소녀는 꽃을 키운 샤니의 정에 감복하였습니다. 이러한 이야기가 조세핀 왕비의 귀에까지 들어갔습니다. 조세핀은 "꽃을 그토록 사랑하며 보살펴 준 사람은 나쁜 사람일 수가 없어요"하고 말했습니다.샤니는 석방되었습니다.꽃이 주님을 믿도록 가르쳐주었던것입니다.
“육체는 희망에 거하리니!”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3]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 때문입니다.
성경은 죄와 절망 가운데 있는 인간들에게 희망을 가지게 하려고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무엇이든지 전(典,성경)에 기록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 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안위 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 (롬15:4).
에드워드 모트라는 37세 된 목수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목수라기보다는 캐비넷 제조공입니다. 이 사람은 젊은 시절, 공장에서 일하면서 열등의식과,반항심,원망 등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겨우 이런 공장에서 망치나 두둘기며 일하다니,,,,우리 부모는 왜 나에게 이런 삶밖에 주지 못하는 걸까?"
이 열등의식,반항,원망,,,,삶은 그에게 전혀 무의미한 것이었고, 그에게 소망이란 조금도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추운 겨울날,그가 런던의 거리를 배회하다가 길가에 있던 자그마한 교회에 들리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그 교회에 들어갔습니다. 그 교회 강대상에서 존 하이야트 목사님이 요한복음 3장을 가지고 "거듭나는 도리"에 관한 설교를 하고 있었습니다. 에드워드가 그 말씀을 들었을 때"그렇다,나는 거듭나야 한다"라는 강렬한 소원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성령께서 그의 마음 문을 열어 주셔서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거듭났습니다.
이렇게 거듭난 에드워드 모트는 그의 일기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내 망치는 이제 노래하기 시작했다. 내 망치는 이제 춤을 춘다. 그리고 내 눈동자는 생기가 돌고 내 마음 속에는 생수가 솟는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마음에 오셨기 때문이다. 나는 거듭났다!"
이제 그는 행복한 목공이었습니다. 그의 생은 점점 풍요로워졌습니다. 자기가 고용되어 일하던 목공소가 자기의 소유가 되었으며 그 목공소는 점차 확장되었습니다. 곧,그는 성공적인 사업가가 된 것입니다.
그가 55세 되던 해, 자기를 거듭나게 하신 주님의 은헤가 너무나 놀라워서 그 주님께 자신의 전 재산을 바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주님, 주님이 축복하셔서 번창케 하신 목공소입니다.이것을 다 주님 앞에 드리겠습니다. "라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 목공소를 팔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판 돈으로 런던의 언덕위에 침례교회 하나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목회 공부를 하여 목사 안수를 받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자기의 전 재산을 드려서 교회를 짓고 자기를 구원하시고 거듭나게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기 시작한 그 첫날, 그는 오래전 자기 나이 37세였을 때 자기를 거듭나게 하셨던 주님의 첫 사람을 기억하면서 그 소망을 주신 주님의 은혜가 감격스러웠던지 주님을 향한 감사의 시를 지었습니다.
그 시는 찬송가(539장)로 널리 불리워지게 되었습니다.
이 몸의 소망 무엔가 우리주 예수 뿐일세
우리주 예수 밖에는 믿을 이 아주 없도다.
굳건한 반석 되시니 그 위에 내가 서리라
그 위에 내가 서리라
하나님의 말씀은 절망 중에 있는 인간까지도 참된 희망 안에서 소생시킵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이렇게 말씀 안에서 살아난 기쁨을 노래했습니다.
주의 종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나로 소망이 있게 하셨나이다
이 말씀은 나의 곤란 중에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음이니이다 (시119:49-50)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희망되심을 직선적으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주 여호와여, 주는 나의 소망이시요
나의 어릴 때부터 의지시라(시71:05)
오늘날도 유대인들이 이 세상에서 부각을 나타내는 배경에는 하나님 말씀 안에서 희망을 발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유대인은 하나님 말씀에 대한 사랑을 이렇게 교육한다고 합니다.
