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사도행전 강해를 마칩니다. 시작한 지 오늘로 110번째입니다. 2년 반 동안 여러분은 어떤 메시지를 들으셨습니까? 성령께서 여러분께 무엇을 보여주셨습니까?
예수님께서 흑암의 땅 갈릴리에서 시작하신 복음을, 성령께서 어떻게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게 하시는지를 보아 왔습니다. 주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부터 땅끝까지! 복음이 이르게 하실 것을 약속(행1:8)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 약속을 신실히 지키시는 분이심을 알았습니다.
바울 사도는 이 주님의 약속을 따라 로마까지 온 것입니다. 하나님의 비젼을 따라 로마에 온 것입니다.
본문은 로마에 거주하는 유대인들에게 자신이 로마에 온 이와 같은 이유를 설명함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바울이 하나님의 언약을 따라 로마까지 온 이유를 깨달아 앎으로 우리를 이곳에 파송하신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사도행전의 남은 에필로그를 채워가는 복을 받기를 원합니다.
1. 이스라엘의 소망을 인하여 왔습니다.
18 로마인은 나를 심문하여 죽일 죄목이 없으므로 놓으려 하였으나 19 유대인들이 반대하기로 내가 마지 못하여 가이사에게 호소함이요 내 민족을 송사하려는 것이 아니로라 20 이러하므로 너희를 보고 함께 이야기하려고 청하였노니 이스라엘의 소망을 인하여 내가 이 쇠사슬에 매인 바 되었노라
바울 사도는 유대인을 송사하려고 로마에 온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소망(Vision)을 인하여 쇠사슬에 매여 왔다고 말합니다.
이스라엘의 소망이 무엇입니까? 메시야입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메시야는 흑암의 권세에서 장차 이스라엘을 구원할 이스라엘의 구원자, 그리스도이십니다. 특히 로마의 압제 속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 메시야는 고대하고 기다리는 소망이었습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야라고 확신하고 전파하는 사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이스라엘의 소망이라고 확신하고 전파하는 사람입니다. 이 일로 인하여 쇠사슬에 매여 왔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바울이 이곳 로마에 온 것은 자신의 의를 세우려는 것이 아닙니다.
살고 보자는 생에 대한 욕심 때문도 아닙니다.
민족을 송사 하려는 것은 더욱 아닙니다.
유대인에 대한 개인적인 섭섭함 때문도 아닙니다.
자신이 유대인들보다 옳다는 것을 로마 황제로부터 인정받자는 의도도 없습니다.
이스라엘의 소망이요, 메시야이신 갈릴리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대사로 파송받아 온 것입니다.
땅 끝까지 복음을 전파하시려는 주님의 꿈(계획)을 이루기 위해 왔습니다.
로마에서도 복음을 전해야겠다는 주님의 꿈(계획)을 이루기 위해 왔습니다
자신의 이상 때문이 아니라, 주님께서 말씀하신 주님의 꿈을 이루기 원하여 스스로 매인 바된 바울 사도를 보면서, 저는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은 질문이 있습니다.
우리는 무엇 때문에 이곳에 와 있습니까?
살기 위해서입니까? 한국이라는 상황이 나에게 너무 힘들어서 이곳에 왔습니까?
우리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입니까? 아니면 우리 자녀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입니까?
바울은 로마에 있는 동족들에게 이스라엘의 소망이신 메시야, 곧 예수 그리스도를 인하여 왔다고 했습니다. 주님의 비젼을 이루기 원합니다.
어떤 선교사 가정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선교사 부인이 한사코 웁니다. 선교사님께서 갖은 좋은 말로 위로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사랑한다는 말도, 여러 좋은 말도 소용이 없습니다. 하다하다 못한 선교사님께서 유행가를 했대요. '울려고 내가 왔던가 웃을려고 왔던가?' 그 노래를 듣더니 아내가 웃더라는 것입니다.
