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말]
금년 고난 주간과 부활 주간에는 한 사람 베드로와 예수님과의 관계를 통해서 고난과 부활의 주님을 만나기 원합니다.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는 주님을 따르기 원하는 우리 모든 성도의 대표성을 갖는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베드로가 배신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그 배신을 너그럽게 용서하시고 그를 위대한 신앙의 용장으로 키워내셨습니다.
이 비밀은 무엇입니까?
이 주제가 바로 오늘 성금요일과 모레 부활주일의 중심주제입니다.
배신의 아픔을 십자가에서 대신 담당하시고 부활을 통해 새롭게 빚으신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만나기 원합니다.
1. 예수님께는 사랑하는 베드로가 있었습니다.
1] 베드로는 예수님을 우선순위로 삼은 제자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부름을 받았을 때에 배와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2] 베드로는 예수님의 정체성을 바로 알았습니다.
그물이 찢어질 만큼 많은 고기가 잡혔을 때, 위대한 예수님의 정체성을 고백합니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3]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더냐고 예수님이 물었을 때에 위대한 예수님의 정체성을 고백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4] 예수님을 위한 중요한 결단을 한 사람입니다.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5] 예수님께서 위기에 처했을 때, 과감히 검을 빼들고 예수님을 잡으러 온 군인에 맞섰습니다.
베드로는 제자들을 대표할 만한 예수님의 수제자였습니다.
2. 예수님께서는 이런 수제자 베드로에게까지 부인 당하셨습니다.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고 말았습니다.
"이 사람도 그 사람과 함께 있었도다.”
'네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겠노라”
“아니라 이 사람도 같은 당이라, 갈릴리 사람이라”
“맹세하고 또 부인하여 가로되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이 사람도 그 당이라”
“저주하며 맹세하여 가로되, 내가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이 모든 사건은 불과 한 시간에 걸쳐 일어난 사건입니다.
우리가 보기에도 얼마나 안쓰럽습니까?
묵묵히 그 베드로의 모습을 지켜보셔야 하였던 주님의 아픔이 얼마나 크셨겠습니까?
누구에게 예수님께서 부인을 당하였습니까?
1] [수제자 베드로]입니다.
2] [한 번도 아니고 세 번]이나 부인 당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 모든 사람 앞에서 부인 당하셨습니다.(70절)
- 맹세하고 또 부인 당하셨습니다.(72절)
- 저주하며 맹세하여 (부인) 당하였습니다.(74절)
사랑하는 베드로로부터의 부인당하신 예수님의 마음은 어떠하였을까요?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존재의미를 부인을 당해본 적이 있습니까?
지혜로운 아내는 남편의 존재의미를 존중합니다.
남편이 아내로부터 기대하는 것 중 아름다운 것이 바로 존재성을 높여주는 것입니다. 어디 남편뿐이겠습니까?
아내의 존재감을 높여주고
자녀의 존재감을 높여주고
교우끼리 존재감을 높여주는 것은 아름다운 일입니다.
좋은 가족은 가족이 고난을 당할 때 알 수 있습니다.
좋은 형제는 형제가 고난을 당할 때 알 수 있습니다.
좋은 성도는 교회가 어려울 때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웃이 어려움을 당할 수록 더욱 좋은 친구가 되어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사랑하는 제자 베드로에게 부인을 당하셨습니다.
- 모든 사람 앞에서 부인당하였습니다.(70절)
- 맹세하고 또 부인당하였습니다.(72절)
- 저주하며 맹세하여 (부인) 당하였습니다.(74절)
우리는 베드로의 부인을 통해, 베드로는 별난 사람이 아님을 깨달을 수 있기 바랍니다.
우리 자신의 삶 중에 바로 베드로와 같이 주님을 무시하고 부인하는 일이 많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고난과 무관한 삶이 너무 많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등진 언어로 주님을 부인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등진 행위로 주님을 부인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등진 마음으로 주님을 부인 할 수 있습니다.
1] 순간순간 위험 앞에 거짓으로 대처할 수 있습니다.(70절)
내가 알지 못하겠노라(70,72절)
거짓을 말하던 베드로처럼
2] 주님과의 관계의 부정할 수 있습니다.(69절)
주님과 함께 있었음을 지적하는 계집종에게 주님을 부정하던 베드로처럼.
(주님과의 관계성과 교제를 단절하려는 마음이 우리에게 있음을 회개)
3] 사람앞에서 주님의 공동체임을 인정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73절)
예수의 당이 아니다 부인한 베드로처럼!
4] 주님의 말씀을 인정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마26:31, 34절)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세번 나를 부인하리라-시던
주님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하던 베드로처럼.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에 걸맞는 언어를 올려드릴 수 있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에 걸맞는 행위를 올려드릴 수 있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에 걸맞는 생각을 올려드릴 수 있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에 걸맞는 마음을 올려드릴 수 있기 바랍니다.
3. 좀더 주의했더라면 하는 일들이 베드로에겐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주님을 멀찍이 따라갑니다.
베드로의 실패 원인이 무엇일까 잠깐 돌아봅니다.
1] 과신입니다.
저녁 만찬에 예수님이 제자들을 보시고 너희들은 다 나를 버리고 도망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때 베드로가 어떤 태도를 가져야 했습니까?
겸손했어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농담하시는 분이 아니시거든요.
그런데 베드로는 자신을 너무 믿는 과신을 봅니다.