아이가 겨우 사물을 보며 구분할 줄 아는 때가 되면 구약 성서를 꺼내어 그 표지에 꿀물을 발라서 빨아 먹게 한 다음 "이 꿀이 달듯이, 하나님의 말씀은 너희 영혼에 달고, 인생에 있어 모든 지혜를 주신다. 그러므로 너는 죽을 때까지 이 말씀을 읽고 사랑해야 한다"
사35:4-8 그가 오사 너희를 구하시리라 하라 사35:05 그 때에 소경의 눈이 밝을 것이며 귀머거리의 귀가 열릴 것이며 06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벙어리의 혀는 노래 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 07 뜨거운 사막이 변하여 못이 될 것이며 메마른 땅이 변하여 원천이 될 것이며 시랑의 눕던 곳에 풀과 갈대와 부들이 날 것이며 08 거기 대로가 있어 그 길을 거룩한 길이라 일컫는바 되리니 깨끗지 못한 자는 지나지 못하겠고 오직 구속함을 입은 자들을 위하여 있게 된 것이라
이러한 유대인들의 말씀을 존중하는 희망에 찬 신앙은 사막을 꽃동산으로 바꾸고 있습니다.
사막에 샘이 넘쳐 흐르리라.
사막에 꽃이 피어 향내내리라.
주님이 다스리는 그 나라가 되며는
사막이 꽃동산되리라.
이스라엘 민족의 노래입니다. 그들이 희망 속에서 노래한 대로 그들의 땅 네게브 사막은 농작물들이 자라는 푸른 초원으로 바뀌어져 가고 있습니다. 이 노래를 지어 부르던 때에 그들의 처지는 비참했습니다. 나라없는 서러움 속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오늘날 세계가 무시할 수 없는 정치, 외교적인 힘을 가지고 있고 이스라엘 민족들이 세계의 지성과 경제를 점령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세계에서 제일 긴 4,0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동안에 다 합쳐도 불과 몇 백년 동안만 전쟁의 위협을 받지 않았을 뿐 줄곧 정복당했거나,짓밟혔거나 포로가 되는 신세를 면치 못했으며 최근세사에는 나치에 의한 600만 대학살의 참담함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은 역사 속에서도 보이듯이 '하티크바'(=희망)에 찬 미래를 바라보며 살아가고 있다. 이들은 박해 속에서도 이스라엘 민족의 동질성을 구축했는데 그것은 성서 속의 하나님의 약속과 보호를 믿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모세에 5경 즉 '토라'는 이들의 생명선이 되었던 것이다.
이 위대한 폭발력은 어디서 온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그들이 희망을 가지고 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맺음말
단테의 '신곡(神曲)'에 나오는 지옥문의 입구에는 이런 말이 써 있습니다.
“이 문으로 들어가는 너희는 모든 희망을 버려라.”
“지옥은 아무 희망도 없는 세계이고,
희망이 있는 한 지옥이 아니다“
아무 희망이 없는 곳, 그곳이 바로 지옥입니다. 혹시 우리들의 마음에 모든 희망이 사라져 버린 것은 아닙니까? 그곳은 이미 지옥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육체에 살아계신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의 살아계심을 깨달으십니까? 아이를 잉태한 여인이 복중에서 아이가 뛰노는 것을 느끼듯이 그리스도의 생명이 내 안에서 활동하는 것을 느끼십니까? 이는 우리 크리스챤들의 가장 큰 희망입니다. 그곳은 벌써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 복음을 알지 못하는 이방인들을 가리켜 한 마디로 "세상에서 소망이 없는 자"라고 말합니다
빌2: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이 놀라운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희망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소원이 우리 안에서 우리의 희망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소망의 결과
롬8:24 - 구원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골1:23 - 흔들리지 않고 견고함 23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군이 되었노라 24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히6:18,19 - 보중 18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치 못할 사실을 인하여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하여 가는 우리로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 19 우리가 이 소망이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가나니 요일3:3 - 깨끗함
03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딤후4:8 - 주의 상급을 받음
0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성경은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 복음을 알지 못하는 이방인들을 가리켜 한 마디로 "세상에서 소망이 없는 자"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묻습니다. "참된 소망은 어디에 있습니까?"이방인들은 그 희망을 알지 못합니다. 희망이 없습니다. 단테는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지옥의 입구에는 이런 큰 글자가 새겨져 있을 것이다. "일체의 희망을 버려라."생각해 보십시오. 아무 희망이 없는 것,그것이 지옥입니다.우리가 지금 여기서 삶을 살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성품 속에 소망이 있다.