기가 막혀 웃은 것이겠지요. 웃자는 말이지만, 뼈가 있는 말입니다. 무엇을 위해 이 토론토에 왔는가 생각을 정리해볼 일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웃기 위해 온 것이 아닙니다. 감정을 따라 온 것도 아닙니다. 주님의 말씀을 따라 온 것입니다.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온 것입니다. 주님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왔던 것입니다. 모든 일은 주님 중심으로 생각하고, 주님께서 기뻐하실 일이라면 쇠사슬에라도 매일 수 있는 사람! 주님을 위해서라면 시간과 물질과 자신의 생애를 내놓을 수 있는 사람! 그는 어리석은 자가 아닙니다.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이스라엘의 소망을 인하여
내가 이 쇠사슬에 매인 바 되었노라
예수님 때문에 주어진 쇠사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복있는 사람입니다.
2.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러 왔습니다.
(행 28:23-31)
23 저희가 일자를 정하고 그의 우거하는 집에 많이 오니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의 일로 권하더라 24 그말을 믿는 사람도 있고 믿지 아니하는 사람도 있어 25 서로 맞지 아니하여 흩어질 때에 바울이 한 말로 일러 가로되 성령이 선지자 이사야로 너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것이 옳도다..... 28 그런즉 하나님의 이 구원을 이방인에게로 보내신 줄 알라 저희는 또한 들으리라 하더라 29 (없 음) 30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유하며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31 담대히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께 관한 것을 가르치되 금하는 사람이 없었더라
주님께서는 그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할 것을 말씀하셨을 뿐만 아니라 복음을 로마에서도 전하여야 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막상 와보니 여전히 매인 몸입니다. 여러분 같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바울은 왜 하나님께서 복음을 전할 환경을 주시지 않으십니까 반항하지 않습니다. 대신 바울은 자신에게 열려 있는 환경을 살펴 봅니다. 사람들을 맘날 수 있는 자유가 있습니다. 자기가 남을 자유로 찾아갈 수는 없으나 찾아오는 손님을 접대할 수 있습니다. 그는 이 자유를 이용하여 자기를 방문하는 모든 사람을 영접하여 복음 즉 하나님 나라에 관한 것을 가르쳤습니다. 로마 당국은 바울의 그러한 선교 행위를 방해하지 않았습니다.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은 복음을 거부하고 방해했던 반면(21 ;27-36; 23:1-15), 로마에서는 복음이 아무런 저항을 받지 않고 전파되었습니다. 이것은 바울에게 주어진 소명과 주님의 약속이 성취된 것입니다(22:21 ;23:11). 주님께서 약속을 지키신 것입니다. 당시 세계의 중심지였던 로마에서 복음이 성공적으로 전파되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복음은 로마와 전세계에 퍼져나가게 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바울의 숙소에 모여왔습니다. 버거운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께 원망하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할 수 있는 기회를 찾은 것입니다.
바울은 유대인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 불신자들이 깨닫지 못하는 것이 있다.
- 흑암의 권세에 있는 자들이 깨닫지 못하는 것이 있다.
- 하나님 나라는 세상 나라에 속한 것이 아니다
- 혈과 육으로는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얻을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현실입니다
- 말에 있지 아니하고 능력에 있다.
-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다.
- 영원하다.
- 우리 안(내면)에 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천국에 관한 많은 내용을 비유로 말씀하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 겨자씨 비유를 통해 천국은 비록 처음에 작아 보이지만 결국 커지고, 새를 살리는 안식처가 될 수 있음을 말씀하십니다. 이는 갈릴리 어부 몇 사람을 통해 오늘 날 기독교가 흥왕하기까지의 과정을 통해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 누룩의 비유를 통해 천국이 이 세상을 충분히 변화시킬 수 있음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북한이 저렇게 기독교를 두려워 합니다.
- 밭에 감추인 보화 비유와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 비유를 통해 천국은 자기의 소유를 팔아 살만큼 값진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 씨뿌리는 비유를 통해 천국은 열매로 알 수 있음을 말씀하셨습니다.
- 그물의 비유를 통해 가릴 날이 있음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토록 중요하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천국을 전파하고 있습니다.
- 세례 요한이 천국을 전파했습니다.
- 예수님께서 천국을 전파했습니다.
- 열두 제자들이 천국을 전파했습니다.
- 70인의 제자들이 천국을 전파했습니다.
- 빌립이 천국을 전파했습니다.
이 천국은 부자라고 들어가는 곳이 아닙니다.