‘다 떠날지라도 저는 아닙니다. 저는 주님과 함께 죽을지언정 주님을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이를 들으신 예수님은 닭이 울기 전 나를 세 번 부인할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과신에 차 있는 베드로에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미신은 믿지 말아야 할 것을 믿은 것입니다.
불신이 믿어야 할 것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과신은 미신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유충식)
호언장담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없을 때 위험천만입니다.
자신을 믿고 하는 호언장담은 불신이요 미신입니다.
섰다할 때,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정도면 됐다’생각할 그때 마귀는 '넌, 내 밥'이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섰다' 생각하는 바로 그 순간, 마귀는 뒷다리를 겁니다.
자기를 신뢰하는 사람은 마귀의 표적임을 아셔야 합니다.
2]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기도해야 할 때, 기도하지 못했습니다.
주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밤이 맟도록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잠들어 있었습니다.
시험에 들지 않도록 깨어있어 기도하라 당부하셨으나 또다시 잠들었습니다.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사 59:1-2)
기도로 조율이 되어있지 못하니 영력이 없고, 그래서 적이 다가왔을 때, 검을 의지합니다.
결국 주님을 세 번씩이나 부인합니다.
3] 멀찍이 따라갔습니다.
“베드로가 멀찍이 예수를 좇아 대제사장의 집 뜰에까지 가서 그 결국을 보려고 안에 들어가 하속들과 함께 앉았더라”(58절)
"멀찍이!"
유익하면 가까이 가고 불리하면 뒤돌아 설 수 있는 거리입니다.
이는 신앙적으로는 위험한 거리입니다.
떨어지면 위험한 거리입니다.(유충식)
베드로는 방관자의 자리입니다.
주님과 상관없는 자리입니다.
주님이 아파하시는 자리입니다.
자신이 다치지 않을 만한 안전거리입니다.
사람에 대한 두려움 때문입니다.
상황에 대한 두려움 때문입니다.
[요한일서 4장 18절]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피해(손해)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어려운 때일수록 주님을 가까이해야 합니다.
어려운 때일수록 말씀을 가까이해야 합니다.
어려운 때일수록 교회 가까이 해야 합니다.
교회에서도 강단에서 멀찍이 서기 시작하면 객관적이 되고 비판하기 시작합니다.
친구가 어려운 때에 있을수록 가까이 있어야 합니다.
교우 간에도 어려운 때에 있을수록 가까이 있어야 합니다.
추울 때일수록 난로는 가까이 합니다. 따뜻합니다.
대신
사탄과 안전거리를 유지해야 합니다. 신앙의 안전거리 말입니다.
앞 차와의 안전거리를 갖듯이 어두움의 권세와 안전거리를 두어야 합니다.
4. 그러나 베드로는 회개함으로 주님께 돌아왔습니다.
[74-75]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통곡하며 회개하는 베드로를 만납니다.
[1] 말씀이 생각나서 심히 통곡하며 회개합니다.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2] 주님의 얼굴을 바라볼 때, 통곡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주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시니"
예수님께서 측은한 눈으로 베드로를 바라보십니다.
한없는 인자와 이해심으로 바라보시는 주님!
격려하고 위로하시는 예수님의 사랑의 눈이 있습니다.
어려운 날에 예수님의 눈을 바라보십시오.
[3] 회개의 눈물이 있었습니다.
회개한 죄인과 회개하지 않는 죄인이 있을 뿐입니다.
닭이 우는 소리를 들으면서 통곡한 베드로! 우리는 어떤 닭 울음소리를 듣고 있습니까?
회개는 우리의 결단과 함께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하심에 접목을 시킵니다.
[마무리하는 말]
베드로는 연약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늘 십자가에 대신 돌아가심으로 연약을 감당하신 주님의 사랑을 우리는 만납니다.
1] 주님께서는 우리의 연약함을 미리 아셨습니다.
전에 말씀으로 알려주셨습니다.(마26:31-34)
2] 닭이 우는 것을 통해 깨닫게 하셨습니다.(75절)
주님께서는 때로 환경을 통해 알려주셨습니다.
3] 생각나게 하셨습니다.
(75절)말씀이 기억나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극진한 사랑입니다.(요한복음 14:26)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 그렇게 하십니다.
4] 통곡하게 하셨습니다.(75절)
회개의 마음은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연약을 넘어 회개하기를 원하시는 주님의 은혜를 만납니다.
주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며 우리의 연약을 내어놓고
주님의 용서와 돕는 은혜를 받으며 십자가에서 피 흘려 우리의 연약을 대신 감당하신 주님의 사랑에 감사합시다.
히브리서 4: 15-16
마태 8장 17절/이사야 5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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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마26:69-75)
69 베드로가 바깥뜰에 앉았더니 한 비자가 나아와 가로되 너도 갈릴리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거늘 70 베드로가 모든 사람 앞에서 부인하여 가로되 나는 네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겠노라 하며 71 앞문까지 나아가니 다른 비자가 저를 보고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되 이 사람은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매 72 베드로가 맹세하고 또 부인하여 가로되 내가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더라 73 조금 후에 곁에 섰던 사람들이 나아와 베드로에게 이르되 너도 진실로 그 당이라 네 말소리가 너를 표명한다 하거늘 74 저가 저주하며 맹세하여 가로되 내가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닭이 곧 울더라 75 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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