마12:18 보라 나의 택한 종 곧 내 마음에 기뻐하는 바 나의 사랑하는 자로다 내가 내 성령을 줄 터이니 그가 심판을 이방에 알게 하리라 19 그가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20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21 또한 이방들이 그 이름을 바라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그릇된 소망: 헤롯
눅23:08 헤롯이 예수를 보고 심히 기뻐하니 이는 그의 소문을 들었으므로 보고자 한 지 오래였고 또한 무엇이나 이적 행하심을 볼까 바랐던 연고러라
눅24:19 가라사대 `무슨 일이뇨 ?' 가로되 `나사렛 예수의 일이니 그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여늘 20 우리 대제사장들과 관원들이 사형 판결에 넘겨 주어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21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구속할 자라고 바랐노라 이뿐 아니라 이 일이 된 지가 사흘째요
이스라엘의 소망
렘17:13 이스라엘의 소망이신 여호와여, 무릇 주를 버리는 자는 다 수치를 당할 것이라 무릇 여호와를 떠나는 자는 흙에 기록이 되오리니 이는 생수의 근원이신 여호와를 버림이니이다
예수님을 만날 소망
눅2:25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이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26 저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산 소망을 발견한 베드로
(벧전 1;1-12)
베드로는 우리가 알다시피 벳세다출신(요1:44)으로 이름이 시몬이였
는데 예수님을 만나서 올바른 신앙을 고백하므로 '베드로'란 이름을 얻었다.
그의 부친은 요나(마16:17)또는 요한(1\요1:42)으로 불리었으며 동생은 안드레였는데 후일 그들 형제는 예수님을 만났고(요1:40-42) 주의 부르심을 받아 예수님의 졔자가 되었다
12사도에 뽑히게 되었고 (마10:2) 예수님의 총애를 받는 세명의 제자중 하나였다. 예수님께 올바른 신앙을 고백하여 칭찬을 받기도 했던 그는 예수님을 세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했던 사람으로서 강하면서도 매우 연약한 면이 있었던 제자였었다.
그러나 오순절 성령강림이후 성령의 세례와 충만을 받아 예루살렘교회를 대부흥 시킨 위대한 사도 였다. 사마리아 욥바,가이사랴 안디옥을 순행하며 복음을 전파했으며 바울이 복음전파의 일선에 나서면서부터 자취를 감추었다가네로의 대 박해때 (AD54-68)순교했다고 전해지니다.
본서신은 환란중에 있는 신자들이 곧 다가올 박해를 극복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온갖 어려움을 겪을 신자들을 위로 하기 위해 기록되었습니다.
이 서신을 통해 베드로는 환란중에 있는 신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산소망을 제시해줌으로써 고난과 시험에 약해 지지 않고 담대히 대처 할 수 있는 믿음과 소망을 촉구하였습니다. 본 서신은 기독교의 교리가 많이 나오는 편입니다.
3절에 보면 베드로는 "찬송하리로다" 하고 있습니다. 수신자에 대한 인사의 말에 이어서 베드로는 하나님께 찬미를 하라고 한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 안에서 산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언제부터 산 소망이 있게 되었고 왜 찬송을 해야만 합니까?
3절 - 찬송하리로다 무엇을 찬송하라는 말인가?
그것은 우리 主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다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본문 1장24절에 보십시오,
우리가 만약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했다면 우리의 삶은 24절의 고백과 같을 것입니다.
(벧전1:24)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마르는 풀처럼, 시들어지는 꽃처럼 그것이 우리의 삶의 모습의 전부였을 것입니다.