- 이 천국은 심령이 가난한 자가 가는 곳입니다.
-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고, 믿음 때문에 환난을 겪은 자가 가는 곳입니다.
- 믿고, 거듭난 자가 가는 곳입니다.
- 회개한 자가 가는 곳입니다.
-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가는 곳입니다.
-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가는 곳입니다.
-어린아이 같은 자가 가는 곳입니다.
그 하나님 나라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실현되었습니다. 그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확증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그의 재림으로 완성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먼저 증거한 하나님 나라는 예수님 지상 사역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막 1:15) 다만 하나님 나라는 유대인들이 기대해 왔던 유대 민족주의적이고 정치적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인격과 삶을 통해 보여주신 새 하늘과 새 땅에 관한 것이었습니다(요 18 :36; 고후3:17; 계 21:1).
우리는 예수님을 보면 천국이 이런 곳이구나 알게 됩니다.
- 말구유에 찾아오신 예수님을 보면 천국이 이런 곳이구나 알게 됩니다.
- 사마리아여인에게 생수가 되신 예수님을 보면 천국이 이런 곳이구나 알게 됩니다.
-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인을 처리하시는 예수님을 보면 천국이 이런 곳이구나 알게 됩니다.
- 어부들을 불러 하나님 나라 기초로 삼으신 예수님을 보면 천국이 이런 곳이구나 알게 됩니다.
- 십자가에서 대신 우리 죄를 감당하신 예수님을 보면 천국이 이런 곳이구나 알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이 예수님에 관한 것을 증거한 것입니다. 구약의 메시야 예언과 약속이 예수에게서 성취되었음을 전했습니다. 이러한 바울의 기독교적 메시야관은 유대인들에게 낯선 것이었습니다. 이해하기 힘든 것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로마를 제압하고 오실 정치적인 메시야를 기대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예수님이 바로 성경이 말씀하는 그리스도이심을 설득했습니다. 단지 소개하는데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이해시켜 설득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전하더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페이돈'(*)이 '설복하다'는 뜻을 갖는 단어를 통해 잘 알 수 있습니다.
[복음에 대한 반응]
24 그말을 믿는 사람도 있고 믿지 아니하는 사람도 있어 25 서로 맞지 아니하여 흩어질 때에
그러나 그 결과는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으로 나타납니다. 이는 이 지상에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자는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복음을 증거할 때는 항상 좋은 결과만 나타나지 않습니다. 때로는 조롱과 비난이 있습니다. 바울과 같은 대 전도인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이를 이상한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이는 이미 성경에 예언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역사에는 그 백성이 완악하여 선지자 이사야의 말을 청종(聽從)치 아니합니다. 마침내는 바벧론의 포로가 되는 것으로 그 예언은 성취되었습니다. 이제 바울은 그 말씀을 이사야 시대 백성의 후손들에게 상기시켜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에게 있어서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의 완고함과 그에 따른 심판을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스라엘이 구원의 복음을(24절) 거부하였기 때문에 그 구원이 이방인에게로 향할 수밖에 없음을 알려줍니다(28절). 결국에는 유대인들도 구원에 참여하게 하려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지만 이방인들이 받을 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롬 11:1-12).
'구원이 이방인에게로! 저희는 또한 들으리라!'
'하나님의 구원은 먼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제시 되었으나 그들이 거부하였다. 그리하여 결국 구원은 이방인들에게 보내어졌다.'
이것은 바울이 여러 차례 강조한 말씀입니다.(13: 48; 18:6), 이방인 선교의 정당성을 확인해 주는 말씀입니다(22:18, 21).
유대인들은 '듣지 않을 것이나'(22: 18), 이방인들은 '들을 것이다'. 그 결과 유대인에게 주어져야 할 구원이 이방인에게 돌아갈 것이다.
사도행전은 유대인들이 복음을 거역하는 것과 복음이 이방인들 사이에 퍼져 나가는 과정이 평행을 이루면서 기록되어 있습니다. 26-28절에 이르러서는 그것이 결정적으로 확인되면서 구원이 이방인에게 확산됨을 선언하는 것으로 본서 끝이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로마에서의 바울의 생활을 간단하고도 대략적인 말로 묘사하고 있습니다(25-31절).