'마르는 풀, 시드는 꽃과 같은 운명을 지향하고 있는 삶,예수 없는 삶이 바로 그러합니다.
그런데 언제 우리가 소망을 갖기 시작했습니까?
거듭나는 순간입니다. 무엇으로 거듭났습니까?(벧전1:23)
(벧전1:23)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우리는 말씀으로 거듭났습니다.
어느날 ,하나님의 거룩하신 구원의 말씀을 접촉하기 시작했을 때이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이 구주이심을 알았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나는 예수 없이 영적으로 죽은 자 가운데 있었던 내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영접했습니다. 그 순간 나는 하나님의 무한한 생명에 연결되었고,하나님 안에 있는 그 영원한 생명을 내 것으로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거듭났습니다. 그 순간부터 내 속에는 산 소망이 임했습니다.
이 사건이 여러분에게 있었습니까? 참으로 거듭나서 이 산 소망이 여러분의 것이 되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오늘 여러분에게 희망이 있습니까? 산 소망이 여러분 안에 정말 있는지요? 아니면 에드워드 모트가 그러했듯이 희망 없이 방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매주일 어김없이 교회에 출석하지만 아직도 거듭나지 못한 것은 아닌지요? 생명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시고 그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의 주님으로 신뢰함으로 거듭나는 삶을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심
-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한 것(4절)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즉 산 소망은 미래의 기업을 보증합니다.
그 기업은 어떤 기업입니까?
하늘에서 우리를 위해 간직하신 하나님의 영원한 기업이 있는데 그 기업은
첫째, 썩지 아니하는 기업
둘째, 더럽히지 않는 기업
셋째, 쇠하지 않는 기업
이처럼 주님께 우리를 위해서 하늘나라에 간직해 놓으신, 우리가 장차 누리게 될 그 영광스러운 기업은 불후의 기업이며, 불변의 기업이며 또한 불멸의 기업입니다. 이것이 하늘 나라에 우리를 위해서 간직되어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사도 베드로는 우리에게 이야기 합니다.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살아 있는 산 소망은 이 기업으로 연결됩니다. 주님께서 나를 위해서 예비해 놓으신 영광스러운 기업으로 연결됩니다. 이것이 산 소망의 능력이며 혹은 산 소망의 결과입니다.
57문:육체의 부활은 당신에게 무슨 위로가 됩니까?
답:생애가 끝나면 나의 영혼만이 홀로 즉시 영혼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에게 돌아갈 뿐만아니라 나의 육신도 그리스도의 능마겨을 통하여 부활하여 다시 나의 영혼과 함께 연합하고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몸과 같이 될 것입니다.
(눅 23: 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빌 1: 23) 내가 그 두 사이에 끼였으니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으나
(고전 15: 53)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고전 15: 54)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이 이김의 삼킨 바 되리라고 기록된말씀이 응하리라
(욥 19: 25) 내가 알기에는 나의 구속자가 살아 계시니 후일에 그가 땅위에 서실 것이라
(욥 19: 26) 나의 이 가죽,이것이 썩은 후에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보리라
(요일 3: 2)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것을 인함이니
(빌 3: 21)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
의왕교회 김정출목사
역사가 아놀드 토인비(Arnold Toynbee)는 이스라엘 민족사를 역사의 불가사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거의 2000년 동안이나 포로와 학살과 나라없는 방랑자의삶을 살던 그들이 1948년에 나라와 국토를 회복한 것은 참으로 기적과 같은 일입니다. 이 기적은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는 저들의 믿음 가운데서 이루어진 일입니다. 이 기적이 당신에게서도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나는 오늘 나의 가치를 몇백배 증대시키리라. 하나의 밀알은 돼지의 먹이도, 빵의 밀가루도 될 수 있지만 나의 밀알은 땅에 심어져서 수천개의 새 밀알을 생산하리라. 나는 능력껏 목표를 향하여 매진하고 성취하면 또 다른 목표를 한단계 높여 가리라.
나는 항상 나의 목적을 세상에 알리고, 사람들은 내 옆에 다가와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으리라. 그리고 나는 세상에 크게 공헌하리라.
오늘부터 나는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다.
나는 사랑이 충만한 마음으로오늘을 살아가리라.
나는 성공할 때까지 투쟁하리라. 계속 노력,계속전진,계속성취를 기도하리라.
나는 위대한 가능성, 원대한 목표를 향하여 끝까지 분투 노력하리라.
나는 오늘 일을 미루지 않고 최후의 순간처럼,마지막 결산의 순간으로 맞이하고 생애에 가장 훌륭한 오늘이 되게 하리라.
나는 행복스럽고 생산적이고 광명과 웃음으로 내감정을 조절하리라.
나는 웃으면서 이 세상을 살아가리라. 나는 웃으면서 여유있게 성공자가 될 것이다
내게 능력주시는 자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빌4:13)
오늘 새벽 시 분에 성도님댁의 문앞에서 성도님과 가정을 위하여 기도 하고 갑니다. 방문자 드림
딛 2장 13절: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히 10장 23절: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않고 굳게 잡아
벧전 1장 3절: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벧전 1장 21절: 너희는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
벧전 3장 15절: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요일 3장 3절: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뉴 멕시코의 한 흑인 가정에서 슬픔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오랜 병 끝에 마지막 숨을 거두는 어머니가 열 두살난 아이의 손을 잡고 최후의 말을 남기고 있었다. "랠프야, 너에게 물려줄 것은 한 가지도 없구나 그러나 엄마의 말을 잊지 말아다오. 아무리 괴로와도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놓쳐서는 않된다, 알겠지?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잊지 마라." 랠프는 1년 사이에 아버지와 어머니를 잃고, 빈 손을 든 고아가 되었다.
그는 로스앤젤스의 할머니에게 인계되어 갖은 노동에 종사하면서도 최고의 교육을 마칠 수가 있었다. 그는 인종차별과 가난 속에서 수십번 학교를 중단하려는 위기가 있었으나, 그때마다 어머니가 최후로 남긴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뿌리에 매달려 모든 고통을 극복할 것이다.
이 소년은 성장하여 아들은 소아마비가 되고, 가정적으로도 불행하였으나, 믿음 소망 사랑의 뿌리는 그로 하여금 국제 연합에까지 진출하여 인류를 위하여 큰 활약을 하게 한 것이다. 이 소년이 흑인으로서 최초로 노벨 평화상을 탄 랠프 번치 박사이다.
탈무드에 이런 얘기가 있다. 랍비 아키바가 나귀와 개와 램프를 가지고 여행을 하고 있었다. 해가 지자 한 채의 헛간에 들어가 잠을 자기로 한다. 아키바는 책을 읽으려고 램프를 켰는데 그것이 그만 바람에 꺼지고 말았다. 또한 그가 잠든 사이에 여우가 개를, 사자가 나귀를 잡아 먹었다.
아침이 되자 랍비는 램프만을 들고 가다가 어떤 마을에 도착했는데, 자세히보니 그 마을에는 도둑이 쳐들어와 사람들을 몰살시켜 버린 것 임을 알았다. 만일 램프가 꺼지지 않았으면 랍비는 도둑에게 들켰을 것이며 개와 나귀가 살아 있었으면 짖는 소리에 또 도둑에게 발견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모든 것을 잃은 덕분에 자신의 목숨을 살릴 수 있었던 것이다. 랍비는 "최악의 상태에서도 인간은 희망을 잃어서는 안된다. 나쁜 일이 좋은 일에 연결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함을 깨달았다.
'헤버'라는 사람의 글에 이런 것이 있다. "호수를 바라보면서 나는 저녁에 반짝이는 별들이 그 위에 비췸을 본다. 하늘의 별들은 움직이지 않는데, 호수 물결에 반사된 별들은 동요한다. 하늘의 소망은 분명하지만, 지상의 소망은 그것이 아무리 빛난다 할지라도 변하는 상황에 따라 흔들린다. 지상의 소망은 거짓되고 장사꾼들처럼 떠돌아 다닌다." (그러나 희망은 중요하다. 움직이지 않는 하늘의 별치 하늘에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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