본절에 의하면 바울은 만 2년 동안 로마에 머물렀습니다. 본문의 2년은 석방되기 이전 연금된 상태로 있었던 기간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입니다(16절) 이것은 바울에 대한 재판이 2년 동안이나 열리지않고 연기되었거나, 판결이 지연(遲延)되었음을 뜻합니다. 유대인 고소자들은 재판의 승산이 없고 더구나 재판 과정에서 구체적인 증거없이 사람을 괴롭히기 위한 고소로 여겨질 때는 그에 대한 응징을 받아야 했던 로마법정의 절차가 두려워 법정 고소 만료일인 18개월이 지나도록 법정에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이후 결석(缺席) 재판으로 진행되어 바울이 무죄 판결을 받아 석방되었을 것이라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입니다(Ramsay, Bruce). 이 때는 바울이 로마에 도착한 61년 중순부터 63년 까지의 기간이었을 것입니다.
맺음말
바울은 로마에서도 복음전파 사역을 계속하였습니다. 그는 어떤 상황에서든지 그 상황을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았습니다. 자신의 서 있는 곳을 선교지로 알아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로마를 복음화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삼았던 것입니다. 어떠한 상황하에서도 복음 전파에 주력하며 용기를 잃지 말아야 함을 보여 줍니다. 누가는 바울이 2년간 그 집에 머물면서 전도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예화] 하나님 나라에 지은 궁전
예수님의 제자 도마의 일생 가운데 이러한 일화가 남아있습니다. 외경에 의하면 도마는 노예 신분으로 목수가 되어서 인도에 건너갔다고 합니다.
그 당시 인도에 가기가 너무 어려웠기 때문에 노예가 되어 팔려가는 길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도마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흔연히 자원하여 노예가 되고, 목수 기술을 배워 인도로 건너갔습니다. 그의 기술이 뛰어남을 보고 인도왕은 거액의 돈을 주면서 왕궁을 지으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리하여 왕궁을 지으려는데 마침 인도에 참혹한 흉년이 들어서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어가고 있습니다. 이 모습을 본 도마는 감히 그 큰 돈으로 사치스런 집을 지을 수가 없어서 그 돈으로 양식을 구하여 죽어가는 사람들을 많이 살리고 구제를 하였다고 합니다. 기일이 되어 왕이 궁전을 살펴보니 궁전은 되어있지를 않고 돈은 도마가 다 허비했습니다. 왕은 노하여 도마에게 사형언도를 내리고 죽일 날짜까지 결정했습니다. 그런데 도마의 사형집행 전날에 왕의 사촌 동생이 죽었습니다. 죽어서 하나님 나라에 가서 묘한 환상을 보고 깨어나 돌아왔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가보니 굉장히 화려한 큰 궁전이 하나있는데 너무 좋아서 곁에 가보니 그것은 바로 자기의 형인 인도왕의 궁전이었습니다. 그래서 천사에게 “이 궁전을 누가 지었습니까.”하고 물었더니. “사도 도마가 왕을 위해 지은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깨어나 돌아와서 그 사실을 형에게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그때 왕은 깜짝 놀랐습니다. 도마를 죽이려는 판인데 그가 자기를 위해 하나님 나라에 큰 궁전을 세웠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왕은 도마를 석방시켜 주고, 오히려 도마의 말을 따라서 개종하여 예수를 믿게 되고, 도마를 도와서 힘써 복음 전도를 했다는 일화가 남아있습니다. 그 차이점이 무엇이겠습니까? 현세만 바라보던 왕의 눈이 열려서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고, 하나님 나라의 보화를 보았을 때 그의 생명이 변화되고 풍부해지고 아름다워지고 거룩해졌던 것입니다.
한편 바울은 몇 년 후에 교회의 핍박이 심해지자 다시 투옥되었습니다.(A.D.66년) 그 이듬해에 순교하였다고 전해집니다. 이렇게 해서 위대한 전도자의 일생이 마감됩니다. 그의 일생은 한 마디로 성령의 사역과 교회의 성장에 투신한 삶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으로 개시된 전도사역은 사도 바울이 이방지역에 뿌린 복음의 씨로 말미암아 삼십배 육십배 백배의 큰 결실을 맺게 되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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